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아이들은 잭 오 랜턴이 지켜주는데 그럼 어른들은 대체 누가 지켜줄까?
아마도 스스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전화는 받으면 안 되는 거였다.
오랜만에 목소리만 듣는데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예전에 많이 필요했던 사람.
이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래서 대답 없이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띡.
“형아?”
시하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본다.
살며시 볼을 만져보니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미소를 짓는다.
“형아? 개차나?”
“응? 왜 그래?”
“형아 얼굴 이상해.”
“어? 그래? 하하.”
미소를 띠었는데도 이상할 정도면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다시 전화가 왔지만 그대로 종료하며 차단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시하야. 다 먹었으면 이제 일어나자.”
“아아!”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사실을 쫓아내듯이 식당을 나왔다.
밖에 사람들이 분장하며 돌아다닌다.
정신없이 시선을 빼앗고 차가운 바람이 폐에 들어왔을 때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걸 느꼈다.
“와. 사람들 정말 재밌게 논다. 그치?”
“형아랑 시하도. 호박 망토 해써.”
“하하하. 그러게. 망토를 둘렀네.”
그때 분장의 행렬이 지나간다.
거대한 펌프킨 가마를 끌고 가는데 중간중간 클럽과 가게를 홍보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그걸 보며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형아. 따라가. 따라가. 호박 커!”
“정말 크네.”
시하가 원하기에 호박을 따라갔다.
많은 분장 속에 있으니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함께 괴물이 되어 나쁜 귀신이 찾지 못하게 숨어 있으면 된다.
그 당시 켈트족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기분이다.
비록 미신일 뿐이지만 이런 행사에 마음의 안식을 얻는 거지 아니겠나.
그렇게 시하와 함께 정신을 빼앗기며 딴생각이 들지 않는 환경에 몸을 맡겼다.
얼마쯤 걸었을까?
시하가 이제 흥미가 식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형아!”
“응?”
“저거!”
쳐다보니 길가에서 어떤 장사를 하고 있다.
다트를 던져서 풍선 맞추기.
맞추는 개수에 따라 선물이 달라지는데 아무리 봐도 이득은 없어 보였다.
7발에 4천 원. 16발에 8천 원.
4발부터 상품이 있는데 사실 이런 건 그냥 즐기는 용도이다.
“형아!”
“응. 이거 하고 싶어?”
시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끄덕끄덕.
저 모션 하나로 내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아마 너는 모르겠지.
아니지.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너무 귀여워서 시켜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 자연스럽게 지갑이 열린다.
근데 이건 8천 원치를 하지 않으면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붕어빵을 파는데 10개 사면 더 이득이야.
이거 어떻게 안 사냐고.
10개 들고 집 가서 가족들이랑 나눠 먹으면 충분한 거 아니겠냐고.
7발은 사실 몇 번 던지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저씨. 16발 주세요.”
“네! 만 원 받았습니다. 이천 원 여기 있구요. 16발 상품은 6개부터입니다.”
이런 사기 상술을 보았나.
7발은 4발이면서 16발 도전은 6개부터야?
이천 원을 받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런 건 아까워하면 안 돼. 충분히 즐겨야 해.
“시하야. 형아가 안아줄 테니까 이거 들고 던지면 돼. 알았지?”
“아아!”
나는 한 손으로 시하를 안아 올렸다.
자연스럽게 남은 왼손으로 다트를 잡았다.
“자. 잘 봐. 이렇게 던지는 거야. 조준을 잘 하고 요렇게.”
휙! 펑!
풍선이 터지며 시하의 몸은 이미 흥분 상태에 돌입했다.
“형아! 형아! 시하도! 시하도!”
“그래. 이제 알았지? 5개만 맞추면 상품을 얻을 수 있어. 잘하자.”
“아아.”
시하가 편하게 던질 수 있도록 옆으로 몸을 틀었다.
앙증맞은 손이 다트를 잡는다.
내가 한 것처럼 앞뒤로 몇 번 움직이더니 휙 하고 던진다.
툭. 빈 곳을 맞추며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아! 아깝다!”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하나도 안 아까워?! 근처도 안 갔어!’라는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흠흠. 거. 근처는 갔잖아. 근처는!
“시하야. 다시 한번 던지자.”
“아아!”
시하가 심기일전을 하며 이번에는 한쪽 눈만 뜬다.
과연. 지금 이시하는 영점 조절 중이다.
휙! 툭.
“으아! 다 왔는데!”
주위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저기요? 대체 왜 웃는 거죠? 정말 다 왔거든요?
“시하야. 할 수 있어.”
“아아. 시하 할 수 이써!”
다시 다트를 잡았다.
이번에는 실눈을 뜬다.
저러면 잘 보이나? 그런 의문이 드는데 시하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아아. 형아. 반짝반짝.”
“응?”
“이케이케. 반짝반짝.”
손가락으로 둥근 포물선을 그린다.
그래. 저렇게 그림같이 그려지면 풍선을 맞추겠네.
“여기. 여기.”
“아, 여기 서라고?”
“아아. 여기. 이케이케 해서 마쳐!”
“오! 그러면 되겠네.”
갑작스러운 계산이지만 분명 저렇게 하면 되기는 한다.
시하가 허공을 두드린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건가? 포물선이 말이다.
왜 같은 색 공을 쏘아서 맞히면 터지는 게임 있잖은가.
일종에 점선을 보여줘서 어디에 맞출 수 있는지 알려주는 거지.
뭔가 시하의 설명은 그런 느낌이다.
“아아. 반짝.”
시하가 다트를 던졌다.
정말 계획한 대로 포물선을 그리더니 아래의 풍선에 맞았다.
툭.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쉽게도 힘이 약해서 터지지는 않았다.
“아! 맞췄는데 안 터졌네.”
시무룩.
시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한 번만 더 맞춰 보자.”
“아아.”
시하가 다트를 들자 나는 왼손을 빼서 같이 들었다.
“형아랑 가치 맞출까?”
“아아.”
“그럼 아까 맞췄던 곳을 맞추자. 할 수 있지?”
“할 수 이써!”
“응.”
시하가 다트를 던졌다.
나는 반 박자 늦게 보냈다.
같은 풍선에 동시에 맞으며 풍선이 펑 하고 터졌다.
시하가 기쁜 나머지 내 목을 끌어안았다.
“형아! 시하 해써!”
“응. 시하 잘했어. 역시 시하는 천재구나? 어떻게 같은 곳을 맞추지? 와. 나중에 사격이나 양궁에서 메달리스트가 되는 거 아니야? 막 금메달도 따고.”
“아? 총?”
“응. 총.”
나는 그렇게 시하를 마구마구 칭찬했다.
아마 반 박자 늦게 던졌어도 내 다트가 먼저 도달했을 것이다.
동체 시력이 그렇게 좋지 않은 이상 그걸 알아볼 수는 없겠지.
그런데 주위가 웅성거린다.
“와! 미쳤네.”
“사실 애보다 아빠 쪽이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같은 곳 노리면서 동시에 박자 맞춰서 타격이라니. 제구가 미쳤는데?”
“처음에 바로 풍선 맞출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니. 저기요?
이게 사격처럼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잖아요.
뭐, 그렇다고 해도 풍선에 튕겨 나오는 건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괜히 힘을 과하게 줬다가는 다른 곳으로 빗나가고.
하여간 이것도 상술이다.
“6개 던졌네. 이제 2개 맞췄고. 앞으로 10개 중의 4개만 맞추면 상품 획득이야.”
“아아!”
“그럼 시하 5개. 형아 5개로 같이할까?”
“아냐.”
“응?”
“형아. 10개.”
“오오. 형아 10개?”
시하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시하를 앞에 앉혔다.
“잘 봐. 시하야.”
나머지 다 맞춰서 좋은 상품을 얻어주겠어.
내가 다트를 잡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곁에서 지켜보던 사장님 눈도 초조하게 흔들렸다.
“어? 왜 오른손이지?”
“오른손잡이였어?! 이야. 아까 왼손으로 던졌잖아. 더 쩌는데?”
“내가 오른손을 숨김. 뭐 이런 컨셉이었나?”
저기요. 그런 컨셉 아니에요.
그냥 시하 안을 때 오른손이 더 힘이 들어가서 잘 받쳐주니까 그런 거거든요.
그런 오해를 들으며 시원하게 다트를 던졌다.
상품은 두 번째로 좋은 거로 골랐다.
바로 인형 열쇠고리.
그런데 너무 쪼끄마한 거 아니야?
***
짤랑짤랑.
시하의 펭귄 가방에 열쇠고리 인형이 달렸다.
핼로윈에 맞춘 펌프킨 인형.
아무리 봐도 두 번째로 좋은 거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뭐 어쩌겠나.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재미를 파는 장사인데.
이런 걸 아까워하지는 않는다.
시하가 충분히 즐겼으면 된 거니까.
“형아. 호박 인형.”
“응. 페페랑 같이 있네?”
“형아. 여기도 가치.”
시하가 자기가 입은 후드를 펄럭인다.
펭귄과 호박이 같이 있는 모습.
그걸 보며 웃음 짓는데 중대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나 시하랑 같은 차림이지.
그래놓고 다트를 잘 던졌다고 뿜뿜 뽐내고 있으니 갑작스럽게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시하야. 이제 집에 갈까?”
“집에 가.”
“응. 그러자.”
시하랑 손을 잡으며 길을 걸었다.
뭔가 안심이 된다.
이렇게 다니는 일상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가끔 곤란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즐겁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겠냐고.
시하랑 이렇게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한 걸 안다.
그리고 지키고 싶다.
내가 맡은 동생이 어른으로 커 가기까지의 과정을 말이다.
“뭔가 마무리 축제를 즐긴 느낌이네. 그치 시하야. 축제 기억나?”
“아아. 축제 재미써!”
“하하하. 대학 축제부터 경험해서 나중에 학교에서 하는 건 재미없어지는 거 아니야?”
“아냐. 재미써.”
“그걸 어떻게 알아?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갔는데?”
시하가 손을 꼬박꼬박 접으며 말했다.
“승준, 하나, 종수, 재히, 은우, 윤동. 다 이써서 재미써.”
“아하하. 같은 초등학교 안 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내 말에 시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발걸음도 멈췄다.
같은 학교 안 간다고?
“아냐. 가치 가.”
“그래. 같이 갈지도 모르겠다. 뭐 친구들이 있으면 뭐든 재밌으니까. 시하는 잘 아는구나?”
행사가 뭐든 상관없다.
누구와 함께 즐기는지가 중요한 거겠지.
시하는 그걸 잘 알고 있나 보다.
그래서 나랑 맨날 함께하려고 하나?
이렇게 시하 선생님에게 또 한 번 배우는 것 같다.
꾸벅꾸벅.
옆을 보니 시하가 졸리는지 눈을 반쯤 뜨고 있다.
“시하야. 잠 와?”
“아냐. 시하 잠 안 와.”
“큭큭. 아니 눈을 제대로 뜨고 말해야 믿지. 오늘 많이 놀아서 피곤하지? 형아에게 업힐래?”
“아냐. 시하 눈 떠써.”
그런데 저 눈은 왜 점점 감기는 걸까?
“눈 감고 있으면 안 보일 텐데?”
“아냐. 보여. 여페 형아 이써.”
“그건 눈 감아도 알겠다! 자, 업히자. 형아가 업어주고 싶어서 그래.”
“아아.”
그제야 시하가 내 등에 업혔다.
곧장 잠이 들었다.
으이구. 피곤하면 형아 등에 업히면 되지 왜 고집을 부려.
혹시 나에 대한 배려라면 그런 건 안 해 줘도 된다.
의젓한 것도 좋지만 지금은 마냥 어렸으면 하니까.
“코오-”
시하가 새근새근 잠든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
-시혁이의 육아일기.
-이시혁 5살.
오늘 할로윈이라는 걸 몰랐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뭔가 과자 같은 걸 잔뜩 들고 와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한 번도 이런 걸 챙겨본 적이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하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저 고개를 젓는다.
왜 이렇게 우리 아들은 의젓할까?
아니, 의젓한 게 맞나?
뭔가를 참고 있는 건 아닐까?
“시혁아. 그래도 잭 오 랜턴 같은 거 사서 장식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 괜찮아. 어린이집에서 다 했어.”
“그래? 알겠어. 그럼 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집에서 밥 먹으면 되는데.”
“사실 아빠가 밥을 안 해 놨네! 지금 하면 너무 배고프니까 밖에서 먹자. 알았지?”
“응.”
끄덕이는 시혁이를 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저 너무 미안해서. 한없이 미안해서.
엄마가 없다는 건 애에게도 분명 충격이었을 건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선택이… 너에게 너무 가혹했던 건 아니었을지.
이혼했다는 말에 울지도 않았던 우리 아들.
나는 그게 왠지 모르게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아들이 많이 변했음을 나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분명 선택에는 후회는 없었는데 자꾸 후회되려고 한다.
마음을 다잡자.
가장이란 흔들려서 안 된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불안해한다.
그래. 보란 듯이 시혁이를 잘 키우자.
아이가 바뀌었으니 나 역시도 그에 맞춰서 바뀔 수밖에.
더 안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