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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186/500)

186화

맑은 날씨에 흰 구름.

바쁜 일상 속에 하늘을 볼 여유가 있는 때가 적다.

특히 오밀조밀 한데 모여있는 흰 구름을 본 날이 언제였을까?

예전에 아버지도 내가 구름을 보고 있자, 가지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가지고 싶다고 하자 잠시만 기다리라며 아버지가 어디론가 가셨다.

뛰어가셨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구름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힘들었다며 내 손에 솜사탕을 쥐여준다.

[이거 솜사탕이잖아.]

아버지는 알고 있었냐면서 민망한 웃음을 흘리셨다.

나는 괜히 그랬나 싶어서 솜사탕을 베어 물었다.

‘그래도 맛은 있네.’라며 조그맣게 말하자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땀 흘린 보람이 있다는 듯이.

그 당시의 나는 아버지가 왜 저렇게 웃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미소가 너무 눈부시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실없는 아버지의 거짓말은 내게 따뜻한 온기로 들어왔고, 드높은 하늘 위의 구름을 향해 괜스레 솜사탕을 떼어 날려 보냈다.

왜 조금 날리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진짜 구름이면 하늘로 가지 않을까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고맙다고 더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를 보며 이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여기 솜사탕 세 개 나왔습니다.”

장사하는 학생의 말에 상념이 깼다.

나는 솜사탕을 받아들고 뛰었다.

시하에게 구름을 전해 주러 가야 했다.

이게 구름이 아닌 걸 알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기다리는 시간이 궁금증을 불러오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솜사탕을 먹으며 줄이 줄어드는 걸 보는 것도 재밌을 거다.

“시하야. 형아가 구름 가지고 왔어.”

“아?!”

아직 어려서 그런지 시하가 정말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주위에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 사람들아. 진짜 구름을 가져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우와! 시혀기 형아. 짱이다!”

“시혀기 오빠 대다내!”

이런이런. 아직 순수한 영혼들.

이런 거에 속는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나중에 크면 속지 않겠지.

“형아가 구름 중에 설탕을 좋아하는 구름을 가지고 왔어. 아주 달달할 거야. 먹어 봐.”

내 말에 승준과 하나가 손으로 떼서 입에 넣었다.

맛있다는 듯이 냠냠 먹었다.

“시하는 안 먹어?”

“아? 아냐. 시하 키어. 구룸. 키어.”

“어? 이거 키울 수 있는 거 아닌데?”

“설탕. 설탕. 먹이. 설탕.”

“어? 굳이 말하자면 먹이가 설탕이 맞지.”

“몽실이야. 몽실이.”

“벌써 이름까지 정했어?!”

내가 생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시하가 맛있게 먹는 걸 상상했다.

하지만 키운다는 발상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키울 수가 없는데?”

“아냐. 시하. 키어.”

시하가 솜사탕 손잡이를 꼬옥 쥐었다.

그래. 마음대로 하게 두자. 열심히 설탕 먹이면 아주 잘 자랄 거다.

옆에 있는 선생님이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살포시 웃었다.

“몽실이. 몽실이.”

그래도 저리 좋아해서 다행이다.

“네. 다음 분.”

“시하야. 이제 우리 차례야.”

“아아.”

학생 앞에 시하를 앉혔다.

나는 딱히 그림을 갖고 싶지 않아서 옆에 섰다.

“귀엽게 그려주세요.”

“네. 걱정 마세요. 어린이는 몇 살?”

“서이 살.”

“서이 살?”

내가 세 살이라고 해 주자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말을 걸면서 슥슥 포인트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이것도 중노동이네.

손이 빠른 건지 금방 그렸고 색연필로 간단히 색칠도 하는 것 같았다.

캐리커쳐니까 정말 간단하게 하는 것 같다.

딱 3천 원에 해 주는 느낌?

“형아. 시하도.”

“응? 시하도 보고 싶어?”

“아아.”

“근데 모델은 앞에 있어야지.”

“보고 시퍼!”

나는 옆에 있는 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혹시 이거 끝나고 그리는 거 구경 좀 해도 되나요? 애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네. 얼마든지요. 많이 궁금한가 보네요.”

“이렇게 여러 명이 그림 그리는 걸 처음 봐서 그런가 봐요. 그림 그리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야. 나중에 저희 과 와야겠는데요?”

“하하.”

이야기하는 도중에 승준과 하나도 옆자리에 착석했다.

웃기게도 쌍둥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말했다.

무슨 초상화 그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사커공! 사커공!”

“하나는 공주님. 공주님으로!”

앞에 두 학생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려줄 모양.

참으로 감사했다.

“다 됐습니다.”

시하가 의자에서 내려와 그림을 받았다.

특징을 그려서인지. 아니면 볼에 연지곤지의 색을 찍어서인지.

솔직히 내 취향인 그림체는 아니었다.

“형아. 시하?”

“응. 시하네?”

“아냐. 시하 아냐.”

“푸흡. 원래 캐리커처가 특징을 강조하는 거야.”

“형아. 형아도.”

시하가 의자를 가리키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려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형아는 안 해.”

“왜?”

“형아는 승준이랑 하나 기다렸다가 같이 더 재밌는 곳 가야지.”

“샘 해. 형아. 해.”

“응?”

시하가 가리킨 곳을 보니 유다희 선생님이 방긋 웃으며 앉아 있다.

저기요? 선생님? 선생님은 언제부터 앉게 되었나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셋을 기다리는 동안 시하와 나는 학생들의 그림 그리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보니 다들 자신들의 특징이 흘러나온다.

복불복같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때였다.

시하가 내 바지를 당겼다.

“형아. 시하도. 형아 그려.”

“응?”

“이거.”

시하가 내게 몽실이를 넘기더니 가방에서 패드를 꺼낸다.

아무래도 나의 캐리커처를 그려줄 모양.

“그럼 의자에 앉아서 그려야지.”

서양학과와 붙어 있던 옆 부스에서 박경준이 의자를 탁탁 친다.

언제부터 옆에 있었던 거야?

그러고는 눈을 찡긋하며 시하를 게임 개발 부스에 데려와 앉혔다.

데려왔다고 치기에는 한 걸음만 가면 천막이 있긴 했다.

나도 덩달아 앞에 앉았다.

“형아. 머시써. 그려.”

“멋지게 그려준다고?”

“아아.”

박경준이 좋겠다며 휘파람을 불었다.

뒤에서 시하의 그림 그리는 걸 지켜보려고 자리를 잡는다.

옆의 눈치를 보는 걸 보니 쉬려고 빠져나온 모양.

나중에 걸리면 귀를 잡혀서 끌려갈지도?

뭐 하는 게 별로 없어서 한 명이 빠져도 모르겠지만.

“형아. 얼굴.”

“아. 그래. 앞을 볼게.”

시하가 손을 슥슥 움직인다.

뒤에 있던 박경준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설마 이렇게 잘 그릴 줄 몰랐다는 듯이.

하긴. 실제로 그리는 모습을 본 적 없긴 했다.

판매되는 책을 사거나 포스터를 봤었지.

이렇게 프로그램을 써서 그리는 건 처음 보는 거다.

근데 이런 거 보여도 되나?

살며시 불안감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람만 많지 딱히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아, 하긴. 그냥 아기가 패드 쓰면서 뭔가 그리겠거니 하겠지.’

시하의 손이 점점 빨라진다.

손 움직임을 보아하니 그림은 다 그렸고 색칠을 하는 모양.

프로그램을 쓰는 모습에서 박경준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이게 그리 놀랄 일인가?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와. 진짜 잘 그리는데? 시하야. 너 진짜 천재구나?”

“아냐. 반짝반짝 가치해써.”

“무슨 말이야? 색깔이 반짝반짝하다?”

“쉿!”

시하는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색을 칠한다.

그래. 어딜 시하 선생님이 작업하는 데 방해하고 있나!

“형아. 다대써.”

“와. 진짜 빠르게 했네?”

“아아.”

“그럼 어디 볼까?”

상반신만 그려진 그림.

앞머리도 덩어리처럼 잘 살렸고 눈도 초롱초롱하게 잘 만들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랑 다르다는 거.

“시하야. 형아가 왜 페페 옷을 입고 있는 거야?”

“아아. 페페 조아. 형아 조아.”

“아, 그렇구나.”

좋아하는 거 조합이면 인정이지.

그런데 다 커서 페페 잠옷 입는 건 조금 부끄럽다. 흠흠.

그림이니까 넘어가 줄 수 있는 부분이지.

박경준이 말했다.

“와. 진짜. 대박.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니까 엄청나네. 나 미술 천재는 처음 봐.”

“네. 저도 처음 봤어요.”

“진짜 어릴 때 재능이라는 게 있구나. 신기하다.”

박경준이 호들갑을 떨어서인지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더 모이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겠다.

보아하니 쌍둥이와 선생님의 그림도 다 그려진 모양이니.

그때 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 잠시만요.”

“네?”

“아까 슬쩍 멀리서 봤는데 아이의 그림 실력이 대단하더군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흠흠. 저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학교 교수입니다. 서양학과.”

“아. 교수님이셨어요? 진작 말하면 좋았을 텐데. 전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하하. 엄청 단호박 같은 면이 있네요.”

“뭐. 시하에 대해서 이상한 제안을 하면 칼같이 끊고 싶어서…….”

“좋은 생각입니다. 아이는 그저 있는 그대로 키우는 게 좋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교수님이 이상한 말을 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광고에 관심 없는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광고 예술 같은 거죠.”

“갑자기 광고 예술요?”

“네. 제가 그쪽에 꽤 유명해서 말이죠. 학폭 캠페인이라던가 환경 캠페인이라던가.”

“와! 좋은 일을 하시네요.”

“그렇죠?”

“근데 시하가 그런 걸 하기에는 아직 조금 그래서.”

“이번에 물 부족 주제를 가지고 캠페인을 하는데 참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가 자격에 나이 제한이 없거든요.”

“아…….”

“대상에게는 교육감상이 나옵니다. 그리고 저희 학교에 갤러리도 연다고 하니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재미도 있을 겁니다. 청년부도 따로 있거든요. 물론 일반부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하의 교육에 좋을지도 모르겠다.

수상작들을 여러 개 뽑으면 갤러리도 연다고 하니.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작품이 수상했는지도 볼 수 있는 거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시간 된다면 한번 해 볼게요.”

“아직 시작하려면 기간이 꽤 남았습니다. 일단 계획이라서요. 올라오면 링크를 드릴 테니 번호 좀 주시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장하진 교수.

인상도 그렇고 좋으신 분 같았다.

“하하.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혹시 시하의 재능에 관심 있으셔서 이러시는 건가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 지도하고 싶다는 건 아닙니다.”

“네? 그럼?”

“보통 저런 재능이 싹틀 때 누가 손대려고 하면 망가지는 법이거든요. 애들의 뇌는 말랑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를 많이 보다 보니 오지랖 좀 부렸습니다.”

“아…….”

“특히 방송 제안 오면 하지 마세요. 방송은.”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장하진 교수와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뭔가 인자한 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

승준은 축구공을 들고 있는 그림.

하나는 머리에 왕관이 그려진 그림.

둘 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축제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애들이 피곤하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나는 무대를 보고 싶어 했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틀째부터 아이돌이 온다고 하니 그것만 보면 되겠지.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시하 손에 있는 솜사탕이었다.

“몽실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솜사탕을 바라본다.

몽실이가 이미 쪼그라들었으니까.

누가 후후 불면 구멍이 뚫린다고 했을까?

솜사탕은 이미 실온에서 녹아 작아져 버렸다.

몽실이가 찐득이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형아. 몽실이 작아.”

어쩔 수 없다.

시하에게 슬픈 사실을 알리는 수밖에.

“시하야. 몽실이는 구름이잖아.”

“구룸.”

“그래서 이렇게 안 먹고 놔두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게 되어있어.”

“아?”

시하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어두워져서 구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몽실?”

응. 몽실이는 하늘나라로 떠났어. 흑흑.

“몽실이가 다시 구름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고 싶은가 보다. 시하도 승준이랑 하나랑 놀면 재밌지?”

“아아. 재미써!”

“그러니까. 이제 몽실이도 하늘로 간 거야.”

“이거 몽실이?”

시하가 자신의 손에 있는 솜사탕을 가리켰다.

“그건 몽실이가 아니야. 몽실이 껍질이야. 시하 먹으라고 놔뒀나 보다.”

“아? 머거?”

“응. 우리 같이 먹을까?”

“아아. 냠.”

시하가 먹더니 ‘마시써!’ 하며 외쳤다.

나도 고개를 숙여 시하의 손에 들고 있는 솜사탕을 ‘앙’ 하고 베어 물었다.

녹아서 그런지 딱히 좋은 식감은 아니었다.

“몽실 고마어. 바이바이.”

시하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타깝게도 몽실이는 키울 수는 없었지만, 오늘 축제 첫날은 아주 달콤했다.

시하에게 오늘의 추억이 솜사탕처럼 몽실거렸을까?

언젠가 이 순간을 단 한 조각이라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보다는 몽실이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시하야. 내일 기대된다.”

“아아!”

그렇게 다음 날.

어린이집 애들의 댄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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