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축제 무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대는 연예인이 오는 때이다.
시작은 약간 한산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눈사태처럼 불어나 절정을 향한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춤을 췄던 시각.
한마디로 정말 많은 대학생이 봤다는 소리다.
그 파장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야야. 어제 무대 봤어?”
“하암. 아니. 너무 피곤해서 어제 집 갔는데?”
“쯧쯧. 그걸 못 봤어? 어린이집 애들이 무대 위에 나왔는데 겁나 힐링되더라. 그 뒤에는 샴블이 나와서 크으. 쥑여줬지.”
“샴블 예뻤냐?”
“엄청났지.”
“애기들은 귀여웠고? 춤은 잘 췄어?”
“잘 추긴 잘 추더라. 연습 많이 했을 거 같던데?”
“아, 오늘은 안 함? 저거 오후에 있던 스케줄이었지?”
“어. 오늘은 안 함. 어제가 시작이자 마지막이었어.”
“아쉽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광경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다.
누군가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 때 누군가는 남은 시험을 치르고 있었으니까.
그 분노는 당연히 교수님에게 돌아갔다.
왜! 왜! 시험을 이렇게 늦게 잡았나!
하지만 오늘에서야 끝나는 이 시험 덕분에 마지막을 불태울 대학생들이 많았다.
“오늘 신나게 놀자.”
그렇게 대학생들이 다짐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도 말이 돌고 있었다.
알리사가 있는 게임 개발 부스에서 말이다.
“어제 시하 so cute! 진짜. 진짜 귀여웠어.”
알리사가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는 듯이 웃었다.
주변에 있던 파랑몰 멤버들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의문을 가졌다.
“그건 좋았는데 이 남은 건 어떻게 처리할 거야?”
“아. 이거?”
“응. 재고가 생각보다 많이 남았는데?”
“얼마나 남았지?”
“1300개?”
“우리가 그렇게 많이 만들었나?”
“그렇다니까. 이틀간 200개는 팔았는데.”
“괜찮아. 이거 시범 판매였잖아. 나머지는 파랑몰에 판매하면 돼.”
“진짜 잘 팔릴까?”
“아니면 사은품으로 넣는 이벤트를 해도 되고.”
“이야. 노동값은 아예 없겠다.”
“적자만 안 나면 되지. 그래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 말에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때 쓰는 표현 맞아? 벌써 소를 잃을 판인 거 같은데?”
“아직 안 잃었으니 맞는 거 아니야? 요즘 한국 속담 공부 중이야.”
“어? 모르겠다. 가끔 알리사랑 말할 때 나도 혼란스러워. 제발 새로운 시도는 하지 말자.”
“온고지신!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자!”
“어, 그래. 그 말도 맞지.”
알리사가 오늘 하루 잘 써먹었는지 자신 있게 엣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우리 사무실에 남은 게 1000개지?”
“응.”
“여기 300개 있고.”
“응.”
“그럼 남은 건 해외로 보낼까? 패드는 해외에서 더 인기잖아. 스티브 백이 좋아할지도 몰라.”
“오! 그런가?”
“그럼.”
“근데 해외에도 패드 가방 같은 건 많지 않을까?”
“아. 그렇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더니!”
“이때 쓰는 표현 아닌 거 같은데?”
그때였다.
갑자기 두 여성이 다가오더니 폰을 들고 물어보았다.
“저기요.”
“네?”
“혹시 이거 여기서 판 거예요?”
“이게 뭔?”
알리사가 여성의 폰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인별이 켜져 있었는데 샴블 계정의 멤버 하나가 가방이 너무 귀엽다며 올린 거였다.
강인대 축제라고 친절하게 해시태그도 달았다.
“어?”
“댓글에 여기서 판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네! 여기서 판 거 맞아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옆에 있는 친구는 생각했다.
아직 고생은 하지도 않았잖아?!
물론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웃는 얼굴로 가방을 팔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축제 마지막 날. 가방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
-어린이집.
아직 대학교 축제는 끝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미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표정으로 바닥에 다 같이 널브러져 있다.
선생님 역시도 어제의 피로를 다 풀지 못했는지 시하 옆에 누웠다.
“샘.”
“응. 시하야. 왜 그러니?”
“모해?”
“지금 선생님은 중요한 의식을 하는 거야. 엄청난 일을 끝내면 나에게 휴가를 주는 거지. 사람들에게는 워라벨이 중요하단다.”
“어라벨?”
“워라벨이야. Work life balance.”
그때 옆에 있던 승준이 말했다.
“나 알아! 팅커벨 친구야. 분명해. 이름도 비슷해!”
“아! 하나도 아라. 팅커벨 날 수 있게 해준데. 설마 시혀기 오빠는 어라벨을 만나서 구름 가져온 걸까?”
선생님이 애들의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때 종수가 반듯하게 누운 채로 말했다.
“야! 사람이 어떻게 구름을 가져오냐! 말도 안 되거든!”
“아니거든! 시혀기 오빠는 다 할 수 이써!”
“아무리 그래도 그건 뻥이지!”
“아닌데…. 진짠데…….”
종수의 날카로운 반박에 하나가 입을 삐죽였다.
시하가 옆으로 누워서 종수를 보며 말했다.
“아냐. 형아. 구룸 가져써.”
“하하.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이케이케 해써!”
시하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옆으로 누운 손은 종수의 옆구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퍽. 퍽.
“아악. 간지러! 간지럽다고.”
“이케이케 해써.”
“알았다고. 간지럽다니까!”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믿음이 부족한 자에게는 천벌이 내릴지니.
시하의 손이 구름을 조심히 잡는 모습에서 종수의 옆구리가 공략됐다.
종수가 너무 간지러워서 옆으로 구르며 재휘를 쳤다.
“아야!”
“아. 재휘야 미안.”
“종수 너! 복수다!”
재휘는 하얗게 불태웠기에 오늘은 참지 않았다.
곧바로 종수를 덮쳤다.
“으윽.”
종수가 재휘에게 깔리게 되었다.
그걸 본 승준이 이때다 싶어서 벌떡 일어나 재휘의 위에 올라탔다.
“아하하! 햄버거다. 햄버거!”
“아아! 햄버거.”
승준, 시하 패티 두 개 안착.
그 압력에 종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으아악!”
“끄아악!”
불쌍한 재휘는 같이 압력을 느꼈다.
네 아이가 뒹구는 걸 보고 하나는 오빠를 밀었다.
“에잇!”
“아악.”
그대로 쓰러지는 햄버거.
끝을 고했는지 종수가 숨을 헐떡였다.
“허억. 살았다. 고, 고마워. 하나야.”
“응? 아닌데?”
“어? 뭐가?”
“하나 못 올라가서 안 탄 건데?”
“뭐?”
하나가 종수 위를 깔고 앉았다.
아까 반박했던 거에 대한 자그마한 복수였다.
선생님이 일어나서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말렸다.
“자. 이제 그만하세요. 선생님이 이것보다 더 재밌는 걸 알려줄게요.”
하지만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다.
크게 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까.
어제의 춤 여파가 애들의 에너지를 크게 뺏었다.
하지만 거기에 당할 선생님이 아니었다.
“후후후. 다들 구름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놀라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구름을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만든다고?! 대체 어떻게?
종수가 말했다.
“거, 거짓말!”
“선생님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시혁이 형아가 구름을 가지고 올 수 있으면 선생님은 구름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거, 거짓말!”
“궁금하시면 선생님을 따라오세요! 아직 축제는 끝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뭐에 홀린 듯이 따라 일어섰다.
그야말로 마지막 축제를 불태울 궁금증이었다.
***
자연계 화학과 부스.
셋째 날이 되어서 그런지 다들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첫날, 둘째 날에 쓴맛을 봤으니까.
화학과가 축제에 맞춰 준비한 건 섬유탈취제와 헤어스프레이였다.
섬유탈취제는 늘 인기가 있어서 놓은 것이었고 스프레이는 이번에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렇다. 화학과는 자신이 있었다!
무향 스프레이를 선보이며 판매까지 할 계획이었지만 사람들 반응은 무관심.
더욱 관심을 끌려고 신비한 반응까지 이끌 수 있게 참여를 유도했지만, 어딘가 취지와 엇나가 보였다.
“옆쪽 섬유탈취제는 잘되는데 왜 헤어스프레이는 인기가 없지?! 보람이 없어. 보람이.”
“아무래도 헤어스프레이는 검증된 곳에서 사는 게 좋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
“이것도 검증된 거야. 교수님과 학생들이 만든 결정체인데.”
“아무래도 광고 효과가…….”
“제길. 이래서 내가 대기업을 싫어해.”
“갑자기?! 근데 입사하라고 하면 할 거잖아?”
“당연한 거 아니야? 근데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니.”
헤어스프레이 부스 앞에서 학생 두 명이 그런 만담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몇몇이 관심을 보일 때만 호객 유도를 하다가 끝나면 다시 앉는다.
“근데 어제 공연 진짜 재밌지 않았어?”
“완전 재밌었지. 어린이집 애들 진짜 귀엽더라.”
“그런 애들이 여기 와서 홍보를 해주면 딱 좋을 텐데. 그건 불가능하겠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저 멀리서 뭔가가 보였다.
“어? 저기 어린이집에 애들 아니야?”
“맞네. 선생님이신가 본데? 어? 야, 야. 우리가 아침에 보러 오라고 말했던 분 아니야?”
“그러네. 나중에 들러보겠다고 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었어?!”
아이들이 도착했다.
한산한 부스가 쫑알쫑알 말하는 곳이 되며 활기차졌다.
아이들이 좋은 에너지를 뿌렸다.
하나가 말했다.
“여기 구름 만들어요?”
“와! 나 저거 알아. 스프레이야. 스프레이!”
“구룸!”
선생님이 후후후 웃으며 책상 위에 있는 빈 병을 잡았다.
“자. 여기 보세요. 여기 빈 병으로 구름이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화학과 학생은 황당해했다.
저기요? 그거는 저희가 소개해줄 말인데요?
선생님이 그런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보세요. 여기 뜨거운 물을 먼저 부어요. 물 좀 끓여다 주시겠어요?”
“아, 네! 금방 됩니다.”
뜨거운 물을 빈 병에 넣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 헤어스프레이를 쥐여주고 뿌리게 했다.
칙칙.
종수와 재휘가 의구심을 가득 품은 체 정석으로 두 번 뿌렸다.
승준은 신이 나는지 마구 뿌렸고, 하나는 적당히 세 번.
윤동은 관심 없다는 듯이 한 번만 치익.
은우는 히죽 웃으며 아이들이 뿌린 만큼.
“몽실?”
시하는 스프레이를 심각하게 쳐다보았다.
‘정말 여기에 몽실이가 나온다고?’라고 생각하며 한 번 흔들어보았다.
그걸 본 선생님이 재촉했다.
“시하야. 빨리 뿌려서 뚜껑을 닫아야 해.”
“구룸 짜잔 해?”
“응. 이거 뿌리면 짜잔 합니다.”
“아아.”
그제야 스프레이를 뿌리고 뚜껑을 닫았다.
그 위에 얼음을 하나씩 올려두었다.
“어? 승준아. 얼음 먹으면 안 돼요.”
“앗! 들켰다.”
그렇게 조금만 기다리자 흰 연기가 병 안에 가득 차게 되었다.
애들이 구름이 생겼다며 놀라워했다.
“와! 진짜 구름이 생겼다. 신기하네!”
“하나도 신기해!”
“아?! 몽실!”
시하도 다시 만난 몽실이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몽실의 모습이 달라서 의문이 생겼다.
“샘. 구룸?”
“응. 구름이야. 근데 이건 전에 시하가 가진 구름하고 좀 다르지? 여러 구름이 있어서 그래.”
“아아.”
시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이제 뚜껑을 떼면 구름이 올라가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뚜껑을 떼자 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시하는 그걸 보며.
“비실이. 비실이.”
비실비실 올라가는 구름.
몽실이와 다르지만, 하늘로 돌아가는 형태는 똑같았다.
저 하늘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시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인 아이들이 있어서 몽실이와 비실이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응? 시하야. 여기 있었네?”
“형아!”
“이거 사. 이거. 비실이 짜잔 해! 짜잔!”
“으응?”
시혁은 뭐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학과 학생 두 명은 이거다! 싶어서 시혁을 쳐다보았다.
판매 공략 포인트를 찾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