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500)

210화

나는 아이들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무서워했지만, 시하가 나오면서 이상하게 시나리오가 무너졌다.

이래서 깐깐한 감독이 애드리브를 안 좋아하기도 하는구나 싶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문도환이 시하의 말에 애드리브로 맞섰다.

“하하. 그럼 지금 당장 호박죽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

동화에 나오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는 대사였다.

시하도 바로 호박죽을 줄 수 없는지 무척 고민스러운 모습이다.

지금이다. 나가려면 이때밖에 없다!

몸을 살짝 일으키는데 시하가 호박 바구니에서 부스럭부스럭 손을 넣더니 뭔가를 하나 꺼낸다.

호박엿.

주먹으로 탁탁 치더니 문도환에게 준다.

“문도. 여기! 호박죽!”

“이건 호박엿인데?”

“아냐. 호박죽 대써.”

“으음.”

나는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참으로 타이밍 잡기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지 고민하다가 그냥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저기 아이들도 이미 무서움에서 의문으로 바뀌고 있다.

계속 보면 무서움이 조금 가시게 되니 귀찮아진다.

바로 일어서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어?! 시혀기 형아다!”

“어?! 시혀기 오빠다!”

쌍둥이들이 날 먼저 알아보았다.

시하와 같은 후드 망토를 두르고 당당히 걸었다.

후드를 푹 눌러써서 호박의 얼굴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 모양이 나지 않았지만.

“왜 애들을 무섭게 해. 이 못된 문도야.”

문도환이 살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혼자 상대하기 힘들었다는 거겠지.

이래서 연극 같은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상황에 실수가 나오면 즉각 반응하여 위기를 넘겨야 하니까.

“문도 배고프다. 호박죽 먹는다.”

“넌 욕심이 참 많구나. 여기에 과자가 엄청 많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것도 내 꺼다. 문도 배고프다.”

“남의 것에 계속 욕심을 부리니까 그 마음에 잡아먹혔구나!”

귀신은 사람의 몸을 뺏는다.

이제는 상실한 육체를 끝없이 탐낸다.

그래서 우리는 괴물 분장으로 그들을 손에 벗어나야 한다.

어쩌면 핼러윈의 귀신은 누군가의 탐욕으로 만들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문도환이 말했다.

“그러는 너는 대체 누구냐! 나와 같은 괴물이 아니냐. 같이 아이들의 과자를 뺏자.”

“나는 잭 오 랜턴. 아이들의 지키기 위해 태어났지. 보잘것없는 이 못생긴 호박을 필요로 해준 건 이 아이들뿐이었다.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

“문도. 방해하면 없앤다.”

나는 등 뒤로 숨긴 거대한 낫을 들었다.

이것 역시 연극동아리에서 빌린 소품이었다.

힐끗.

아이들을 보니 어느새 이 연극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저기 직원분들? 당신들은 왜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습니까!

어이없어서 나오는 웃음.

그건 마치 문도라는 괴물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문도 화난다.”

문도환이 달려들었다.

우리는 합을 맞추듯이 정해진 동작을 했다.

낫을 머리 위로 휘두른다. 고개 숙인 문도와 교차해서 스쳐 지나간다.

후웅.

낫을 빙그르르 돌리며 그대로 허리를 베어 들어간다. 쾅. 팔로 막히자 허리를 공격한다.

한 바퀴 돌며 아래로 내려찍는다.

‘다들 침을 삼키며 보내.’

합을 맞춰서인지 굉장히 여유롭게 관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시하도 두 손을 꼬옥 잡고 ‘형아. 이겨!’ 하며 소리친다.

그 말에 진한 웃음이 나왔다.

이게 하나의 연극이라는 걸 다들 인지하고 있을 텐데도 재밌게 보고 있으니까.

“매년 다른 형체로 나타나는 너는 변한 게 없구나. 언제나 남의 것을 탐하지. 그래서 낫을 휘두르는데 망설임은 없다.”

“문도. 널 처음 본다.”

“알아. 그렇겠지. 죽여도 죽여도 탐욕인 넌 새로 태어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괴물이 있기에 잭 오 랜턴을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았다.

“얘들아. 호박 바구니를 들어 이 낫에 힘을 주겠니?”

아이들이 두 손으로 호박 바구니를 들어서 낫을 향해 내밀었다.

달칵. 불이 꺼졌다.

저 뒤에서 한 직원이 폰으로 손전등을 켠다.

후드 망토에 살짝 가려져 있는 스카치라이트가 빛난다.

펌프킨의 얼굴이 살짝 드러나는 것이다.

낫에도 스카치라이트가 붙여져 있어서 같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게 너무 신기한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이런 효과가 나올 줄 몰랐겠지.

“아?”

시하가 망토 안에 있는 상의를 보았다.

옅게 빛나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 ‘형아랑 가타.’ 하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 중요한 타이밍에 같은 게 더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낫을 들었다.

“이제 사라져라.”

휘리릭.

봉처럼 화려하게 돌리며 문도의 몸을 베었다.

주위를 맴돌며 허리 한 번. 허벅지 한 번.

문도가 한쪽 다리를 살짝 꿇는다.

마지막으로 가슴을 대각선으로 한 번.

“크악!”

짧은 비명과 함께 문도가 쓰러졌다.

달칵. 다시 불이 들어오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이제 다 끝났다. 여기 문도가 모은 과자는 너희들에게 나눠줄게. 지지 않고 잘 도와줘서 고마워.”

준비된 과자를 호박 바구니에 넣어줬다.

아이들도 굉장히 재밌었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선생님이 엄지를 척 하고 드셨다.

“정말 재밌었어요. 시혁 씨. 보잘것없는 이 못생긴 호박을 필요로 해준 건 이 아이들뿐이었다. 캬아.”

“뭔가 부끄럽네요.”

“그런데 대사랑 설정이 기가 막히지 않아요? 대체 누가 썼길래 기가 막힐까?”

“선생님이죠.”

“흠흠.”

기획자이자 시나리오 담당 유다희 선생님.

과연 스토리가 강하다는 걸 여기서 알게 되었다.

나도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연출적인 아이디어에 나도 일조하긴 했다.

“시혁 씨도 만만치 않던데요? 합작으로 잘 썼어요.”

“뼈대는 선생님이 다 잡으셨으면서.”

“에이. 어떻게 연출하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는 거죠.”

“하하.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때 시하가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형아. 문도 안 일나.”

“어? 그래? 형. 이제 끝났어요. 어서 일어나요?”

하지만 문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난을 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분장했는데 막상 끝내려니 아쉬울 거다.

“시하야. 문도 깨우고 올래?”

“아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문도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문도. 일나.”

“…….”

“안 일나? 호박이 머거.”

시하가 호박 바구니 입구를 문도환의 머리 위로 들이대었다.

수염 난 호박 아저씨가 머리를 냠 하고 먹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과자들도 후드득 문도환의 머리를 찔렀던 모양.

눈썹이 살짝 찡그리게 되었다.

“문도 눈 움직여!”

“아. 들켰네.”

죽은 척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과자 봉지의 습격으로 들킬 수밖에 없었다.

살며시 일어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흠흠. 시하야. 안녕. 재밌었니?”

“아아. 재미써. 문도 재미써.”

“하하. 고마워.”

유다희 선생님이 문도환에게 다가갔다.

살포시 웃으며.

“정말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아닙니다. 내기에서 져서 이 역할을 맡았는데요. 뭘.”

“그래도 분장이랑 연극 소품까지 어디 하는 게 쉽나요.”

“다 시혁이가 구해온 거지 전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에이. 제가 뭐 바본가요.”

유다희 선생님이 눈을 찡긋했다.

문도환이 그걸 보며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제가 바본가 봅니다.”

“네? 아하하하. 재밌는 분이시네요.”

“하하하.”

도환이형. 그래도 마지막에 재밌는 사람이 되었구나.

나는 정말 잘됐다고 생각한다.

“형아. 시하 과자 마나!”

“응. 과자 정말 많이 얻었네. 오늘 어땠어?”

“재미써.”

“하하. 내년에 또 분장하고 오자. 알았지?”

“형아도 가치?”

“…어?”

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형아도 가치?”

굳이 이렇게 확인사살을 하다니.

우리 시하 많이 컸구나!

“…응. 같이.”

“시하 마니 조아!”

시하가 웃었다.

그래. 사실 이런 옷을 챙겨입기에는 굉장히 그랬지만 시하가 좋아한다면야 언제나 같이해줄 수 있다.

이 정도 귀여운 욕심을 들어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잠깐의 망설임 정도는 이해해 주라.

나는 시하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

어른들의 핼러윈은 저녁부터 제대로 시작된다.

밤거리를 걸으면 젊은 남녀가 분장하고 있고 외국인들도 같이 그 문화를 즐긴다.

나는 그렇게 즐기는 쪽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저렇게 꾸미고 다니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못 이겨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해 술잔을 들었다.

술 마시기 좋은 날.

핼러윈은 어느새 내게 그런 날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시하 덕분에 처음으로 이렇게 꾸며도 보았다.

비록 하고 싶은 분장과 굉장히 동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작년과 다르지 않나.

그게 너무 신기하다.

“시하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아. 마시써.”

저녁을 먹으며 뜬금없는 나의 질문이지만 대답은 잘한다.

물론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겠지만.

시하가 포크로 스테이크를 두 조각 양 볼에 넣고 씹었다.

빵빵한 볼이 된 상태인데 저렇게 먹는 게 맛있는가 보다.

“오늘은 많이 고생했으니까 스테이크 먹는 거야.”

“형아 고생해써?”

“아니. 나 말고 시하가 고생했는데?”

“아냐. 시하 노라써.”

“시하 나이 때는 노는 게 일이거든.”

“왜?”

“어? 많이 놀아야… 쑥쑥 자라니… 까?”

말을 하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이렇게 되면 맨날 노는 거 아닐까?

물론 아이들이 놀면서 성장하는 건 맞지만 나중에 공부도 해야 하는 것도 맞다.

교육이라는 건 아직도 어렵고 어색하기만 하다. 정말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도 않고.

“형아. 시하 매일 노라. 형아랑 가치.”

“응. 형아랑 같이 놀자. 근데 형은 일도 해야 해서 하루 전부는 못 놀아줘.”

“개차나. 시하. 그림 그려.”

“응. 형아 일하면 시하 그림 그리면 되겠네?”

“아아. 가치 일해.”

“하하하. 맞네. 시하는 그림 그리는 게 일이네.”

많이 논리적이게 됐는걸?

올해 초와 다르게 많이 성장한 걸 느낀다.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게 있다면 시하가 엄마와 아빠를 더는 찾지 않는다는 거.

함께 울었던 날.

아마 그 기점에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포크에 굉장히 힘이 들어간다.

정말 나는 그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혹시 모자라지는 않는 걸까?

“형아. 문도. 머시써. 싸움 따닥. 낫 따닥.”

“고마워.”

사실 많이 부족한 형인데도 이렇게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렇게 어떤 날을 챙기고, 외식하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이러한 노력이 좀 더 빈자리를 대신해 주길.

그 빈자리에 나쁜 귀신들이 들러붙지를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

아버지가 가끔 비싸고 맛있는 데를 데려가려고 했던 이유가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

접시를 가져와 대신 썰어주며 입에 넣어주고 그랬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돈 아깝다면서 집에서 밥 해 먹자고 툴툴거리며 그 뒤를 따라나섰지.

아버지가 오늘 좋은 일이 있어서 꼭 밖에서 먹어야겠다며 주장하실 때 못 이긴 척 끌려 나오기도 했다.

‘할로윈 핑계를 대기도 했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하가 그 모습을 보더니 ‘형아 마시써?’ 하고 물어본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이렇게 말했다.

“시하랑 같이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서 웃음이 나오네.”

“아아! 시하도!”

“너 안 웃고 있잖아.”

“아냐. 우서?”

“뒤에 끝 음을 올리면 안 돼. 이상한 의미가 되잖아.”

“왜?”

“그래. 왜 웃어? 이런 느낌이 든다고 할까?”

“아?”

“나중에 살다 보면 알게 돼.”

그래. 살다 보면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거겠지.

나는 냅킨을 집어서 시하의 입을 닦아주었다.

때로는 입에 소스를 묻히는 어설픈 일을 해도 이렇게 다시 냅킨으로 닦으면 되는 것이다.

흘려버린 물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컵에 다시 물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그러면 된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더해 형이 더 잘할게. 알았지?’

그런 마음을 담아 살며시 시하의 볼을 매만졌다.

그때 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서 그대로 그냥 껐다.

그런데 다시 한번 온다.

나는 혹시나 일로 전화하는가 싶어서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시혁이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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