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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231/500)

231화

12월 5일. 시하의 생일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소고기를 볶으며 미역국을 끓였다.

아침부터 시하에게 먹이기 위해서지만 너무 피곤했다.

“하아~암.”

하품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기뻐할 시하를 생각하니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는 반응이 나오겠지.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 걸 모를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알아주길 바라서 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생일날에 미역국 한번 먹이려는 내 마음이 그랬다.

‘아버지도 내가 끓인 미역국 좋아했는데.’

처음 끓인 미역국은 그렇게 맛있다고 하기 뭐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김치를 푹 담가서 밥과 함께 말아 먹었다.

정말 맛있다면서. 우리 아들이 이렇게 미역국 해주는 날이 올 줄 몰랐다면서.

나는 맛이 그저 그랬지만 잘 먹는 모습을 보며 ‘아빠. 그럼 다음에도 해줄게!’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호탕하게 크게 웃으셨다.

아무래도 아주 당황하신 것 같았다.

“형아?”

“어? 시하야. 벌써 일어났어?”

“모해?”

“응. 형아 요리하지.”

시하가 눈을 비비며 나에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안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나는 살며시 감싸며 엉덩이를 두드렸다.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토닥거리는 건 나만의 특권이다.

“형아. 가치 자.”

“응. 이것만 더 하고 좀 잘 거야. 아직 피곤하니까 더 자자.”

“형아랑 가치.”

“알았어. 아! 맞다.”

나는 품에 있는 시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 없었으면 나 어쩔 뻔했어.”

“형아. 태어나 고마어~”

네가 왜 고마워하냐. 내 말을 따라 하는 게 왜 그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볼을 비비며 시하를 들고 일어났다.

최대한 약한 불로 천천히 끓이고 같이 눕기라도 해야겠다.

“자. 시하야. 좀 더 자자.”

“아아. 형아. 코오 자.”

“응.”

몇 번을 토닥였을까.

시하의 숨소리가 고르게 쉬는 걸 확인한 뒤에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생일상은 거하게 차려야지.

거하다고 해봤자 달걀말이, 소시지, 그리고 미역국이 다겠지만. 흠흠.

이 정도면 시하 좋아하는 거 총출동이지.

만족스러운 점심이 될 거다.

준비하는데 폰으로 문자가 왔다.

[택배입니다. 현관 앞에 놓고 갑니다.]

아무래도 알리사에게 부탁했던 게 벌써 왔나 보다.

생일 선물도 준비되었다.

이거는 집에서 같이 생일 파티할 때 전달해줄 생각이다.

문을 열자 택배 박스가 보인다. 안으로 들고 와서 뜯어보았다.

“어?”

안에는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다른 형태의 인형이 있었다.

“아니. 이게 뭐냐고…….”

시하가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좋아하겠지.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

-어린이집.

바로 어제 아이들이 가고 나서 미리 파티 준비를 다 해뒀다.

케이크도 미리 샀고 선물도 준비했다.

늘 아이들에게 똑같은 선물을 줘서 딱히 다른 애들이 부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도 받을 테니까.

온전히 축하해 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원장은 고심이 많았다.

“케이크는 무사하죠?”

“네. 그럼요. 원장님이 엄청 열심히 만드셨잖아요. 어제 애들이 원장님이 안 보이니까 엄청 찾았다고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진짠데? 원장님이 어린이집 중심을 딱 하고 잡아주셔야 애들이 안심하고 논다고요.”

원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사고 쳤어요? 저도 받는 입장이라 월급은 올려줄 수 없어요.”

“너무하세요.”

“솔직히 말해요. 뭐 사고 쳤어요?”

“흑흑.”

유다희 선생님이 우는 시늉을 했다.

원장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둘이 그런 농담을 할 때 유다희 선생님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었다.

“근데 딸기 치즈 케이크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늘 잘 만드셔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배웠죠.”

“왜요? 애들에게 해주려고요? 그렇게까지?”

“그냥.”

“에이. 그냥이 어딨어요. 세상에 그냥이라고 말하는 건 없대요.”

“누가 그래요?”

“강인한 작가가?”

“그거 다희쌤 필명 아니에요?”

“흠흠. 저 아닙니다.”

“아니긴…….”

원장도 유다희 선생님의 필명이 뭔 줄 알고 있다. 아니, 예상하고 있다.

절대로 안 가르쳐준다면서 뭔가 티를 팍팍 내는 게 웃겼다.

이 작가 블로그에 기발한 광고로 스토리를 쓴다든지.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향기를 풍긴다든지. 그래서 집에 이 작가 책을 다 소장하고 있다든지.

어? 별로 안 유명한데?

이런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뻔뻔한 자기 PR을 받아주었다. 자랑할 데가 별로 없으니 여기서라도 자랑하라고.

물론 정말 아닐 수도 있지만 향기가 너무 풍긴다.

이건 아마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글에 결이 같다. 결이.

“정상적으로 쓸 수도 있으면서…….”

“네? 뭐라고요?”

“아니에요. 다희쌤. 케이크 들고 저기 상에 놓아주실래요? 저는 여기 꾸미는 거 마무리할게요.”

“네에~”

케이크가 상 위에 올려졌다.

딸기 퓌레를 넣어서 아주 먹음직스럽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다 되었다.

“쌤~!”

“쌤~!”

그 시작을 쌍둥이들이 알렸다.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시간에 쏙쏙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시하.

“아?”

“와. 시하야. 이거 뭐지?”

“형아. 이거 모야?”

“형이 먼저 물었는데? 전에도 봤잖아. 힌트는 시하가 좋아하는 거야.”

“시하 아라. 레드야. 레드.”

“그 뒤에 두 글자 들어가는데?”

시하가 골똘히 고민하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허벅지를 파닥파닥 쳤다.

“레드 깡패. 레드 깡패!”

“깡패가 아니라 카펫이야. 레드 카펫….”

시혁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게 레드 깡패면 시하를 기다렸다가 ‘어이 왜 이제 왔어. 돈 갚아야지.’ 했을 것이다.

어?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마중 나와주는 점에서 비슷하긴 하다.

물론 의도가 불순한지 아니면 선한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형아. 레드 카페페.”

“페페는 왜 붙이는 거지? 흠흠. 이제 들어갈까?”

“아아.”

시하가 레드 카펫을 밟았다.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방으로 쭉 이어졌다.

먼저 보이는 것은 동그란 상.

예쁜 과일들이 올려져 있었고 가운데는 케이크가 놓였다.

“형아! 케이쿠. 케이쿠!”

“응. 딸기 케이크네? 시하 엄청 축하받겠다.”

“아아.”

“그럼 형아랑은 어린이집 파티 끝나면 놀까?”

“아아!”

“그래. 그럼. 형아는 집에서 재밌게 놀게 준비하고 있을게. 알았지? 선물하고 말이야.”

“아아!”

시하가 케이크에 시선이 뺏겼는지 시혁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아. 간다.”

그 말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시혁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고 본격적인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이시하. 생일 축하합니다~! 와아아!”

“시하야. 소원 빌고 초에 후우 하고 불어야지.”

“아아.”

시하가 두 손을 꼬옥 마주 잡고 소원을 빌었다.

형아랑 가치. 형아랑 가치.

문제는 뭘 형아랑 같이하는지 빌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소원을 말했다.

눈을 살며시 뜨고 후우 하고 불었다.

3개의 초가 꺼지고 짝짝짝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물 타임.

먼저 나선 것은 하나였다.

“시하야. 하나는 노래를 준비해써. 노래 선물이야.”

“하나. 고마어~”

“아직 하나 안 불렀는데?”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리 고마워하는 전법에 당해버렸다.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데 시하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아이들도 똑같이 박자를 맞춘다.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겨울에 태어나~ 귀여운 당신은~ 눈꽃처럼 피어난!”

“아아. 짜잔!”

“모두의 당신~!”

“따닥!”

“생일 축하합니다~”

선생님이 웃음을 참았다.

부드러운 발라드에 훅 들어오는 시하의 코러스.

꿋꿋하게 자기 노래에 심취해 있는 오하나.

둘 사이의 진지함이 웃음을 자아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

노래가 끝나고 하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은 종수의 선물.

“나는 편지 써왔어.”

자신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는 또 다른 자랑도 함께다.

물론 시하에 대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펀치?”

“펀치가 아니라 편지거든!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서 주는 거야.”

“아아.”

시하가 종수의 편지를 받았다.

안을 뜯어보자 검은 건 글씨요. 파란색은 편지지오. 라고 구분이 되었다.

하나 아는 점은 ‘이시하’라고 적힌 거였다.

[이시하에게.

안녕. 시하야. 생일 축하해. 그걸 영어로 happy birthday라고 한데. 넌 몰랐지?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자. 난 너한테 안 질 거야.]

축하하고 싶은지 결투장을 보내고 싶은지 모를 글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읽을 줄 모르니까.

“아아. 고마어~”

“다 읽었어? 읽을 줄 알아?”

“아아. 이시하. 생일 추카해. 해피 버스데이.”

“어? 어떻게 알았지?”

“고마어~!”

시하는 그냥 오늘 애들이 자주 했던 말을 꺼냈을 뿐이다.

영어로 한 축하 인사도 오늘 루나에게 전화로 들었다. 그걸 응용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종수는 ‘역시 이시하. 방심할 수 없겠어.’라며 중얼거렸다.

“시하야.”

재휘가 우물쭈물하며 선물을 내밀었다.

“모야?”

“열어봐.”

선물을 열어보자 안에는 한 장의 그림이 나왔다.

“옷!”

“응. 지금은 그림이지만 나중에 크면 옷 하나 만들어줄게.”

“아아. 고마어.”

입을 수는 없지만 시하는 굉장히 만족했다.

재휘가 커서 만들어준다면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그냥 길 가다가 대충 샀어.”

윤동이 시하의 손에 툭 하고 뭔가를 주었다.

황제 펭귄 쓰리가 그려진 카드.

1팩을 사도 잘 나오지 않는 카드인데 과연 그저 길 가다가 대충 산 것일까?

그건 윤동만이 알 것이다.

“윤동…….”

설마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황제펭귄 쓰리 카드를 받을 줄 몰랐기에 놀란 얼굴을 했다.

“고마어. 이거 조아.”

“흠흠.”

그때 은우가 감탄과 랩을 섞으며 다가왔다.

“와. 황제펭귄 쓰리! 투! 원! 렛즈 기릿! 오늘 시하의 birthday. 선물하려고 만든 나의 verse. stay!”

은우가 시하에게 기다리라는 듯이 손을 쫙 폈다.

등 뒤에 맨 가방을 열더니 모자를 꺼낸다.

“오늘 네가 주인공이야. 모둘 밀쳐내! 무댈 찢는 너야. 모둘 밀쳐내.”

시하에게 스냅백을 머리에 씌워준다.

이건 시하에게 주는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훅으로 랩을 마무리한다.

“스! 냅백~ 냅백~ 넉백! 넉백! 스! 냅백~ 냅백~ 넉백! 넉백!”

말 그대로 밀쳐지는 것처럼 은우가 뒷걸음질 친다.

그런데 랩과 다르게 시하가 무대를 찢은 게 아니라 은우가 찢은 모양새였다.

윤동이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도 춤 준비할걸.’ 하면서 후회를 했다.

“시하야.”

승준이 시하의 앞에 섰다.

아주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앞에서 쟁쟁한 사람들이 굉장해 보이는(?) 선물을 많이 줬으니까.

자기 선물에 뭔가 임펙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선물이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걸 받은 사람은 다 좋아했으니까.

명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선물을 생각해낸 거다.

“이거 선물이야!”

“승준!”

힘준 목소리에 시하도 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은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지? 하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시하가 조그마한 상자를 받았다.

안을 열어보자 나오는 건.

[안마권! -언제든지 쓸 수 있어요]

안마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모야? 쭈쭈?”

“응! 안마해 주는 거야. 어깨 주물러 주는 거. 언제든지 쓰고 싶을 때 써! 우리 엄마, 아빠도 다 좋아했어! 푸하하!”

시하가 승준에게 안마권을 내밀었다.

승준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싫어서 다시 건네주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어? 싫어?”

“아냐.”

“응?”

“승준. 안마해.”

“엥?! 벌써 쓴다고?!”

“아아.”

“응. 여기 앉아.”

시하가 왕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승준이 그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야구 하느라 피곤했지? 내가 풀어줄게.”

“승준 시언해~”

“???”

“조아~”

“아직 안 주물렀는데?”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풉 하고 웃었다.

두 사람은 확실히 베스트 프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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