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강인 어린이집은 특별하다.
보통 생일인 달에 모든 아이를 모아서 생일 파티를 해준다.
하지만 강인 어린이집은 사람 수가 적어서 바로 생일날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파티를 열어준다.
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리고 생일인 아이들에게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오늘은 축하받고 선물도 받는 행복한 날이지만 엄마, 아빠에게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날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오늘 그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샘. 케이크 마시써!”
“응. 맛있니? 그거 원장 선생님이 만드신 거야.”
“시하 아라. 바써.”
“응. 전에 봤지?”
“아아. 언장샘 갱장해. 마시써 마니 만드러.”
“당연하지.”
선생님이 가슴을 펴고 자랑스러워했다.
원장이 그걸 보며 네가 왜 자랑스러워해? 네가 애들이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가슴이 다시 오므라든다.
그렇다. 베테랑 선생님이라도 시하에게 ‘엄마, 아빠에게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가르침을 주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분명 돌아가셨더라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시하가 부모님을 떠올리며 힘들어할까 봐 뭐라 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옳은 교육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틀렸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3살 아이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시하는 좋겠네.”
“아?”
“좀 있다가 형아가 데려와서 오늘 하루 계속 놀아주는 거잖아.”
“시하 형아랑 노라. 마니 노라. 엄청 조아!”
시하가 눈을 반짝였다.
마치 정말 좋겠지? 이런 얼굴로 열심히 자랑한다.
어떤 선물보다 형아랑 노는 게 그렇게 좋은 걸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선생님도 선물을 준비했어. 원장 선생님하고 같이 준비한 거야.”
“시하 아라. 스케치북, 쿠레파수야.”
“하핳. 들켰네!”
언제나 아이들에게 똑같은 선물을 주기에 다들 아는 거였다.
승준이 벌떡 일어섰다.
“이제 시하까지 다 받았으니까 다음에는 딴 거 줘요!”
“그래. 승준이는 내년부터 어린이집에서 어떤 생일 선물을 받고 싶니?”
“사커공!”
“응. 아니야.”
하나가 손을 들었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하고 싶은 발언이 있나 보다.
“소꿉놀이 세트! 이거면 다 같이 놀 수 이써! 종류도 마나요!”
“응. 아니야.”
“힝.”
의외로 공통으로 좋아하는 선물을 찾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 무난한 선물을 나눠주는 거다.
그걸 쉽게 모두가 좋아하는 선물! 이라고 말해 주었다.
종수가 허공에 안경을 치켜들며 일어났다.
대체 어디서 저런 걸 보고 따라 하는지 모르겠다. 안경도 끼지 않으면서.
“모두 다 좋아하는 거 있어요. 스마트폰! 이거면 다들 좋아할 거예요.”
선생님이 싱긋 웃으며 ‘응. 아니야.’를 해주었다.
종수가 당황하며.
“왜효!”
“어릴 때 하면 집중력에 안 좋아져서 바보가 된대.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그런!”
종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안 좋은 점도 있지만 그걸 선물로 하게 되면 어린이집 예산이 남아나지 않는다.
이쯤 되니 다른 애들은 뭘 말해도 안 되겠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서 발언을 안 하고 있었는데 아직 포기하지 않은 아이가 남았다.
바로 이시하였다.
“샘. 시하도. 시하도.”
“응? 시하도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아아.”
“하하. 형아지?”
“아냐. 모두 가지는 거.”
“응. 그렇지. 형아가 모두 가지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다들 반응을 보인다.
“아닌데. 시혀기 형아. 갖고 싶은데?”
“하나두.”
“어? 시혁이 형아 똑똑해서 공부 가르쳐줘도 좋을 것 같다.”
“아! 옷 잘 입는데.”
“춤은 잘 출까? 레드처럼 멋있던데.”
“아하하하. 스웨그 있던데!”
아이들의 반응에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냐. 형아. 시하 꼬야!”
시하가 벌떡 일어나 소유를 주장했다.
시혁을 공통으로 선물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내년 선물은?’
이미 그 부분은 아이들의 머리에서 날아가고 없었다.
유다희 선생님이 원장 옆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내년에는 강인한 동화책 전집 어때요?”
원장이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로봇처럼 끼익 돌렸다.
“응. 아니야.”
“췟.”
“다희쌤 월급으로 선물할까?”
“하하. 정말 재밌다! 원장쌤. 너무 웃겨요!!”
미워할 수 없는 다희쌤이었다.
***
한편 시혁은 문도환을 만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부탁할 게 있었다.
원래라면 시하를 데리러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알리사가 보낸 선물로 인해서 계획을 급하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음. 그러니까 시하를 내가 집으로 데리고 와달라고?”
“응. 안 될까?”
“흐음. 내가 좀 많이 바쁘긴 한데…. 쓰읍. 잠깐 비워두는 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아, 너무 부담스러우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시혁이 폰을 들자 문도환이 다급하게 막았다.
“야! 야! 누구한테 부탁하게. 이 시간에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더 있어?”
“왜 갑자기 성질이야?”
“누가 성질부렸다고 그래? 나 원래 말투가 좀 화가 나 있고 그래!”
“생전 처음 듣는 소리인데?!”
시혁은 갑자기 급해진 문도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형이 대체 왜 그러지? 이상하네.
“형이 안 되면 수현이한테나 부탁해 보려고 했지. 아, 형 근무하는데 부탁하는 게 이상하지.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런 거 아니야. 뭐 시하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얼마나 걸린다고. 다 가끔 자리 비우기도 해. 30, 40분 정도.”
“여기 그래도 되는 거야?”
“바쁠 때는 그것도 못 해. 임마.”
시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도 모르게 문도환에게 부탁하기는 했지만 업무 시간에 말하는 건 조금 아니었다.
아무리 어떻게 일하는지 알아도, 아무리 조금 편해도 이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딴 사람에게 부탁할게.”
“어허.”
“???”
문도환이 시혁의 손을 턱 하고 잡았다.
“오랜만에 나도 시하 얼굴 좀 보자. 잠깐 짬 내서 축하도 해줄 시간이 있어야지. 어차피 오늘 너랑 종일 놀 생각이 가득할 건데 내가 그걸 방해하면 쓰나. 나 선물도 준비해 왔다.”
“형…. 시하 선물까지…….”
시혁은 감동했다는 얼굴을 했다.
“혹시 참지 젤리 장난감 아니지?”
“야이! 그런 게 세상에서 어딨어! 너 자꾸 참치로 계속 놀릴 거야?”
“하하. 농담이지. 형. 진짜 고마워. 시하도 엄청 좋아할 거야. 잘됐네. 선물 주고 오면 딱이네.”
“그래서 내가 간다고 말했잖아.”
시혁은 문도환의 진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급하게 막았구나. 은근 아닌 척하면서 다 들어주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럼 좀 부탁할게. 내가 집에서 준비는 다 해놨는데 마지막 마무리만 하면 되거든.”
“그래. 어서 가봐.”
“응. 형 고마워!”
시혁이 문도환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이럴 때 보면 시하랑 똑같단 말이야.”
문도환이 시혁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선물을 챙기고 나가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앞머리를 정리했다. 옷도 가지런히 고쳐보고.
“음. 괜찮나?”
얼굴을 이리저리 보다가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문 앞에 서서 폰으로 앞머리를 한 번 더 신경 쓴 뒤에 들어갔다.
“시하야!”
부르는 소리에 시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문도환은 조금 의문이 들었다.
시혁이에게 듣기로는 부르면 달려온다고 했는데? 뭐 저것도 귀엽기는 한데…. 혹시 사람 차별하는 건가!
“아? 문도 삼춘?”
“어. 삼촌이야.”
“형아는?”
시하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탐색을 했지만 형아가 없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졌다.
문도환에게 살며시 다가갔다.
“형아는 집에서 시하랑 놀아주기 위해 엄청난 파티를 준비했대.”
“정말?”
“응.”
시하가 환하게 웃었다.
“어어?!”
극히 드문 환한 미소를 보며 폰을 들었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안에 찍힌 사진은 미소가 사라졌다.
“너무 빨라!”
“문도 삼춘. 가자. 빨리. 빨리.”
“페페 가방을 들고 와야지. 그런데 시하야. 궁금한 게 있는데.”
“아?”
문도환이 목소리를 낮췄다.
“유다희 선생님은 어디 계시니? 같이 있는 거 아니야?”
“이써. 방에.”
“아, 그래? 페페 가방 들고 오면 같이 오시는 거야?”
“아아.”
“어? 그래. 어서 갔다 와.”
시하가 두 손으로 손가락 총을 만들었다.
“문도 삼촌. 따닥! 기다려~”
“응. 따닥.”
시하가 페페 가방을 들고나오자 유다희 선생님도 같이 나왔다.
문도환은 애꿎은 머리를 또 만지고 있다가 급하게 손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이시네요.”
“어머! 도환 씨. 시혁 씨 대신 온 거예요?”
“네. 하하. 시혁이가 아주 크게 놀아주려고 준비하고 있거든요. 아주 동생바보예요. 동생바보.”
“그렇구나. 어떤 준비요?”
“아, 그게…….”
시하가 문도환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문도 가자.”
“어, 어? 아! 신발 신어야지. 신발.”
“아아.”
시하가 신발을 꼬물꼬물 신으려고 했다.
문도환이 재빨리 선생님을 보았다.
“고생이 많으시죠? 오늘 시하 생일 파티도 준비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이게 일인데 고생은 아니에요.”
“하핳. 대단하시네요. 전에도 봤지만 완전 애들이 좋아할 만큼 다정하시고.”
“네? 아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그건 뭐예요?”
“아, 이거요? 시하 선물이요. 제가 챙겨주고 싶어서.”
“도환 씨도 다정한 삼촌인데요. 시하 좋겠네?”
“아?”
다희샘의 말에 문도환이 얼굴을 붉혔다.
다정하다고… 했다…….
다정한 삼촌이라고 했지 다정하고는 안 했다.
“문도 삼춘. 선물? 시하 선물?”
“응. 이거 선물이야. 시하야. 생일 축하해!”
“고마어~”
시하가 문도환이 건네는 선물을 안았다.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리며.
“문도 가자.”
“어? 벌써?”
“아?”
문도환은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 선생님. 저는 시하랑 가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시하야. 잘 가!”
“아아! 샘. 바이바이!”
문도환은 아쉽게 발을 뗐다가 다시 뒤로 돌아보았다.
“저어…….”
“네?”
“혹시 시하에게 문제 생기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 제가 시하나 시혁이 보호자는 아닌데… 얼추 그 비슷한 거라서.”
“아! 병원 데려갔을 때도 여기 오셨지! 참!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문도환이 속으로 환호를 하며 번호를 알려주었다.
교환이 이루어지고 시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싱글벙글.
시하가 문도환을 빤히 보았다.
“문도 삼춘.”
“응?”
“문도 삼춘 생일?”
“응? 내 생일 언제냐고?”
“아냐. 오늘 생일?”
“응? 아니야. 오늘은 시하 생일이지.”
“아? 문도 가타.”
“뭐가?”
“시하랑 가타. 선물 받아 우서.”
“쿨럭.”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말에 헛기침을 했다.
“문도 개차나?”
“하하. 괜찮지. 그럼. 자, 어서 집으로 가자. 형아가 기다리고 있어.”
“아아! 형아!”
시하의 관심은 다시 형아에게 돌아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시하가 선물을 뜯어보았다.
안에 든 것은 돼지저금통이었는데 콧구멍을 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대지!”
“응. 그거 저금통인데 시하가 돈 생기면 여기 넣는 거야.”
“통장. 통장.”
“어? 통장하고 조금 다른 건데. 여기는 이런 동전이나 지폐 같은 걸 넣는 거야.”
“왜?”
“그냥 모아서 진짜 사고 싶은 거 사거나 아니면 선물 같은 거 사거나.”
“대지 기여버.”
다 필요 없고 돼지가 귀여운지가 중요했다.
문도환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근데 시하야. 오늘…….”
“아아.”
“어린이집에서 다희쌤이랑 나랑 있었던 일은 형아에게 말하지 말아 주라.”
“아? 왜?”
“쉿! 비밀!”
“아아! 쉿! 비밀!”
그렇게 약속을 다 하고 나자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시하의 손을 잡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열어둔다고 했으니 비밀번호가 필요가 없었다.
“자. 오늘 축하하고 들어가.”
“문도 삼춘. 바이바이.”
“그래. 바이바이.”
시하가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으며.
“형아! 형아… 아?”
시하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뭔가 180 정도 되어 보이는 거대한 인형 등이 맞이하고 있었기에.
살며시 인형이 뒤를 돈다.
뒤뚱. 뒤뚱.
“페페!!!”
시하가 거대한 인형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인형이 말했다.
“안녕. 시하야.”
“!!!”
시하가 환하게 웃었다.
제일 좋아하는 형아랑 페페가 한 몸이 되어있었으니까.
이른바 ‘형아페페’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