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사람들이 각자 뽐내고 싶은 게 있다면 도서관 또한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게 있다.
수많은 책.
공공도서관이 지식의 문을 개방하고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한다.
이건 우리 문화와 의식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굉장한 일이다.
누구나 손쉽게 가까이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지 지금 사람들은 피부로 실감하지 못한다.
“시하야. 이렇게 도서관이 있으면 시하가 읽고 싶은 책을 아주 많이 빌릴 수 있어.”
“아?”
생활 속에 스며들어서 평균적인 지식과 지혜를 넓힌다.
다양한 책들을 보관하고 사줄 수 없는 나에게 이보다 더한 지식의 보고가 있을까?
아무리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검색해볼 수 있을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도서관은 다르다.
정말 처음 들었던 말과 장르를 접할 수 있다.
물론 시하가 좋아하는 동화책도.
“여기 1층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밖에 없어. 동화책이나 어린이 문학책 같은 거.”
물론 어른들도 가끔 들러서 읽긴 한다.
시하는 왜 그런지 궁금해서 나에게 물었다.
“왜?”
“음. 글쎄? 왜 1층에 있을까? 같이 고민해 볼까?”
나와 시하는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은 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팔짱을 끼고 행동하자 시하도 나를 따라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가 ‘대체 둘이서 뭐 하는 거지?’라는 의문 어린 눈을 한다.
흠흠. 다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형아. 시하 아라써!”
“오! 그래서 왜 1층에 있는 것 같아?”
“어린이 1등이야. 어른 2등이야.”
“오오!”
어린이는 1등이라서 1층. 어른은 2등이라서 2층.
이건 생각지 못한 관점인데?
난 사실 어린이들을 위해 올라가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위치해 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시하는 천재인 거 같다.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1등으로 치는 거지. 그렇지. 앞으로의 미래이니까.
“그럼 이제 들어가 볼까?”
“아아.”
안으로 들어가자 책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동화책들만 모여 있는 곳을 찾아서 시하의 눈높이에서 책을 뽑아 주었다.
“짜잔! 어때? 동화책 엄청 많지?”
“형아! 책 마나! 책 부자야. 도서간 책 부자.”
“그러네. 책 부자네. 이렇게 책을 뽑아서 살짝 살펴보고 재밌을 거 같으면 빌리는 거야. 저기 앉아계시는 분에게 가서 이거 빌릴 거예요, 하고 말하는 거야.”
물론 요즘에는 기계로 다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시하가 직접 해 보길 바라서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여기 있는 책장들은 다 동화책이거든. 물론 다른 곳에도 신기한 거 많아. 우리 재밌는 거 하나씩만 골라볼까?”
“아아.”
뭐, 시하가 고르는 거야 다 동화책이겠지.
아직은 글을 읽을 수 없어서 너무 어려운 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형아. 골라?”
“응.”
시하가 일단 주변부터 탐색했다.
하나를 뽑고 펼치더니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시하야. 너 뭘 알고 보는 거니? 그런 것치고는 3초 보고 집어넣는걸?
펼치고 넣고. 펼치고 넣고.
한동안 그렇게 하더니 이제 자리를 옮겨서 탐색한다.
아무래도 여기는 어린이들의 보물창고 같은 거겠지.
상자를 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이 재밌는 거다.
“형아. 마나.”
“응? 뭐가?”
“재미써 마나.”
“재밌는 게 많다고?”
“아아. 시하 서이 개 골라.”
“하하. 그래. 서이 개 골라라.”
내 말에 시하가 더 열심히 탐색을 시작한다.
뭔가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하나씩 뽑아서 옆구리에 꼈다.
사실 다 마음에 드나 보다.
아니, 잠깐만! 결국, 읽어주는 건 나잖아?!
너무 귀여워서 생각도 안 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책을 10권 빌릴 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것.
들켰으면 10권 뽑아왔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저 펭귄 가방에 10권은 안 들어가겠지.
“형아. 다 해써.”
“오! 다 했어? 어디 그럼 볼까?”
시하가 세 권의 책을 내밀었다.
“시하 차자써. 개물이야. 개물.”
“아! 괴물을 찾았구나.”
어쩐지 너무 신나 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괴물을 찾는 모험을 떠났나 보다.
나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흠. 종류가 다양하군.
[슈퍼카 아우디 모는 펭귄]-경제.
[물약을 연구하는 펭귄]-과학.
[펭귄 대통령. 펭통령]-정치.
역시 세 개를 골랐어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를 골랐다.
모두 펭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건 넘어가더라도 도서관에 오니 이렇게 관심을 가지 않나?
어라? 이상하다? 헛소리하지 마! 하는 도환이 형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이야. 시하야. 이걸 다 어떻게 찾았어. 정말 잘 골랐다.”
“시하 눈 조아. 따닥. 다 아라.”
“이야. 따닥 보면 아는구나. 그렇구나. 그럼 우리 이 책 빌릴까?”
“아아.”
시하가 세 개의 책을 품에 안으며 사서에게 갔다.
쪼르르 오는 시하가 귀여운지 눈웃음을 짓는다.
“이거. 빌려요. 시하 빌려요.”
“어머. 이거 빌릴 거예요? 줘볼래요?”
“아냐. 시하 빌려요.”
혹시나 뺏는 줄 알고 품에 꼬옥 안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와 사서는 그 모습을 보고 풉 하고 웃었다.
“시하야. 거기 책에 있는 바코드 있지? 검은 줄. 그거 띡 찍어야 해.”
“아? 이거?”
“응. 지금 보고 있는 그거.”
“이거 슈퍼야. 바써. 슈퍼에서 파라.”
“응. 슈퍼의 물건에 본 거지? 여기도 빌리려면 띡 하고 찍어야 해.”
“아아.”
이제야 이해했는지 사서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나는 도서관 회원증을 내밀었다.
사서가 말했다.
“혹시 아기 회원증 만들어드려요? 하나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애들이 뭔가 어른들처럼 카드가 생기니까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럼 하나 만들어주세요.”
“네. 보호자분 연락처도 여기에 연동해 드릴게요. 결국, 반납하는 건 보호자라서.”
“아, 네.”
시하에게 책 빌릴 수 있는 카드를 만든다고 하자 ‘형아랑 가타!’ 하면서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카드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랑 같은 카드를 가지는 게 더 좋은 시하였다.
***
시하와 집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책을 꺼내서 읽어 달라고 내미는 모습에 꼬옥 안아줬다.
그냥 이렇게 독서하려는 모습이 기특해서.
“형아. 이거. 이거.”
“응. 읽어줄게. 자, 형아 앞에 앉아봐.”
제일 먼저 집은 책은 [물약을 연구하는 펭귄]이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펭귄을 페페라고 하지 않고 괴물이라고 칭했단 거다.
어째서 그랬을까?
이 책 안에 답이 있을 거다.
“자. 펼친다.”
“아아.”
책을 펼치자 흰 가운을 입고 삼각플라스크를 빙글빙글 흔드는 펭귄이 나왔다.
“펭돌이라는 펭귄이 있었습니다. 펭돌이는 못된 바다표범을 이기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매일매일 펭귄들을 괴롭히거든요. 그래서 이길 수 있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펭귄의 천적이 바다표범이기는 하다.
잡아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걸 모티브로 동화를 만들었나 싶었다.
“형아. 페페 연구해?”
“응. 물약을 연구하나 본데? 계속 읽을게. 펭돌이는 드디어 엄청난 물약을 만들었어요. 이걸 마시면 엄청 강해질 게 분명했어요. 왜냐면 그는 천재 화학자였으니까!”
펭돌이가 물약을 마시고 변신하는 모습이 나왔다.
몸에 초록색 털로 뒤바뀌고 눈동자 역시도 같은 색이 되었다.
“엄청난 힘을 가진 펭돌이는 바다표범을 물리쳤어요. 하지만 친구들은 그런 펭돌이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는 이미 자신들과 달랐거든요.”
다음 장.
“외로움에 빠진 펭돌이는 더더욱 바다표범들을 물리쳤어요.”
“더 열심히 하면 친구들이 날 받아주겠지! 분명 그럴 거야!”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펭돌이를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펭돌이는 시무룩해졌어요.”
시하도 함께 시무룩했다.
손을 뻗어 펭돌이를 쓰다듬는다.
‘미아내~ 개물 아냐.’라며 동정심을 품게 했다.
이거 생각보다 동화가 참 심오하다.
유독 도드라지는 강한 힘에 의해 배척받는 상황.
좋은 의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
“펭돌이가 어떻게 됐는지 보자. 알았지?”
“아아.”
“친구들이 무서워해서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물건도 챙겨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다음 장을 넘기자 새로운 펭귄들이 보였다.
각각 털 색깔이 달랐다.
“새로운 펭귄들이 펭돌이를 보자 물어봤습니다.”
“넌 왜 혼자 다녀?”
“나는 너무 강하고 친구들과 달라져서 집을 떠났어.”
“그래? 그럼 우리랑 같이 지내자.”
“응? 그래도 돼? 나 안 무서워?”
“전혀 안 무서워. 왜 무섭니? 넌 네가 무서워?”
“아니. 그렇지 않아!”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 너는 너도 모르게 자신이 무서워진 거야. 우리는 널 무서워하지 않아.”
“고마워.”
“그렇게 펭돌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생활했어요. 때로는 바다표범도 혼내주고 밥도 같이 먹고 춤도 추면서 말이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여운이 남았다. 다른 털 색을 가진 펭귄들이 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이미 다름을 받아들인 적이 있어서일 것이다.
현실은 더 문제가 많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문제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동화란 별거 아닌 듯한 이야기를 구성으로 참 잘 압축하는 것 같다.
“시하야. 괴물이 아니었네?”
“아아. 개물 아냐. 착해.”
“응. 초록색이 되길래 괴물인 줄 알았더니 좋은 펭귄이었네.”
“펭돌이 착해.”
“하하하.”
시하는 그림책을 탁탁 두드리면서 다시 한번 읽어 달라고 했다.
나도 시하와 함께 다시 읽고 싶었다.
또 펭돌이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세 번을 더 읽고 나서야 끝이 났다.
아, 참고로 아우디 모는 펭귄은 어디서 본 로봇 옷을 입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펭통령은 괴상한 안경을 끼고 ‘노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며 펭귄들이 일도 안 하고 계속 놀게 했다.
뭔가 어디서 하나씩 본 내용 같은데 착각이겠지?
***
펭돌이를 읽어서 그럴까?
시하가 삼각플라스크 같은 걸 찾더니 아끼던 병을 들었다.
찰랑거리는 원형 물병을 휙휙 돌렸다.
하지만 색은 변함없어서 뭔가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시하야. 안에 뭔가 색깔 있는 걸 만들어줄까?”
“아?”
나는 병을 잡아서 물을 버렸다.
뽀득뽀득 씻은 다음에 집에 있던 피치망고 아이스티를 넣고 생수를 부었다.
색깔이 명확하게 드러나자 시하가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마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마무리로 집에 있는 빨대를 꽂았다.
“자! 이걸로 저으면 돼. 마실 수도 있어.”
“마셔?”
“응. 이거는 마셔도 되는 물이야.”
실제로 일할 때 커피가 지겨워져 아이스티도 가끔 마신다.
이렇게 신기해하니 사두길 잘한 듯했다.
포도 맛도 있지만 그건 카페인이 들어가 있어서 차마 타지 못했다.
“자. 저어 봐.”
“아아.”
시하가 빨대를 열심히 젓는다.
투명한 병을 빤히 보며 뭔가 달라지는지 확인한다.
진짜 실험하는 느낌이 나서 조금 웃겼다.
그저 안에 가루가 녹고 있을 뿐인데.
“형아. 업써져. 신기해.”
“응. 마시면 더 신기할걸?”
“정말 마셔?”
“응. 마셔봐.”
시하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역시 내 말이라도 의심이 드는 걸까?
“시하 그린 대? 그린 안 대고 시퍼. 시하 레드 할래.”
“푸핫! 그거 마셔도 그린 안 돼.”
난 또 뭘 걱정한다고.
아무리 펭돌이가 좋아져도 그린보다는 레드인가 보다.
하여간 매번 상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시하가 빨대에 입을 대고 쭉 빨아 마셨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형아! 마시써!”
“그치? 피치망고라는 거야.”
“피치망고?”
“응.”
“마시써.”
이제 화학은 관심 없는지 열심히 마시기 시작한다.
그렇게 턱을 괴고 보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네. 알리사. 무슨 일이에요?”
「시혁 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죠?」
“잘 지냈죠.”
「혹시 이번 주에 무슨 날인지 알아요?」
“네? 무슨 날인데요?”
「…….」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
「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진짜 큰일 났네. 시혁 씨.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게 생길지도 몰라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는 알겠다.
알리사가 속담을 쓰기 시작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