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뭔가 선물을 주러 왔는데 일거리를 얻게 된 KI미디어를 뒤로하고 마지막 남은 곳으로 출발했다.
거기는 바로 파랑몰.
함께 일하기도 했고 축제 때 신세를 많이 지기도 했다.
물론 자신들은 그냥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한 거라고 하겠지만 어디 그게 쉽나?
어느 회사가 이런 굿즈 상품으로 함께 팔아주겠냐고.
어쩌면 아직 신생이기도 하고 재밌는 도전이기도 해서 그럴지도 몰랐다.
또 그림도 심플해서 쉽게 제작할 수 있기도 하고.
‘그래도 이런 기회가 닿았다는 게 쉽지 않지.’
좋은 캐릭터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굳이 시하의 그림을 택한 건 인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파랑몰이 나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들 그걸 청산하는 식의 선물은 아닐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
이게 참 딱딱하기는 해도 정이 없어 보인다.
하나 주고 하나 받고.
셈은 정확할지 몰라도 거기에 생각이 매몰되어 버리면 사람이 차가워진다.
그래도 파랑몰의 관계는 저런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유대관계에 있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시죠?”
안으로 들어가자 다들 여유롭게 일을 하고 있다.
KI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하긴 보통 제일 바쁜 시기는 새벽같이 출근해서 오전까지.
물류를 가져가게 만들어 정리하고 아침에 옷감을 봐두고 여기저기 작업할 게 많다.
오후에는 그나마 다시 책상 업무.
디자인할 사람은 다시 디자인에 돌입.
이제 생활 잡힌 이 패턴을 유지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감개무량하다.
각 잡힌 사회인의 모습으로 보인다.
“어? 어서 오세요. 시하야 안녕~!”
“오오! 어쩐 일이에요?”
“엥? 안녕하세요~”
“시혁. 시하. 헬로우~”
다들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알리사는 머리를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형광등에 비치는 모습이 없는 걸 보니 알 없는 안경 같았다.
시하가 손을 흔들었다.
“아아. 하이~”
“큭큭. 시하는 여전히 귀엽구나?”
“근데 왜 가방을 앞으로 멨어?”
다들 그게 궁금한 모양.
시하가 그 대답을 하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안에 나온 건 빼빼로!
다들 그제야 여기 온 이유를 알았다는 눈치였다.
“리사. 이거!”
“오~! 시하. 정말 고마워. 이거 시하가 디자인한 옷이야?”
“아아. 시하 옷 만드러써.”
“상의네. 바지는 없어?”
“바지 업써.”
“그럼 하의실종 패션이네? 시하는 그런 것도 알아?”
“아?”
시하가 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의실종 패션이라는 말을 알 리가 없지.
하지만 익숙할지도 몰랐다.
이보다 더 어릴 때 하의실종으로 돌아다니곤 했으니까.
아마 다들 아기였을 때 많이 경험할 거다.
“잘 먹을게. 이거 시혁 씨도 같이 만든 거죠?”
“뭐, 그렇죠.”
“왠지 아몬드는 시혁 씨가 다 만들었을 거 같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느낌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여기 신기가 흐르는 거 아니지?
정신 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간단히 빼빼로를 전해 줘야겠다.
다들 뜻밖의 선물에 기뻐했다.
바쁘다 보니 이런 날을 챙길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알리사. 요즘 잘 팔고 있어요?”
“그럼요. 이제 겨울 시즌이라서 그 옷들이 쭉쭉 나가고 있어요. 한국에도 조금 파는 정도?”
“해외는요?”
“당연히 보내고 있죠. 사실 그쪽이 더 수입이 많아요. 요새 사람들도 늘었고 의외로 저희 옷 브랜드를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쪽 계통으로 디자인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하하. 그건 그렇죠. 이게 신기한 게 회사에 달러가 들어오니 외국계 회사가 된 느낌? 뭐 그렇죠.”
“자리 잘 잡아서 다행이네요.”
그때 알리사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 제가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네요.”
“네? 뭔데요?”
“축제 때 저희가 가방을 만들었잖아요.”
“아. 맞다. 그거 많이 남았어요?”
“아니요. 다 팔렸죠. 누구누구 씨가 연예인으로 홍보해 준 덕분에.”
“아, 그게 효과가 있구나.”
“네. 정말 많았죠. 또 안 파냐고 문의까지 들어왔다니까요. 그런데 저희가 그걸 또 어떻게 만드냐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작업으로 만들기도 했고, 또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옷 디자인도 만들어야 했다.
그런 일을 다 감당하기에는 인원이 적긴 하다.
“굿즈 만드는 회사도 아닌데 거기에 주력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중심을 잘 잡으셨네요.”
“네. 사실 여유만 되면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는데 그건 좀 힘든 것 같아서요. 물량을 어느 정도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 하긴. 근데 이거 얘기해 주려고 한 거예요?”
“네! 근데 하나는 미리 챙겨둬서 스티브 백에게 전해뒀어요. 빼빼로데이 날 딱 맞춰서 갔을걸요?”
“오…. 스티브 백이 재밌어했겠는데요?”
“그러니까요.”
알리사가 포장지를 뜯고 아그작 소리를 내며 맛있게 빼빼로를 먹었다.
“음. 맛있다.”
“리사. 마시써?”
“응. 정말 맛있네.”
스티브 백도 한국에 있었으면 빼빼로를 전해 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꽤 재밌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또 한 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뭐, 마음이라는 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해지는 법이니 가방 선물로 좋아할지 모르겠다.
물론 부자인 그 사람이 쓸지는 미지수지만.
***
동화.
지금 가지고 있는 그림으로 만들 수 있지만 사실 조금 부족하다.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엮기에는 마지막이 너무… 잔인하게 다가온다.
알다시피 시하가 받은 상의 그림은 결국 한 사람이 목이 마르는 대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샤워하며 시원해지고 누군가는 한 모금의 물이 간절해지고.
그런 의미에서 이걸 마지막 장면으로 놓으면 이야기는 꽤 암울해진다.
하지만.
“시하야. 이 이야기의 뒤를 그려보지 않을래?”
“아?”
몽실이와 비실이의 귀여운 캐릭터의 교훈은 명확히 담겨 있다.
물의 소중함.
그렇다면 우리는 마지막 정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도 좋을 것이다.
“형이 시하 그림을 봤거든. 그래서 이야기를 엮을 거야.”
“몽실이?”
“응. 몽실이.”
시하가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몽실. 몽실.”
“형아 머리카락은 찰랑찰랑인데?”
“찰랑이?”
“푸흡. 무슨 이름을 붙이는 거야?”
“형아 머리 몽실이 와. 시하 머리도.”
“그거 혹시 샴푸 아니야?”
“몽실이 삼푸 대써.”
“어?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거품이 몽실몽실하기는 하지.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몽실인가 보다.
흠흠.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이야기의 해피엔딩이다.
“자. 시하가 듣고 재밌는지 봐봐.”
“아아!”
“형이 시하의 그림을 다시 재배치했거든. 그래서 빈 부분은 시하가 조금 그려줘야 해.”
“시하 아라.”
“오! 그래. 아는구나.”
나는 탭으로 시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먼저 몽실이.
페페 그림에서 배에 몽실몽실한 거품을 두르고 있다.
어째서 펭귄인지 모르겠지만 몽실이가 하늘 위에서 펭귄이 되어 있었다.
“하늘에는 몽실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몽실이가 하는 일은 비를 만들어서 뿌려주는 거였어요.”
몽실이가 배에 있는 구를 짜서 물을 뿌렸다.
뭔가 물 나오는 부분이 오줌… 같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건 무시하자.
오줌은 아닌 것이다. 위치가 묘하긴 하지만.
“몽실이에게도 친구가 있었어요. 그 이름은.”
“비실이!”
“맞아요. 비실이에요.”
페페 얼굴을 한 비실이.
얼굴이 홀쭉 파여 있었고 구름의 양도 몽실이 보다 적었다.
비실비실거렸다.
뭔가 귀여우면서도 불쌍해 보인다.
“비실아! 왜 이렇게 말랐어.”
“나 원래 생긴 게 그래.”
“거짓말! 넌 좀 더 구름의 양이 많았다고!”
“사실은 사람들이 물을 함부로 써서 그거 보충하느라 힘내다 보니 이렇게 됐어.”
“정말?! 얼마나 함부로 쓰길래!”
시하가 그 말에 분개했다.
“물 아껴! 형아! 물 소중해. 소중.”
“그래. 그래. 시하는 잘 아네?”
“아아! 시하 잘 아라.”
“똑똑하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용서 못 해! 비실아. 넌 쉬어. 너무 무리했어.”
“하, 하지만 쉬면 누가 비를 내려?”
“내가 대신 내릴게. 하지만 많이는 못 내려. 비실이 너처럼 되면 안 되니까.”
“그렇구나. 그럼 부탁해. 나는 병원에 좀 갈 테니까.”
그 말에 시하가 시무룩해졌다.
앞에서 손을 꼬옥 모으며.
“비실이. 빨리 나아.”
“푸흡. 실제로 아프다는 게 아니라 이야긴데?”
“형아. 비실이 주사 마자. 침대에 누어. 좋은 거 마자. 형아 가타.”
“어?”
아무래도 내가 아팠을 때도 떠올렸나 보다.
시하가 이 부분의 그림을 추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비의 양은 점점 인간이 마시기에는 모자라졌습니다. 물은 그대로 많이 쓰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다음 장은 시하가 대상을 받은 그림이 나왔다.
한 사람이 병을 들고 목말라하고 있다.
위에는 샤워하는 모습.
나는 이 부분을 아래에 그려진 사람이 상상하는 거로 표현했다.
“예전에는 물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이 작은 빈 병에 채우지도 못하네. 제발 비야 많이 와주라!”
여기까지가 시하의 그림을 재배치한 결과.
나는 그 뒤의 이야기까지 써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하가 그린 두 개의 그림을 참고해서 더 추가했다.
“몽실이도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아래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말을 전했어요.”
하나의 그림 레드 물.
“이 빨간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꿀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거예요.”
“사람들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거예요. 빨간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그 말에 시하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모야?”
“그 방법은 바로!”
“시하 아라! 우물신이야. 우물신.”
“푸하하. 아니. 그거 말고. 바로 지금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모두 강을 깨끗하게 만들기로 해서 열심히 청소를 했어요. 물을 쓸 때도 조금씩 아껴 썼고요. 그러더니 신기하게 레드 물의 색이 연해지지 않겠어요?”
다음 그림은 그저 투명한 물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마실 물이 많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비실이도 몸이 많이 나아서 비도 많이 내리게 되었어요.”
“아아! 비실이!”
비실이가 다 나은 그림은 없지만 시하가 그 부분을 추가해줄 거다.
나머지는 이런 그림 배열로 충분하다.
딱 몇 개만 필요한 상태.
“물이 많으니 마실 수 있으니 물을 파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물이 없는 나라도 숨통이 트인 거죠.”
“형아. 몽실이 비실이는?”
“몽실이와 비실이는 다시 좋아진 물의 모습에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형아. 알츠 첬어? 보룸달 첬어?”
“어? 왈츠 췄는지 보름달 췄는지 알려 달라고?”
“아아.”
그건 형아도 생각 못 했는데?
이런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는 건가!
“아마도 둘 다 추지 않았을까?”
“재미써!”
“응. 이렇게 행복하게 끝났답니다.”
“몽실이, 비실이 다 나아써. 재미써.”
“몽실이 비실이 간호해. 간호. 형아. 이야기.”
“아. 그 부분도 이야기해 달라고?”
“아아.”
흠. 이런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외전! 몽실이와 비실이의 병간호!”
“아아!”
시하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것 참. 아무래도 우리는 비실이는요. 하면서 영상편지 보내는 것까지 이야기해 줘야겠다.
시하는 우리들이 있었던 이야기에 재밌어하니까.
이렇게 동화의 재미가 사적이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