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500)

197화

일단은 대충 먹었다는 말에 카페에서 간단한 디저트와 음료를 새로 주문했다.

크로플에 크림이 얹어 있어서 꽤 먹음직해 보였다.

하잉은 그걸 보며 정말 예쁜 것 같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냥 와플이 아니네요? 뭔가 좀 다르게 생겼어요.」

「아, 네. 이건 크로아상을 찍어서 만든 거예요.」

「와. 그렇군요.」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은 만나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일과 관련된 이야기에 들어갔겠지만, 베트남은 좀 달랐다.

더위가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듯이 어딘가 느긋한 면모도 존재했다.

또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관계를 중요시했기에 이렇게 담소로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그럼 이제 제품 이야기 좀 해볼까요?」

드디어 시작된 계약 이야기.

우리는 이 제품이 왜 베트남에 먹힐지 늘여놓았다.

하잉 역시도 신중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럼 혹시 준비된 서류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느긋한 면모가 있다고 해서 계약도 느긋할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계약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꼼꼼한 면을 보인다.

구두 약속보다는 계약서에 세부적으로 더 추가하는 걸 선호한다.

이 과정을 다 겪고 나서야 우리는 기분 좋게 구두로 확정을 받았다.

「좋아요. 헤어스프레이 쪽은 저희 쪽에서 유통해서 구매할게요.」

「감사합니다. 후회 없으실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이렇게 만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겠네요. 앞으로 연락은 여기 적힌 메일을 통해서 하도록 할게요.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을 거예요.」

「전 오히려 특별한 일이 생겼으면 하네요.」

「네?」

나는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굉장히 잘 팔렸다는 연락이 기다려져서요.」

「아! 그런 특별한 일이면 저도 환영이죠. 참 재밌는 분이신 거 같아요. 다음에 저도 필요할 때 통역사분 고용해도 되요?」

「글쎄요. 제가 상황상 베트남으로 날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그래도 한국에 또 올 때는 물어봐도 되죠? 오히려 제 쪽에서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제가 그때 일이 없으면 얼마든지요.」

아무래도 나를 좋게 봤는지 연락처 역시 교환을 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야 교수님이 긴장을 풀었다.

“후우.”

“괜찮으세요?”

“안 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어. 좋게 흘러가서 다행이야.”

“왜요? 안 될 줄 알았어요?”

“난 자신 있는데 저쪽에서 보는 시야는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도 교수님은 긴장한 티가 안 나던데요?”

“그래? 내가 포커페이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지.”

“아, 하긴. 그래도 안심하지 마세요. 샘플을 챙겨가서 별로라고 생각되면 파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조항도 꼼꼼히 넣긴 했지.”

“아직 돈거래도 안됐으니까 우리도 제대로 꼼꼼히 다시 확인해 보시죠.”

“그래. 일단 계약서는 변호사 쪽에 맡겨서 검토해 봐야지. 내가 읽어봤을 때는 별문제 없긴 했지만.”

교수님과 나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이제 시하를 만나러 가야지.

***

어릴 때 늘 하던 장난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며 놀리기.

어린이집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종수가 발이 삐끗해서 넘어지며 ‘이에엑!’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아픈 것보다 너무나 쪽팔린 나머지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다 나가주세요.’라고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승준이 아니었다.

“이에엑! 푸하하! 이에엑! 아, 진짜 웃기다.”

“야!”

“아, 왜? 이에엑 종수야.”

“내가 언제 그랬어!”

“방금 넘어지면서 그랬잖아.”

그렇게 노려보고 있을 때 재휘가 종수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는데 웃음을 참기 위한 것이었다.

“아, 응. 괜찮아.”

“이에엑!”

“아! 저게 진짜!”

종수가 승준에게 손을 뻗었다.

잡히지 않으려고 뒤로 물러선다.

“이에엑 괴물이 나온다. 하하하.”

“야! 거기서!”

“하하하.”

종수가 열심히 뛰지만 승준을 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운동신경으로는 승준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편 시하는 한쪽에서 달걀 장난감으로 하나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전에 달걀말이를 만들어서 자신감이 넘쳤다.

계속 달걀만 톡톡 두드렸다.

그걸 본 하나는.

“시하 여보야. 아직도 달걀 깨고 이써?”

“아아. 다 해써.”

“그거 아까도 말했짜나. 어휴. 오늘 안에 끝나는 거 마찌?”

“아아. 다 해써.”

“맨날 다 해때. 어떠게 된 게 우리 집에서 나만 바쁘냐고. 치어도 치어도 끄치 업써.”

하나는 엄마 흉내를 꽤 잘 낸다.

물론 그걸 알아보는 건 눈썰미 좋은 선생님뿐이다.

경력에서 나오는 노련미를 무시할 수 없다.

시하는 그러던지 말든지 달걀 장난감을 가지고 한 땀 한 땀 소중히 깨고 있다.

“아아. 시하 엄청 커. 달걀말이 엄청 커.”

엄청 큰 걸 만들기 위해 많이 넣긴 했지만, 앞에 있는 바가지가 작은 게 아이러니한 점이다.

“다 해써.”

“이제 다 한 거야?”

“아냐. 시하 저서. 저서.”

“휴. 아직도 머러써?”

“아아.”

열심히 숟가락으로 바가지를 저었다.

휙휙 둥글게 그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수와 승준은 힘든지 잠시 쉬고 있었고 하나는 청소기 장난감으로 바닥을 청소했다.

선생님이 그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자! 여러분. 우리 흉내 내기 놀이 안 할래요?”

“흉내 내기?”

“네. 집에 엄마, 아빠, 형아도 좋고. 다른 동물들도 좋고. 잘 따라 하는 사람에게는 선생님이 과자를 드리겠어요.”

“와아!”

“대신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가위바위보로 만들어 봐요.”

아이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이건 연상기억법과 연관되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발달시킬 수 있는 놀이.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자. 시하야. 가위바위보!”

“아아. 보!”

바위와 가위.

선생님이 손으로 가위 위로 주먹을 올려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짠! 달팽이입니다. 달팽. 달팽.”

“아아!”

시하가 선생님의 기술에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도 재밌을 것 같은지 눈을 빛냈다.

종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달팽이는 안 우는데.”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종수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니?

“시하야. 이제 시하가 가위랑 바위로 뭔가 흉내 내는 거야. 못하면 시하가 지는 거.”

“아?”

시하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고민이 깊어졌다.

선생님이 웃으며 카운트를 셌다.

“오! 사! 삼! 이! 일!”

땡! 하려는 걸 시하가 받았다.

“이. 삼. 사. 오.”

“아니, 카운트를 올리라는 말이 아니잖아.”

선생님이 시하를 보며 황당해했다.

설마 저런 발상을 하다니…. 생각도 못 했다.

의도와는 벗어난 창의력 상승.

아니 꼼수 상승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씩 대결하는 거예요. 다들 재밌겠죠?”

“네!”

“그럼 짝지어서 해봐요.”

그렇게 시작된 배틀.

하나와 시하. 승준과 종수. 윤동과 은우. 선생님과 재휘.

시하와 하나가 먼저 가위바위보를 했다.

서로 나온 것은 바위.

시하는 주먹 두 개를 보다가 붙였다.

“달걀말이!”

아까 다 완성되지 않는 음식을 이야기했다.

하나가 그걸 보며.

“아. 나도 생각했었눈데.”

그대로 패배 선언.

옆에 있는 승준과 종수는 불꽃 튀기는 대결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더 지식이 많았던 종수의 승.

그렇게 시하와 종수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떨어진 쌍둥이들은 시하를 응원했다.

“시하야. 이겨! 이에엑 괴물을 이기는 거야.”

“시하야. 이거 끝나고 소꿉놀이마저 해야 해.”

“아아.”

“아니. 너희들!”

그렇게 평온한 시하와 분개하는 종수가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보자기와 보자기.

종수가 먼저 지식을 뽐냈다.

이 대결이야말로 아주 유리했다.

두 손을 합장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절에 어서 오세요. 스님이야.”

“수님?”

“아. 스님 몰라?”

“몰라.”

“아,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머리카락 없이 절에 살고 있다고.”

“왜?”

“어? 그건 수행을 하기 위한 거야.”

“왜?”

“몰라. 빨리해. 네 차례야.”

“아아.”

시하가 종수에게 다가가 뺨을 찰싹 붙잡았다.

조금 힘이 들어갔는지 종수가 아얏! 하는 소리를 내었다.

“기여버. 기여버.”

“아. 뭐야?”

“형아야.”

“엥? 너희 형아 이렇게 뺨 붙잡고 귀엽다고 해?”

“아아.”

시혁이 강아지에게 그러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시하의 볼은 살살 만졌지만.

종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음 지식을 뽐냈다.

“푸드덕. 푸드덕. 새야. 새.”

“아아. 잘해써.”

“아니. 칭찬하란 말이 아니잖아. 이거 일부러 이렇게 해서 시간 끄는 거 아니야?”

종수는 말하다 보니까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더는 시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카운트를 셌다.

“오! 사! 삼!”

“아아. 종수 하티. 시하 소꾸노리 가야 해. 바이바이.”

“야!”

그렇게 종수의 승리.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시하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진 기분을 느꼈다.

분명 승준을 이겼을 때는 복수에 성공해서 짜릿했는데 이상하게 시하랑만 붙으면 찝찝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하는 이길 생각이 전혀 없고 즐길 생각만 가득하다.

둘의 작은 생각 차이가 다른 태도로 나오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 어긋남을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결승전 올라가야지. 선생님이랑 하면 끝이에요.”

“우음.”

그렇게 종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축하의 박수를 받고 돌아서는데 시하와 쌍둥이들이 싱크대 장난감 쪽으로 간다.

그리고 시작된 엄마, 아빠, 형아의 흉내 놀이.

별 신경도 안 쓰는 모습에 입이 삐죽 나온다.

“종수야.”

“응? 왜 그래. 재휘야.”

“진짜 마니 아네. 생각도 못 한 게 자꾸 튀어나왔어.”

“흠흠.”

재휘의 말에 기분 좋아진 종수였다.

***

-시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제나 쫑알쫑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한다.

달걀말이를 만들었다며 내게 주먹을 입에 넣어준다.

“형아. 머거.”

“으응?”

“달걀말이.”

조그마한 주먹을 한입에 앙 하고 물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 반짝이는 눈을 보라.

깨물고 싶은 건 볼살인데 손을 물어야 하다니 좀 슬프다.

먹는 시늉을 해주자.

“냠냠.”

“형아. 마시써?”

“와! 이거 시하가 만든 거야?”

“아아!”

“정말. 정말. 맛있네. 다음은 소금을 적게 뿌리자.”

“아? 소굼?”

반응을 보니 소금을 안 넣었나 보다.

그런데 왜 손… 이 아니고 달걀말이가 짤까?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정말 저게 맛있을 거라고 묻는 건 아니겠지?

그냥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차에서 내릴까?”

“아냐.”

“집에서 많이 들어줄게.”

“아냐. 시하 차도.”

“시하 차도 들어야 한다고?”

“아아.”

그렇구나. 모두에게 열심히 말해야 하는구나.

말을 자주 하면 좋지. 요즘 조금 말이 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놀이를 했는데?”

“가이바이보.”

“그건 꽤 자주 하는 거 아니야?”

“아냐. 가이바이보. 형내 내기야.”

“뭔 내기라고?”

“형내 내기.”

“아! 흉내 내기?”

“이케. 이케. 해써.”

혼자서 두 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서로 같은 걸 낸다.

가위 두 개.

손을 들어 머리에 붙이더니.

“깝초. 깝초. 토끼!”

“오! 그렇게 하는구나. 재밌겠네. 근데 깡총깡총이야.”

“깝초. 깝초.”

“다른 사람들에게 토끼를 그렇게 소개하면 안 돼. 알았지?”

“왜?”

“어?”

시하가 발음을 조금 조심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한동안 차 안에서 시하의 말을 들었다.

오늘 하루 굉장히 재밌는 게임이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뒤통수 한 대 맞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네? 계약 파투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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