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500)

222화

-미국 사무실.

스티브 백은 앉아서 서류와 씨름 중이다.

예전에 한 성공과 다르게 유통으로 넘어가면서 처리하고 확인해야 할 게 확연히 많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일거리와 돈이 들어오고 그 영향력이 넓혀진다는 생각에 일할 맛이 났다.

왜 사람들이 유통, 유통 하는 줄 알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꽉 잡으려고 하고 있기에 점점 판이 커졌다.

물론 지금은 다양성과 잡음을 피하고자 다른 가게들도 끌어들이고 있다.

혼자만 먹으면 배탈이 나기에.

“흠. 선정하는 것도 진짜 골치네.”

너도나도 지원한다고 해서 함께할 수 없는 법.

처음 손대는 사업이라서 엄격한 심사 기준 역시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쪽 경력이 빠삭해서 웬만한 일은 다 보인다.

물론 추려내도 직접 방문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직원들도 굉장히 바쁘고 대표인 자신 역시도 발로 뛰다 보니 어디 누구를 챙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아니, 생각도 못 하고 있다는 게 사실일 것이다.

똑똑.

“네.”

문을 열고 비서가 들어왔다.

요즘에는 미팅 약속도 꽤 있어서 비서가 전부 스케줄 관리를 하고 있다.

“벌써 미팅 시간이야? 오늘은 누구지?”

“아니요. 오늘이 아니라 내일 있습니다.”

“아, 그래? 내일이었나?”

“네. 어제도 많이 만나신 거 같아서 조정 좀 했습니다.”

“아, 그랬지. 내가 이렇게 정신이 없어. 아니, 대표라면 도장만 찍고 끝날 줄 아는데 사실 더 바빠. 어떻게 된 게.”

“직접 발로 뛰는 것도 있어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부족해. 사람이. 나도 믿을 만한 사람은 꽤 되지. 그런데 지금 어디 손 놓고 있는 직원 있나?”

“최종 컴펌까지 받은 것만 올라오는데도 꽤 되죠.”

“내 말이. 아, 근데 그건 무슨 박스야?”

비서가 품에서 박스를 가지고 왔다.

이미 한 차례 뜯어봤는지 테이프가 뜯겨 있었다.

“확인해 봤는데 위험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더군요. 현재 저희에게 옷을 납품하고 있는 파랑몰 기억하시죠?”

“아! 기억하지.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데.”

“거기서 선물을 보내 왔더군요. 안에 쪽지도 있던데 빼빼로데이? 무슨 그런 날 선물이라던데.”

스티브 백이 피식 웃었다.

날짜를 보니 오늘 11월 11일이었다.

“한국에서는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라고 사람들이 챙기고 그러는 게 있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거라고 할까?”

“아! 그런 겁니까.”

“이런 거 관심 없지?”

“네, 뭐. 전 그래서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나 봅니다.”

스티브 백이 상자를 받았다.

안을 열어보자 감사의 쪽지와 함께 선물이 들어 있었다.

빼빼로가 아닌 태블릿 가방.

페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안을 열어보니까 그제야 빼빼로 하나가 있었다.

“흠. 이게 뭐지?”

“탭을 넣을 때 쓰는 가방이지 않습니까.”

“아, 요즘 이런 데 넣고 다니나? 나는 그냥 가방에 넣어 다녀서 몰랐네.”

스티브 백이 캐릭터를 보자 어디서 많이 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쪽지를 읽자 드디어 생각이 났다.

이시혁. 이 사업에 굉장한 발상을 선물한 친구. 만약 먼저 선점을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유통을 했을 사업이었다.

물론 이 바탕에는 자신이 준비한 요소들이 확연히 작용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엄청난 친구였지.’

솔직히 탐이 났다. 그래서 꽤 좋은 선물을 해 주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미뤄왔다.

“내가 어떤 선물을 해줄지 고민하다가 빠뜨렸는데 말이야. 이게 좋겠군.”

“누구에게 말입니까?”

“이시혁.”

“아! 그분이요? 어떤 선물을 하실지 정했습니까?”

“그럼.”

스티브 백이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흔들었다.

“미국에서 와플사 제품을 참 많이 사용하지. 다음 달에 크리스마스가 있지?”

“설마?”

“이거 한번 우리 쪽에서 넣어보는 거 어때? 그냥 선물보다는 이게 훨씬 큰 선물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산타도 놀랄 선물일 것 같습니다.”

“푸핫. 무뚝뚝하다는 녀석이 아부는 좀 한단 말이야.”

“그러니 비서가 됐지 않겠습니까.”

“야. 일 잘해서 비서로 뽑은 거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간신만 옆에 앉히는 거 같잖아.”

둘은 농담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선물해 주는 의미는 ‘나 여기 있어요. 잘 있어요.’라고 말하는 메시지일지도 몰랐다.

***

휘이잉.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지난 빼빼로데이가 생각난다. 저 하늘을 타고 스티브 백에게 갔을까?

저 바다 멀리 선물이 금방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렇게 교통이 편리해진 게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의 발전이 가능한지 대단하기만 하다.

세계화된 집단의 지성이 작용해서 더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형아. 이거!”

“응. 글러브 멋지네.”

“아아!”

이번 주 토요일.

오랜만에 썬더 쓰리 동호회를 할까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축구만 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게 야구를 하자고 달려들었다.

하긴 승준이 여러 구기 종목에 관심이 참 많다.

시하 역시도 영향을 받았는지 눈을 반짝이며 야구야구 노래를 불렀다.

지금 끼고 있는 글러브는 바로 어제 산 거였다.

“그런데 시하야. 야구는 어떻게 알았던 거야.”

“승준이 말해써. 이케이케. 재밌다 해써.”

“그렇구나.”

뭐 어찌 보면 캐치볼 정도는 어렸을 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 역시도 중학교 때 교실 뒤편에서 우유갑을 던지며 놀았다.

친구들은 빗자루를 배트 삼아서 타자 역할을 하고 말이다.

이게 우유갑도 잘 골라야 하는 게 안에 내용물이 튀면 안 된다.

그런 추억을 되새겨보면 시하와 승준이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룰은 잘 몰라도 투수와 타자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까.

아니, 시하는 모를 수도 있다.

“시하야. 그 손에 있는 걸 글러브라고 하는데 어떻게 쓰는지 알아?”

“시하 아라. 공 자바.”

“오! 맞아. 그거야. 어떻게 알지? 천잰데?”

“종수 폰 바써.”

“아, 종수 폰에서 영상을 봤구나?”

“아아. 종수 폰 이써.”

벌써 폰이 있다니…….

하긴 맞벌이 부부가 자식들에게 폰을 주는 경우는 요즘 흔하니까.

물론 시기가 너무 빠른 감이 있기는 한데…….

‘이해는 되지.’

종수는 똑똑하니 폰 사용도 쉽게 할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면 부모님에게 꼭 전화하면 되는 거고.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자, 도착했다.”

“아아!”

차에서 내리자 운동장이 보였다.

강인대 풋살장으로 향했는데 역시 아무도 없었다.

오상환 교수가 축구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고 승준도 그 옆에서 팔벌려뛰기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 왔나?”

“네. 시하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여!”

“그래. 시하도 왔구나. 오늘은 애들이랑 노는 거 맡기기만 하기 그래서 나도 전반만 뛰고 올 거거든.”

“아, 그러시구나. 전 괜찮은데요. 어차피 시하랑 놀아주러 나온 거니까.”

“애 하나랑 놀아주는 거랑 둘이랑 놀아주는 건 달라. 정말…. 내가 하나랑 있어봐서 알잖아.”

오상환 교수가 뭔가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쌍둥이 둘을 놀아주는 게 꽤 힘들겠지.

“그래도 행복하잖아요?”

“하하하. 행복하지. 행… 벅… 차지.”

“네?”

“아니야. 아무것도. 흠흠. 둘이 성별이 다르니까 놀아주는 방법도 달라야 하거든. 소꿉놀이하면서 축구 차 봤나? 하하. 그게 또 걸작이거든.”

“굉, 굉장하시네요.”

차라리 남자 둘이었다면…….

음. 그것도 힘들 것 같다.

“원래 둘을 가질 계획이었는데.”

“한 번에 둘이 나올 줄 몰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 그렇지. 예상치 못했단 말이지.”

뭔가 재밌으면 안 되는데 이야기가 웃기긴 하다.

하지만 시하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형아. 빨리. 빨리.”

“시혀기 형아! 빨리!”

“그래. 그럼 저희는 저기 풋살장에 있을게요.”

“그래. 나도 금방 가지.”

나는 스포츠백을 들고 풋살장으로 향했다.

승준은 이미 야구를 하고 싶은지 야구공을 꼬옥 쥐고 있었다.

어린이에게 맞게 앙증맞은 공이기는 했지만.

“그럼 둘을 위해 정확한 룰을 알려줄게. 먼저 투수! 공을 던지는 사람이야. 그리고 타자! 방망이로 공을 치는 사람이야. 이제 두 사람은 서로의 라이벌이야.”

“라이벌 모야?”

“어? 라이벌이 뭐냐면.”

“형아. 시하 아라. 라이언. 사자. 사자랑 벌이야. 사자 얼굴 해서 벌 대써.”

어? 사자 얼굴의 벌?

생각만 해도 굉장히 이상하다.

“흠흠. 라이벌은 그런 게 아니라. 음. 아! 종수랑 시하는 친구지? 근데 뭔가 대결도 많이 하잖아. 그게 라이벌이야. 서로 정정당당하게 대결하고 엄청 성장하는 거지.”

“아? 종수?”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수가 나랑 대결했었나?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종수만 투지를 불태웠지 시하는 승패에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승준은 대번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둘은 서로 적이야.”

물론 같은 팀이면 아군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해시키고 점수를 적용하기가 애매했다.

사람도 적으니까.

“각자가 레드야. 투수와 타자가 서로 레드라고 할 수 있지. 레드가 둘인 거야.”

“레드 둘?”

시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레드가 둘인 건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이긴 사람이 레드 하는 거야. 진 사람은 그린 하는 거고.”

“아아!”

이제야 이해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이런 설명으로 진짜 이해가 된 거야?

그린에게 괜히 미안해지네. 그린의 의문의 1패.

그런 헛생각을 떨쳐버리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투수 오승준. 타자 이시하. 포수 이시혁.

“자. 어디 한번 던져봐.”

“아아.”

시하야. 네가 왜 대답해? 방망이 던지면 큰일 나…….

그런데 시하의 자세가 이상하다.

엉덩이가 내 글러브 쪽에 있다.

“시하야. 반대로야.”

“아?”

“그렇게 서면 엉덩이로 공 맞아.”

“시하. 엉덩이? 공 무더써?”

“아니. 공 묻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서면 공을 엉덩이로 맞는다고.”

“아아.”

내가 자세를 잡아주자 이번에는 방망이 잡는 법이 잘못됐다.

오른손잡이가 편하게 칠 수 있게 왼손은 아래, 오른손은 위로 잡도록 했다.

“자. 저기 승준이 공을 던지면 그걸 보고 치는 거야. 알았지?”

“시하 아라.”

정말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겨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승준이 나를 본다. 계속 본다. 시간이 흘러도 공 던질 생각을 안 한다.

“저기 승준아. 언제 던져?”

“시혀기 형아. 사인을 줘야지. 사인.”

“아! 사인을 줘야 하는구나.”

“응!”

근데 우리 뭔가 안 짜지 않았어?

하지만 애들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사실 던지는 게 직구밖에 더 되겠냐고.

나는 글러브 아래에 왼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폈다.

또 어디서 본 게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시하는 우리가 뭐 하는지 궁금해서 허리를 접어서 사인 보내는 걸 두 눈 뜨고 보고 있었다.

아니…. 그거 보면 안 되는 거야…….

세상에 야구 커닝이라니…….

“흠흠. 시하야. 이건 보면 안 돼.”

“왜?”

“이건 투수에게 보내는 신호거든. 이렇게 던지는 게 좋겠다. 뭐 이런 거지.”

“시하도. 시하도 사인.”

“어? 시하는 형아에게 사인받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받아야 해. 감독이라고…….”

“왜? 형아 해. 시하도 사인.”

“그래. 시하도 사인 줄게.”

열심히 두 아이에게 손가락 신호를 보냈다.

뭔지 모르지만 알아들은 척하는 두 아이를 보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자! 이제 던지자!”

승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다리를 들었다.

자세가 그럴듯하다.

마운드에 선 야구선수처럼 땅에 발을 찍는다.

공이 내게 날아온다.

시하가 두 눈 부릅뜨고 공을 쳐다보며 방망이를 꼬옥 잡았다.

“스트라이크!”

“아아!”

휭!

누가 봐도 공이 지나가고 휘두른다.

“형아. 시하 해써!”

“어어?”

“공 바써. 쳐써.”

어…. 그렇지. 공을 보고 치라고 했지…. 내가 잘못했네……….

진짜 공이 지나가는 걸 다 보고 칠 줄 누가 알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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