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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223/500)

223화

현재 스코어. 원 스트라이크.

설마 하나도 못 치는 거 아니겠지?

그런 불안감으로 인해 시하에게 제대로 알려주었다.

공이 지나가는 거 다 보고 치는 게 아니라 조금 올 때쯤 딱 휘두르는 거라고.

시하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는 타이밍 맞게 잘 휘두를 것 같다.

“자. 승준아. 던져.”

“시하야. 간다~”

“아아!”

승준이 공을 던졌다.

글러브 안에 공이 쏙 들어오고 시하가 휘둘렀다.

휘익.

“스트라이크!”

“아?”

“큭큭. 좀 더 빨리 휘둘러야겠다.”

“시하 아라.”

역시 시하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오승준. 3구째.

공을 던졌다. 시하의 방망이가 앞으로 나갔다. 공보다 빠르게!

휘익! 탁!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아?”

이게 왜 안 맞는 거지?

이런 얼굴이었다.

당연히 공보다 너무 빨리 휘두른 탓이고 어쩔 수 없이 삼진아웃이 되어 버렸다.

“하하하. 시하야. 잘해 봐.”

“시하 아라. 아라써.”

정말 이제 알고 있는 걸까?

그런 의미로 다시 재경기가 이루어졌다.

진짜로 감을 잡았는지 공을 치기 시작했다.

퉁.

공이 딱딱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소리가 뭉텅하다.

“아악! 쳐, 쳤다!”

승준이 머리를 감쌌다.

그러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분한 모습은 아니었다.

서로 승부를 보는 중인데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음은 시하가 투수해 볼까?”

“아아!”

시하와 승준이 자리를 바꿨다.

글러브와 방망이가 교환되었다.

먼저 승준이 시범을 보여서일까.

시하가 옆으로 서 있는 폼이 그럴듯하다.

뭐 일단 던져봐야 알겠지만.

“형아. 사인. 사인.”

“어. 알았어.”

나는 열심히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시하가 쪼그려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래도 될까? 어차피 이미 보통 야구 경기랑 많이 달라진 느낌이라 자유롭게 하기로 했다.

“형아. 이거?”

시하가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저기 시하야? 그거 다 알려주면 어떡해?

“시하야. 그건 비밀로 하는 거야.”

“아아. 비밀이야.”

“아니. 말로 비밀이라고 하면 뭐 하냐고…….”

“푸하핫! 시하가 다 알려줘.”

승준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방망이를 지팡이 삼아 몸을 못 가누며 웃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게 저 손가락 세 개에 아무 의미가 없긴 했다.

그냥 넘어가자.

시하는 그저 솔직할 뿐이다.

“시하야. 이제 던져.”

“아아.”

시하가 한쪽 발을 들었다가 살포시 놓았다.

그리고 팔을 휘둘러 휘익 하고 던졌다.

둥실둥실.

뭔가 그런 느낌으로 천천히 오는 공이었다.

“앗! 너무 느려!”

승준이 예상치 못한 속도에 방망이를 먼저 휘둘렀다.

탁.

“스트라이크! 이게 바로 슬로우볼이야! 시하야 잘했어.”

“아?”

그게 뭐지? 하는 표정이지만 아무튼 슬로우볼이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게 슬로우볼!”

승준이 그런 엄청난 공을 시하가 던지다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승준아. 이게 바로 사인의 힘이야. 이래서 포수가 중요하지.”

“와. 포수 짱이다.”

물론 실제로 사인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시하에게 공을 전해 주면서 말했다.

“시하야. 이제 빠르게 던져봐.”

“아아.”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자세를 잡았다.

시하가 힘껏 공을 던졌다.

팟!

너무 힘을 줘서인지 공이 빨리 손에서 빠져나왔다.

하늘 위로 향해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공.

승준도 이런 공이 날아올 줄 몰랐는지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공은 포수에게 닿았다.

탁.

“볼!”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을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칭찬을 해 주었다.

“시하야. 벌써 포크볼을 쓰다니.”

“와! 시하야. 이게 포크볼이야?”

사실 실제 포크볼은 이렇지 않지만 아무튼.

“자자. 아직 원 스트라이크야. 쓰리 스트라이크가 만들어야 승준이 아웃이야. 알고 있지?”

“아아. 서이 수투라이투.”

“뭐, 그렇지.”

그렇게 경기가 다시 진행되었지만 시하의 엄청난 힘을 공이 감당하지 못했는지 폭투가 이어졌다.

볼넷으로 승준이 점수를 많이 땄다.

의외로 시하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오상환 교수가 왔다.

“다들 재밌게 하고 있나?”

“네. 승준이가 이기고 있네요.”

“오! 그래? 하하! 애가 날 닮아서 운동을 잘한단 말이야.”

“하하. 그러게요. 운동신경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오상환 교수는 기쁜지 어깨를 으쓱했다.

팔짱을 끼며.

“그런데 시혁이 너는 어느 팀이야?”

“전 두 사람 팀이요. 포수가 두 팀에 소속되어 있네요.”

“그거참. 걸작이구만. 얘들아 걱정 마라. 이제 아빠가 왔으니 포수도 두 사람 되었어요. 제대로 팀으로 싸워볼까?”

그 말에 시하가 물었다.

“형아. 포수 레드 싸어? 누가 레드 대?”

“아…. 응. 포수도 누가 레드 되는지 싸우는 거야. 이기는 사람이 레드가 돼.”

오상환은 내 설명에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아직 시하 언어는 초급이셨다.

“그럼 가족끼리 팀 할까? 하하.”

그렇게 시하 형아팀, 승준 아빠팀이 결성되었다.

아이들의 경기 양상은 아까와 똑같이 흘러갔다.

하지만 어른들의 시합이 남아 있다.

“나 안 봐줄 거야. 알지?”

“네.”

타자 오상환, 투수 이시혁.

아이들이 포수를 할 수 없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응원했다.

“형아! 파팅!”

“아빠! 이겨!”

승준의 응원에 오상환 교수의 배트에 힘이 꽈악 들어간다.

나 역시도 질 수 없었다.

여기서 점수를 내주면 완전히 패배로 경기가 종료된다.

멋진 형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갑니다.”

“그래.”

나는 진심을 담아 공을 던졌다.

휙!

뒤에 있는 펜스를 맞으며 스트라이크.

오상환 교수는 가만히 보기만 했다.

“좀 하네?”

“하하. 네. 뭐. 다시 갑니다.”

이번에는 살짝 힘을 뺀 느린 공.

아까의 속도를 생각했는지 배트가 움직였다가 멈칫한다.

“투 스트라이크입니다.”

“흠흠.”

다시 공을 던진다.

이번에는 방망이를 휘둘렀고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제대로 맞혔다.

승준이 와! 하면서 소리치는 동시에 공이 내 얼굴로 날아와서 반사적으로 잡았다.

탁!

“어? 아웃입니다.”

“헉! 괜찮나?”

“아, 네. 괜찮은데요? 아마 맞았어도 괜찮았을걸요. 딱딱한 공이 아니라서.”

“그렇긴 한데…. 흠흠. 아, 이렇게 점수를 못 따나?”

“하하.”

그런데 이상하게 두 아이가 조용하다.

그쪽으로 쳐다보자 시하와 승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형아. 머시써…….”

“우와. 시혀기 형아 짱이다.”

아마 반사적으로 날아온 공을 잡는 모습이 멋져 보였나 보다.

오상환은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하하하. 의도한 건 아닌데 참으로 곤란하네?

***

야구의 결과는 1 대 1 무승부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앉아서 땀을 식히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폰으로 연락이 왔다.

누군지 살펴보니.

[벨 프로게이머]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시혁이 형.”

“어. 그래. 요새 바쁜 거 아니야? 웬일로 연락했어.”

“아, 형. 나한테 관심 없네요. 최근에 건스컵 들어 올렸잖아요. 해외팀들 싹 다 바르고 왔는데요?”

“아, 그랬어? 미안. 요즘 정신이 없어서.”

“빼빼로데이 전날에 끝나서 기사 엄청 터졌을 건데요?”

“아…. 그때 직접 빼빼로 만들고 나눠주느라 뉴스를 안 봤네?”

“뭐 그럴 수 있죠.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아니지. 해외 경기에서 우승컵 들었으면 대단한 거 맞지. 거기 상금도 장난 아니잖아.”

“하하!”

전화기 너머로 벨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최강팀이었지만 이번에도 우승컵을 들어 올릴 줄은 몰랐다.

“아무튼 축하해.”

“와, 근데 저한테는 빼빼로 안 줘요?”

“지금이라도 기프티콘 보낼까?”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아, 맞다! 저 휴가 받았거든요.”

“어. 축하해. 쉬어.”

내가 끊으려고 하자 다급하게 막는다.

“아, 잠깐잠깐. 사실 저 팬들도 아는 야구 광팬이거든요. 저희 팀이 NM에 소속되어 있잖아요. NM에 야구팀 있는 건 알죠?”

“응. 알긴 하지.”

“그럼 잘됐다. 같이 야구 보러 가실래요?”

“어? 야구? 지금 시즌 다 끝나지 않았어?”

보통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다 끝나는 걸 생각해볼 때 선수들의 휴식기가 시작된다.

“시즌은 끝났지만, 특별친선 경기가 있거든요. 아이들도 참가하는.”

“응?”

“NM이 후원하는 리틀야구단이 있는데 아이들이랑 선수들이랑 경기를 한다고 하던데요. 전 경기보다는 선수를 보러 가는 거라서 그쪽에서 허락을 맡았구요.”

“아하.”

“근데 형이랑 시하가 딱 생각나는 거 있죠.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서.”

“근데 시하가 재밌어할까?”

“또래 애들은 아니겠지만 형들이 야구 하는 거 보고 재밌어하지 않을까요? 보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요.”

“오…….”

조금 끌리긴 한다.

이런 기회가 어디 쉽나. 그리고 가만 보니 관계자 외에는 못 보는 것 같다.

티켓을 팔거나 그러지는 않고.

하긴 이 경기를 누가 돈 주고 보겠느냐마는.

아니지. 벨 같은 사람도 있는데 선수 보러 돈 주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시하에게 물어볼게. 시하야. NM이라는 데서 야구경기를 할 건데 혹시 보러 갈래? 실제 선수들이랑 시하보다 조금 큰 형들이 경기한다던데?”

“아? 경기?”

“응. 야구 하는 거 보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는 거야.”

“시하 갈래. 형아랑 가치.”

“어, 당연히 형아도 같이 갈 거야.”

옆에 있던 승준이 눈을 반짝이며 내 어깨에 바짝 붙었다.

어? 이게 뭐지?

“시혀기 형아. 나도! 나도! 나도오!”

“으응? 잠깐만.”

나는 벨에게 한 명 더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물었는데 이미 한 다섯 명은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고 말해 놨단다.

뭐지? 더 데리고 갈 사람이 있나?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자기는 좀 넉넉하게 말하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말했단다.

거래 좀 할 줄 아네.

“저기 교수님. 승준이 데리고 가도 될까요?”

“아, 물론이지. 나도 가도 되나?”

“네. 된다고 하네요.”

다섯이니 딱 사람 수도 맞다.

나는 벨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하네. 참. 날짜를 안 물었다. 언제라고?”

“아, 내일요.”

“뭐? 내일?”

“네! 제가 오늘 들었는데 내일 한다고 해서 바로 가도 되냐고 했거든요. 하하!”

“그렇구나. 뭐 내일 일요일이기도 하니까 상관없긴 하네.”

내가 오상환을 쳐다보자 괜찮다는 듯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무래도 이 멤버 그대로 갈 것 같았다.

“그럼 내일 봐. 장소랑 시간은 톡으로 좀 보내줘.”

“네!”

통화가 종료되었다.

시하는 내 어깨를 덥석 잡더니 흔들었다.

“형아. 야구 보러 가?”

“응. 아까 보러 간다고 했잖아.”

“시하. 야구 해?”

“으응?”

왜 그게 시하가 야구 한다는 흐름으로 넘어가는 거지?

분명 같은 이야기한 거 맞지?

옆에 있던 승준이 흥분했다.

“아싸! 시하야. 우리 특훈하자. 특훈!”

“아아!”

“시하가 포수해. 난 투수할게.”

“아아!”

둘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쪼르르 가더니 자세를 잡았다.

시하가 글러브 안에 손을 툭툭 치며 던지라는 신호를 보낸다.

앙증맞은 손으로 두 개를 폈다가 세 개를 폈다가.

승준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형아. 시하 형아 대.”

“응. 형아처럼 잘하네.”

승준이 ‘던진다!’ 하며 공을 던졌다.

시하는 가만히 있었는데 공이 쏙, 하고 들어갔다.

놀란 표정을 짓는다.

벌떡 일어서더니.

“형아. 시하 해써!”

“응. 잘했어. 근데 시하야. 가서 너희 둘이 경기는 못 할 건데?”

“왜?”

“하하. 거기는 시하보다 조금 큰 형들이 던져서 그래. 리틀야구단이라고 거기 있는 사람만 시합해.”

시무룩.

승준 역시도 실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시하도!”

“우리 둘이 팀이면 다 이기는데!”

“시하도!”

아무리 둘이 팀이라도 리틀야구단에게 안 되지 않을까?

걔들은 전문적으로 배웠을 테니까.

그때 시하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형아! 시하도. 시하도. 팀이야. 팀. 야구 할 수 이써.”

“응?”

시하가 나, 승준 그리고 자신을 가리켰다.

“썬더 서이. 썬더 서이야.”

“썬더 쓰리 동호회겠지.”

“아아!”

시하가 맞다는 듯이 배를 쭈욱 내밀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저기. 시하야. 여기 리틀야구단이 아니라 축구동호회야…. 까먹은 거 아니지?

물론 오늘은 야구경기를 했다고 하지만.

옆에서 승준이 ‘맞아! 우리도 팀이잖아!’라고 했다.

저기요. 승준아? 혹시 사커는 잊어버린 거 아니지?

나는 괜히 난감해하며 오상환 교수를 보았다.

“날이 참 좋아.”

저 딴청부리는 스킬이 하루 이틀이 아님의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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