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4/500)

224화

다음 날.

나는 시하와 함께 돔구장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아득했고 관계자인 벨을 만날 수 있었다.

“시혁이 형. 여기요. 여기.”

“응. 오랜만이네?”

“네. 하하. 안녕. 시하야.”

“안녕하세여~”

“와. 시하는 이제 인사 잘하네?”

세계대회에서 우승해서일까?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사실상 유명인사라고 할 수 있는데 막상 만나면 그런 특유의 느낌이 없다.

그냥 게임 좀 잘하는 동생 같다.

“올 사람이 두 사람 더 있거든. 오면 들어가면 되지?”

“네. 당연하죠. 여기 관계자 목걸이 받아왔어요. 이거 나중에 반납해야 해요. 알았죠?”

“나만 있어?”

“아이들에게는 딱히 줄 필요 없다나 봐요. 어차피 부모가 곁에 있을 거니까.”

“하긴.”

그때 승준이 도착했다.

“시하야~”

“승준!”

시하가 손을 척 하고 들었다.

어제오늘 하나가 없는 건 노래 교실을 열심히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산되어 있으니 오상환 교수의 얼굴은 참으로 편안해 보인다.

아이 둘에서 하나를 맡는 거로 바뀌었을 뿐인데 뭔가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까?

“형아. 야구. 야구.”

“응. 이제 야구 보러 가 볼까? 근데 바로 하는 건 아니야. 아마 준비하고 있을걸?”

“준비?”

“응. 몸도 풀고 이야기도 하고. 아직 도착 안 했을 수도 있겠다.”

시하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이렇게 시합을 보는 게 기대된다는 얼굴을 한다.

나는 벨을 보았다.

“그럼 우리 관중석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

“네. 아니요.”

“무슨 대답이 그래?”

“관중석에서 안 보고 저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응?”

벨이 목에 건 출입증을 흔들었다.

“이게 왜 필요했겠어요. 오늘 온 이유가 뭘까요! 바로 선수들 보러 왔지.”

“그게 직접 얼굴 맞대고 본다는 거였어?!”

“그럼요. 야구 보시면 선수들하고 감독이 있는 곳 있잖아요.”

“알지.”

“거기서 직관합니다. 크흑. 저희만 보는 거예요.”

“뭔가 뻘쭘하네. 그럼 감독님도 있는 거야?”

“아니요. 아마 코치님까지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 모르겠어요. 일단 들어가죠.”

“그래.”

우리는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관중석도 가본 적이 없는데 경기장에 있으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다.

선수 대기실에 도착하자 정말 어깨가 쩍 벌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시하가 그런 11명의 사람이 모여 있으니까 신기한지 크게 말했다.

“형아! 커. 커.”

“응. 원래 야구선수는 엄청 커.”

저쪽에서도 아이가 와서 신기한지 쳐다보았다.

하긴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올 줄 알았는데 3살 아기 ‘커! 커!’ 하니까 이상하겠지.

“형아. 백동 형아가 더 커.”

“응. 걔는 2미터가 넘고 통뼈니까.”

걔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합니다. 형님! 하면서 울상을 짓겠지만.

“백동통통이야?”

“푸흡. 백동통통은 또 뭐야.”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백동환의 새로운 별명.

나중에 들으면 또 울상을 짓지 않을까 싶다.

“저어…….”

선수 한 명이 이쪽으로 왔다.

“혹시 벨 프로게이머 아닙니까.”

“아, 네! 맞아요.”

“하하. 우승 축하드립니다. 오신다고 연락을 받았거든요.”

다들 벨을 알고 있는지 웃음을 보인다.

시하가 순수하게 물음을 던졌다.

“형아. 프로게이 모야?”

“시하야. 프로게이머야. 뒤에 한 글자 생략되었어.”

시하의 말에 다른 선수들이 푸하핫 하고 웃었다.

저 앞에 보이는 외국인 선수 역시 시하의 말을 대충 알아들었는지 의자를 탁탁 치며 웃는다.

이렇게 웃음 줬네. 하하.

벨도 질문에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웃음을 보였다.

“발음 조심 좀.”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럴 수 없죠!”

나는 벨의 말을 뒤로하고 선수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리틀야구단이랑 시합한다고 해서 구경 왔어요. 어제 제 동생이랑 야구를 했거든요.”

나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가 기분이 좋은지 손을 꼬옥 잡고 머리를 비벼온다.

다들 흐뭇한 모습으로 보는데 외국인 선수가 쪼그리고 앉더니 손을 흔들었다.

“안녕.”

시하가 빤히 보더니 한마디 했다.

“구텐 탁-”

갑자기 독일어 인사 뭐냐고.

예전에 멜츠 회사에서 리암을 만났던 게 생각이 나긴 했다.

그때는 쿠데타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말이지.

「아니! 어떻게 알았어? 독일어 할 줄 알아?」

아무래도 이번에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

타이론 로하스.

이번 연도에 NM 구단에 들어온 외국인이었다.

시하가 놀랍게도 맞춘 이유가 정말로 독일인의 피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미국인, 어머니는 독일인.

독일에서 자랐지만 야구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두 개의 언어를 잘 활용하는 케이스였고 정말 우연히 시하의 말에 놀랐다고 말해 주었다.

「하하. 그랬군요. 사실 제가 독일어를 조금 합니다. 멜츠 회사랑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거기 통역사로 잠깐.」

「와. 정말이네요. 그런 전문업종을 통역하기 쉽지 않았을 건데. 근데 진짜 독일어가 자연스럽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보통 통역사가 붙어 있지 않나요?」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딱히 전담 통역사는 보이지 않았다.

「아…. 시즌이 끝나서 재계약 요청을 했다고 하던데 그만두고 나가 버리더라고요. 뭐, 프리랜서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전 존중해 주고 싶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해가 되긴 하다.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 통역사.

보통 10개월로 계약을 한다고 알고 있다.

세전 월 250. 4대 보험 없고 퇴직금 없고.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정보지?

아무튼, 이런 정보를 볼 때 대충이나마 그만둔 이유가 그려진다.

물론 정규직 같은 계약도 있는 것을 봤을 때 아마도 전환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관둔 모양이다.

「사실 제가 선수들을 잘 모르는데 혹시 투수인가요?」

「네. 전 우완 투수입니다.」

타이론이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역시 그럴 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냥 몸을 보니 그랬다.

그때 저기서 리틀야구단이 도착했는지 스태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틀야구단이 도착했나 보네요. 모이라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 통역사들도 다들 쉬는 날이라 동료들에게 물으면서 했거든요.」

「아, 그런가요?」

「같이 가시죠. 저기 제 아들도 있습니다.」

「와. 리틀야구단에요?」

「네. 올해 가족 전부가 한국에 왔거든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경우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뭐랄까? 해외 주재원 파견을 가면서 가족 전체가 다 같이 이동한 느낌?

설마 야구에서도 볼 줄 몰랐기에 더더욱 놀란 점도 있었다.

“시하야. 우리도 한번 가 볼까?”

“아아!”

옆에 있던 승준이 시하의 손을 잡았다.

“와! 진짜 선수들이다. 다들 몸이 커.”

“백동 형아가 더 커!”

저기. 시하야. 넌 갑자기 뭐랑 경쟁하는 거야?

하여간 재밌다.

그렇게 리틀야구단과 선수들이 인사를 나누고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스트레칭이 시작되었다.

다들 이미 몸은 풀었겠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조금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근데 타이론 로하스는 왜 여기 있을까?

「로하스. 아들에게 가봐야 하지 않아요?」

「타이론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아들은 이미 다른 선수 팬이 되었습니다. 저기 보이시죠? 반짝이는 눈으로 쫑알쫑알 선수에게 얘기하는 거?」

「큭큭. 그럼 다른 애들에게 가면 되잖아요.」

「음. 애들이 제 말을 못 알아듣잖습니까. 외국인이니 무서워하기도 하고.」

그러더니 타이론이 시하의 등을 눌러주며 스트레칭을 도와주었다.

「그런데 시하는 저를 안 무서워해서 좋군요. 사실 제 인상이 사나운 편이라 아들도 어릴 때 많이 울었는데.」

「타이론도 고생이 많네요. 아들이 나와서 여기 참가한 겁니까?」

「그렇죠. 뭐. 하하.」

시하가 허리를 숙이다가 번쩍 들어 올렸다.

“타이론?”

“타이론은 저 아저씨 이름이래.”

“시하 아라. 타이거. 타이거. 타이론. 타이론. 타이 가타.”

“오! 맞네. 시하 똑똑하네.”

“이름 머시써.”

「하하. 타이론. 시하가 이름이 타이거 같은 느낌이라 멋있다는데요?」

그 말에 타이론이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어쩜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을 골라 하는지 타이론의 눈에서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런데 타이론 그거 알아요?

시하는 시합에 안 나가서 스트레칭할 필요가 없어요…….

뭐,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만.

아마 시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거다.

「시혁. 그럼 시하랑 저기 승준에게 시구 한번 해 보라고 하면 안 됩니까. 리틀야구단이랑 시합하기 전에 말이죠.」

「네? 정말요?」

「하하. 그럼요. 헤이! 우리 두 친구가 여기까지 왔는데 시합 전에 시구 한번 던지게 해 주지!」

영어로 말하는 그의 말을 선수들이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스태프도 재밌을 거 같다며 시구를 준비했다.

잠시 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포수인 선수가 직접 시하랑 승준의 공을 받기로 했다.

승준이 완전 흥분해서.

“저 엄청 빨라요. 슉! 하면 못 볼 수 있어요!”

“하하. 걱정 말고 던지렴!”

“간다!”

타자도 진짜 선수였다. 짓궂은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진짜 칠 것 같은데?

승준이 공을 던졌다.

타앙!

공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악! 사커 슛이…….”

사커가 나온 건 둘째치고 저 타자 누구야. 빨리 끌어내! 애들 상대로 진심인 타자야.

승준이 울상을 짓자 타자가 당황했다.

“흠흠. 다시 한번 던질래? 이번에는 잘해 봐.”

“…….”

승준이 입을 삐죽 내밀며 다시 던졌다.

이번에는 글러브 안으로 잘 들어갔다. 타자도 방망이를 허공에 타이밍 맞게 휘둘렀고.

“히히!”

승준이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음을 되찾았다.

마치 회장님 나이스샷 하면서 기분 맞춰주는 것 같다.

뭐, 애들에게는 그래야지.

옆에서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 승준 대단해!”

여기 단순하게 낚인 사람 한 명 추가요.

정말로 승준이 잘 던진 줄 안다.

저 엄청난 연기에 두 아이 다 껌뻑 속아 넘어갔다.

“자. 시하야. 이제 네 차례야.”

“아아!”

시하가 마운드 위에 올랐다.

타이론이 옆에서 시하 손에 송진 가루를 톡톡 묻혀 주었다.

“아?”

“이거 바르면 안 미끄러워진대.”

“이거?”

“응.”

“응? 아! 시하야. 타이론 아저씨가 자기 모습 따라서 던지면 엄청 빠르대.”

타이론이 투구 폼을 보여주었다.

그냥 일반적인 폼이었다.

시하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포수에게 가까이 가자.”

“아냐. 시하 여기.”

“여기는 너무 멀잖아.”

“아냐. 시하 할 수 이써.”

“정말?”

“아아.”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포수도 피식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타자가 시하를 보았다.

“아아.”

역시 시작은 아아지. 근데 언제 던지지?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쪼르르 포수에게 다가갔다.

역시 멀어서 가까이 가는구나 싶었는데.

“포수 아찌.”

“응?”

“사인해써여?”

시하가 손가락 한 개, 두 개를 막 보여준다.

그 말에 지켜보고 있던 선수들이 크게 웃었다.

“큭큭. 아 진짜 귀여워 죽겠네. 아저씨가 사인을 안 내렸지? 금방 줄게. 가 있어. 알았지?”

“아아.”

다시 마운드 위에 섰다.

포수가 몸 안쪽으로 미트를 갖다 대고 실제처럼 사인도 해 주었다.

시하가 다시 쪼르르 가서 포수에게 물었다.

“포수 아찌. 이거? 이거? 여기?”

“어? 그래. 그렇게 사인 줬어. 근데 그러면 타자도 사인을 다 보는데?”

“개차나. 개차나.”

시하가 다시 쪼르르 마운드 위에 섰다.

나는 그게 너무 귀여웠다.

경험한 사람만 저 행동에 크게 웃을 수 있다.

승준이 옆에서 말했다.

“시하야. 파이팅!”

“아아.”

드디어 공을 던졌다.

툭.

당연하지만 중간에 가다가 떨어졌다. 사실 근처도 못 갔다.

시하가 두리번거리더니 슬쩍 공을 잡고 포수에게 도도도 달려가 미트에 폭 하고 꽂았다.

“형아. 시하 해써!”

“어? 어, 그래. 잘했어! 진짜 최고야!”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괜찮아. 영상으로는 찍었으면 편집의 기술로 들어갔을 거야! 암! 시하 사전에 실패는 없다.

감독님 이 장면 잘 편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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