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4화 (204/500)

204화

시하와 함께 서수현의 집에 도착했다.

사실 이렇게 집을 찾아간 건 처음이었다.

요즘 친하다고 해서 집으로 놀러 갈 나이는 아니지 않나.

막상 전화를 받고 왔는데 뭔가 사 들고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 어머니가 계시면 뭔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니, 그래도 집에 섭외(?)되었다지만 예의상 뭔가라도 전해줘야 하지 않나?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그런 상념이 머리를 휘감았다.

“형아?”

“응? 시하야. 잠시 마트 좀 갔다 올까?”

“왜?”

“아니. 빈손으로 가기 좀 뭐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삐비빅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시하와 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오빠. 밖에서 뭐 해요? 왔으면 벨을 눌러야죠.”

“아니, 그게 빈손이라는 걸 알아서…. 주스라도 사 오는 게…….”

“집에 아무도 없어요. 부모님 둘 다 맞벌이하셔서.”

“없어도 나중에 오실 때 주스는 마실 수 있잖아.”

“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들어오세요. 괜찮으니까.”

나는 뭔가 찝찝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환한 거실에 잘 꾸며진 인테리어. 일단 티비도 컸다.

서수현의 방으로 가자 컴퓨터, 카메라, 마이크가 떡하니 보였다.

방 한쪽에는 기타 가방이 세워져 있고 침대가 들어가 있어서 방이 꽉 차 보였다.

“여기가 네 방이야?”

“네. 어때요?”

“평범하네. 우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우물은 왜요?”

“우물 안 개구리.”

“이 오빠가 진짜!”

시하가 내 말을 듣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개굴 누나. 우물? 어디써? 우물신 나아? 이케이케 구룸 만드러 얘기해.”

서수현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건 시하의 일을 모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는 하지.

저런 말도 못 알아듣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는 모르겠다.

뭐, 그 부분은 알아서 하겠지.

“좋아. 오빠. 여기 의자를 준비했어요. 화면에 나오지 않게 세팅을 다 해뒀으니까 이제 앉으면 돼요.”

“알았어.”

“개굴 모해? 노래 만드러?”

시하는 그게 궁금한가 보다.

우리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서수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응. 시하야. 이제 영상을 찍고 나중에 올릴 거거든. 그래서 시하 노래 만드는 걸 도와줘야 해. 알았지?”

“아아. 시하 할 수 이써.”

“그럼 시작할게.”

서수현이 눈빛이 바뀌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노래를 올릴 건데 조금 특별한 영상을 올릴 거예요. 전에 카페에서 노래했던 영상에서 애가 말하는 거 들으셨죠?”

못 보신 분들은 그 영상을 보러오라고 호응한다.

저렇게 또 광고하다니.

이제 너튜버가 다 됐다 싶다.

“오늘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 시하! 안녕 시하야. 사람들에게 인사해 줄래?”

“아아! 하이~”

“하하. 아쉽게도 얼굴은 못 나와요. 왜냐 제가 주인공이니까요. 흠흠. 농담이고 오늘은 시하가 말하는 대로 작곡해 보려고요.”

서수현이 기타를 꺼냈다.

다리 위에 걸치고 손가락으로 현을 튕겼다.

띵. 띵.

“시하야. 재미난 일 알려줄래?”

“아?”

“왜 있잖아. 손을 동그랗게 말고. 오늘 게스트 비용 달라고.”

“아?”

시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냐면 그런 적이 전혀 없었으니까.

나는 이 오해를 풀려다가 입을 닫았다.

영상을 촬영하는 데 방해될 수 있겠다 싶어서.

“아냐. 비누 방울이야. 비누 방울. 샤어해써. 동글이 만드러서 후우 부러써. 따닥 해써. 물 내려 가써.”

“으응? 동그라미가 비눗방울이었어? 내가 오해했네. 크흠. 그럼 이걸로 노래를 만들어 볼게요.”

서수현이 코드를 잡는다.

거기에 목소리로 멜로디를 얹는다.

[어린 하루는. 동그라미 그리며. 비눗방울 만들어.

어른 하루는. 동그라미 그리며. 계좌이체를 달래.

왜 이런 걸까. 순수함이 옅어져. 워어어.

샤워하면서. 순수함도 떠내려가는 걸까.

아님. 방울이 따닥 터지면서 없어지는 걸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좋더라.

동그라미가.]

뭔가 좋으면서도 가사에서 괴작의 기운이 느껴진다.

근데 이게 또 듣다 보면 중독성 있다.

서수현의 착각과 시하의 진의.

두 사이의 경험을 이야기해서 더 웃긴 것도 있다.

서수현이 가사를 다 뱉었는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무튼, 시하의 말을 이렇게 재창작해서 작곡해 봤어. 어때 시하야. 조아?”

“아냐.”

“응. 아냐? 미안해. 이상했지?”

“아아. 다시.”

“으악! 그거 녹음할 때 자주 듣는 말인데!”

의외로 두 사람의 케미가 좋다.

영상을 본다면 시청자들이 깔깔 웃지 않을까 싶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 여기서 나를 부른다고? 소개도 안 했는데?

내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시하 형입니다. 저 때 영상에 나왔던.”

“푸핫! 아 맞다! 제가 오빠 소개를 빼먹었죠? 흠흠.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어요. 자, 어서 말해 보세요. 지금 자작곡 어땠어요?”

나는 곧바로 생각한 걸 이야기했다.

왜 얘만 보면 이런 게 자꾸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올챙이가 자낳괴구리가 됐네?”

“이 오빠가 진짜! 자낳괴구리 뭐냐고요! 이거 나중에 올라갈 때 사람들이 별명으로 쓰면 어떡하냐고.”

“편집하면 되지 않아?”

“하, 하지만 편집하면 이 재밌는 장면을 잘라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낳괴구리 맞네.”

“아니야. 아니라고요. 저는 그냥 영상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

“재미 주면 머니가 따라와서 편집 안 하는 거야? 아니면 머니가 되는 재미라서 편집 안 하는 거야?”

“그게 그 말 아니에요?”

“아. 들켰네.”

“이 오빠가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그때 시하가 말했다.

“개굴. 시하 노래 안 만드러?”

“아!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시하 취향에 맞게 누나가 잘 만들어 줄게.”

서수현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기타를 제대로 잡았다.

“그럼 시하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해 봐. 그걸로 만들어 줄게.”

시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형아. 페페. 레드. 시하 차. 문도. 백동. 승준. 하나. 리사. 개굴.”

나는 그 와중에 형아가 제일 앞에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있었다.

앙증맞은 손가락 사이에 1등이 바로 나다.

근데 떠올리는 대로 말하는 거라 순서가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시하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말하고 있자 서수현이 이제 알겠다며 멈추게 했다.

정말 저걸로 시하 취향인 노래가 나오는 걸까?

코드를 잡더니 전주 없이 곧바로 노래를 부른다.

[형아와 페페랑. 레드랑 시하 차. 문도랑 백동과. 승준과 하나야. 모두 생긴 건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

익숙한 멜로디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야이! 사기꾼아. 있는 노래잖아!”

“오, 오빠. 착각이에요.”

“멜로디가 딱 그건데 뭐!”

“애들이 좋아할 노래는 어딘가 비슷하다고요. 그 뭐지? 상업코드 아시죠? 그거예요.”

“너야말로 날 바보로 알지? 아까의 복수인 거야. 뭐야.”

그런데 노래가 취향에 맞긴 하는지 시하가 재밌게 듣고 있긴 했다.

내 반응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며 이게 이미 존재했던 노래라는 걸 알아차렸다.

시하가 그런 서수현을 보고.

“개굴. 거지 말 해써?”

나는 영상을 찍고 있어서 말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 저거 거지 말이 아니라 거짓말입니다.

영상은 서수현이 자낳괴구리의 사기꾼인 모습을 보여 주면서 종료됐다.

***

영상을 올린 지 3시간이 지났다.

조회수가 아직 높진 않지만 반응만큼은 뜨거웠다.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었으니까.

-애기 얼굴 진짜 궁금하다ㅋㅋㅋ 공개는 어려운가요?

-그 와중에 형의 말이 겁나 웃기네. 자낳괴구리ㅋㅋㅋ

-근데 슈님. 왜 개구리가 된 거임? 아. 프사가 개구리 모자 쓰고 있어서?

-마지막에 상업코드 미쳤냐고ㅋㅋㅋ

-앞으로 자작곡 말고 이런 콘텐츠로 밀고 나가도 재밌을 거 같은데?

나는 그런 댓글들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람들이 호의적이라서 다행이었다.

뭐 덕분에 이렇게 소고기도 먹는 거지만.

서수현이 편집을 끝내고 다음 날 점심에 우리를 초대했다.

출연료가 아주 두둑하다.

“시하야. 영상 올라왔어.”

“아?”

시하가 소고기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으며 나를 보았다.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입에 넣어서 귀여웠다.

“볼래?”

“볼래!”

나는 폰을 세워서 시하가 볼 수 있게 했다.

방을 잡아둬서 그런지 적은 소리라도 잘 들린다.

앞에 있는 서수현이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가렸다.

“아, 뭐예요. 왜 갑자기 먹다가 틀어요.”

“아니. 왜 부끄러워해?”

“뭐라고 하지? 아는 사람이 제 앞에서 영상 보는 건 좀 낯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뭐 그래요.”

“응? 왜 그렇지? 보라고 만든 영상이잖아.”

“아는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같단 말이에요.”

“같이 찍었는데 뭘.”

“그래도요. 이걸 이해 못 하시나?”

“고기나 먹자.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소고기가 있는데.”

나는 한 점 집어먹으며 입에 넣었다.

시하는 영상이 재밌는지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시하야. 밥도 먹으며 봐야지.”

소고기를 먹였다.

입안에 들어가고 몇 번 씹더니 가만히 있다.

영상에 빠져버렸다.

이래서 부모님들이 티비만 보지 말고 밥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건가?

살며시 시하의 턱을 잡고 고기를 씹게 한다.

“아? 형아?”

“응? 하하하. 먹으면서 봐. 먹으면서.”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열심히 씹는다.

뭐, 이럴 때 나도 고기를 입에 쏙쏙 많이 넣자.

“각오해. 나 엄청 먹을 거야.”

“괜찮아요. 설마 오빠가 알리사처럼 먹겠어요?”

“아…. 알리사처럼은 못 먹지.”

“그리고 언제 한번 이렇게 크게 사주려고 했어요. 신세 많이 졌으니까.”

“신세는 무슨. 겨우 말 몇 마디 해준 거뿐인데. 네가 열심히 해서 잘된 거잖아.”

“피이. 오빠가 벨 씨랑 영상 찍을 때 저 언급해줘서 도움도 많이 됐잖아요.”

“음. 그건 부정 못 하겠네.”

“그러니까 많이 드세요.”

“이거 보니까 축제 때 소떡소떡 생각난다. 얼마나 벌었어?”

“다 팔렸죠. 마지막 날까지 솔드 아웃 돼서 꽤 엄청나게 벌었어요. 이리저리 다 떼면 순이익이 아마 이 정도?”

“오천만 원?!”

“이 오빠가! 오 백이요. 오백!”

“아. 오백이구나.”

“소고기가 비싸요!”

“그렇겠지. 그래도 3일 만에 순이익 오백이면 대박이네.”

물론 인건비를 포함하면 오백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익은 학과 행사에 다시 재투자된다.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돈이라는 거다.

종강파티나 개강파티의 음식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씀.

나야 뭐 절대 가지 않겠지만.

사실 3, 4학년쯤 되면 그런 곳에 가기 귀찮아진다.

또 시하도 돌봐야 하니까.

차라리 시하랑 맛있는 거 먹으러 시간을 쓰는 게 낫다.

“이런 비용은 내년에 이월되니까 좋죠. 마구 쓰다 보면 마이너스 되니까 조심해야 하고.”

“음. 그렇지.”

한 해에 내려오는 비용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마구 써서 마이너스가 된다면 다음연도에 피해가 간다.

등록금을 그렇게 먹는데도 돈이 여러 군데로 빠져나가다니.

“아. 근데 너무 돈 얘기만 하는 거 아니야? 순수하지 못하네.”

“오히려 이게 더 순수한 게 아닐까요? 어릴 때야 이 동그라미가 비눗방울로 보이지.”

“아무튼, 영상이 3시간 지났는데 댓글이 폭발적인 거 보니까 이것도 조회수 꽤 나오겠다.”

“그렇죠? 이런 게 알짜 영상이죠.”

“노래도 소소하게 나오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뭔가 좀만 더하면 상승할 수 있을 건데. 뭐 이런 욕구가…….”

“자낳괴구리 맞네.”

“이 오빠가 진짜! 아니거든요. 게임 퀘스트 깨는 기분인 거 뿐이라구요.”

그때 시하가 나를 불렀다.

“형아. 다 바써.”

“응. 다 봤어?”

“고기. 고기.”

“그래. 이제 고기 먹자. 수현아. 물냉도 시켜도 되지?”

“전 비냉이요.”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냉? 비냉? 모야?”

“그건 오면 알아. 맛보면 아주 환상적일걸?”

그렇게 시하는 물냉과 비냉을 맛보고 ‘마시써!’ 하며 폭풍 흡입했다.

입가에 다 묻혀 먹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시하는 비냉과 물냉 중에 뭐가 더 좋은 걸까?

그걸 물어보려고 할 때 전화가 왔다.

“누구지? 여보세요.”

미술 광고 캠페인에서 온 전화였다.

시하가 입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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