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7/500)

187화

-대학 축제 둘째 날.

어제는 사람들의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였다면 오늘은 축제의 메인요리다.

학교 안의 사람들이 더욱 북적거리며 활기찼다.

어제 많이 팔았던 이야기를 하며 오늘의 험난함을 예상한다.

거기에 어린이집 아이들의 행사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야, 야. 오늘 행사 뭐 있더라?”

“어제 거의 다 하지 않았어?”

“아니던데? 조소과에 갤러리 한다던데 그거 한번 볼까?”

“정적인 것만 하네. 쩝. 뭐 재밌는 거 없나?”

“스케줄표 찾아보면 뭐라도 있을걸?”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불쑥 나왔다.

박경준이었다.

애들과 어깨동무하며.

“야. 야. 어제 동아리 광장 앞으로 왜 안 나왔냐?”

“아. 거기 사람 많아서 지나쳤지. 강의도 있었고.”

“쯧쯧. 그러니까 소식이 느리지. 오늘 굉장히 재밌는 행사 하나 있는데. 너희 이 포스터 안 봤지?”

박경준이 부스 기둥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시하의 포스터였다.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학교 행사에 관심이 없어서야. SNS 좀 하고 살자.”

“골방에 박혀서 개발이나 하고 있는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인데…….”

“오늘 어린이집에서 애들이 춤을 춘다는 말씀! 이거 보고 힐링하러 가면 꿀이지.”

“와. 귀엽겠다.”

“어제 우리 동아리 부스에 왔는데 진짜 재밌게 게임 하는 거 있지? 그것만 봐도 힐링이 쫙 되더라.”

“이야. 진짜 재밌겠는데? 근데 댄스는 한 곡만 해?”

“어. 소강당에서 한다고 하더라. 다 차기 전에 미리미리 잡아놔야지.”

“하하하. 시간 보니 괜찮네. 한번 가봐야겠다. 그렇게 오래 하는 공연도 아니네.”

“그러니까.”

박경준은 오늘 학과에 도착해서도 이 이야기로 떠들어댔다.

딱히 홍보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친근하게 애들에게 두루두루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펄럭인다.

문제는 여기에서만 펄럭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문과 부스를 보고 지나간 사람들.

게임 개발 동아리에서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기도 하고, SNS를 통해서 미리 일정을 체크하기도 한다.

제일 크게 공헌한 것은 두 개의 포스터였다.

내일 공연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으니까.

시혁도 예상치 못하는 폭풍이 점점 불어오고 있었다.

***

-공연 30분 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소강당에 사람이 반이나 채워졌다.

나는 그걸 보며 살며시 입을 벌렸다.

‘왜 이렇게 많이 왔어? 다들 한가하지는 않을 텐데? 애들이 춤추는 걸 보고 싶어서 왔나?’

그냥 앞에 4줄만 꽉 차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홍보를 한 건데 벌써 이렇게 찰 줄 몰랐다.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니 오늘 소강당이 꽉 찰 것 같았다.

겨우 한 곡 하는데 이렇게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니.

아니. 어쩌면 한 곡만 해서 그럴지도 몰랐다.

짧게 보고 밥 먹으러 가기 좋으니까.

밥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학교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된다.

‘시간대 선정도 좋았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나 아이들이 긴장하면 어쩌지 싶어서.

무대 뒤에서 시하와 아이들을 보았다.

해맑은 미소로 자신들이 열심히 춤출 거라고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승준이 커튼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우와! 대박! 사람 엄청 많아!”

“정말?!”

아이들이 하나 같이 커튼 가운데로 얼굴만 쏙쏙 내민다.

밖에서 그걸 본 관객이 있는지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가 밖에서 봤어도 귀여웠을 것 같다.

“얘들아. 그렇게 미리 보여주면 안 되지.”

“아! 맞다!”

“아아! 쉿!”

시하야. 그건 조용히 하라는 거야.

그런데 시하의 쉿이 통했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멎는다.

이게 통했다고? 학생분들아. 말을 너무 잘 듣는 거 아니야?

이제 다 봤는지 애들이 얼굴을 떼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시하야. 이렇게 사람들 많은데 괜찮아? 긴장 안 돼?”

“형아. 이써. 개차나. 개차나.”

“크흑.”

형이 있어서 괜찮구나!

어쩐지 오늘 꼭 곁에 있고 싶었어!

형이 앞에서 카메라를 잡고 잘 찍어줄게.

그걸 위해서 미리 자리선정도 해뒀다.

시하 직캠러로 활동할까 하는데 괜찮겠지?

“다들 긴장하지 말고 힘내. 실수해도 저기 있는 형, 누나들이 좋아하거든.”

“왜?”

“너희들이 열심히 했다는 걸 전부 알고 있어서 그래. 틀려도 되니까 끝까지 춰야 해. 알았지?”

“왜?”

“아니. 끝까지는 쳐줘야지…. 중간에 멈추려고?”

“시하. 까머거.”

“선생님이 무대 밑에서 같이 쳐주실 거야. 기억 안 나면 선생님 보면 돼. 그리고 그거 보는 것도 기억 안 난다! 그러면 특별한 방법이 있어!”

애들이 궁금한지 다 나를 쳐다보았다.

말은 안 해도 시하랑 같은 걱정이 되는가 보다.

이럴 때는 안심시켜줘야지.

그런데 뒤에 있는 선생님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거…. 내 역할인데…. 선생님 역할인데…. 내 직업의 의의가…….”

저런 소리가 들리니 괜히 미안해지네.

뭐 누가 하든 어떤가 싶다.

“형아?”

“아! 어떻게 하냐면…….”

나는 혹시나 모를 필살기를 알려주고 시하와 인사를 했다.

남은 것은 선생님에게 맡겼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서 내 역할을 해줘야겠다.

‘음. 어디 보자.’

객석을 보니 거의 다 채워져 있었다.

중간중간에 미리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보였다.

혹시나 애들이 긴장할까 봐 준비한 게 있다.

와이패드를 이용한 플래카드.

아이들이 알아볼 수 있게 7명의 이름이 각각 쓰여 있다.

딴 건 몰라도 자기 이름은 읽을 수 있을 테니까.

하트나 이런 그림도 그려져 있다.

패드는 게임 개발 동아리의 협찬을 받았다.

“수현아. 준비 다 됐지? 잘 부탁할게.”

“오빠. 걱정 마세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혹시나 애들 나올 때 비명 지르지 말고.”

“아! 애들 놀랄까 봐요?”

“아니. 비명 사이에 개굴개굴 울음소리 들리면 애들이 빵 터져서 춤 까먹을 거 아니야.”

“이 오빠가 진짜!”

옆에서 학과 애들이 키득거리며 웃는다.

서수현이 빨개진 얼굴로 눈을 흘긴다.

“농담이야. 부탁할게.”

“말 안 해도 알 거든요. 애들 힘내라고 응원하는 거지 오빠 부탁 들어주는 거 아니에요.”

“그래. 고마워.”

나는 학과 애들에게 한 번 더 부탁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전.

벌써 객석은 가득 차 있었고 의자로 내려오는 계단 중간중간에 앉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진짜 누가 보면 아이돌 콘서트라도 온 줄 알겠다.’

이게 소강당이라도 자리가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닌데 말이다.

“어? 커튼 열린다.”

누군가가 말하는 순간. 불이 꺼졌다.

***

캄캄한 무대 위에 야광 테이프들이 원을 그리고 있다.

마치 보름달처럼.

앞으로 누군가 나오며 핀 조명이 켜진다.

하은우.

랩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

살짝 악동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움직인다.

무언가 말을 하지만 흘러나오는 랩에 립싱크가 되어 버린다.

[yo. 지금부터 내 말에 주목해. 잘 들어.

퍼어. 파티를 시작하자.]

핀 조명이 꺼지고 다시 야광 테이프가 보인다.

전주가 흐르고 보름달이 몸을 일으킨다.

가사에 맞춰.

[보름달이 뜨는 날. 나는 몸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윤동을 둘러싸고 있다.

불이 켜지며 한가운데에서 윤동이 나온다.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아이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는 춤.

[하늘 향해 howling. 누구를 부르는지.

희미한 운무 속에~ 내려오는 달빛이 모두를 주목시켜.

귓가에 들려오는 두드림 소리. 사냥의 시간이다. alight.

달그림자에 숨어 있어도.

우리는 너를 보고 있어. 파티에 끌고 가지.]

“꺄아아악!”

와이패드 플래카드가 빛을 발하며 흔들린다.

부모님들도 앞자리에서 열렬한 호응을 해 준다.

아이들은 살며시 놀란 기색이 있었지만 잘 따라 춘다.

시하는 앞을 보았다.

승준 엄마, 아빠. 종수 엄마, 재휘 엄마 등등.

그리고 형아가 보였다. 살며시 웃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있다면 시하에게는 형아가 있다.

그리고 시혁의 어깨너머로 분홍색 빛무리와 파란색 빛무리가 야광봉처럼 일자로 만들어졌다.

앞뒤로 흔든다.

응원하고 있다는 듯이.

“아아.”

시하는 그걸 보며 더욱 힘차게 춤을 췄다.

하나, 둘, 서이.

앞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셋.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눈웃음이 쳐졌다.

시하를 찍고 있는 시혁의 입이 살짝 벌려진다.

시하가 환하게 웃고 있기에.

그때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나왔다.

[들리지 않니 이 소리. 하울 하울.]

대각선으로 나아가며 말을 뱉듯이 두 번 손을 턴다.

시그니처 안무.

[지금 다가가 네 곁에. 아울 아울.]

반대편 대각선으로 나아가 두 번 손을 턴다.

다시 한번 반복되는 노랫소리를 사람들이 따라 한다.

그만큼 익숙한 곡이었으니까.

“들리지 않니! 이 소리! 하울 하울!”

“지금 다가가! 네 곁에! 아울 아울!”

시하는 열심히 춤을 췄다.

부모님들이 열심히 따라부르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비록 시하에게는 빛무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흔들리는 야광봉 속에 무엇을 말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다가가! 네 곁에! 아울 아울!”

분홍색 빛무리가 너무 흥분했는지 시하의 곁에 다가갔다.

야광봉을 미친 듯이 흔들며.

파란색 빛무리는 당황했는지 흔드는 속도가 늦어졌다.

옆으로 새어 나가는 빛들이 마치 식은땀을 흘리는 듯하다.

“아?”

시하도 그 빛무리 당황했는지 움직임이 버벅댔다.

노래는 끝을 향하고 있었고, 안무도 거의 끝나갈 때 나온 실수.

하지만 다행히 마지막은 아이들이 바닥을 기며 늑대가 다가오는 것을 표현하는 거라서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노래가 끝이 나자 환호성이 터졌다.

짝짝짝.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섰다.

시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인지했다.

실수하거나 기억나지 않으면 형아가 필살기를 쓰라고 했다.

이거면 다 해결된다고.

“시하. 실수.”

아이들이 시하를 보았다.

실수했었냐는 듯한 눈빛이다.

빛무리 역시 무척 당황해하며 주위에 분홍빛을 흘렸다.

뻘뻘.

“보룸달!”

시하가 자그마한 두 손으로 원을 그렸다.

사람들이 시하의 큰 목소리에 조용히 침묵으로 지켜보았다.

뭘까?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시하가 그러고는 보름달을 입으로 ‘앙’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하트를 만들었다.

“고마어~”

“꺄아아악! 귀여워!”

“보름달을 먹었어. 하하핰.”

“저게 뭐야. 귀여웡!”

시혁은 손으로 한쪽 눈을 가렸다.

자신은 일단 보름달을 만들어 하트를 만들라고 하긴 했다.

하지만 절대 소리 내어 말하라고는 안 했다.

그리고 안무 도중에 실수였단 걸 미안하다는 마음과 고맙다는 마음을 보내는 거라고 설명했었다.

설마 시하가 소리를 내며 다 끝나고 할 줄은 전혀 몰랐지만.

그런데 그게 더 누나들의 마음에 더 불을 지폈다.

“하하하! 나도! 고마워!”

“하나도 고마워!”

아이들이 하나둘씩 하트를 만들었다.

시하가 먼저 해 버려서인지 그렇게 극적인 연출은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흐뭇하게 보았다.

선생님이 나와서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잘 보셨나요?”

“네!”

“그럼 우리 강인 어린이집 여러분! 보러 오신 엄마, 아빠, 형, 누나, 언니, 오빠에게 인사! 감사합니다!”

7명의 아이가 배꼽 인사를 했다.

그때 박경준이 벌떡 일어서 이렇게 외친다.

“앵콜! 앵콜! 앵콜!”

옆에서 신경환이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미친놈아. 앉아!”

“아, 왜. 이런 건 앵콜 해줘야 한다고. 앵콜! 앵콜!”

다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앵콜을 외친다.

선생님이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어…. 앵콜은 사정상 불가능하지만 잠깐 개인기 좀 볼까요? 여기 리더인 춤신 윤동과 랩퍼 은우가 정말 잘하거든요.”

그때 박경준이 또 나서서 물어봤다.

“그럼 처음에 하트 만들어준 시하는 아이돌 중에 어떤 포지션입니까!”

옆에 있던 신경환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회장 김경호 역시 모른 척 고개를 돌린다.

시혁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나서냐는 표정.

박경준은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지 쾌활하게 웃었다.

그런데 관객들도 무척 궁금한 모양.

모두가 선생님의 입을 주목했다.

“시하는…….”

시하는?

“황금 막내예요!”

그 말에 시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시하는 다 잘하는 황금 막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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