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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234/500)

234화

다음 날.

다사다난한 생일파티가 끝났다.

뭔가 엄청 지쳤는지 머리를 뉘자마자 잠이 들었다.

거의 기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근데 자고 일어나니 나쁘지 않았다. 안 깨고 푹 자서 그런지 오히려 상쾌한 기분.

시하도 벌써 깨어났을까 싶어서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없네.’

역시 깨어난 걸까. 근데 오늘은 얼굴 찰싹찰싹을 당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니.

“형아!”

“응? 푸흡! 거기서 뭐 해.”

페페의 인형탈 얼굴이 땅에 머리를 박고 있고 그 안에 시하가 쏙 들어가 있었다.

머리 넣는 부분인데 몸을 넣으면 어떡하냐고.

“형아. 시하페페야.”

“푸흡.”

시하와 페페가 진정으로 합쳐졌다.

내가 쓰면 형아페페고 시하가 쓰면 시하페페 맞지.

하여간 아침부터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었다.

“시하야. 이제 씻을까?”

“아냐. 시하 요기.”

“그래. 여기 있어라. 형아는 좀 씻을게.”

“아냐. 시하도!”

내가 씻는다니까 도도도 달려와서 다리에 찰싹 붙었다.

이럴 줄 알았다.

시하를 옆구리에 대롱대롱 들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탱탱한 피부를 위해서는 따뜻한 물로 얼굴을 적시고 찬물로 헹궈야 해. 알았지?”

“시하 아라.”

“그래? 그럼 그거 알아? 어릴 때부터 피부를 관리해 줘야 한데. 시하가 지금은 피부가 탱탱하더라도 말이야.”

“왜?”

“어른이 되면 야근을 해서 그럴지도 몰라.”

“야군 모야?”

“어…. 시하가 어린이집에 있을 때까지 일하고. 그 뒤에 밥 먹고 또 일하는 걸 야근이라고 하는 거야.”

시하가 알겠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헉!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형아 피부. 개차나?”

“으응?”

“형아 밤에 따다닥 해. 야군이야. 야군.”

“어?”

아니, 뭐. 내가 밤에 일하는 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왜 한 방 먹은 것 같지?

“형아는 야근이 아니야. 그냥 일이야.”

“아냐. 밥 먹고 시하랑 노라. 또 일해.”

“어. 그때 일하지.”

“시하도 일해.”

“어. 시하도 그림 그리기는 하지.”

꼭 그림 그리는 시간이 있긴 했다.

그 자투리 시간에 나는 일을 하고. 물론 착한 어린이 시하는 일찍 잠이 든다.

시하가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찰싹 쳤다.

“시하 피부 개차나? 시하 야군해.”

엄청난 논리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게 왜 거기로 튀어가는 거지?

“시하는 괜찮아.”

“왜?”

“형아가 레드 형아니까.”

시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엄청난 사실이!’ 하는 표정이었다.

“마자. 형아. 레드 형아야.”

“푸흡.”

아니, 이 논리가 통하는 거 뭐냐고.

시하의 피부는 형아가 지킨다! 뭐 이런 것도 아니고.

“일단 매일매일 깨끗이 씻는 게 중요해. 알았지?”

“아아!”

화장실 안에서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빨리 씻기나 하자.

그렇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는데 현관 벨 소리가 들렸다.

띵-동-

“네. 누구세요.”

“형님. 저 백동입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어제 시하 생일 축하도 안 해준 분 아닙니까.”

“아니. 전 몰랐다니까요! 형님이 밤에 톡 남기고 답장도 없고.”

“제 잘못이라고요?”

“일단 문 열어주시죠. 에프터 생일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나는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동환이 형아가 생일 선물 들고 왔다고 하는데 열어줄까?”

“아? 시하 생일 아냐.”

“응. 오늘은 아니지. 어제지. 근데 어제 선물 못 줘서 들고 왔대.”

“백동 형아. 느져써.”

백동환이 미안하다고 문 앞에서 말했다.

시하가 고민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움에도 느져?”

“아니야. 안 그럴게.”

“약속.”

“응. 약속할게.”

“아냐. 손가락. 손가락.”

“아니. 문도 안 열어주는데 어떻게 손가락 거냐고.”

“백동 형아. 할 수 이써.”

저걸 백동환이 하려면 문짝을 힘으로 뜯고 시하의 새끼손가락에 걸어줘야 했다.

혹시 백동환을 헐크로 아는 거 아니야?

“시하야. 문 열어줄까?”

“아아!”

그렇게 문이 열리고 쇼핑백을 들고 있는 백동환이 등장했다.

시하랑 손가락 걸고 앞으로 까먹지 않기도 약속했다.

물론 내가 말 안 해준 잘못이 있긴 한데…….

“그래서 선물이 뭐야?”

“후후후. 어린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임이 있죠.”

“설마 게임기야! 그 비싼걸! 플레이스테…….”

“아, 형님! 제가 그럴 돈이 어딨습니까! 저 취직한 지 아직 1년도 안 되었어요!”

췌엣. 아닌가 보다. 뭐, 게임이라면 집에도 있으니까.

사실 딱히 관심이 없는지 자주는 하지 않고 있다. 막상 하면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럼 뭔데?”

“바로! 보드게임 부루마불!”

“…….”

부루마불.

각자 돈을 가지고 나라의 수도에 별장, 빌딩, 호텔을 짓는 게임.

그래. 이거 재밌지. 근데 말이야…. 시하가 돈 계산을 못 해.

결국에는 내가 다 해줘야 하는 직감이 왔다.

짜게 식은 눈으로 백동환을 봤다.

“왜요? 별로예요?”

“아니야. 아무것도.”

“근데 표정이…….”

“착각이야.”

시하가 말했다.

“백동 형아. 시하 알아. 돈 바써.”

“오! 여기 돈 봤구나! 근데 해봤어?”

“아냐.”

“안 해봤으면 해봐야지. 하하!”

시하가 선물을 받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제 가라.”

“아니. 왜요!”

“출근 준비해야지.”

“저는 멀었는데요? 우리 아침이라도 같이 먹지 않겠습니까?”

“어디 보자. 주걱이 어딨더라?”

“주걱은 왜?”

“흥부와 놀부 알지?”

“에헤이. 형님!”

오늘따라 저 커다란 근육에 밥풀 묻은 주걱을 찰싹 때려주고 싶네.

저 게임은 뫼비우스의 띠란 말이야! 거의 무한으로 놀아줘야 한다고!

젠가는 해도 부루마불은 사주고 싶지 않았다.

***

오늘은 어린이집 가고 싶지 않고 루나 누나랑 놀고 싶다고 해서 손을 잡고 타이론의 집으로 갔다.

루나 역시 내년에 다닐 어린이집을 구했다고 하니 아마 집에서 덜 심심하게 될 거다.

문제는 얼마 안 남은 올해다.

“루나 누나!”

“시하!”

루나가 시하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아까 전화로 물어봤을 때는 집에서 심심해한다고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던데…. 엄청 기운차네.

루나가 말했다.

“오! 이거 모야?”

시하가 말한 줄. 아무래도 같이 어울려 놀다 보니 시하의 언어를 습득했나 보다.

그래도 될까? 살며시 걱정이 들긴 한다.

“이거? 부루마불.”

“으잉?”

시하가 품에 꼬옥 안고 있는 부루마불을 보여주었다.

“게임.”

“오! 게임? 시하. 하자. 하자. 렛즈 고!”

“고고!”

갑자기 부루마불을 하기.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렇게 됐다. 타이론도 게임이라는 말에 옆에서 기웃거렸다.

「저게 뭐 하는 게임입니까?」

「음. 땅 사서 건물 짓는 게임? 상대방이 그 땅에 걸리면 돈을 지급해야 해요.」

「오! 저도 그 게임 압니다. 하하. 재밌겠군요. 어서 하죠.」

「???」

갑자기 타이론도 함께 참여했다.

아내분은 루나 뒤에서 돈 계산을 같이하기로 했다.

이거 왠지 내가 손해인 게임 아니야?

이 외국인을 데리고 게임을 해야 하다니.

그래도 숫자가 적혀 있어서 대충 설명하면 알겠지.

글은 못 읽어도 숫자는 안다.

아라비아에 감사해야 하나?

시하가 부루마불의 말을 선택했다.

전투기 모양으로 네 가지 색이 있었다.

“시하 레드!”

“루나 블루!”

“타이론 화이트!”

「전 그린 할게요. 왜요? 왜 그렇게 다들 쳐다보세요? 설마 저까지 3인칭으로 자칭하라는 거 아니죠?」

빠-안-

“시, 시혁. 그린.”

시선에 못 이겨 말했지만 왠지 수치스럽다.

다들 만족한 표정 짓는 거 뭐냐고.

하지만 시하만이 심각한 표정이다. 역시 시하야.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형아.”

“응.”

“형아. 레드야. 시하랑 바꺼.”

“어?”

시하가 레드랑 그린을 바꿨다.

아니. 그거 고민한 거냐고…. 형아는 레드. 이게 진리의 공식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타이론이 말했다.

「이거 애들 돈 계산할 때 많이 배우겠구만. 하하! 좋은 게임이야.」

「그… 렇죠?」

「하하. 당연하지. 또 다른 걸 배울 수 있는 게 있나?」

「음.」

갑자기 머릿속에서 유다희 선생님의 환청이 들려온다.

-이건 경제의 감각을 처음 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면을 숨기기 위해서예요! 사실 땅과 부동산은 언제나 옳다는 걸 가르치…….

웬 헛생각이. 훠이훠이 날아가라.

-그게 안 된다면 건물주라도 꾸라고…….

어허이. 아직도 안 물러났구나.

어느 순간부터 유다희 선생님에게 조금 물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뭐야. 이거. 무서워.

「손은 왜 젓고 있습니까?」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타이론. 어서 시작하죠.」

그렇게 시작된 게임.

시하가 먼저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렸다.

걸린 곳은 제주도. 태극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격은 20만 원이다.

“시하야. 이거 살 거야? 20만 원이야.”

“아?”

“싸요. 싸. 단돈 20만 원!”

“시하. 사!”

“저기요? 손님? 이건 2천 원인데요?”

“또오께!”

“이건 팔면 끝이야…….”

여기서 할인의 기술을 발휘하는 이시하였다.

하지만 깎지 못했는지 끙 하면서 2만 원을 줬다.

나는 친절히 10만 원짜리 두 장을 가져갔다.

“이거 두 개야.”

“아냐.”

“시하야. 솔직히 말해봐. 일부러 돈 모른 척하는 거지?”

“아냐.”

그렇게 시하를 지나서 루나 차례.

제주도를 지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아깝다. 걸렸으면 통행비를 내는 건데.

“산다!”

“그래. 여기.”

나와 타이론도 주사위를 던지고 하나를 살 수 있었다.

모두 예쁜 별장도 지었다.

처음은 돈을 그렇게 쓰지 않는구나.

“시하 한다!”

“응.”

“이케!”

데구르르.

주사위가 다시 구르고 합계가 5가 나왔다.

아까와 같은 숫자.

엇?! 그렇다면?!

눈으로 쭈욱 따라가자 무인도가 나왔다.

“시하는 무인도에 갇혔습니다. 아무도 없는 섬이에요. 바다에 이렇게 그림처럼 둘러싸여 있어요.”

“아?”

“그래서 3번 쉬어줍니다!”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런 함정 같은 곳이 있는 줄 몰랐겠지. 사실 여기는 많은 건물이 지어졌을 때 그 효능을 발휘한다.

쉬고 있을 때 내 건물에 걸리면 돈을 따박따박 받는 거지.

“하지만!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 있어!”

“!!!”

시하의 눈에 희망이 가득 찼다.

대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주사위 두 개에 같은 숫자가 나오면 탈출할 수 있어!”

“아아!”

시하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이 그렇게 빨리 찾아올까?

그건 모르겠다.

루나가 던지고 나와 타이론이 던졌다. 나는 숫자가 적게 나와서 첫 번째 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하야. 파이팅.”

“아아!”

시하가 주사위 두 개를 던졌다.

데구르르. 6과 5. 아쉽게도 탈락이다.

시하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형아. 시하 가쳐써. 구해져.”

“하하.”

“빨리.”

“형아가 직접 구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게임이라서. 하지만 현실이라면 반드시 구해줄게!”

“아냐. 지굼.”

다시 루나가 던지고 이번에 내 차례가 되었다.

주사위를 굴리자.

“어?”

“형아! 가치!”

무인도에 걸렸다.

시하가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본의 아니게 널 구해주러 왔구나. 많이 외로웠지? 그런데 어쩌지? 네가 먼저 탈출하겠구나.

“형아 가치야. 가치.”

“그래. 시하 기분 좋아 보이네.”

“아아!”

시하가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내 품 안으로 기어들어 온다.

앞에 떡하니 앉는다.

“???”

“가치라서 이케 해.”

“아니. 그런 룰은 없는데?”

“아냐. 이써.”

“어디에?”

“쪼오기?”

시하가 가리킨 손끝을 눈으로 따라갔다.

어디? 저 상자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걸?

“안 보이는데?”

“아냐. 작게 이써.”

“그래?”

“아아.”

“근데 시하는 글자 잘 못 읽지 않아?”

“시하 아라. 이시하. 이시혁.”

아니. 그건 당연히 알겠지.

하여간 못 당하겠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진행을 했는데 우리 둘 다 무인도에 탈출했다.

“오! 황금열쇠다.”

나는 황금열쇠를 열어보았다.

어디 보자. 뭐가 적혀있지?

“응?”

“형아. 모야?”

세 명이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황금열쇠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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