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어린이집.
시하는 오늘따라 무거운 펭귄 가방을 열었다.
손을 넣자 뽀스락뽀스락 소리가 났다.
금방 빼빼로 하나를 꺼내서 승준에게 주었다.
“승준!”
“응? 시하야. 이거 뭐야?”
“빼빼로!”
“우와! 사커공이네?!”
승준이 기쁜 얼굴로 빼빼로를 받았다.
친구들에게 맞춘 특별한 과자.
포장지에 두 개밖에 없는 건 빼빼로를 많이 받을 거라 생각한 배려였다.
시혁과 시하가 만든 각기 하나.
“하나는?”
하나가 자신을 가리켰다.
은근히 기대가 담긴 눈빛에 시하가 다시 한번 뽀스락거렸다.
“이거! 하나!”
“우와! 마이크다! 분홍색이라 더 예뿌다!”
하나가 좋아서 방방 뛰었다.
그렇게 나눠주다 보니까 다른 아이들도 슬금슬금 관심을 가졌다.
종수가 은근 기대하는 눈빛이다.
시하가 그런 마음에 보답하듯이 하나의 과자를 꺼냈다.
“종수!”
“오! 고마… 워?”
빼빼로는 평범 그 자체.
딱히 뭔가 생각나지 않아서 형아랑 똑같이 평범하게 만들었다.
종수는 그게 못내 서운했다.
이상하게도 기쁘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걸 만들지 않아서 섭섭하기도 하고.
참으로 복잡미묘함 속에 갇혀 버렸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하는 다음 사람에게 빼빼로를 전해 주었다.
“재휘!”
“고마워 시하야. 바지네?”
“아아. 바지 마자!”
“맛있게 잘 먹을게.”
“은우!”
“푸하핫! 이게 뭐야. 모자네? 모자? 역시 래퍼는 모자를 써야지.”
“윤동!”
“어, 그래. 고맙다. 나는 사람이네? 춤추고 있는 거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동은 굳게 다문 입을 조금 씰룩였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빼빼로를 꺼내 시하에게 주었다.
“이거 별거 아닌데 나도 가지고 왔어. 너 생각해서 들고 온 건 아니고. 그냥 다 같이 준비했는데 주는 거야.”
“아아. 고마어!”
시하가 빼빼로를 얻었다.
비록 가게에서 파는 거지만 그 정성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윤동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빼빼로를 전해 주었다.
그런데 시하의 빼빼로만이 아몬드 빼빼로였다.
시하가 왜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생각을 멈추고 페페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아직 두 개 남았다.
“샘~ 언장샘!”
시하가 유다희 선생님과 원장에게 빼빼로를 전해 주었다.
“어머. 시하야. 우리도 챙겨주는 거야? 정말 고마워요~”
“정말 맛있겠네.”
“아아. 이거 이거 형아가 고마어~ 해써. 빼빼로 만드러써. 이거 형아. 이거 시하.”
둘은 시하의 말을 잘 알아들었는지 빙긋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빼빼로 증정이 끝난 뒤.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아이들의 주목시켰다.
“자. 여러분. 오늘은 시하가 이렇게 준비했다시피 빼빼로데이예요.”
오도독. 오도독.
아이들이 시하가 준 빼빼로를 벌써 입안에 넣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이미 신경은 과자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쓸 만큼 녹록한 경력이 아니다.
“그럼 빼빼로데이에 대해 알아볼까요? 사실 빼빼로처럼 날씬하게 되라고 과자를 주는 게 제일 처음이었어요. 11월 11일 11시 11분에 먹으면 효과가 있대요.”
하나가 먼저 반응을 했다.
“정말?!”
“그럼요. 다이어트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의 운명… 인데 다들 관심 없네요?”
“아니야! 하나는 궁굼해! 아이돌 되려면 다이어트해야 해.”
“네. 그렇죠.”
하나를 제외한 남자아이들은 딱히 관심 없었다.
다이어트 그게 뭐야? 먹는 거야? 딱 이런 표정이었다.
시하는 다이어트가 모지? 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흠흠. 뭐 시초는 여기지만 다른 이야기를 해 줄게요.”
선생님이 두 손으로 1을 만들었다.
“11월 11일. 어딘가 두 개는 닮았죠? 이렇게 닮거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빼빼로를 전해 주는 거예요. 자, 여기서 문제. 똑 닮은 건 뭐가 있을까요?”
승준이 하나와 자신을 가리켰다.
“쌍둥이! 하하하!”
“네. 같은 날 태어난 게 닮았네요.”
“아닌데. 하나눈 오빠랑 안 닮았는데?”
“네. 그렇긴 하죠.”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저기 승준아. 뭘 또 그렇게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 있니?
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오빠. 왜 못생긴 얼굴 해?’라고 했다.
‘야! 안 못생겼거든!’ 하고 반격을 했다.
둘이 그렇게 투덕거리고 있을 때 시하가 손을 들었다.
“오! 시하도 뭔가 생각나는 게 있어요?”
“아아! 형아! 시하!”
“으응?”
“형아! 시하!”
승준이 대답한 쌍둥이에 힌트를 얻어 닮은꼴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심히 당황했지만 당황한 척을 하지 않고.
“음. 그렇네. 닮았네. 형제는 닮는 법이니까. 똑같이 생겼어!”
“아냐. 형아 더 머시써.”
“으응?”
거기서 한 번 튼다고?! 아니, 어디에다가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거야. 닮았다며!
“형아. 시하. 이룸.”
“아하. 이름이 닮았다. 맞네! 초성이 똑같네! ㅇㅅㅎ이네!”
“아아!”
시하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쯤 되니 선생님은 의문이 들었다.
문제를 냈는데 왜 내가 맞추는 것 같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드디어 원하는 답이 나왔다.
“젓가락이요!”
“그래. 종수야. 젓가락이 똑같지. 어딘가 빼빼로처럼 빼빼하게 되어 있고.”
은우가 그 말에 빵 터졌다.
“푸하하! 빼빼로가 빼빼하게! 라임 좋다. 푸하하! yo. yo. 빼빼로가 빼빼하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랩.
선생님이 잠시 감상을 하고 나서 다시 진행했다.
“우리 그럼 똑 닮은 젓가락을 사용해 볼까요? 엄마, 아빠, 형이랑 같은 걸 해 보는 거죠!”
결론은 오늘 젓가락질 교육을 하는 날.
아이들도 흥미가 생기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아이용 교정 젓가락을 들고 왔다.
하나는 특별히 핑크색. 다른 아이들은 하늘색이다.
“이거라면 연습할 수 있어요. 하나씩 받아가세요.”
시하가 자신의 젓가락을 보았다.
‘형아랑 같아!’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끼웠다.
중지, 약지, 새끼.
“아?”
“푸흡. 시하야. 그렇게 넣는 거 아니야.”
“이케?”
시하가 젓가락을 들어서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그것도 아니야. 여기 엄지, 검지, 중지를 넣으면 돼.”
“아아.”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을 쏙 넣었다.
익숙하지 않은지 몇 번 까딱까딱했다.
“자! 다들 손에 넣었죠?”
“네!”
“그럼 오늘 제일 젓가락 잘 쓴 사람에게 특별한 빼빼로를 주겠어요. 이걸 11월 11일 11시 11분에 먹으면 날씬해져요.”
“하나 꼭 이길래!”
“먼저 보여줄게요.”
선생님이 빼빼로를 가져왔다.
아이들의 키보다 훨씬 큰 길쭉한 상자.
물론 안에 들어 있는 건 저만한 과자가 아니겠지만 상자만은 봉으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우와! 크다!”
남자아이들에게 드디어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선생님이 좀 더 부채질하기 위해 검처럼 상자를 뽑았다.
스윽.
“우와! 우와!”
“엄청 큰 빼빼로다!”
“아아! 백동!”
“후후후. 어때요? 갖고 싶죠? 젓가락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만 가질 수 있어요.”
선생님이 게임을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게 있다.
바로 전골 요리 장난감!
냄비 안에는 두부, 배추, 어묵, 파, 고기, 숙주나물 등 캐릭터 얼굴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그걸 보고 또 우와우와 한다.
열심히 눈에 불을 켜고 인터넷을 뒤지며 구한 게 보람이 있었다.
이걸 구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 정말 구하기 힘든 장난감이었다.
“전골이라는 음식이 있어요. 여러 재료를 넣어서 먹는 거예요. 여기 장난감 그릇에 많이 꺼내는 사람이 승리!”
아이들이 젓가락을 딱딱거렸다.
아마 손가락에 힘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배우는 거니까.
그래서 뭔가 연습해서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보다 이렇게 게임이라는 형식으로나마 해 보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아이들의 더 인내심을 발휘할 테니까.
“그럼 첫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이들 앞에 전골냄비 4개가 도착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자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시하가 먼저 손을 뻗었다.
집고 툭 떨어지고 집고 툭 떨어지고.
“아?”
놀라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 안 되지?’라는 표정으로 왼손으로 오른손을 토닥토닥했다.
“할 수 이써. 할 수 이써. 잘해야지.”
“푸흡. 흠흠. 시하야. 파이팅이야.”
“샘. 시하 해.”
“그래. 빨리하자.”
다시 도전.
이번에 노리는 건 어묵이다.
원통형 모양이라 잘 잡힐 것 같았다.
미끌. 역시 원형은 쉽지 않았다.
“아?”
다시 한번 도전했을 때 탁 하고 집을 수 있었다.
고대로 그릇에 골인.
“아아!”
“와! 잘했어요. 시하야. 그렇게 하면 돼요.”
끄덕.
시하가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다들 마찬가지로 조금 어려워했지만 그래도 잘 담았다.
시하만 그릇에 한 개였다.
시무룩.
“할 수 이써.”
그렇게 젓가락질을 할 때 시하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종수가 몰래 손으로 재료를 집었다.
“종수!”
“헉!”
“손 안 대!”
“흠흠.”
그 말을 들은 승준의 눈에 불이 켜졌다.
“야! 너 옐로카드야. 옐로카드!”
“아니야. 손 쓰지 말라고는 안 했어! 젓가락으로 집고 손으로 받친 거뿐이라고.”
“이, 이 나쁜!”
선생님이 둘을 진정시켰다.
“자. 지금까지 연습 경기였어요. 이제 다음부터 손 쓰기는 금지예요.”
“네~”
“그럼 시작!”
시하는 이번에 조금 쉬운 걸 찾았다.
대파!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젓가락으로 쏙 넣으면 될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집는 게 훨씬 편했다.
하지만 사람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였을까.
아이들의 그릇에 대파가 먼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실제 전골이었으면 고기부터 집었겠지만.
“대파 업써.”
“하하하! 다들 파만 먹네! 시하야. 이제 딴 거 집자.”
“아아!”
그렇게 다들 고군분투할 때 분홍색 젓가락만이 현란하게 춤을 췄다.
가히 전쟁에 여포라고 불릴 만했다.
그릇에 쏙쏙 담기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거의 우승 확정.
“젓가락 쉬워!”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를 끝냈다.
삐익-!
“끝났습니다. 승리는 하나네요. 다들 축하해 주세요.”
짝짝짝.
하나가 커다란 빼빼로를 지팡이 삼아 들며 배를 쭈욱 내밀었다.
오늘은 모두를 제치고 MVP를 따냈다.
“하나는 엄마랑 같이 먹을 거야.”
빼빼로 상자를 개봉했다.
거기에는 길고 굵은 빼빼로 3개가 포장되어있었다.
“???”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짜잔 마술입니다.”
아이들은 뭔가 속은 기분을 느꼈다.
***
아이들이 상술에 대한 충격이 가실 때쯤 점심시간이 왔다.
오늘은 젓가락을 사용하여 먹을 수 있는 유부초밥이다.
다진 소고기, 당근, 파, 밥을 볶아서 간단히 유부의 속을 채웠다.
아이들이 음식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젓가락으로 먹어 보아요.”
시하가 앞에 놓인 유부초밥을 보며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젓가락으로 콕! 찔러넣으니 푹하고 들어간다.
포크 대신 쓸 방법을 알아내었다.
“아아!”
손쉽게 들어 올린 유부초밥을 한 입 냠, 하고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승준이.
“와! 그렇게 하면 되겠다!”
“하나도! 하나도!”
“나도! 나도!”
하나같이 젓가락질은 안 하고 포크처럼 푹푹 찔러서 먹었다.
마치 꼬지를 만들 듯이 말이다.
“여러분 참 기발하네요.”
이번 건 선생님이 한 방 먹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먹지 말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배워 나가게 되어 있었으니까.
한 번에 잘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은 어떻게 하는지 방법만 알면 대만족이었다.
아이들에게 오늘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젓가락데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는 먹다가 자신이 놓은 펭귄 가방을 바라보았다.
아직 그 안에는 선물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