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500)

220화

시하를 데리러 가는 길이다.

오후에 일과를 끝내고 오늘은 조금 빨리 픽업해서 출발할 생각이다.

사실 남은 빼빼로를 오후에 혼자 건네줄 생각이었는데 시하가 ‘형아랑 가치!’ 필살기를 쓰는 바람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뭐 선물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마음과 마음을 전달하는 거라고 하는데 그게 나는 얼굴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맞댄 얼굴을 통해 신수를 확인하고 잘 지내고 있냐고 그냥 으레 하는 말을 나누고.

뭐 그런 거 아니겠나.

그냥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아 이 사람이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구나, 나를 챙겨주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게 ‘마음’이라는 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대방이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거.

나 역시도 그걸 알기에 택배나 우편처럼 덜렁 넣어주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서 손수 건네주는 것이다.

“시하야~ 형아 왔어!”

현관 앞에서 부르자 시하의 얼굴이 쏙 하고 나왔다.

여느 때처럼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 나를 정말로 반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건 넌 알까?

작은 팔로 목을 꼬옥 조일 때면 괜스레 웃음이 나고 그런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은지.

“형아! 형아! 시하 형아랑 가타.”

“또 뭐가?”

“적가락 해써. 시하 잘해써.”

“오! 젓가락 사용했어?”

“아아. 시하 유부쳐바 푹 찔렀어.”

“으응? 유부가 쳐 봐? 해서 푹 찔렀다고?”

“아? 유부쳐밥.”

“아아! 그래! 유부초밥. 젓가락으로 푹 찔렀다는 거지?”

“아아.”

근데 발음이 좀…. 흠. 유부쳐밥도 왠지 시비 거는 것 같지 않아?

갑자기 시하가 불량해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아니야.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어!!

이렇게 반응할 뻔했다.

갑자기 시하의 느와르물이 나올 뻔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뭐, 그래 봤자 조폭도 아니고 상대는 유부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웃기기도 하고.

“이제 가자. 빼빼로 아직 남았으니까 전해주러 가야지. 어서 가방 챙기고 와.”

“아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방으로 쏙 들어갔다.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가방을 짤랑짤랑 흔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도 따라나섰는데 나에게 인사를 하더니 잠깐 뭔가를 챙겨서 나왔다.

“저도 오늘 빼빼로 준비했거든요. 갈 때 주려고 챙겨놨어요.”

“아, 감사합니다. 시하야. 감사합니다. 해야지.”

“샘. 감사합니다~”

빼빼로를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어린이집이라면 하나 줄 것 같다는 예상은 했다.

오늘 서수현에게 받은 걸 합치면 이걸로 두 개째.

역시 호불호가 적은 대기업의 맛이라서 천천히 먹을 것 같다.

“그럼 선생님 가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샘. 바이바이.”

“그래. 시하도 잘 가~”

우리는 차에 탑승해 출발했다.

지금 가는 곳은 바로 KI 출판사.

정말 오랜만에 가는 거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방문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메일과 통화로만 연락해서 그런지 만난 지 오래된 기분이다.

그래도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은 남아있어서 오늘 빼빼로를 전해주러 간다.

잠깐 시간 내서 주기만 할 거니까 괜찮겠지?

“시하야. 오랜만에 홍진수 과장님 본다. 그치?”

“아아. 홍 아찌.”

“큭큭. 그래. 홍 아저씨.”

어느새 출판사에 도착했고, 곧바로 위쪽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다들 여전히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다.

누구 한 명이랑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해온다.

나 역시도 살짝 숙이며.

“홍 과장님 어디 계세요?”

“아! 지금 대표님이랑 이야기 중이세요. 금방 나올 겁니다. 들어간 지 좀 됐거든요.”

“뭔가 또 작당 모의하는 건가요?”

“하하. 그렇게 말하면 저희가 무슨 악당 같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 이거 빼빼로데이라서 만들어왔는데 한번 드셔보세요.”

“오! 감사합니다.”

“많지는 않고 그냥 입가심할 정도만 가져와서.”

“이거 직접 만든 거 아닙니까? 그럼 그럴 수 있죠.”

공장이 아니라서 많은 사람에게 주는 양을 만들지 못했다.

아쉽지만 나도 일을 해야 했기에 두 개의 빼빼로만 담았다.

그래도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꽤 많은 양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포장하는 것도 일이고 설거지하는 것도 일이다.

쉽지 않았지만 꽤 보람차기도 했다.

“형아. 홍 아찌?”

“아, 나중에 나온대. 저희 그럼 빼빼로 다 나눠주고 휴게실에 있어도 돼요?”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하하. 뭘 또 감사까지.”

우리는 직원들에게 빼빼로를 돌렸다.

뭐 여기 부서만 돌리는 거니까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다들 따뜻한 눈으로 맞이해 주셔서 조금 감사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휴게실로 가려고 할 때 마침 홍진수 과장이 나왔다.

나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후다닥 달려오셨다.

“아니. 시혁 씨! 연락도 없이 어쩐 일입니까!”

“하하. 오늘 전해줄 게 있어서요. 시하야.”

“시하가 전해줄 거요?”

시하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빼빼로를 꺼냈다.

“홍 아찌! 빼빼로 선물!”

“와! 이거. KI 로고 아닙니까. 감동인데요?”

뭔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럽다.

설마 저걸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시혁 씨는 KI와 공동 운명체 아닙니까. 이렇게 생각하시고 티를 안 내시다니. 크흐. 역시.”

내가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손으로 눈가에 잡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뭔가 심히 착각하시는데요?!

왜 제가 KI랑 공동 운명체입니까. 전 그냥 프리랜서이고 굳이 말하자면 계약직이라고요.

누가 보면 여기 입사한 줄 알겠습니다.

빨리 정정해 주자.

“시하가 만들었어요. 저는 저기 평범한 아몬드 빼빼로…….”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시하가 회사 보는 안목이 있어요.”

아니, 태세전환 빠른 거 뭐냐고.

이게 바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건가?

너무 과장된 몸짓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 같다.

“그런데 아몬드라니. 너무 단 건 물릴 수 있으니까 이런 배려를 하다니. 역시 시혁 씨입니다.”

조선에 태어났다면 희대의 세 치 혀가 아니었을까?

아부가 장난이 아니다.

“그게 아니, 아닌…….”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 빼빼로 별로 안 좋아하시면 아내분에게 드리세요. 이런 거 은근 챙겨주면 좋아하지 않아요?”

홍진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시혁 씨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닙니다.”

“???”

“이건 제 것이라 아무도 못 줘요!”

“아, 그러시구나.”

뭔지 모르겠지만 다 사정이 있나 보다.

자연스럽게 응접실로 들어왔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여기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저…. 빼빼로만 전해주러 온 건데요?”

“뭐가 그렇게 바쁘십니까. 차 한잔할 여유는 있잖아요. 좀 자주 오세요. 시하를 위해 가져다 놓은 코코아가 많습니다.”

“그래요?”

“네! 사무실 비품으로 코코아를 적극 추천했죠.”

“굳이요?”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여러 개 있으면 좋죠. 은근 코코아 찾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일 얘기야 평소에 통화나 메일로 하니 별 상관이 없긴 했다.

사실 요즘 화학과 번역 업무도 있어서 KI에 일을 잘 받지 않고는 있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꽤 자주 연락을 했었다.

“요즘 많이 바쁘십니까?”

“그냥 평범해요. 이제 한 달 정도의 일밖에 남지 않아서.”

“오호. 그래요? 그럼 그거 하면서 소소하게 일을 받지 않겠습니까?”

“네? 혹시 의학물 새 시리즈가 발간되었나요?”

“아니요. 그건 아직입니다.”

“그럼 어떤?”

홍진수 과장이 시하를 힐끗 보았다.

포트의 물이 다 끓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차를 타며.

“전에 팝업북 있지 않습니까.”

“아, 네.”

“증쇄할 생각은 없다고 하셨죠?”

“그랬죠.”

“근데 이번에 한 번 더 증쇄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2탄도 같이 만들어서요.”

“2탄이요?”

따뜻한 코코아가 시하에게 왔다.

나는 시하의 컵을 잡고 호호 불어서 식혀주었다.

“책방에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상하게 인기가 좋아서 금방 팔렸다고요. 근데 문제는 가끔 책방에 그거 또 안 파냐고 문의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책을 구입한 사람은 그 작가의 다른 책은 없냐고 문의했고요.”

“정말요?”

“한두 사람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한두 사람 아니에요? 찍어낸 게 적은데?”

“에이. 그래도 그 정도면 많은 편이죠. 재고가 없다는 점에서 성공 아닙니까. 보통 그럴 때는 증쇄를 하거든요.”

“그렇죠.”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그럴 때는 증쇄하는 게 좋다.

하지만 내가 직접 팔아봐서 아는데 내게 떨어지는 돈이 많지는 않았다.

여기 출판사를 통해서 판매하면 더 그렇고.

사실 내가 봤을 때 출판사 역시 그렇게 많이 남기지 못할 것 같다.

애초에 팝업북 자체가 싸기도 하고.

물론 비싼 캐릭터가 있으면 상당한 가격이 나간다.

그러면 돈 더 버는 거지.

물론 생각보다 인세가 크지 않다.

아마 매절 형식으로 동화를 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런데 굳이 왜?”

“아! 사실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좀 나눴거든요. 이번에 팝업북 같은 동화책을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이익이 별로지 않아요?”

“뭐, 썩 그렇게 크게 남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책이 싼 것도 있어서 잘 팔리기는 합니다.”

“그런가요?”

“물론 케바케가 많거든요.”

“근데 시하페페로 내려면…. 시하가 일해야 하는데요?”

“하하.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어본 겁니다. 저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좋은 브랜드네임이 탐이 나기도 하고요. 이번에 꽤 좋은 지원 사업이 정부에서 해서 지원금도 받거든요.”

“하하. 노리는 게 그쪽 아니에요?”

“뭐,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거 참여 한 번 하면 다른 사업에도 들이밀어 볼 수 있는 거니.”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되었든 시하의 의견이 중요했으니까.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고 딱히 떠오르는 스토리도 없었다.

“형아! 시하 해. 시하 책 또 해.”

“응? 또 하고 싶어? 근데 2탄은 쉽지 않을 건데? 그려야 할 게 많으니까.”

“아냐. 시하 할 수 이써.”

“어…….”

“시하 그려써.”

“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실이. 비실이.”

“아……!”

몽실이, 비실이를 한동안 많이 그리긴 했다.

그거를 좀만 손본다면 꽤 재밌는 팝업북을 만들 수 있을 거고 스토리도 나온다.

작업량도 그렇게 많지 않을 거고.

다른 디자인 부분은 그때 맡긴 팝업북 업체에 주면 된다.

홍진수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몽실이랑 비실이요?”

“네. 그게 뭐냐면…….”

시하랑 축제 때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드물이 나오는 것까지.

생각보다 괜찮고 재밌는 아이디어에 홍진수 과장이 감탄했다.

“이야. 꽤 재밌네요? 이야기가. 물 부족이라니.”

“거기 상도 받았죠.”

“정말요?”

“네.”

“아! 찾았다!”

“네?”

“교육감상을 받은 물의 소중함! 표지도 딱! 완전 세일즈 포인트!”

“???”

홍진수 과장의 눈이 이글거렸다.

아, 거참 부담스럽네.

생각해 보니 이러면 시하의 일이 극도로 적어진다.

캐릭터와 스토리만 넘기면 다른 팀에서 알아서 해줄 테니까.

진짜 한번 해봐?

“그래서…….”

“네. 네. 시혁 씨 이거 됩니다.”

“이거 인세로 계약해 주세요.”

“네. 네. 매절로. 네?! 인세요?”

“잘 팔 수 있죠?”

“안 팔리면 만 원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인세 계약이면.”

“상관없어요. 어차피 잘 팔려도 얼마 못 받잖아요. 마진이 얼마 안 남으니까.”

“그건 그런데…. 흠.”

“하하. 한 번은 인세로 받아보고 싶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때 시하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응? 시하도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 있어?”

“아아. 홍 아찌. 그거 해. 그거.”

홍진수 과장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에 시하가.

“유부쳐바.”

“유부남을 쳐 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동화를 만들자고?!”

아니요. 그거 아니에요. 착각입니다…….

그런 팝업북 나오면 큰일 나요…….

근데 아무도 유부남이라고 안 했는데 그게 왜 나왔을까?

혹시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걸까?

왠지 모르겠지만 빼빼로데이를 챙기지 않는 홍진수 과장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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