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500)

205화

-시혁이의 육아일기.

-이시혁 8살.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표어 우수상을 타왔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많이 놀랐다.

솔직히 학교 준비물이 있다고 돈을 달라고 했을 때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넉넉하게 주었다.

물론 우리 시혁이는 알뜰하게 거스름돈으로 돌려주었지만.

아무튼, 그게 과학의 날에 쓰일 표어를 만드는 일인 줄 모르고 있었다.

이런 건 보통 부모랑 같이하거나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우리 아들은 스스로 해서 우수상을 타냈으니 얼마나 대견한 줄 모르겠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정말 대단해! 시혁아. 다음에는 아빠도 도와줄까? 다른 부모들은 그렇게 한다던데.”

“이런 건 혼자 하는 거야. 그리고 아빠는 일하니까 쉬어야지.”

아들의 따뜻한 배려가 나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냥 이상하게 맘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날도 화창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따뜻하면서도 시린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상도 타오는 아들을 보며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괜스레 야단을 떨었다.

“이거! 동네방네 자랑을 해야겠는걸!”

“아악! 아빠 하지 마! 지금 전화기 들고 뭐 하려고!”

“당연히 자랑해야지!”

“제발 그러지 마!”

시혁이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감쌌다.

나는 일하고 있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연락해서 아주 쩌렁쩌렁 자랑했다.

애가 표어에 우수상을 받았다고.

최우수상은 아니지만 혼자서 이렇게 받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글에 재능이 있는 거 아니냐고.

나중에 책 출판할 때는 늦으니 어서 계약해서 잡으라고.

그런 야단스러움으로 아들을 띄워주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아빠로서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물론 전화 받는 사람이야 뭘 이런 거로 연락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시혁아. 아빠가 아는 기자님에게 기사 좀 올려 달라고 할까? 8살 이시혁! 우수상 받다!”

“최우수상도 아니고 우수상인데 기사를 왜 내!”

“오! 그럼 다음에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내라는 말이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 몰라!”

시혁이 많이 부끄러웠는지 거실에 있는 배게 위에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내가 이러는 게 마냥 싫지는 않은지 살며시 ‘다음에도 상 타와 볼게.’라고 조그맣게 말한다.

나는 그 목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시혁에게 말해 주었다.

꼭 상을 못 타더라도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빠에게 최고의 아들이다, 라고.

최우수상이나 대상보다 더 큰 상이 바로 너란다.

***

시하가 입상을 했다.

저학년 부분 대상.

가슴이 막 벅차오르고 동네방네 다 자랑을 하고 싶다.

내 동생이 정말 대단하다고. 무려 대상을 받았다고.

아버지도 나에게 느꼈던 감정이 이랬을까.

그때는 괜히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정말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 칭찬을 또 다른 식으로 해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여러 상념이 교차하며 나는 멍하니 폰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떠올린 감정을 정리하고 내뱉자.

시하야. 너 정말 잘했다고.

꾸욱.

“형아!”

시하가 쌈을 싸서 내 입 옆에 밀어붙였다.

음. 시하야. 거기 입이 아니야.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덕분에 들끓어 올랐던 감정이 쌈 싸 먹게 됐다.

진정이 되는데? 고마워. 시하야.

“오빠. 무슨 전화길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요?”

“시하가 대상이래. 미래부 저학년 부분.”

“네?”

“전에 광고 캠페인에 그림을 그려서 보냈거든. 교육감상을 준다고 하더라.”

“아…. 대박! 정말 엄청나잖아요!”

“응.”

“그럼 티비에 광고로 나오는 거예요?”

“그런 종류는 아니야. 아마 갤러리나 그런 데에 전시되겠지.”

“헐! 진짜 대박!”

나는 시하를 보았다.

열심히 다시 2차 쌈을 싸서 내 입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대체 쌈 싸는 법은 누가 알려준 거야!

보나 마나 서수현이겠지.

전화하고 있을 때 그런 걸 알려주다니.

“시하야.”

“형아. 아~”

“응. 그래. 먹기 전에 축하한다고 말해둘게. 축하해. 시하야. 너 상 준대.”

“상?”

“응. 그림 너무너무 잘 그려서 그거 상 준대. 그 샤워하는 그림 있잖아.”

“아아. 샤어! 빈 병!”

“응. 그거.”

나는 시하가 주는 쌈을 덥석 받아먹었다.

왠지 아까보다 고기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그게 시하가 상을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손수 쌈을 싸줘서 그런지 모르겠다.

쌈에 여러 재료가 들어간 것처럼 그냥 복합적으로 좋았다.

“형아. 시하 상 죠?”

“응. 상 준대. 아마 도서관에 비치된 갤러리에 전시될 것 같아. 나중에 상 받으러 오라는데? 사진도 찍나 봐.”

“왜?”

“음. 아무래도 엄청 큰 상이니까 엄청 잘했어요! 하는 느낌으로 찍자고 하는 거 아닐까?”

“형아 가치.”

“하하. 당연히 형아도 같이 찍을 거야. 아, 아마도?”

“아아.”

그거면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보다 형아랑 같이 사진 찍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한가 보다.

서수현이 우리를 보며 물었다.

“오빠. 그럼 저도 갈까요?”

“응. 아니야. 넣어둬.”

“치이! 그래도 대박이네요. 이거 상 받으면 기사 나가는 거 아니에요?”

“어? 이거 기사가 나가나?”

“교육감상이라면서요. 그럼 대충 기사도 나가겠죠. 인터넷 기사로. 뭐, 많은 사람이 관심 가지지 않겠지만.”

“그렇겠지? 난 이런 공모전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거든.”

“관심 있는 사람만 하는 거죠. 뭐.”

“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사에 시하에 대해서 두루뭉술하게 써달라고 해야겠다. 익명도 좋고.”

서수현이 면을 후루룩 먹으며 말했다.

“대상이 부분별로 여러 명이면 그렇게 한 사람에 대해서 인터뷰식으로 안 나올 텐데요? 사진도 다 같이 찍을 테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 너무 어리잖아.”

“아, 하긴. 이걸 기회다 싶어서 거기서 작정하고 미술 천재로 내면 골치 아파지기는 하겠다.”

“그러니까.”

이상한 연락이 오는 건 사절이다.

유명세를 치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내가 예민한 반응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기사의 화제란 마치 스넥처럼 먹고 버려지는 거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

-광고 켐페인 공모전 입상 당일.

상은 여러 명을 뽑지만 직접 수상하는 사람들은 대표로 대상뿐이다.

미래부 저학년, 고학년, 청소년부, 성인부.

총 4명에게 직접 수여를 하며 사진도 다 같이 한 컷 찍는다.

우리는 이런 행사를 하며 문화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쇼맨십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취지가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도전의 장을 만들어나가는 것.

누군가가 성장하기에는 너무나 좋지 않은가.

상을 받은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도전하고 성장하기도 한다.

“형아. 여기 어디야?”

“응. 여긴 도서관이야. 여기 1층에 작은 갤러리가 있거든. 사람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보기도 해.”

“갤러리?”

“어…. 뭔가 멋진 그림들을 놓는 곳을 갤러리라고 해.”

“아아. 갤러리. 갤러리.”

시하가 외우려는지 열심히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러다 뭔가 퍼뜩 생각났는지 내 손을 잡아당겼다.

“형아. 시하 그림도?”

“응. 시하 그림도 오늘부터 배치되어… 가 아니라 붙여져 있대. 그래서 오늘 여기서 상 받기로 한 거야.”

“머시써?”

“당연히 시하 그림이 걸리는데 멋지지. 기대되지?”

그런데 뭔가 의문이 들었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하 그림. 패드에 이써. 그림 저기 이써?”

“아하. 그건 말이야. 시하가 그림을 그리면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거든. 아마 프린터로 뽑아서 전시할 생각인가 봐.”

“프린터?”

“으음. 시하 그림이 종이로 짜잔 하고 나오게 하는 게 프린터야. 전에 형아가 포스터 뽑은 거 봤지? 시하가 그린 게 똑같이 세 개가 되어 버렸잖아.”

시하가 기억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설명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이래서 눈높이 교육하는구나.

“시하 아라. 도깨비 슛이야. 도깨비 슛.”

“으응?”

“승준. 도깨비 슛. 공 따닥. 마니 따닥.”

공이 여러 개로 만들어지는 도깨비 슛.

그런데 승준이가 그 만화를 봤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엄청 옛날 만화인데…….

“시하야. 그건 아니야. 도깨비 슛은 축구공 하나만 진짜지만. 시하의 그림은 세 개다 진짜야!”

“아?”

시하가 ‘그런 사실이!’ 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누가 보면 뭔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줄 알겠다.

“마자. 시하 그림 다 이써. 포스터 서이 개. 다 이써.”

“그치?”

“아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우리는 갤러리에 들어왔다.

안에는 정말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그림을 그렸다. 이른바 북디자인처럼.

다른 사람들도 물 부족에 대한 인식을 잘 주면서 그린 것 같다.

저학년 아이들이 그린 것이 보였는데 굳이 푯말에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저학년의 선화 솜씨는 티가 나니까.

“와. 시하야. 저기 바로 대상작이 있네.”

“아아!”

대상작들만 따로 네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창의력 부분과 그림 솜씨가 말이다.

신기한 건 시하의 솜씨도 그 셋에 꿀리지 않는다는 점.

“시하 그림!”

“응. 시하 그림이네.”

“다른 그림!”

“응.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네.”

네 개의 작품을 시하가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느끼는 게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할 때 얼마 보지도 않고 고개를 휙 돌렸다.

“다 바써.”

“응? 벌써? 저기 세 그림 어때?”

“잘 그려써.”

“오. 그래? 시하보다 더?”

“아냐.”

뭐지? 이 당당한 자신감은?

내 것이 당연히 최고지! 이런 느낌인가.

역시 자신의 작품에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역시 시하 그림이 최고지.”

“아냐.”

“응?”

갑자기 겸손 모드라고?

그래! 사람이 때로는 겸손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

“시하 그림. 형아 이써.”

“엥? 그럼 이 두 사람 형아야?”

“아냐.”

“오늘따라 엄청 수수께끼네. 형아가 어딨어?”

시하가 손을 척 들어서 한군데를 가리켰다.

눈으로 따라가자 거기에는 딱 하나가 보였다.

정수리.

“저 가마가 형아 가마였어?!”

“아? 가마 모야?”

“저렇게 뱅글뱅글 머리카락의 태풍 모습.”

“아아! 마자! 형아 가마.”

“그렇구나. 저 부분만 형아 가마구나.”

내가 저 그림의 심오한 뜻을 몰랐네.

아니. 잠깐만! 그럼 내 가마가 대상을 받아서 전시되고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부끄러워진다.

이 사실은 나와 시하만 알고 있기로 하자.

“푸흡.”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을 구겼다. 하필이면 이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다니.

고개를 돌리자 축제 때 이후로 처음 보는 장하진 교수가 있었다.

빤히 쳐다보자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셨다.

“크흠. 아니, 두 사람이 대화가 너무 웃겨서 말이지. 나도 마지막 심사를 할 때 저 그림을 봤는데 설마 자네 가마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비밀로 해 주실 거죠? 시하야. 인사해야지.”

“안넝. 하세요!”

장하진이 시하가 귀여운지 웃음을 보였다.

“당연히 비밀로 해야지. 작가의 숨겨진 의도 같은 느낌이야. 하하.”

“아. 맞다. 교수님에게 물어볼 게 있어요. 이거 혹시 기사로 나가나요?”

“나가지.”

“그럼 기사에 시하에 대한 건….”

“하하.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자세히 다루지 않을 거야. 뭔가 개최되었고 대상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써줄 거야.”

“아…. 다행이네요.”

장하진 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걱정할 만했어. 내부에서 알리자고 난리가 났거든.”

“아. 진짜요?”

“그래서 한 소리 했지. 그런 거로 화제가 되어서 알리면 이 캠페인이 의미가 있는 거냐고. 애도 아직 어린데.”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심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이해는 돼.”

“하하. 그렇죠.”

그 사람들이 알리고자 하는 욕구는 부모의 자랑하려는 마음과 다른 의미다.

장하진이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보고 배워라.”

“아?”

“하하. 기자에게는 내가 또 따로 말해 두지.”

“네. 감사합니다.”

수상 시간이 됐다.

소정의 상품과 어디서 오신 분들과 악수를 했다.

사진을 찍었으며 일정은 빠르게 진행됐다.

살짝 허무할 정도.

나는 이 공간에서 다른 감상을 가졌다.

각자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게 참으로 다르다고.

시하가 상장을 나를 향해 번쩍 들어 펼쳤다.

“형아. 가마 상. 가마 상.”

“쉿.”

시하는 내 가마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지 말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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