소설리스트

236화 (236/500)

236화

철컥철컥.

자물쇠와 열쇠가 맞지 않았다.

안에서 안 된다고 소리치는데도 시하가 열심히 열쇠를 움직였다.

“아?”

“시하야. 이 열쇠는 아닌가 보다.”

루나는 한 번 안 되는 걸 보고 곧바로 열쇠를 찾으러 가버렸다.

하지만 집념의 이시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그렇지만 될 리가 있나.

“이거 아냐.”

응. 그거 아닌 거 한참 전에 밝혀졌어.

그러던 사이에 루나가 열쇠를 들고 왔지만 실패.

둘이서 다시 열쇠를 찾으러 여행을 떠났다.

앞으로 남은 열쇠는 5개다.

나는 가만히 시하의 뒤를 밟으며 뭐 하는지 지켜보았다.

“어디찌? 형아. 어디써?”

“그걸 형이 말해 주면 숨긴 의미가 없잖아.”

“아냐. 형아. 힌트. 힌트.”

“오! 힌트라는 말을 알아?”

“아아!”

나는 살며시 고민했다.

어떻게 힌트를 주면 될까? 너무 어렵지 않게, 그리고 너무 쉽지 않게 줘야 한다.

음. 아무 생각 안 나니 그냥 하나는 줘보자.

“힌트는 나무야. 나무.”

“나무!”

시하가 나무가 있는 데로 도도도 달렸다.

그 주변을 열심히 찾았는데 발견하지 못했는지 나무를 짚었다.

“나무야. 어디써. 아라?”

갑자기 나무랑 대화를 시작한다.

입도 없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여간 생각지 못한 방향이다.

그래서 더 재밌다.

“여기 업써! 아아! 시하도 아라.”

“푸흡.”

“주머니에 이써?”

시하가 살짝 나무껍질 벗겨진 데를 만져보았다.

나무의 상처를 주머니로 표현하다니. 역시 대단해.

“업써. 나무 거지 말 해써?”

나무를 손으로 때찌때찌 해주고 다른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무가 거짓말했다니. 사실 말도 못 하는데 억울해서 답답할 것 같다.

큰 나무들에는 없으니 이제 작은 나무들에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시하의 시선에 맞춰서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열쇠를 발견했다.

“차자따!”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 안 보였나 보다.

근처에 있었는데 무고한 나무나 혼내고 있으니.

나무에 입이 달려있다면 ‘재판관님!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형아. 이거야. 이거.”

“그래. 그게 맞는지 한번 볼까?”

시하가 쪼르르 달려가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달칵. 진짜 열쇠가 맞았는지 자물쇠가 열렸다.

“루나 누나!! 시하 차자써! 이거 열려써!”

“응?”

루나가 대충 눈치껏 알아들었는지 시하에게 다가갔다.

“great! 시하! 머시써! 잘해써!”

“땡쿠. 땡쿠.”

시하가 자랑스러운지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배를 쭈욱 내밀었다.

루나가 손가락으로 시하의 배꼽을 꾸욱 눌렀다.

“아?”

순식간에 배를 움켜잡고 뒤로 물러났다.

루나가 이게 아닌가? 싶은 얼굴을 했다.

너희들 뭐 하니?

“루나 누나. 열자.”

드디어 개봉되는 저금통.

안에는 프린트된 종이가 있었다.

기프티콘을 프린트해서 미리 넣어두었다.

“이거 모야?”

“이거 모야?”

나는 피식 웃었다.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케이크 주는 쿠폰.”

“정말?”

“정말?”

시하가 두 명인 줄.

근데 가만 보니 루나가 웬만하면 알아듣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한국 드라마를 자주 봤으면 귀가 조금 열리지 않았을까?

물론 자막을 통해서 보긴 했겠지만. 아니, 자막을 읽을 줄 아나? 아마 알겠지?

오히려 모르더라도 그만큼 귀가 트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찾았으니 그럼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가지러 갈까?”

“아아! 조아!”

“와우! 베리 굿!”

「빨리 먹고 싶구만.」

어? 타이론 씨. 있었어요? 난 없는 줄 알았네.

“일단은…. 남은 열쇠를 회수하고.”

내가 그렇게 타이론에게 전해주자 ‘아, 맞네.’ 하면서 터덜터덜 열쇠를 회수하러 갔다.

이렇게 3개 만에 찾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럴 줄 알았으면 진짜 열쇠를 기억하고 있을 걸 그랬다. 그러면 마지막에 숨기면 되는데.

다음에는 그렇게 해야겠다.

***

겨울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추운 데서 벌벌 떨면서 먹는 게 아니라 따뜻한 집안에서 더운 보일러를 마음껏 느끼며 아이스크림 한 입.

굉장히 사치스러운(?) 생활이다.

그런 호화로운 맛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일단 밥부터 먹고 말이다.

“자. 이제 아이스크림을 먹어볼까?”

보이는 것은 9가지의 맛.

초콜릿, 치즈케이크, 민트초코, 슈팅스타, 체리 등등.

다른 건 분명히 다 맛있을 테지만 제일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과연 시하는 민트초코를 어떻게 생각할까?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세 가지 파로 나뉜다는 민트초코다.

첫 번째. 극호파. 루나.

「와! 진짜 맛있다! 엄마, 아빠 이거 진짜 맛있어!」

「어머. 엄마도 마음에 들어. 역시 민트초코가 짱이지.」

두 번째. 중도파. 이시혁.

「전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굳이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을 것 같네요. 굳이 따지자면 제 입맛에 더 맛있는 걸 사 먹는 타입이라.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기도 하고.」

세 번째. 불호파. 타이론.

「이걸 대체 왜 돈 주고 먹어? 후라보노 껌에 초코 올린 맛인데? 갑자기 한국에 왔을 때 씹은 후라보노 껌이 생각나는구만.」

설마 외국인 입에서 저 껌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하긴 투수가 껌 씹는 모습을 종종 본 적 있는 것 같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시하는 이 셋 중에 어디에 속할지가 궁금하다.

“시하야. 이게 민트초코라는 거야. 줄여서 민초.”

“민초?”

“응. 한번 먹어볼래?”

“마시써?”

“그건 시하의 입맛에 따라 다르지. 먹어봐. 먹어봐.”

뭔가 이러니까 애들에게 장난치는 삼촌이 된 기분이다.

전에 신맛 사탕을 준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시하가 민초를 푹 떠서 한 입 먹는다.

오물오물.

“???”

의문 어린 얼굴을 하더니 다시 한번 떠서 먹어본다.

“???”

‘이게 무슨 맛이지? 좀 신기한 맛인데?’ 하는 얼굴이다.

푹. 푹. 푹. 냠. 냠. 냠.

“어때?”

“아? 몰라.”

“응? 모르겠어?”

“마시써.”

“오! 맛있어?”

“아아.”

반응을 보니 극호는 아니고 그냥 호인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손이 열심히 가는 것 보니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형아. 아~”

“으응. 아~”

나도 민초를 한 입 먹었다.

그런데 아까 타이론이 후라보노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

진짜 맛 표현 뭔데…….

듣고 나니 괜히 절묘하면서도 막 상상이 된다.

껌을 삼키… 삼킨… 그만 생각하자.

이 정도 상상력이면 아무 생각 없던 나도 극불호가 될 것 같으니까.

“형아. 이거 모야? 머거?”

“응? 아, 캐릭터? 저거 초콜릿이야. 먹어도 돼.”

시하가 손으로 덥석 잡더니 입에 앙 하고 물어서 먹었다.

캐릭터의 얼굴이 부서진다.

그걸 보고 루나가 소리를 질렀다.

“오! 노! 시하! 장난 아냐!”

대충 캐릭터를 먹은 게 너무 아깝다. 어떻게 그 귀여운 걸 먹을 수 있냐. 이런 뜻인 것 같다.

시하가 ‘아?’ 하면서 오도독오도독 열심히 씹어먹었다.

이미 캐릭터는 시하 뱃속으로 직행했다.

그런 애들을 보면서 후식을 먹고 있는데 타이론이 내 어깨를 콕콕 두드렸다.

「왜요?」

「사실 이제 곧 연봉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가요? 1년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럼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보통 협상이 결렬되면 FA로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가죠. 하지만 전 여기서 1년 더 보낼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린이집도 알아본 거고요.」

「아하.」

「올 시즌 성적은 좋게 끝났습니다. 여기가 어떤 점수로 계산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좀 더 올려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뭘 아나요. 그래도 성적이 좋았다면 충분히 제시해볼 만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런데 나는 고개가 갸웃거리는 것을 느꼈다.

직접 협상을 할 생각인가 싶어서.

「보통 에이전트를 끼고 하지 않나요?」

「아, 그게. KBO는 아직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아…. 그래서 직접 해야 하는군요?」

「그렇죠. 음. 시혁도 내게 통역을 잘해 줬으면 좋겠어요. 중요하거든요.」

「흠. 알겠어요. 이왕 맡은 거 열심히 할게요. 사실 전 NM의 계약직이긴 한데 여기 타이론을 전담했으니 열심히 해야죠.」

「좋았으! 아! 혹시 법 같은 거 잘 압니까?」

「법이요?」

「네. 혹시 몰라서 말이죠.」

「잘 모르지만 찾아보면 알겠죠? 어차피 프리랜서나 선수계약이나 크게 차이가 있겠지만 골자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아! 그래도 결국 머니 협상인데 좋은 카드가 있으면.」

「좋은 카드?」

나는 고민하다가 타이론을 쳐다보았다.

「이번 시즌 성적이 좋았다고 했죠?」

「그렇죠.」

「그럼 저랑 같이 일 좀 해요. 조금 수고는 들어도 의미는 있을지도 모르니까.」

「대체 뭘 하려고?」

나는 싱긋 웃었다.

「대한민국 대학생의 저력을 조금 보여준다고 할까?」

「???」

시하가 아이스크림을 냠 하고 먹으며 나를 불렀다.

“형아. 달아.”

“응.”

나도 달콤한 과실을 좀 안겨줘야겠다.

***

그날을 기점으로 타이론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타이론. 야구선수 중에 누구랑 친해요?」

「강현진 타자랑 친합니다.」

「투수가 아니라 타자요?」

「네. 굉장히 재밌거든요. 그리고 내 공을 받아주는 포수랑도 친하죠.」

「얼마나요? 같이 놀 수 있을 정도로?」

「그건 아닌데?」

「그럼 지금 전화해서 같이 놀자고 해요. 사진도 찍어오고.」

「???」

「일단 제 말대로 한번 해봐요. 실컷 놀다 오세요. 그렇다고 너무 집에 늦게 들어오지는 마시고.」

「???」

그렇게 타이론을 보내고 전에 통역사를 맡았던 분께 전화를 드렸다.

묻고 싶은 게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타이론의 연봉 협상이 편하도록 도울 생각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타이론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를 하다 보니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타이론이 내가 하는 걸 보고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는 표정을 짓더니 만약 연봉 협상이 잘되면 거기에 관해서 좀 떼주겠단다.

나는 입을 헤 벌리며 콜을 외쳤다.

꼼꼼하게 계약서도 썼다.

‘에이전트 계약이면 보통 퍼센트로 받겠지만.’

깔끔하게 300만 달라고 했다.

실제로 야구선수들이 에이전트를 끼면 대략 8%가량을 떼어간다.

연봉이 억이 넘는다면 어마어마한 금액.

나야 뭐 초보자기도 하고 한국적인 면모를 생각해 꼼꼼하게 챙겨주는 거로 300만 원이면 땡큐지.

타이론이 호탕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뭐, NM에서 한 달치 받고 타이론에게 받으면 엄청난 월급 아니겠나.

그러니 열심히 해야지.

문제는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달칵. 타이론의 예전 통역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아까 문자 드린 이시혁 통역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네네. 가능합니다. 쩝. 제가 나이도 있고 딴 일 쪽으로 가고 싶어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는데.」

“네. 그러시군요.”

「약간 타이론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부분을 못 말해 주고 나왔네요. 그래도 이렇게 연락을 주셔서 마음은 편하네요.」

“하하. NM회사 소속도 아니고 계약직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런데 저도 NM에 많이 애정이 있어서요. 일종의 서비스죠.」

“그 서비스를 NM에 말고 타이론에 발휘하시면 좋겠네요.”

「하하! 그게 맞죠. 타이론이 좋은 통역사랑 일해서 다행입니다.」

물론 저도 한 달이기는 한데…….

굳이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필요 없는 정보니까.

“그럼, 궁금한 것부터 말할게요. 타이론과 감독 그리고 코치진과 부딪친 적에 대해서 좀 말해 주세요. 기억나는 거면 됩니다. 또한 나쁜 것뿐만 아니라 잘 지냈던 것도요. 편파적이지 않게요. 경기에 대한 이해, 감독의 지시 이행 등등이요.”

「…….」

침묵이 이어져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여보세요?”

「우와…. 이 일 처음 하시는 거라고 했죠?」

“네?”

「진짜 장난 아니시다. 전 처음 할 때 배워야 할 게 많았는데. 근데 와. 전 이런 질문이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아….”

뭐 정상적인 통역사 질문은 아니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좀 더 다른 분야이니까.

「전 현장에서만 쓰이는 용어라던가 의학 용어들도 다수 알아야 해서 거기에 관한 정리가 필요한지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아니면 거기에 관해 먼저 물어볼 줄 알았어요. 또 제가 했던 통역 일에 관해서 자세히 듣고 싶은 건 줄 알았는데 이건 뜻밖이네요.」

“흠흠.”

「아, 죄송해요. 괜히 저 때랑은 달라서. 왜 나는 다른 통역사에게 저런 질문을 못 했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서.」

아, 그건 알았으니 빨리 이야기 좀 해줘요.

괜히 민망하네.

“혹시 팬들이 타이론에 관한 긍정적인 이야기도 있을까요? 그런 편지나 사이트나.”

「오! 그런 게 있긴 한데. 그런 것도 필요해요?」

“네.”

「거기까지 알려고 하다니…….」

나는 전 통역사와 대화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드디어 연봉 협상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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