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문도환이 왔을 때는 벽에 기대어 앉아 콜록대고 있었다.
미리 문을 열어둬서 그런지 손쉽게 들어왔다.
“쓰러졌다며? 괜찮아?”
“안 쓰러졌어. 그냥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고 있었을 뿐이야.”
“얼굴은? 다쳤다던데?”
“다친 게 아니라 갇힌 거. 이거 마스크 보고 갇혔다고 말했던 거야.”
“아…. 다쳤다가 아니라 갇혔다…….”
“그렇지.”
잘못 이해한 문도환이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진짜 놀랐잖아. 너 잘못되는 줄 알고. 그래도 지금 심각하기는 하네. 병원부터 가자. 내가 차 끌고 왔거든. 어서 타.”
“시하 아침밥도 못 먹었는데.”
“그건 내가 챙길 테니까 어서 타. 지금 몇 신 줄 알고 아침이야. 아점 시간이거든.”
“진짜?”
약을 먹어서 그런지 상당히 오래 잤나 보다.
폰을 보니 10시가 지나 있었다.
배가 엄청 고팠을 텐데 시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를 걱정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나는 괜찮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빨리 가자.”
그렇게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주사도 맞고 수액인지, 영양제인지도 맞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문도환이 일단 뭐라도 다 맞자고 해서 이렇게 된 듯한데 나는 그냥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빨리 나으면 시하에게도 좋지.
“시하랑 밥 먹고 올 테니까 얌전히 자고 있어. 알았지?”
“어린이집도…….”
“데려다줄게.”
시하가 그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시하 안 가. 형아랑 가치 이써.”
“형아 감기 옮을까 봐 그래. 시하야. 어린이집 갔다 오면 형아가 데리러 갈게.”
문도환도 내 말을 거들었다.
“그래. 시하야. 내가 형아랑 같이 데리고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린이집 가자. 이건 코오 많이 자면 낫는다니까.”
“정말?”
“응. 정말이지.”
시하의 손가락이 꼬물꼬물 얽혔다.
걱정이 되는지 쉽게 발을 못 떼고 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문도환의 손을 잡고 떠났다.
다행이었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심심할 거고 곁에 있으면 혹시 감기가 옮을 수 있으니까.
뒤돌아보는 시하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그대로 다시 누웠다.
몸이 휴식을 바랐다.
그렇게 잤는데도 또 잠이 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
-어린이집.
시하는 형아가 많이 걱정되었다.
병원에 가면 낫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누워 있는 형아를 보니 안심이 되지 않았다.
형아가 좀 더 빨리 나았으면 싶어서 열심히 고민했다.
“끙.”
두 손으로 볼을 받쳤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끙끙거리고 있자 쌍둥이들이 시하를 본다.
“시하야 왜 그래?”
“시하야 왜 구래?”
“형아 아파.”
쌍둥이들이 처음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하가 늦은 이유를 딱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큰일이 있을 줄 몰랐다.
“아니. 시혀기 형아가 아프다니.”
“말도 안 돼. 하나가 간호해 주러 가야 해!”
“아? 간호?”
시하는 간호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하나가 설명했다.
“옆에 있어 주고 밥도 주고 약도 먹이고 하는 거야. 물도 갖다 주면 돼.”
“아아!”
시하가 바로 그거라는 듯이 소리를 쳤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바로 형아를 간호하러 가야 했다.
시하는 하나의 어깨를 토닥토닥했다.
마치 사장이 엄청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잘해써. 잘해써.”
“???”
하나는 시하의 사고를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가?”
“시하 가야 대. 형아 간호해. 바이바이.”
시하가 현관으로 뛰어갔다.
신발을 열심히 신고 있는데 선생님이 그대로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아?”
“시하야. 어디 가니?”
“형아 간호하러.”
“응?”
“형아 간호해. 빨리 나아.”
“어…. 그렇게 간호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아?”
선생님은 시하를 내려놓았다.
이제 진정이 됐는지 빤-히- 바라만 보았다.
후후후.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게 있다. 때마침 겨울이라 혹시나 해서 주문해 둔 게 있는데 시혁 씨가 감기에 걸렸다.
그렇다면 준비가 된 걸 해야 했다.
“모야?”
“그게 뭐냐면.”
선생님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아이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 왔대?
“아~ 선생님! 빨리 말해줘요! 시혀기 형아한테 저도 갈 거예요.”
“하나도 도울래!”
종수와 재휘도 마찬가지.
“시하 형이 아프니까 도와줄래요.”
“시하 형은 아프면 안 돼. 옷도 잘 입는데.”
재휘야. 옷 잘 입는 거랑 아프면 안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니?
윤동과 은우.
“아무 생각 없지만 다들 하고 싶어 하길래요.”
“하하하. 빨리 나으라고 랩 가사 쓰는 거예요!”
아닌 척하는 윤동을 보며 피식 웃다가 은우의 엉뚱한 말에 빵 터졌다.
랩 가사 쓰는 게 아니라 편지 쓰는 거겠지.
“네. 좋아요. 다들. 시혁이 형, 오빠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네요. 그럴 때는 몸에 좋은 게 있어요. 바로! 대추차! 다들 대추차를 만들어 봐요.”
시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시하 차 이써.”
“아니, 그 차가 아니에요. 음. 대추로 만든 음료수라고 하면 되겠네요.”
“아아!”
“그럼 다 같이 만들어볼까요?”
“네~!”
선생님과 원장이 7개의 바가지에 대추를 나눠놓고 들고 왔다.
안에 베이킹소다와 물을 넣었다.
“자. 여기 칫솔이 있어요. 이걸로 대추를 씻어줄 거예요.”
시하가 이걸 보며 한마디 했다.
“대추 양치해?”
“네. 대추도 열심히 양치해서 맛있는 차가 나온답니다. 자, 한번 해보세요. 치카치카.”
“치카치카.”
아이들이 열심히 대추를 손질했다.
다 된 것은 빈 통에 담는다.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지만 그게 더 의미 있었다.
쓱싹쓱싹.
시하가 대추 하나를 가지고 열심히 닦았다.
“치카치카.”
“저기. 시하야. 대추에서 때 나오겠어. 그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아냐. 열심히 해야 해. 깨꾸티. 때 업어져 깨꾸테~”
어? 그래. 깨끗이 씻어야 하는 거 맞지.
때도 벗기면 좋은 거 맞는데 대추에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만족할 때까지 열심히 닦았다.
드디어 하나.
엄청난 속도였다.
선생님이 천천히 지켜보다가 다른 준비를 했다.
“선생님은 배를 깎을게요. 여러분들은 대추를 부탁해요.”
선생님이 통통 배를 크게 썰었다.
이걸 대추와 함께 끓일 생각이었다.
접시에 예쁘게 배를 놓았다.
통. 통.
큼직큼직하게 잘도 썰렸다.
그걸 본 승준이 덥석 두 개를 잡았다.
“아~ 힘들다. 잘 먹겠습니다. 시하야. 자~!”
쓱싹쓱싹 닦고 있는 시하의 입으로 하나가 들어갔다.
너무 커서 다 들어가지 않아서 물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우우우.”
“푸하핫. 자, 베어먹어. 내가 쥐고 있을게.”
“우웅우웅.”
선생님이 어? 어? 하며 황당해했다.
“이거 먹는 거 아닌…….”
호다닥.
아이들이 벌써 하나씩 배를 쥐고 냠냠 먹었다.
그러고는 다시 칫솔질.
“흠흠. 여러분 사실 이건 먹으라고 깎아둔 게 아니에요. 대추랑 같이 끓이려고 해둔 거예요. 이제 먹으면 안 돼요. 알았죠?”
“네에~”
그렇게 손질이 끝나고 물에 푹 끓이기 시작했다.
약 1시간 15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이제 중요한 재료를 넣어줘야 해요.”
“???”
“요리든 뭐든 안에 정성 어린 사랑을 넣어줘야 해요.”
종수가 말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티비에서 봤는데 정확한 계량기를 써서 만들면 실패는 없다고 했어요!”
“후후후. 하지만 엄마의 손맛이 있다고 자주 들었지 않아요?”
“어? 엄마 요리 못하는데.”
선생님은 설득에 실패했다.
엄마가 요리를 못하면 어쩔 수 없지.
“형아 요리해. 형아 손맛.”
그래. 저쪽은 형이 요리를 하지. 이런! 엄마 손맛은 정녕 찾을 수 없단 말인가.
“엄마 해주는 거 다 맛있어!”
“마자! 하나도 엄마 요리 좋아해.”
다행히 쌍둥이가 선생님의 말을 거들어주었다.
선생님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도전했다.
“맞아요. 사랑이 없어도 맛있지만 사랑을 담으면 더 맛있어진답니다.”
“형아. 시하 사랑해?”
“그럼요. 그럼요. 시하도 형아 사랑하니까 다들 시혁이 형, 오빠에게 사랑을 가득 넣읍시다!”
“어또케?”
“간단해요! 바로 춤과 노래로!”
그 말에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특히 윤동이 주먹을 불끈 쥐고 제일 좋아했다.
“그럼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틀겠습니다.”
둠칫. 둠둠칫.
흥겨운 비트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슬슬 바운스를 하며 몸에 시동을 걸었다.
선생님이 빈 바가지를 들었다.
“먼저 춤을 추고 여기에 사랑을 넣어주는 거예요.”
프로 선생님이라면 이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법.
지루함을 없앨 무언가를 던져줘야 했다.
지금까지 앉아서 대추를 손질하느라 몸이 근질근질했을 테니 에너지를 풀어줘야 했다.
어느새 아이들이 반원으로 서서 만들어진 무대.
선생님이 카메라를 켰다.
“먼저 나설 사람은 누구?”
“저요!”
윤동이 제일 먼저 문워크로 나섰다.
몸을 몇 번 튕기더니 팝핀으로 변형.
팔을 몇 번 꺾으면서 추며 가슴에서 사랑을 꺼내 넣었다.
“빨리 나으세요!”
그리고 다시 문워크로 원래 자리로 들어갔다.
“그럼 다음은 누구?”
엄청난 춤을 봐서일까?
다들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은우였다.
“하하. 노래도 된다고 했으니까 랩도 되겠지.”
쿵. 쿵. 쿵. 쿵.
비트 위에 랩을 하기 시작했다.
“쉬익. 머리에서 열나. 쉬익. 만들어써 열라. 쉬익. 약 좀 챙기자. 우리의 형아를 위해.”
바가지에 다가가며.
“우리는 얼라. 이브. 형도 그랬으면 해.”
주머니에 뭔가를 꺼내는 시늉을 하며.
“케어 해! 케어 해. 빨리 나았으면 해! 로운! 건 빨리 날아가. 쉬익!”
쉬익에 맞춰 바가지에 그 마음을 넣었다.
선생님은 감탄했다.
은우가 정말 랩을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았다.
“이야. 랩 잘하네.”
“헤헤.”
해맑게 웃으며 자리로 들어간다.
워낙 두 무대가 압도적이었을까?
이제 정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하나가 할래~!”
“오! 그래. 하나야.”
“시혀기 오빠. 빨리 나아. 하나가 노래 들려주께.”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빨리 나으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오빠 나으세요. 우리가 있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노래네?”
“헤헤헤!”
하나도 마음을 쏙 넣었다.
승준이 나서서 허공으로 공을 찬다.
뭔가 개인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퍽 웃겼다.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서 뭐 하니?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뻥 하고 공을 찬다.
“아싸 골인! 바가지에 들어갔어요!”
“어? 그래. 그렇게 넣었다는 거지?”
“네!”
다음은 종수와 재휘.
종수가 혼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재휘를 끌고 나왔다.
둘이서 시작하는 정통적인 춤.
손과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뛰기 시작한다.
둥글게. 둥글게.
강강술래 때부터 내려오던 뼈대 깊은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을 포장했다.
“헥헥. 아직 안 끝났어요.”
아니. 종수야. 더 안 보여줘도 돼. 재휘는 끝내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간다.”
“…으응.”
“후흡.”
종수가 깊게 숨을 쉬더니 노래를 했다.
아무래도 춤과 노래를 다 보여줌으로써 자신도 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약을 먹어야~”
“먹어야~”
“빨리 나을 텐데.”
“텐데.”
재휘의 코러스 뭐냐고…….
아무튼, 그렇게 노래를 끝내고 마음을 담아서 바가지에 넣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이시하.
열중쉬어 자세를 하다가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도도도 앞으로 나와서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