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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화 (191/500)

191화

꾸미는 것에 조금 관심이 있는 남자라면 기본적으로 헤어드라이어, 왁스, 스프레이까지는 들고 있다.

열심히 만든 머리카락 모양을 고정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걸로 구름을 만들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없겠지만.

지금 내 앞에 그런 남자들이 있다.

아니, 아이들이 있다.

“형아. 비실이. 구룸.”

“그래. 비실이 구름을 만들었어?”

“아아. 올라가. 올라가.”

“그래. 비실이도 하늘로 올라가는구나?”

아이들이 신기할 만했다.

이런 실험까지 준비한 것을 보니 다른 생각도 든다.

어지간히 관심 없었으면 이런 걸 준비할까?

괜히 화학과 부스가 안타깝기도 하다.

그건 옆에 있는 섬유탈취제와 대비되어 더욱 안쓰럽게 보인다.

그래도 지금은 애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관심 있게 기웃거리니 다행이다.

“저어…….”

화학과 학생 한 명이 살며시 나를 불렀다.

말끔하게 생긴 그가 쭈뼛쭈뼛되며 살살 눈치를 본다.

“아, 네. 왜 그러시죠?”

“혹시 스프레이에 관심 없나요? 애들에게 이렇게 놀아줄 수도 있고. 하나 갖춰두면 좋아요.”

“하하.”

아무래도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나 본데 어림도 없지.

이미 헤어스프레이라면 집에 구비가 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비실이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저런 시도도 썩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든 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으니까.

“전 헤어스프레이가 집에 있거든요. 아직 다 떨어지지도 않았고요.”

“아. 있으시구나.”

더는 권하지 않고 시무룩해하며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뭔가 이미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인 것 같다.

“그런데 헤어스프레이 성분이 어떻게 돼요?”

치익.

나는 공중에 스프레이를 뿌려본 다음에 냄새를 맡았다.

신기하게도 아무 향이 나지 않았다.

“냄새가 안 나네?”

“아! 네! 저희 스프레이는 아무런 향이 없거든요. 무향! 그걸 노리고 교수님 밑에서 같이 개발했어요. 성분은 허브 쪽 추출물을 써서 자연의 느낌을 강조했죠. 뭐 향은 안 나지만.”

“와. 엄청 열심히 개발하셨나 보네요.”

“네. 네. 요즘 미용 관련해서 굉장히 수요가 크잖아요. 해외에도 많이 팔리고. 그래서 이번에 헤어 관련해서 만들어본 거거든요.”

“좋네요. 천연 제품의 느낌을 강화한 거죠?”

“네! 네!”

이런 이야기를 손님이랑 별로 대화해본 적이 없는지 엄청 좋아한다.

“하하. 팔기는 힘들겠어요.”

“그, 그러게요. 아무래도 대기업하고 접촉해봐야 하는데. 타깃층을 노려도 조금 힘들긴 하네요.”

“아예 베트남을 노리고 만들었다고 해도 되지 않나요? 무향이면 한국에도 먹힐 것 같기도 한데.”

무조건 향이 좋다고 해서 시장에 먹히는 건 아니다.

머리에 바르는 게 많을수록 그 향이 섞이는데 그게 오히려 악취가 될 수 있다.

그 부분을 마케팅하면 분명 입찰도 되지 않을까?

“베트남이요? 무향은 노렸던 포인트이기는 한데 베트남을 노린다는 건 전혀 생각지 못했네요.”

“하하. 그냥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제 가야겠네요. 파이팅.”

“아, 네. 감사합니다.”

“이거 하나 사고 갈게요.”

그래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하나 사주자.

그렇게 헤어스프레이를 사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다.

“혹시 콕 집어 베트남이라고 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옆에 학생이 ‘아, 교수님.’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둥근 안경을 쓰고 입가에 팔자주름이 짙다.

웃음을 머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안경알 속에 있는 눈은 호기심이 가득 차 있다.

그 모습에 나는 살며시 웃음으로 답하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제 밥벌이라 쉽게 말해줄 수는 없겠는데요?”

내 당돌한 말에 교수는 소탈하게 웃었다.

이마를 살며시 긁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럼 혹시 이 상품 판매에 관심 없나? 학교 지원 사업 중에 하나거든. 학생 말을 들어보니 해외 루트를 뚫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파이팅입니다.”

“흠흠. 같이 참가하면 대박일 텐데.”

“에이. 대박이 그리 쉽게 나나요. 그럼 저는 이만.”

“아. 혹시 학과랑 이름이 뭔가.”

“국문과 이시혁입니다. 지금은 바빠서…. 다음에 또 뵐게요.”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애들이랑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뭐 연락을 주겠지.

사실 화학과가 준비하는 사업 중 하나가 무척 궁금하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패를 다 까면서 어필하고 싶지는 않았다.

헤어스프레이를 막상 써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처럼.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내 가치를 올려줄 때도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할까 싶기는 하지만.’

나는 손에 있는 헤어스프레이를 흔들었다.

“형아. 비실이? 만들어?”

“응. 이걸로 우리 비실이 만들자.”

과연 이 제품이 정말 비실거릴지 아니면 실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아아!”

나는 시하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 종일 구름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아 괜히 샀나?

뭐든 환불은 힘들 거라는 점에서 판매는 성공했는지도 모르겠다.

***

흰 구름이 어둡게 물들이는 시각.

하늘은 빛은 잃었지만, 축제 마지막 날 쏘아 올리는 불꽃에 의해 꽃이 피었다.

펑-! 펑-!

어린이집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서 불꽃을 보았다.

굳이 사람 많은 무대 공연에는 가지 않았다.

가지 않아도 이 주변 어느 곳이든 저 하늘에 새겨지는 색들을 볼 수 있기에.

‘등록금이 한순간에 없어지는구나.’

좀 더 감상적인 생각보다 금전 감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니 세속에 찌든 사람 같기도 하다.

저 불꽃은 사실 돈으로 태운 황금색일 거야.

붉거나 주황색이 보이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금색으로 보인다.

내 옆에 있던 시하는 신기한지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다.

“형아! 형아! 바다! 바다! 해써. 시하 해써.”

“응. 전에 바닷가에서 불꽃 놀이했지?”

“달라. 커. 커.”

“저건 엄청난 현금이… 아니라 큰 불꽃을 올린 거야.”

“구룸 친구야? 친구?”

“뭐? 하하하.”

설마 구름의 친구냐고 물어볼지는 생각도 못 했다.

뭐 어떻게 보면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불꽃이 올라가 ‘거 자리 좀 같이 씁시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시하가 저렇게 말하니 아까와는 다른 하늘이 보인다.

“저기 하늘로 와서 구름에게 안녕? 널 보러 여기까지 왔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네. 시하는 어떻게 생각해?”

“시하는 이케 해써. 몽실이, 비실이 하이하이. 짜잔.”

“짜잔 하고 놀라게 해 주는 거야?”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뻗어서 불꽃을 향해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저렇게 해도 잡히지 않는 걸 알면서도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나도 모르게 궁금해서 같이 하늘에 손을 뻗었다.

그때 승준이 우리의 말에 참가했다.

“아니야. 저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서 여러 개로 도깨비슛! 하는 거야.”

과연.

저기 퍼지는 불꽃이 전부 공이라는 말이지?

이것 역시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다.

정말 오승준다웠다.

“아니야. 하나는 다르게 생각해!”

“오! 하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포토타임이야. 포토타임. 사진 찌그라고 포즈 취하는 거야.”

“와. 그렇구나.”

얘들에게는 불꽃이 무슨 살아있는 생물이다.

펑-! 펑-!

하늘에 별이 빛을 잃는다.

불꽃이 너무 눈이 부셔서.

그런데도 별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빛이 나고 있다.

저렇게 화려하게 폈다가 지는 게 아니라 저 별처럼 시하가 꾸준히 빛을 냈으면 좋겠다.

절대 등록금이 타들어 가며 속이 타들어 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저 무대에 있을 아이돌들도 잠깐 반짝 데뷔했다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시하야.”

“아?”

“여기서 불꽃놀이 보고 있어. 형아가 잠깐 마실 거 사 올게.”

“아냐. 시하도 가치.”

“불꽃놀이 계속 안 봐도 돼?”

“아아. 안 바. 시하도 가치.”

“하하하. 그래. 친구들 것도 빨리 사 오자. 저기 파니까 금방이야.”

“코코아. 코코아.”

“그래.”

나는 시하의 손을 잡고 코코아를 사러 갔다.

쌍둥이들과 승준 엄마의 몫까지.

시하는 캔 코코아가 손에 따뜻한지 볼에 살짝 붙였다.

“뜨거~!”

볼에 느껴지는 온도가 손보다 뜨거운지 깜짝 놀란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보았다.

“손은 안 뜨거?”

“손 안 뜨거. 볼 뜨거. 왜?”

“아하하. 원래 손이 좀 더 따뜻해서 그래. 나중에는 볼도 따뜻하게 느껴질 거야.”

자그마한 손으로 캔을 조물딱조물딱 열심히 만진다.

하긴 지금 좀 쌀쌀하긴 해서 이런 따뜻한 게 좋긴 하다.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벤치로 돌아왔다.

승준과 하나에게 캔을 쥐여주자 다들 좋아했다.

“우와! 따뜻해! 시혀기 형아 짱이다. 고마워.”

“시혀기 오빠 고마어~”

“아아. 형아. 고마어.”

시하야. 너는 왜 지금 고맙다고 하니?

쌍둥이가 하길래 따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 아이가 불꽃놀이를 보며 캔을 주물럭거린다.

승준 엄마도 캔을 받아서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냥 코코아로 통일했는데 커피가 좋았으려나요?”

“아니요. 커피야 일하면서도 많이 마시는데요.”

“그렇죠? 하하하.”

그때 시하가 내 손등에 손을 올린다.

뭐지? 형아 손 따뜻하게 해주려는 건가?

내가 응? 하면서 의문 어린 눈으로 보자 시하가 말한다.

“형아. 이거.”

“아. 캔 따줄게.”

내 착각이었다.

이거 마시려면 뚜껑을 따줘야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코코아 냄새가 살며시 난다.

“자. 여기.”

“아아. 형아. 고마어.”

“시혀기 형아! 나도!”

“하나도! 하나도!”

옆에서 ‘엄마가 해줄게.’라고 말하지만 하나는 벤치에서 내려와 나에게 코코아를 내민다.

내가 가뿐히 캔을 따주자 하나가 헤헤 웃으며 다시 벤치로 돌아가 앉는다.

승준 엄마는 옆에서 눈웃음을 치며 하나를 보았다.

“하여간. 승준아. 엄마가 해도 되지?”

“아니야.”

“왜? 너도 시혁이 형아에게 따달라고 하게?”

“아니. 내가 해볼래.”

승준이 열심히 손에 힘을 준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 어려운 걸 승준이 해냈다.

엄마는 그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

나는 저렇게 기다리기도 해야 하는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승준이 하는 걸 보더니 나를 한 번 보았다.

“형아. 시하도. 형아 꺼. 해주께.”

“뭐? 하하하. 시하는 형아 꺼 해줄 거야?”

“아아.”

“그래. 그럼 해봐.”

나는 혹시 손을 다칠까 봐 일단 엄지를 한 번 캔 뚜껑에 넣어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시하가 캔을 받아서 열심히 손가락을 넣어본다.

의자에 캔을 딱 붙여서 허벅지로 감쌌다.

완전 고정.

저건 어디서 저리 배웠는지 모르겠다.

“이케. 이케 해.”

달칵. 달칵.

뚜껑이 왔다 갔다 한다. 한 번에 하기 쉽지 않은 모양.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힘을 준다.

딱 소리가 성공을 알린다. 마치 축포처럼.

“형아!”

“응. 다 됐네?”

“아아. 다 해써.”

“이야. 시하 힘 쎄네.”

“머거. 시하 해써. 힘 쎄.”

“고마워. 형아가 잘 먹을게.”

우리는 그렇게 함께 앉아서 따뜻한 코코아를 목에 흘려 넣었다.

속이 따뜻해진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따뜻해진 것인지.

곁에 붙어서 앉아 있는 그 속에 온기가 가득하다는 건 알겠다.

아마 이제 나는 축제하면 시하와 함께 캔 코코아를 나눴던 온기를 기억하겠지.

어쩌면 시하는 잊어먹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다.

언제나 추억을 기억하고 기록해 주는 건 가족이니까.

하늘 위에 마지막 불꽃이 펑-! 하고 터지며 축제의 끝을 알렸다.

하지만 속에 있는 온기만은 계속 남아서.

하늘에는 꽃이 계속 피어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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