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빼빼로를 만들기로 했다.
곧 11월 11일 빼빼로데이니까.
사실 이런 상술! 하면서 매해 빼빼로데이를 그렇게 보았다.
어떨 때는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으며 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저 한때일 뿐이다.
그래도 상술이라도 좋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기회와 핑계를 만들어주는 날.
이렇게 보면 또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시하야. 이제 무슨 날이 다가오는 줄 알아?”
“아?”
시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무언가 계산하기 시작한다.
“한 밤, 두 밤, 서이 밤. 네 밤.”
“알고 말하는 거야?”
“아아. 시하 아라.”
“뭔데?”
“형아 시하 노라 날.”
“으응? 그건 맨날 하는 거 아냐?”
“아냐. 집에서 노라. 매일 매일.”
“아하. 하루 전부 시하랑 형아랑 노는 날이라고?”
“아아.”
그런 날이 있다니….
일만 없었다면 그렇게 놀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에 꼭 해야 하는 양을 정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마음만큼은 너랑 종일 놀아주고 싶다는 걸 기억하렴.
“땡! 틀렸어.”
시무룩.
시하가 쪼그려 앉아서 손가락으로 땅을 팠다.
살며시 올려다보며.
“정말?”
“크흑. 그건 비겁하다!”
“정말?”
“흠흠. 대신 오늘 형아가 아주 재밌는 걸 해줄게. 일은 어제 오늘치까지 다 해줬거든.”
“모야?”
이제야 시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심을 보인다.
오늘 나랑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좋아한다.
그렇다고 안 놀아줬던 건 아니었지만.
“바로바로 11월 11일이 빼빼로데이거든. 그래서 빼빼로를 만들 거야. 시하는 빼빼로 알지?”
“시하 아라. 빼빼로 이케이케 머거. 마시써.”
두 손 꼭 모으고 오독오독 먹는 시늉을 한다.
그런데 시하야. 그렇게 공손하게 빼빼로를 먹을 필요가 있니?
역시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한국인이구나.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바로 쿠키 반죽!”
먼저 빼빼로의 긴 막대 부분을 만들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하면 설거지할 게 많아서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런 게 정성이 아닌가.
“자. 시하야. 그럼 여기서 같이 반죽을 하자. 알았지?”
“아아.”
먼저 반죽을 만들어서 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짱돌만 한 반죽을 보며 눈을 빛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 교육도 시킬 수 있는 법!
바로 숫자 놀이다.
“자. 막대 과자를 만들기에는 반죽이 아주 크거든? 그래서 반으로 잘라야 해. 이렇게 하면! 짜짠. 몇 개?”
“시하 아라! 두 개!”
“옳지. 그럼 시하도 해볼까?”
시하가 두 개를 외치며 반으로 잘랐다.
그래도 막대를 만들기에는 좀 크다.
“다시 한번 반!”
“서이!”
“나머지 하나도 반!”
“너이!”
어디 판소리 하는 줄 알았다.
아주 소리가 우렁차다.
그렇게 자른 반죽을 동글동글하게 만들었다.
“이제 길쭉길쭉하게 막대를 만드는 거야. 알았지?”
“시하 아라.”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듯이 열심히 손을 비빈다.
이렇게 하면 기다란 막대가 만들어진다.
“시하야. 이거 형아 감기 걸렸을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줄 거거든. 물론 친한 친구들도.”
“누구?”
“문도환 삼촌, 백동환 삼촌, 서수현 누나(?), 알리사, 어린이집 친구들, 선생님들. 이렇게?”
“아아. 문도 삼춘! 백동 형아.”
“???”
그래. 삼촌이라고 말한 건 잘했고 별명으로 부른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왜 문도환은 삼촌이고 백동환은 형이지?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시하의 기준점이구나.
사실 나도 삼촌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나이 차이지만 호적상 형이다.
어쩌면 나중에 시하 마음대로 형과 삼촌이 정해질지도 모르겠다.
“아, 아무튼 이렇게 고맙습니다 하고 선물을 줄 거야.”
“아아. 시하 마니 만드러.”
“그래. 시하야. 많이 만들어야 해서 오늘 형아 많이 도와줘야 해. 알았지?”
“아아.”
그렇게 우리 둘은 집중을 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일정한 길이로 막대 과자가 하나씩 놓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개수가 만들어지자 힐끗 시하를 보았다.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나와 다르게 여기저기 다양한 길이가 펼쳐져 있고 막대인지 의심스러운 모양도 있었다.
어차피 오븐에 구울 거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시하야. 그거 왜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어?”
“아?”
“이건 엄청 크고 굵은데?”
“이거 백동.”
“형아. 붙여야지.”
“백동 형아.”
“응. 그렇구나.”
굳이 설명은 안 했지만 이해가 간다.
누가 봐도 백동환에게 줄 빼빼로였다.
“그럼 다른 건 누구 거야?”
“이거…….”
시하의 설명으로는 이렇다.
기타를 닮은 형태는 서수현.
막대에 반팔티가 달린 건 알리사.
어딘가 반죽이 한 대 맞은 것 같은 건 문도환. 예상으로는 젤리 장난감인 것 같다.
축구공 오승준, 마이크 오하나 등등.
가지각색으로 잘 만들어놨다. 아주 개성이 넘쳐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이거 내가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시하가 더 인사를 잘하는 거 아니야?
쿠키를 만드는 것보다 저렇게 만드는 게 더 성의가 있어 보였다.
역시 시하는 천재인가…….
“정말 잘 만들었네. 나중에 오븐에 구워서 빼빼로 잘 만들어보자. 알았지?”
“아아!”
반죽이 오븐에 들어가고 구워졌다.
시하는 기다리는 것도 신기한지 계속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의자에 올라서 또 한 번 보다가 다시 내려서 ‘언제 되는 거지?’ 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띵-!
“아! 다 됐다! 이제 꺼내서 식히면 돼.”
“아아!”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빼빼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아?”
시하가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정답을 말했다.
“초코!”
“정답! 여기 초코가 있어요.”
“아? 분홍이야. 분홍. 하얀색. 하얀색.”
“맞아. 세 가지를 형이 준비했어.”
짤주머니에 초코를 넣어서 뜨거운 물에 담갔다.
어느 정도 녹자 꺼내서 손으로 주물렀다.
“자, 이제 과자에 초코를 묻혀 볼까요?”
“아아!”
시하와 함께 막대 과자를 초코에 풍덩 빠뜨렸다.
나는 미리 빻아놓은 아몬드를 솔솔 뿌렸다.
아몬든 빼빼로라는 거지.
시하에게는 예쁜 스프링클을 주었다.
하트와 구슬이 들어있어서 꾸미기 좋았다.
“이건 초코 찍고 바로 뿌려서 만들어줘야 해. 안 그러면 초코가 굳거든.”
“아아!”
시하가 신중하게 먼저 집은 건 백동환의 막대 과자였다.
폭 빠뜨린 다음 스푼으로 초콜릿을 흘려서 묻힌다.
그리고 빼서 놓은 뒤 꾸미기 시작한다.
“백동 형아. 톡톡. 톡톡. 힘세.”
길게 크런치가 가득 붙어지는 것을 보니 왠지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몸에 많은 근육을 뜻하는 거겠지?
“리사. 하투.”
옷에는 예쁜 하트가 장식된다.
“개굴 누나. 기타야. 형아. 줄은?”
“어? 아! 줄은 짤주머니를 이용하면 돼.”
내가 화이트 초콜릿을 담은 짤주머니의 끝을 자르고 그대로 짜서 선을 만들어주었다.
작아서 세 개밖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기타 줄이었다.
“우와!”
“신기하지? 이걸로 시하 만들고 싶은 거 만들면 돼.”
“아아!”
문도환의 막대에는 온갖 초코 범벅에 크런치 그리고 하트와 구슬이 들어갔다.
“문도 삼춘 마니 머거!”
저거…. 먹을 수 있는 거겠지?!
바닥에 찌푸려진 젤리 장난감을 표현한 거였다면 굉장히 잘한 거다. 암!
“금방 식어서 바로 완성돼.”
“정말?”
“응. 다 만들었으면 이제 중요한 게 있어.”
“모야?”
“바로 포장지! 예쁘게 넣어서 전해주자. 알았지?”
“아아!”
그렇게 우리는 포장지에 과자를 넣었다.
문제가 있다면 백동환의 막대가 너무 길어서 다 안 들어갔다는 점.
“형아. 백동 형아 너무 커.”
시하야. 그거 과자가 너무 크다고 해야지. 백동이 크다고 하면 안 되지.
아니,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미 과자는 백동이 되어 있었다.
***
11월 11일.
시하가 펭귄 가방을 흔들며 차에 탄다.
그와 동시에 핼러윈 열쇠고리도 같이 흔들린다.
“시하야. 다 챙겼지?”
“아아.”
“아! 맞다! 먼저 백동에게 줘야 하는데. 잠깐 내려서 문 두드릴까?”
“백동 형아!”
다시 차에서 내려서 백동환에게로 갔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나오는 게 보였다.
“아, 형님. 아침부터 웬일이 십니까? 설마 아침밥같이 먹으려고?”
“무슨 소리야. 이미 우린 먹었지. 출근 준비해?”
“네. 아침 먹고 나가려고요.”
“아직 일하려면 멀었지? 10시에 시작하잖아.”
“맞습니다. 그때까지 목을 풀어야죠. 여기 이러고 있지 마시고 들어오시죠.”
“어? 아니. 우리는 전해줄 것만 전해주고 가야지. 시하야.”
시하가 과자를 꺼냈다.
“백동 형아!”
“오! 시하야. 이게 뭐야?”
“백동이야.”
“???”
백동환이 커다란 빼빼로를 보았다.
크런치가 가득 붙어져 있어서 맛있어 보인다.
둘이서 만들었지만 참 잘 만들었다.
“저기 큰 게 시하가 만든 거야.”
“정말입니까? 와! 시하야. 고마워. 근데 포장이 왜 이렇습니까? 기름종이 같은 곳에 왜 돌돌 싸놓았는지?”
“아, 그거? 너무 커서 맞는 포장이 없더라. 거기 보통 크기는 내가 만든 거야.”
“와. 진짜요? 감사합니다. 아, 오늘 빼빼로데이구나.”
“그렇지.”
“크흐! 오늘 회사에 가서 자랑해야겠네요.”
다음은 문도환.
“어? 이거 뭐야?”
“나랑 시하가 만든 빼빼로야. 아몬드 빼빼로는 내 꺼. 거기 특별한 모양은 시하 꺼.”
“아, 이게 시하가 만든 거라는 거지?”
문도환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이거 폭탄 돌리기 아니지? 생긴 게 왜 이래? 먹을 수는 있어?”
“형이 시하에게 준 젤리 장난감이래.”
“아, 그래? 그게 이리 생겼어?”
“예술로 승화된 표현이지.”
“그렇네. 가지각색이네.”
“아무튼, 감기 걸렸을 때 고맙다는 표시야.”
“수제는 남자에게 받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럼 돌려주던가.”
문도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어허. 누가 안 받는데? 그냥 기분이 좀 미묘하다는 거지.”
“나에게라도 받는 게 어디야.”
“그만 뼈 때리고 가라.”
시하가 문도환을 보았다.
“문도 삼춘! 마시써?”
“아직 안 먹었어…….”
“머거 바. 머거 바.”
“어? 그냥 나중에 좀 먹으면 안 될까?”
“아냐. 지굼. 지굼이야.”
“그, 그래.”
떨떠름한 표정으로 빼빼로를 입안에 가져간다.
오드득. 오드득.
열심히 씹어서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다.
“마시써?”
“응. 맛있네? 마치 베라에서 아이스크림을 다 섞어놓은 것 같아. 여러 가지 맛이 느껴져서 재밌어.”
“다움에. 또 만들께.”
“어?”
나는 보았다.
문도환이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시혁아.”
“응?”
“이거 정말 고마워서 가지고 온 거 맞지?”
“푸흡. 내 꺼는 아몬드 빼빼로라서 맛있을 거야.”
“어. 그래. 젤리 장난감 맛도 좋은데 아몬드 빼빼로는 더 맛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하하.”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서수현에게 넘어갔다.
“개굴 누나!”
“응? 어? 시하야.”
“이거.”
“응? 이게 뭐야?”
“기타 빼빼로. 시하 만드러써.”
“우와. 정말?”
나도 슬쩍 끼었다.
“나도 같이 만들었어. 아몬드는 내 꺼야.”
“오빠 정말요? 와. 빼빼로도 만드시고. 별명도 만들어주시고. 뭘 만드시는 걸 잘하시네.”
“내가 좀 그렇지. 평소에 고맙다고 주는 거야.”
“아…. 땡큐요.”
서수현이 빼빼로를 꼼지락거리며 만졌다.
뭐지? 뭔가 곤란해하는 표정인데.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아이 씨. 아, 왜 이런 걸 주냐고.”
“다시 회수해? 오늘 회수해 갈 사람이 많네.”
“그 뜻이 아니거든요! 으음.”
서수현이 머뭇거리더니 가방에서 빼빼로 두 개를 꺼내며 내게 내밀었다.
“오빠가 이렇게 하니까 꺼내기 민망해졌어요.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기왕 만든 김에 많이 만들어서 그렇지. 내가 좀 큰 손이잖아.”
“웃겨.”
“빼빼로는 고맙게 받을게. 하나는 시하 꺼지?”
“네.”
시하가 싱긋 웃었다.
“개굴 누나 고마어~”
“응. 이 기타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그 말에 시하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시하 아라.”
“으응?”
“똥! 똥 대. 똥!”
어? 그렇지. 아끼면 똥 되지. 대체 누가 시하에게 이걸 가르쳐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