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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 (201/500)

201화

아이들은 밥도 두둑이 먹고 물도 다 마셨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물신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아서 고민에 빠졌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물이 아직도 원래대로 안 돌아오는데. 이렇게 되면 샤워도 못 해요.”

그 말에 승준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안 돼! 땀나서 샤워는 꼭 해야 하는데.”

“아아! 샤어!”

시하도 동의한다는 듯이 옆에서 거품 칠하는 동작을 했다.

다른 아이들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나가 말했다.

“힝. 물이 필요한 데가 너무 마나. 업스니 불편해.”

“시하 아라. 해결할 수 이써!”

“으응? 시하가 어떻게 알아?”

“형아 알려져써. 구룸. 구룸 만드러서 비 만드러.”

시하의 말에 아이들이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아침에 말하지 않았나.

형아가 그 얘기를 해줬다고.

정말로 현실적인(?) 방법을 알아차려서 그런지 도움을 줄 사람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열심히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 너무 기특했다.

“그럼 선생님이 전에 산 헤어스프레이를 가지고 올게요.”

하지만 아이들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지금 아무도 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구름을 만들려면 따뜻한 물이 필요했다.

종수가 난감하다는 듯이.

“아악. 물이 없어. 뜨거운 물. 어떡하지?”

“아냐. 이써. 레드 물. 레드 물.”

“엥? 그거 써도 될까?”

“대. 대.”

선생님이 황당하다는 듯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야. 무슨 근거로 된다고 말하니?

종수도 그게 궁금한지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황당했다.

“레드자나. 레드.”

“그게 무슨 소리야?”

“레드 세. 레드 마자. 레드 대.”

“아니. 무슨 그런.”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다.

레드면 무조건 된다는 걸까? 레드가 형아만큼 만능인걸?

아무튼, 쓸 수 있는 건 레드가 아니라 붉은 물밖에 없어서 아이들이 그거라도 해보기로 했다.

붉은 물이 포트에 부글부글 끓었다.

하얀 김을 내뿜는데 어째 아포칼립스 상황치고는 너무나 평화롭다.

그렇게 따뜻한 붉은 물을 대령.

시하와 아이들이 거기에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고 잠시 기다렸다.

조금 있자 구름이 비실비실 생겨났다.

“아아! 비실이!”

“오오! 구름이 만들어지고 있어.”

전에 한 번 봤지만 아직도 신기한 아이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무슨 화학 실험을 하는 줄 알겠다.

컵에 덥힌 뚜껑을 치우자 구름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비실이! 비실이!”

“근데 구름이 비 내리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지?”

“아?”

그건 시하도 모르기에 다 같이 종수를 쳐다보았다.

종수가 안경을 치켜드는 포즈를 취했다.

물론 종수의 얼굴에는 안경이 없었지만.

“나도 다 아는 건 아니야. 근데 이거 가지고는 모자라지 않을까?”

“아냐. 비실이 친구 모아. 하늘 가서 말해. 모여. 모여.”

“그럴 리가 없어.”

“아냐. 마자.”

시하가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모여. 모여.’라고 중얼거리자 쌍둥이들도 손을 올리고 따라 했다.

선생님은 그걸 보면서 어떤 만화를 떠올렸다.

지구에 있는 모든 구름들아. 나에게…. 나에게 너희들의 수분을 조금만 나눠줘!

뭐 이런 헛소리가 머릿속에 울리길래 선생님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하하. 다 같이 사커하자!”

“콘서트 꼭 보러와.”

“아이 씨. 안 될 텐데. 가서 비 좀 만들어라!”

“종수야. 아까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재휘야. 조용히 해. 뭐라도 해야지.”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갑자기 변조된 어떤 음성이 들렸다.

「너희들!」

진중하고 낮은 목소리.

아이들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원장님이 내는 소리였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위급할 때 말하도록 설치한 스피커가 이런 식으로 쓰이게 될 줄은 원장도 몰랐다.

“어? 이게 무슨 소리야?”

“뭐지?”

원장이 말했다.

「나는 우물신이다. 여기에 너희들 친구 비실이가 말해 주더군. 물 좀 주라고 말이야.」

“비실이!”

「그래. 이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나?」

“비실이!”

시하가 비실이만 찾았다.

원장은 참으로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먼저 승준.

“이제 사커하고 물 조금만 마실게요.”

「그건 많이 마셔도 된다.」

“하나도 노래 부르고 조금만 마실게.”

「그건 많이 마셔도… 하아…….」

“나 알아! 나는 계량기로 맞춰서 마실 거야.”

「그렇게까지?!」

재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 아껴 쓸게요. 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무서운지 어깨를 움츠러들었다.

윤동과 은우.

“춤추고 나서 샤워할 때 찬물로 해야지.”

「따뜻한 물로 해야 한다.」

“아하하. 그냥 샤워 안 해야지.”

「그러지 마…….」

다들 개성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물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이쯤에서 원장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흠흠. 너희들이 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물이 잘 나오게 하겠다. 다들 잊지 말거라. 물은 소중하다는 걸.」

“아아. 비실아 고마어~ 우물신 고마어~”

시하가 하늘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원장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말 알게 되었을까? 고마워하는 방향성이 좀 이상한데?

「흠흠. 그럼 나는 이만.」

그렇게 우물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서 선생님이 물을 틀었다.

솨아아아.

힘차게 물이 나오는 걸 본 아이들이 너무나도 좋아했다.

“와아! 이제 물 나온다!”

“하나도 볼래!”

쌍둥이들이 폴짝폴짝 점프했다.

시하도 뒤따라 폴짝폴짝.

선생님이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게 부엌에 있는 호스를 들었다.

“자. 이제 잘 보이지요?”

“네!”

“이렇게 물이 나온답니다.”

어찌 되었건 오늘 완벽한 교육이었다.

그때 시하가 말했다.

“샘. 물 아껴!”

“어…. 어, 그래. 미안. 너무 흘려보냈지.”

“아아.”

교육이 너무 잘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시하에게 확실히 먹혔나 보다.

***

나는 어린이집에서 시하를 데리러 갔다.

다들 뭔가 예쁜 병에 붉은 물을 들고 있었다.

저게 뭐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알림장에 다 적어두었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시하야. 이제 갈까?”

“형아. 가자.”

붉은 물을 꼬옥 쥐고 신발을 신었다.

두 손으로 병을 쥐고 있어서 그런지 신발을 잘 못 신길래 내가 신겨주었다.

“자. 다 됐다.”

“형아. 고마어.”

“하하. 그래. 근데 저 병에 빨간 물은 뭐야?”

“이거?”

“응.”

“레드 물.”

“아니. 레드 물인 건 형아도 아는데?”

“이거 비실이 만드러. 우물신 나와.”

“엥?”

이걸로 구름을 만들면 우물신이 나온다고?

대체 어떤 걸 배웠길래 저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차에 타서 알림장을 펼쳐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선생님이 자신의 뒤를 이어 물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는 것도.

“이야. 레드 물은 정말 대단하네.”

“대다내~”

시하가 마실 수 없는 신비한 레드 물을 번쩍 들었다.

반짝이는 눈에는 온갖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어린이들이 가질 수 있는 신기한 상상의 세계.

나도 어릴 때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나 싶어서 과거를 되짚어보게 된다.

“아. 맞다. 시하야. 물 부족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야 하잖아. 뭐 생각나는 거 있어? 없으면 말고.”

“업써.”

“그래? 그럼 시하 그리고 싶은 거 그리자.”

“형아.”

“응?”

“물 부족 모야?”

“아. 오늘처럼 물이 없어진 걸 가지고 물이 부족하다고 하는 거야. 물이 없어서 많이 불편했지?”

“물 아껴.”

“하하. 맞아. 그런 느낌으로 그리라고 하는 거야.”

시하가 알아들었는지 의자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그런 시하를 보며 내버려 두기로 했다.

오늘 물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되었다.

저렇게 붉은 물을 나중에 보게 되면 또 한 번 오늘 일을 상기하지 않을까?

시하에게 이제 레드 물은 마법의 물약이다.

우물신이 내려줘서 어디서 구하지도 못하는 거겠지.

음료수랑은 다르다.

뭐, 내용물은 실제로 음료수랑 별다를 바 없지만.

“시하야. 도착했다.”

오는 동안 오늘 많이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도 병은 품에 안고 있어서 어디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많이 피곤하지?”

“아냐. 형아. 노라.”

“응?”

“약속해써. 오늘.”

“아…. 그 약속 기억하고 있었어?”

“아아. 시하 다 자써. 노라.”

“아직 피곤한 거 같은데? 눈이 반쯤 감겨 있는데.”

“아냐.”

그러면서 눈을 비빈다.

딱 보니까 밥을 먹고 잠을 잘 것 같다.

나중에 밤에 잠을 안 자면 어쩌지?

그게 조금 걱정이 되지만 아마 시간 되면 또 잘 잘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내리고 밥 먹자.”

“아아.”

그렇게 집으로 가는데 문 앞에서 들어오는 백동환을 마주쳤다.

러닝을 했는지 땀이 뻘뻘 흘렀다.

“후우. 후우. 안녕하십니까 형님.”

“오. 그래.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나 보네? 벌써 운동하고.”

“오늘 일 끝나고 집까지 뛰어와서 그렇습니다. 후우 덥네요.”

안 그래도 후끈한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시하는 멍-한 눈으로 백동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잠이 안 깼는지 반쯤 뜬 눈으로 레드 물을 내밀었다.

가만 보니까 백동에게도 설명해줄 모양이다.

“백동.”

“응? 시하야.”

“레드 물.”

“오. 물이야?”

설명하기 전에 백동이 병을 덥석 잡았다.

“잘 마실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레드 물.

나는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어서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

“야. 잠깐…….”

“아?”

“예? 형님. 왜 그러십니까.”

시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미 비워져 버린 레드 물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몇몇 남은 방울만이 병에 존재했단 걸 알렸다.

“와. 근데 이거 무슨 맛이지? 체리 맛인가?”

“으음.”

“형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으음.”

시하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백동환을 쳐다보고 있다.

이미 잠은 달아나고 없었다.

설마 저렇게 잠을 깰 줄이야.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되는 와중에 시하의 입이 열렸다.

“백동…. 다 마셔써?”

“어? 응. 다 마시라고 준 거 아니야?”

“개차나?”

“응? 뭐가?”

역시 시하다.

소중한 레드 물보다 백동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구나.

너무 착한 그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거 레드 물이야.”

“어. 체리 맛이던데. 빨간색. 근데 뭔가 좀 더 섞인 거 같기도 하고.”

“백동 물 부족 대. 오줌 모싸.”

“엉?”

상황을 알고 있는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큭큭. 아 진짜.”

“형님 이게 무슨 소립니까? 이거 이상한 음료였습니까?!”

“아. 그거? 못 마시는 물이지. 물 부족하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할까?”

“예?”

가끔 상상의 세계는 예상치 못한 종착지에 도달하곤 한다.

백동의 배가 그런 거겠지.

“자. 일단 병 주고 샤워나 해. 우린 이만 갈 테니까.”

“아니. 무슨 음료인지는 알려주고 가셔야죠.”

“아. 몰라. 알아서 생각해. 죽지는 않겠지.”

“아니. 그러시면 제가 너무 무섭잖습니까?!”

시하가 문으로 쏙 들어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백동. 비실이 만드러. 우물신 불러서 말해. 물 아껴 쓸게~ 해.”

“뭔 말이야.”

“야. 문 잡지 말고 손 떼. 손 다친다.”

백동환이 뭔가 억울한 듯이 애원했지만 손을 찰싹찰싹 때려서 문을 놓게 했다.

하여간 엄살은.

“형아. 업써.”

시하가 신발장에서 빈 병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없어진 게 아쉬운 모양이다.

나는 그런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앉아서 눈을 맞췄다.

“시하야. 그럼 우리 여기에 다른 거 채워 넣자.”

“아? 딴 거?”

“응. 시하가 넣고 싶은 거 뭐든지.”

그게 마법의 물약은 아니겠지만 시하의 세계에서는 마법의 물약이 될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는 알겠다는 듯이 빈 병 입구에 턱을 쑥 넣었다.

“아아.”

아니. 턱은 왜 넣는데?

하여간 시하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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