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미술 광고 캠페인.
광고라고 해서 꼭 돈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이 캠페인은 비영리성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그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외면했던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딱히 의식하지 않았던 것. 어쩌면 외면했을지도 모를 것.
이런 걸 사람들에게 가끔 던져주면 좋은 자극이 된다.
딱히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게 더더욱 파급력이 크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갈지라도 무의식적으로 스며든다.
그게 바로 그림이 만들어가는 문화의 멋진 점.
삶과 동떨어지지 않게 자연스러운 공감의 흐름을 만든다.
“이야. 역시 나이 제한이 없으니까 참가자들이 많네. 어때? 재밌는 그림이 있어?”
이번 캠페인의 그림을 선별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들이다.
그의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창의적이고 좋아요. 아이들은 대부분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줬고요.”
“고학년부터는 다들 프로그램으로 그렸나?”
“그런 애들도 있고 직접 손으로 그린 애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재밌네요. 규격을 정해주긴 해지만.”
“그래? 난 성인 부분을 보고 있는데 다들 포토샵이나 클튜를 썼더라. 아니면 앱이나.”
“그게 제출하기 편하니까요.”
“요즘 디지털화가 참으로 잘됐어. 그런데 특정 배경이나 그런 부분은 다 잘랐어.”
“왜요?”
“요즘 민감하잖아. 그런 부분은.”
“하긴.”
어떤 특정 지역의 골목을 떡하니 배경으로 그렸다고 하자.
그게 안 좋은 쪽으로 그려진다면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긴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공지에 띄웠지만 읽지도 않고 제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검토하는 사람 관점에서 바로 입구컷이 되기에 편했지만.
“난 성인보다 애들을 맡고 싶었는데. 특히 저학년. 넌 좋겠다. 애들 그림이 뭔가 재밌는데 말이야.”
“그래도 뭐 별로 없어요.”
“미술학원 애들이 참가한 것도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뭔가 좀 더 색다른 걸 보고 싶은걸요.”
“이야. 재미난 걸 더 보고 싶다?”
“물 부족이 좀 흔한 주제이기는 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매년 다른 주제로 재미난 그림이 나온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그녀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눈을 찡긋했다.
“눈은 왜 찡긋거려? 너무 봐서 눈 경련 오는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어서 앉아서 일하세요. 저도 검토해야 할 게 산더미 같으니까.”
“저학년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텐데?”
“다른 것도 별로 안 많은 거 알거든요.”
“들켰네.”
매년 하다 보면 업무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검토하는 속도가 남다르다. 그냥 스윽 봤을 때 넘길 수 없는 그림들은 1차 통과다.
조건은 그림에 대한 명확한 의미전달.
이건 전시가 아니기에 그림의 의미에 대해서 유추해 보고 작가의 생애를 알아야 하는 순간 아웃이다.
그런 건 다른 공모전에 제출하면 된다.
“응?”
그녀가 열심히 검토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있다.
제일 먼저 저학년 부분에서 몇 없는 앱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려진 그림이 명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와. 기발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다시 앉아 일하던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서 호다닥 다가왔다.
“뭔데? 뭔데 그래?”
“이것 좀 봐요.”
그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하나의 그림이 있다.
두 컷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출.
그림의 반을 잘라서 위와 아래를 대비시켜놓았다.
먼저 위쪽 그림.
귀여운 SD 캐릭터가 홀딱 벗고 샤워기에 물을 맞고 있다.
몸 주위에는 거품이 잔뜩 묻었다.
물이 아래로 흐르며 하수구에 들어가고, 거기에는 온통 머리카락 천지다.
바로 아래 그림.
하수구에 들어가는 머리카락은 아래의 사람과 이어져 있다.
사람의 가마 부분을 하수구에 들어간 머리카락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개를 숙이며 한 손으로 목을 붙잡는다. 목말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머지 손에는 쥐고 있는 빈 병만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이 그림의 제목.
[남의 일이 아니다.]
짧지만 강렬한 문구.
그녀는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게 정말 저학년 아이가 생각해낸 연출과 의미란 말인가.
아기자기한 그림에 속아서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이 더 충격을 준다.
뒤에서 보고 있던 그도 감탄을 뱉었다.
“와. 천재네.”
“진짜 그러게요. 와.”
“위는 물의 부유함. 아래는 물의 가난함.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적인 연출이지. 그리고 제목 때문에 진짜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되네.”
“와. 너무 멋있어요.”
“계급의 상승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온다는 걸 말하고 있어. 물은 아래로 흐르니. 와. 이게 저학년이 연출한 거라고?”
“그러고 보니 위에 캐릭터랑 아래 캐릭터가 똑같네요.”
“그렇겠지. 결국, 저렇게 된다는 거니까.”
더더욱 창의성이 빛나는 부분은.
“가마를 저렇게 표현하네. 저게 창의성이지.”
“저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병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그렇게 두 사람이 그림을 잠시 감상하다가 남자 쪽에서 먼저 입을 뗐다.
“근데 이 애가 몇 살이지?”
“어디 보자. 어? 거짓말!”
“왜?”
이메일에는 3살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림 그리는 증거 영상까지 제출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경악하며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림보다 더 충격적인 나이였기에.
***
창의성.
나는 언제나 시하가 똑똑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말이 느는 것이 조금 느려도 표현은 다 할 줄 안다.
이 부분에는 내 탓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성격적인 부분이 작용한 것인지 애매하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시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다른 부분을 보기도 하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만큼 감탄이 나온 적이 없다.
“시하야. 정말 대단해!”
“아?”
“시하는 정말 상상력이 엄청 풍부하구나?”
창의성을 뭐라고 이해시킬 말이 없어서 상상력으로 대체했다.
말할 때 늘 쉬운 언어로 하려고 한다.
이해할 수 있게.
“모가?”
“응? 이번에 그린 그림 말이야. 형아가 봐도 대단하던걸?”
“아? 시하 본 거 그려써.”
“그래. 시하가 보거나 겪은 걸 그린 거라는 거지?”
“아아. 이거 형아 머리.”
시하가 가마 부분을 탁탁 쳤다.
그래. 물론 내가 시하에게 내 머리카락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거품도 냈고.
아래의 그림은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을 그린 거다.
그 두 개가 합쳐지니 정말 의미심장한 그림이 나온다.
하지만 보라. 저 가마 부분을 저렇게 표현하는 건 창의성이 아니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하에게는 충분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아니. 어쩌면 멀지 않은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형아?”
시하가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이 좋은지 머리를 살짝 흔들며 비벼온다.
정말 귀엽다.
“근데 시하야. 제목을 형아가 정해도 괜찮았던 거야?”
“형아 제목 잘해.”
“응. 형아가 제목 잘 짓기는 하는데…. 남의 일이 아니다. 이걸로 괜찮았던가 싶어서.”
“개차나. 개차나.”
“무슨 뜻인지는 알지?”
“남해 일이 아니다!”
갑자기 남해는 왜 등장하는 걸까?
“남해가 아니라 ‘남의’야.”
“아아. 남 애.”
남의 애 일이 아니다로 되었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흠흠. 다른 사람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된다는 말이야. 이거 시하가 겪은 일이지?”
내 말에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있었던 일부터 빈 병이 된 것.
나랑 샤워한 것.
이 레퍼토리를 다시 시하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물론 굉장히 축약되었지만.
“그래. 그래. 알았어. 역시 시하는 대단해.”
“형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칭찬했다.
그렇게 둥가둥가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웬일인지 서수현에게 연락이 왔다.
시하와 놀이터 갈 준비를 끝내고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워서 놀랐다.
“어. 수현아. 왜?”
「오빠. 잠시 시간 있어요?」
“아니. 지금 급하게 일 처리를 하나 해야 해서. 지금 결정권자에게 물어봐야 해.”
「아. 그래요? 많이 바쁘신가 보네.」
“잠시만. 내가 물어볼게. 시하야. 수현이가 시간 있냐는데?”
「아, 오빠!」
“왜 그래? 지금 놀이터 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단 말이야.”
「난 또 엄청 바쁜 일 하는 줄 알았잖아요.」
“아니, 이것보다 바쁜 일이 어딨어? 개구리는 개굴개굴 노래하기 바쁘니까 모르겠지만.”
「개구리 아니거든요! 이 예쁜 얼굴에 개구리가 뭐예요!」
“자기 입으로 예쁘다고 말한다고?”
「이 오빠가 진짜!」
그때 시하가 ‘아아!’ 하면서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굴!”
“응?”
“개굴 누나!”
“어? 설마 수현이라고 해서 기억 못 한 거야? 내가 누나를 빼먹었네.”
“개굴개굴. 노래 잘해.”
“어. 그렇지. 노래 잘하지.”
서수현도 전화기 너머로 이 소리를 들었는지 ‘너무해. 시하야. 어떻게 내 이름을 모를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다.
거참. 별명만 알면 됐지.
요즘 시대에는 닉네임으로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런 경우 대부분 채팅이나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기는 한데…….
아무튼, 시하가 직접 별명을 지어줬으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아닌가? 내가 지었나?
잠시 기억에 혼선이 오지만 오늘 어쩐 일로 전화했는지 묻기로 하자.
“그래서 무슨 일인데?”
「사실 제가 커버곡도 안 하고 자작곡으로 영상을 올리잖아요. 아시죠?」
“응. 알지.”
「근데 이게 어느 정도 한계점이 보인단 말이죠. 특색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취미로 하는 거 아니었어? 용돈 벌이 정도로. 물론 용돈치고는 판이 좀 커지고 있긴 하네.”
「아니, 뭐 그렇긴 한데요.」
이거, 이거 돈맛을 보더니 황금 개구리가 되려나 보다.
이렇게 취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거지.
뭐 욕심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한계점이 보인다는 것도 이해도 간다.
본업도 아니고 어떻게 곡이 맨날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나올 수 있겠나.
물론 그런 괴물들도 있겠지.
“그럼 그냥 커버곡 하는 게 낫지 않아?”
「그쪽 시장도 쉽지 않다고요. 이미 많기도 하고요. 곡도 쓰는 것에 허락받고 수익도 나눠야 하고. 복잡해서…….」
“음. 그렇긴 하지. 그래서 왜 전화했다고? 서두가 기네! 시하야 일단 나가자.”
나는 시하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왔다.
서서 계속 전화할 수는 없으니까.
“형아. 시하도. 시하도. 볼래. 개굴 볼래.”
“응? 아! 그래.”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
영상 통화를 걸어서 잘 보이게 했다.
“어? 화면 나온다. 이제 보이지?”
“아아.”
「아, 오빠! 갑자기 끊어서 놀랐잖아요. 시하야 안녕.」
놀란 건 놀란 거고 인사는 철저히 한다.
나는 다시 한번 목적을 물어봤다.
「그러니까 이번에 즉석 작곡하는 거로 시하가 나와주면 안 될까요?」
“즉석 작곡을 하는 데 시하가 왜 필요한데?”
「시하가 하는 말로 노래를 만드는 거죠. 재밌지 않아요?」
“응. 아니야. 시하 말로 노래 만드는 게 사람들이 재밌어할 거 같아? 그리고 얼굴 나오는 건 조금 그래. 너 채널도 이제 생초보는 아니잖아.”
「얼굴 말고 목소리만요. 전에 카페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 영상이 제일 조회수가 좋단 말이에요.」
그때 시하가 내 다리를 잡아당겼다.
“형아. 시하 말 노래 만드러?”
“으응? 어…. 수현이 누나가 시하가 마음대로 말하는 거로 노래 만들고 싶다네.”
시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형아. 시하 해. 시하 노래 만드러.”
“어. 어? 그래?”
폰 너머로 서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건 시하 의견도 들어봐야죠!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애들 교육에 안 좋다고요.」
“그래서 얼마 줄 건데?”
「그 말은 애, 애들 교육에…….」
“개굴! 이거! 이거!”
시하가 검지와 엄지를 비비더니 원을 만들었다.
아! 저거 그거다. 샤워할 때 가르쳐준 비눗방울 만들기.
안 그러면 비빌 리가 없으니까.
아마 자기가 한 말로 노래를 만든다고 하니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서수현이 ‘이거’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거다.
「오빠의 교육이 잘못됐어! 벌써 머니라니!」
오해였다.
근데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경제 교육이 잘된 편 아니야? 흠흠.
아무튼, 시하 덕분에 서수현이 소고기를 사주기로 했다.
먹는 거로 황금 개구리의 배를 갈라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