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9/500)

189화

무대에 올랐다.

시하가 춤췄던 소강당의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인파다.

수백의 눈이 무대를 향하고 있다.

나는 혹시 시하가 질겁할까 걱정스레 돌아본다.

초롱초롱.

시하는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며 손을 흔든다.

저 끝에 누가 있다는 듯이.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줄 알고 같이 손을 흔들었다.

시하가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뒤에서 왁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왁! 엄청 많아!”

“하나도 놀라써!”

“응? 너희들 언제 뒤따라 왔어?”

내가 쌍둥이를 보다가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승준 엄마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설마 쌍둥이가 뛰쳐나갈 줄 몰랐다는 표정.

그때 옆에서 홍광영이 마이크를 들고 다가왔다.

“이야. 황금 막내를 불렀는데 강인돌 멤버 두 명이 더 나왔네요. 정말 영광입니다.”

“아?”

“그럼 먼저 황금 막내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황금 막내 이름은 뭐예요?”

“이시하! 형아 이시혁!”

시하야. 형아 이름 말할 줄 알았어?!

아니. 그게 아니지. 형아 이름은 왜 말하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잘한다.

홍광영도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 형아 많이 좋아하는구나?”

“형아 조아. 레드 형아야.”

“레드 형아가 뭐지?”

시하가 손짓으로 열심히 설명했다.

파닥파닥.

“이케이케. 따다다다다. 레드 형아.”

대충 말을 잘하는 내 모습을 설명하는 것 같다.

뭐든 잘하는 모습이 시하의 기억에 내리박혀있는 거겠지.

“그, 그렇군요. 하하하! 아무튼, 황금 막내라고 불리는 이유가 다 잘해서인데. 노래나 춤을 보여줄래요?”

“노래!”

“오! 노래할 거예요?”

“아아.”

“그렇답니다. 스텝. 여기 마이크요.”

“형아. 가치.”

“알겠습니다.”

뭐지? 어느새 시하랑 내 손에 마이크가 쥐어져 있다.

승준과 하나는 시하 옆에서 딱 붙어서 볼을 들이민다.

하여간 못 말리는 쌍둥이들이다.

이렇게라도 같이 부르면 좋지.

“그럼 어떤 곡을 하실래요?”

“시하 노래해.”

“아니. 그러니까.”

시하가 ‘아아’ 한 번 말하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동구박! 과수언~”

앞에서 누군가의 큰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어째 익숙한 목소리다. 박경준.

“원샷!”

그걸 시작으로 주위에서 다들 따라 불렀다.

“아카시아. 꼬티 할짝~”

“투샷!”

저기요? 여러분? 여기 술자리 아닙니다.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불렀는데 홍광영이 말렸다.

“잠시. 잠시만. 아니, 여러분. 진짜 광인이 된 거야? 애 앞에서 원샷, 투샷이 뭐야?”

자기들도 민망한지 키득키득 웃었다.

“흠흠. 죄송합니다. 혹시 랩은 좀 잘하시나요?”

“랩?”

“네. 황금 막내시니 랩 좀 할 줄 알 것 같은데.”

“아아. 랩 해. 시하 해.”

“오! 할 줄 아시는군요. 그럼 우리 형, 누나들에게 랩을 합시다.”

“형아. 가치.”

흠흠. 안 하고 있던 걸 들켰다.

괜히 부끄럽네. 차라리 나도 사회를 하라고 했으면 잘했을 텐데. 역시 사람들 앞에 노래 부르는 건 부끄럽다.

더군다나 랩이라니.

그런데 시하가 랩을 할 줄 알았던가?

그때 승준이 손을 들었다.

“그럼 내가 비트 줄게. 북치기. 박치기.”

“하나는 손뼉 칠래.”

그래. 고맙다.

시하 옆에 딱 붙어서 하면 되겠네.

그렇게 승준이 북치기 박치기를 반복했다.

짝짝짝.

근본 없는 비트가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질 때 시하가 입을 뗐다.

그에 맞춰서 나도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시하 차. 레드. 구룸. 구룸. 하늘. 가져아.”

사람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는 모양.

학교에 와서 구름인 솜사탕을 가져왔다는 거겠지.

나는 재빨리 시하의 말을 재해석해서 입에 내뱉는다.

“내 차가 붉게 물들어. 석양에 물든 구, 구름. 하늘에서 가져온 것 같아.”

사람들이 ‘오! 그런 뜻이었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뜻 아니야. 이 사람들아.

의외로 이렇게 해석해 주는 랩이 괜찮았나 보다.

내가 다 말하자 시하가 계속 말했다.

“따닥. 따닥. 작아. 하늘 가쒀.”

“따닥. 따닥. 작아지는 불티. 하늘로 올라가는 gossip.”

“따닥. 따닥. 껍질 남아. 먹어 해써.”

“따닥. 따닥. 남아버린 껍질. 그거라도 먹어 핸썹!”

여기까지 부르고 시하는 마이크를 입에서 떨어뜨렸다.

딱 보니까 더는 생각나지 않는 모양.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옆에서 홍광영이 반짝이는 눈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와! 대단하네요. 뒤에 있던 형아도 대단한데요? 진짜 랩퍼 같았는데. 혹시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들 뭔가 기대에 찬 눈이었으니까.

“음. 중간에 가십이라고 넣었는데 흥미 위주의 기사가 붉게 타오르는 거 같이 라임을 맞춰서 불렀습니다. 요즘은 타다 남아버린 재까지 먹으려고 하늘 위로 손을 들잖아요. 누구 한 명 죽을 때까지요. 그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 근데 애기가 그런 뜻으로 불렀다고요? 하하. 과장이 심하시네!”

“흠흠.”

아~ 안 통하네.

그래도 양념을 적당히 쳐야지.

“뭐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애들도 그걸 보며 느끼는 게 있지 않겠어요? 하하. 뭐 상상은 여러분 몫입니다.”

“아무튼, 황금 막내 맞네요. 노래도 잘하고 랩도 잘하고. 옆에서 열심히 리듬 맞춰주는 멤버도 있고. 하하.”

홍광영이 어딘가를 힐끗 보았다.

앞에 있는 스텝이 엑스 자를 표시한다. 그러고는 팔을 둥글게 휘두른다.

뭔가 잘못된 걸까?

잠시 홍광영의 얼굴에 곤란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랩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하나! 춤 그렇게 추는 거 아니거든!”

은우와 윤동.

둘이 어느새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러다 어린이집 다 나오겠네.

그런 생각도 잠시.

종수가 재휘의 손을 잡고 끌고 올라왔다.

정말 다 올라온 것이다.

홍광영이 눈을 빛냈다.

“오오오! 강인대를 대표하는 마스코트! 강인 아이돌이 무대에 다 등장했습니다!”

“꺄아아아! 귀여워.”

“애들 진짜 귀엽다!”

저기요? 언제부터 애들이 강인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 되었죠?

홍광영이 내 황당하다는 표정을 외면하고 말했다.

“아. 혹시. 이번에 ‘보름달’ 노래로 한 곡 보여줄 수 있습니까? 만약 해주면 저희 학생회 쪽에서 어린이집 여러분들에게 책이랑 과자 선물을 해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윤동과 은우는 하고 싶어서 근질거렸고, 종수는 ‘이건 해야 해!’ 하며 강하게 주장했다.

하나와 승준도 무대에 올라와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

재휘만이 ‘아. 나는 내려가고 싶은데….’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렸지만, 애들은 듣지 못했다.

시하는 이미 할 것 다 했는지 마이크를 나에게 넘기며 다리에 찰싹 붙어서 친구들을 구경했다.

저기. 시하야. 너도 관련된 일이야…….

뭔가 굉장히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홍광영이 말했다.

“여러분! 보고 싶습니까!”

“네!”

“그렇답니다. 어린이집 여러분 해 주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저기 노래 준비됐습니까?”

스텝이 손으로 커다랗게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홍광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아이들의 무대를 먼저 감상해 보시죠!”

아이들이 무대에 섰다.

어? 나는 어떡하지?

괜히 뻘쭘하게 서 있지 말고 무대 옆으로 비켜서 있자.

그렇게 애들의 춤이 시작되었다.

***

나는 무대 옆에서 애들이 추는 걸 보고 있다. 폰을 들어 영상도 또 찍었다.

어째 소강당에서 했을 때보다 더 잘 추는 느낌이다.

이제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사람들도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는 얼굴이다.

그래도 윤동이 출 때는 반응이 다르다.

내가 봐도 정말 잘 추는 것 같다. 뭔가 그루브가 다른 느낌이랄까?

그렇게 보고 있는데 무대 뒤편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응?’

보아하니 연예인이 밴에서 내리고 있다.

매니저가 고개를 숙이며 늦은 거에 사과했다.

스케줄 끝나고 바로 오는데 차가 막혀서 늦었다고.

‘아이돌이 다르긴 다르네.’

뭔가 빛이 나는 것 같다.

화장 때문인지 아니면 인기를 가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 느낌이다.

하나가 보면 정말 좋아할 것 같다.

그때 아이들의 무대가 끝났다.

“네. 잘 봤습니다. 강인돌 여러분. 정말 고맙네요. 마지막으로 황금 막내 시하님. 할 말 있습니까?”

시하가 두리번거리며 날 한 번 보고, 무대로 고개를 돌리며 다른 사람들을 한 번 본다.

뭔가 고민하다가 말할 것이 생각났는지 입을 뗐다.

“형아! 누나! 또 오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꺄아아악!”

“또 와! 또 와!”

“귀여웡!”

“내년에도 제발 와주라!”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우윳빛깔 이시하!”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아~”

뭔가 이상한 반응이 섞여 있지만 이 정도면 대성공이겠지.

아이들이 인사를 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다.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형아!”

“응. 잘했어. 잘했어. 어서 자리로 가서 아이돌 보자. 지금 왔대.”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돌은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구나.

아이들이 눈을 반짝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안녕. 얘들아. 정말 귀여웠어.”

아이돌 샴블 멤버들이 강인대학교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나가 흥분해서 말했다.

“샴블 예뻐. 정말 예뻐. 공주님이야. 공주님.”

“아하하. 고마워. 혹시 무대 끝나면 여기로 올래? 언니가 사진 찍어줄게. 우리를 위해서 시간 끌어준 것에 대해서 너무 고마워서.”

“와!”

나는 아이돌의 말에 우리가 시간을 벌어다 준 걸 알았다.

사실 분주한 모습에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하나만 오늘 신났네.

“아! 우리 부른다. 나중에 봐. 얘들아.”

“네!”

우리도 어서 무대를 보기 위해 빨리 자리로 돌아갔다.

샴블의 무대는 화려했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시하가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얼굴 지켜보기 바빴으니까.

“형아. 살랑살랑이야.”

“하하. 그래. 살랑거리지?”

“춤 살랑.”

벌써 춤을 분석하고 있다니.

어쩌면 나중에 아이돌이 되는 거 아니야?

저기 매니저도 있는데 우리 황금 막내 시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할지도 모르겠다.

명함을 주면서 엔터 연습생을 시키고 싶다고 하는 거지.

물론 나는 시하가 너무 어려서 보내지 않을 생각이지만 말이야.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헛생각이 계속 든다.

‘시하는 낮잠 자서 안 피곤한가?’

춤도 한 번 더 췄는데 눈이 말똥말똥하다.

무대의 화려한 조명 때문에 눈이 감기는 걸 막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에 잠을 쫓아내게 되는 걸지도.

“시하야. 끝났네. 이제 아이돌 보고 집에 갈까?”

“아아.”

우리는 그렇게 다 같이 무대 뒤편으로 가서 샴블 멤버들과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았다.

아이돌이 떠나기 전에 나는 시하가 주는 선물이라며 와이패드 가방을 주었다.

네 명에게 주자 고맙다면서 인사를 했다.

후후후.

이시하. 보고 있나? 알리사 너도 보고 있나?

남은 재고는 앞으로 없어질 일만 남았다.

시간도 끌어줬는데 이 정도 애교는 받아줘도 되잖아?

황금 막내 효과를 보자고.

“시하야. 이제 그럼 갈까?”

“아아.”

“애들한테 인사해야지.”

“바이바이.”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축제 중에 제일 바쁜 날이었지만 만족감은 상당했다.

다신 없을 추억의 한 조각.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기록된 이 영상은 언젠가 시하가 즐겁게 보길 바란다.

폰의 영상에는 시하만 찍혀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데서 고생했던 선생님. 열심히 응원 준비를 하던 국문과 친구들. 무대 뒤편에 열심히 뛰는 스텝.

화려하고 즐거운 축제 속에 얼마나 많은 땀이 어우러져 있는지 시하는 알까?

언젠가 알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강당 무대에서 시하가 ‘고마어~’를 외쳤던 것처럼.

하트를 보여줬던 것처럼.

그 마음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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