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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213/500)

213화

-시혁이의 육아일기.

-이시혁 6살.

시혁이의 생일이 지난 며칠.

나는 드디어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도 말이다.

그 말이 상처가 될 줄 몰랐다.

아이 앞에서 정말 부끄러운 아버지가 된 것만 같아서.

너무 미안해서.

어린애처럼 울었다.

“아빠가 시혁이를 왜 버려. 절대 못 버려. 왜 그런 줄 알아?”

“왜?”

“이미 법으로 땅땅 적혀 있거든. 어기면 아빠 감옥 가.”

“훌쩍. 아빠 감옥 가면 나 혼자 있잖아. 으아앙.”

이때 눈에 눈물이 흐르는 와중이었는데 정말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빠가 절대 시혁이 옆에 있겠다는 거지. 누구보다 더 많이 곁에 있을 거야. 그래서 아빠 출장도 이제 안 가. 다른 일 하기로 했어. 그건 알고 있지.”

“응.”

“법보다 더 굉장한 거 알려줄까?”

“뭔데?”

손으로 시혁이의 뺨에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그 얼굴이 너무나 어리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세상에는 영혼이라는 게 있어. 맺어질 인연은 붉은 실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둘에게는 황금색 실이 있어.”

“정말?”

“응. 아빠가 열심히 기도드려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절~대~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진짜지?”

“응. 이건 너무 멀리 떨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준대.”

“그럼 내가 길 잃어버려도 아빠에게 잘 갈 수 있어?”

“응.”

“아빠 딴 데 가도?”

“당연하지. 이거면 좀 안심이 되지?”

아직 어려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린다.

아빠로서 이 약속을 지킬 생각이다.

너와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

설사 죽음이 우리를 가른다고 해도 영혼으로서 너의 곁에 남겠다고.

안심하고 앞으로 잘 걸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더는 날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 나는 너의 자립에 박수를 쳐 줄게.

그러니 지금은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약속. 아빠 약속해.”

“응.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도장까지.”

“근데 누구에게 기도했어?”

“으응?”

“계약서는 도장 찍어주는 사람 있잖아. 잘 찍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잘 기도했어?”

“계약서 도장은 어떻게 아니?”

“아빠 일하는 거 들었어.”

“그랬구나. 시혁이 참 똑똑한데?”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어~기~ 하늘 멀리 있는 별들에게 빌었어. 예쁘게 빛나는 것.”

“별은 그냥 항성 아니야?”

“으응?”

“아빠 책에서 봤는데. 항성인데. 스스로 빛나는.”

“언제 그런 것도 읽었어.”

“나 열심히 읽었어. 모르는 것도 많았어.”

“그랬어?”

“근데 해 같은 건데 빌면 소원 이루어줘?”

“응. 근데 그냥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야. 별똥별이 지나가면서 소원을 가져가고 그걸 처리해서 가져다주는 거야.”

“정말?”

“응. 아빠가 별똥별에 소원을 말했지. 절대 떨어지지 말자고. 설사 떨어진다고 해도 저어기~ 젊은 푸른 별이 잘 가르쳐 달라고.”

“푸른 별?”

“응. 별은 젊을수록 청색을 띠거든. 아빠는 별이 되어도 젊은 푸른 별로 살 거야.”

“그럼 소원 이루어졌어?”

“응. 그렇다니까. 이제 취소 못 해. 그래서 잘 빌어야 하지.”

“다행이다.”

아빠가 잘 지켜볼게. 미안해. 시혁아.

***

낙엽이 길가를 구르며 가을이 줄어듦을 알린다.

차가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할로윈이 끝난 다음 날은 기온이 갑자기 확 떨어져서 시하의 옷을 따뜻하게 입혔다.

집을 나서는 기분이 낯설다.

어제 너무 다양한 일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모르겠다.

“시하야. 추운데 빨리 차로 가자.”

“형아. 차 따뚜테?”

“아니. 그래도 히터 틀면 금방 따뜻해질 거야. 아마 그때쯤이면 어린이집에 도착해 있겠지만.”

“왜?”

“왜긴 금방 가니까. 그리고 해 떴으니까 금방 따뜻해질 거야.”

“아아. 해 조아.”

“하하. 좋지? 여름에는 싫고 겨울에는 또 좋고.”

“시하 아라.”

“오. 시하 아는구나.”

그렇게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나는 시하를 배웅하고 강의실에 들러 가방을 놓았다.

언제나 빈 강의실은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다.

이렇게 일찍 올 이유도 없거니와 시하를 데려다주면서 한두 시간은 혼자 우두커니 노트북을 꺼낸다.

이렇게 번역 일을 하고 있으면 수업이 시작된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상.

하지만 오늘은 작업하기보다는 그저 쉬고 싶었다.

처음으로 정신이 휴식을 원했다.

‘나가자.’

남겨진 빈 강의실을 뒤로 한 채 가방을 들고 길가를 걸었다.

대학교를 나와서 사람들을 보는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나 보다.

옆에서 쫑알쫑알 떠드는 게 우리 시하 같다.

어느새 말이 많아졌으니까.

‘귀엽네.’

시간이 좀 지나자 헐레벌떡 집을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엄마! 늦었어!”

“어서 타. 어서 타.”

“아, 엄마가 태워 준다고 해서는. 그냥 가면 되는데.”

“어떻게 그래! 밥이라도 한 숟갈 뜨고 가야 하루가 든든하지. 이제 출발하면 안 늦어.”

교복 입은 딸과 투덕거리며 차가 출발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일 때문일까?

괜스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차라리 학교에서 억지로라도 작업을 시작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자.’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학교로 향했다.

상념이 많아지며 복잡한 감정을 없애려면 무언가 집중하는 게 최고다.

괜히 이런저런 곳 돌아다니지 말고.

그렇게 학교 앞에 왔을 때.

“시혁아.”

“…….”

“오랜만이야. 많이 컸네?”

“…네. 오랜이네요. 정말.”

“보고 싶었어. 시혁아.”

가까이 다가오는 어머니를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설마 여기서 마주칠 줄 몰랐다.

어째서? 어떻게?

복잡한 감정이 불쑥 올라오며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엄마도 네가 대학교 어디 다니는지 알아.”

“누가 알려줬냐고요.”

“그게 무슨 상관이니.”

“그리고 번호도 어떻게 아시고…….”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누가 알려줬다면 고모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 학교도 알려줬겠지.

그저 예상일 뿐이지만 어머니가 아는 사람은 그 정도 인맥일 것 같았다.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가자니 계속 마주치려고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하랑도 마주치게 될 것이고, 그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여기 말고 조용한데 가서 이야기 나누죠.”

“그래. 그러자. 어디 카페라도 갈까? 좀 춥네.”

“아니요…. 말 그대로 사람 없는 곳이요.”

둘이서 대화 나누는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타고 다니는 차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 차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뜬다.

“타세요.”

“그래.”

의자에 앉자 차가움이 엉덩이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척추가 시려 온 건 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냉기를 떨치기 위해 히터를 틀었다.

“좋은 차구나. 어떻게 구했니?”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왜 이렇게 까칠하게 굴어. 오랜만에 엄마 얼굴 봤으면서.”

“안 보고 싶었어요. 제가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건 어머니랑 정말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뭐?”

“다시는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통보하는 거예요.”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이 한마디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을 일이란 걸 안다.

그래서 명확히 말해야 했다.

몇 번이라도 되새길 수 있게.

“저는…….”

“잠시만. 시혁아. 잠시만.”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잠시 심호흡을 하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외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도 알았지.”

“네.”

순간 고민이 들었다.

혹시 납골당을 알려 달라고 하는 걸까?

그거라면 고모도 알고 있을 텐데?

머릿속에 복잡해지려고 할 때 어머니가 말했다.

“정말. 정말 많이 놀랐단다. 너에게 그런 힘든 일이 일어났다니. 그리고 네 동생…. 후우. 그래. 그 어린 동생하고 남아있잖니.”

“그래서요?”

“그래서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같이 살면 어떨지 싶어.”

“필요 없어요.”

“단호하게 말하지 말고 조금 생각해봐. 너 지금 혼자서 애 하나 키운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쉽니? 심지어 너 스물세 살이야. 곧 스물넷이고. 한국은 이제부터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들었어. 취업 시기 놓치면 또 잡기 너무 힘들어.”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얘 키우면서 취업 준비가 되겠니? 그리고 감당이 되겠어? 만약에 너 조금이라도 아파 봐. 누가 돌봐주겠어.”

“아빠는 잘만 절 키웠어요.”

“아빠는 이미 자리 잡고 인맥도 많았어. 내가 같은 통역사로 일해 봐서 잘 알아.”

“그만하세요.”

어머니가 한숨을 내쉰다.

나는 이제 와서 왜 이러나 싶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것 때문에 오셨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손을 빌리는 날은 없을 것이다.

“엄마랑 같이 살자. 엄마가 혼자 살아보니까 너무 외롭더라. 이 나이 되니까 우울증까지 올 판이야.”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래. 엄마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그때처럼 자신만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결정한다.

아니, 복합적인 마음이 있겠지. 여러 가지.

그런데 나는 왜….

“후우. 5살 때. 저에게 그랬지요.”

-시혁이는 이해해줄 수 있지? 엄마 떠나는 거 이해해줄 수 있지?

“기억하세요?”

“너. 아직도 그걸.”

“네. 다 기억해요. 그런데 어떤 아들이 자기 자식 버린다는데 그걸 이해해요. 네?”

“그저 이혼한 것뿐이야.”

“네. 그래요. 이혼.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엄마.”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눈동자에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함께 묻어나 있다.

나는 그저 담담하게.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전 그 날부터 눈치 보는 아이로 컸어요. 아빠한테 버림받을까 봐 내 자리를 확고히 하고 필요한 존재라고 행동으로 말해줬어요. 알아요? 전 어릴 때부터 엄마 빈자리를 그저 나로 채워 나갔다고요!”

핸들을 꽉 쥐었다.

“남들 엄마 찾을 때 전 제가 알아서 했어요. 내가 해내야 했으니까. 전 어릴 때부터 어른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지금 엄마를 필요로 할까요? 제가 무슨 물건이에요? 필요할 때는 취하고 아닐 땐 떠나게?”

내 인생에서 가장 함께했던 시간이 적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성격 형성과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어머니였다.

나는 말하면서 그걸 깨달았다.

그게 너무…. 너무 싫었다.

“제발. 제발요. 우리 다시는 보지 맙시다. 서로 안 보고 잘 살았잖아요. 전 아빠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았어요.”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는 소리도.

나는 손에 힘을 풀었다.

히터의 온기 때문일까. 손에 피가 돌았기 때문일까.

점점 더 따듯해지는 걸 느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제 동생 앞에 얼굴 비추지도 마시고요.”

“…….”

“가세요. 저 수업 들어가야 해요.”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흐윽. 너…. 어떻게…….”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시혁아. 내가 아빠랑 뭐가 그렇게 다르니?”

“그걸 말이라고…….”

“아니, 그도 그렇잖아. 너희 아빠가 그렇게 깨끗하고 나랑 다른 거 같니.”

“엄마가 바람피우셨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 외도. 잠깐 했었지. 그런데 시혁아. 너희 아빠도 똑같아.”

나는 얼굴을 구겼다.

“시하가 너희 아빠 핏줄도 아닌데 왜 싸고도는지 모르겠구나. 알고는 있니?”

“그만하세요…….”

“알아? 아는구나. 하긴 재혼도 했는데 아들은 그 사실을 알겠네. 그럼 이것도 아니?”

잠시 호흡을 고르며 어머니가 말했다.

“시하 어미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야. 우리 셋은 서로 알고 있었다고.”

“…려요.”

“이래도 아빠가 나랑 다르게 보이니?”

“…헛소리하지 말고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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