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축제!
누군가는 중간고사가 끝나서 해방감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머리를 싸매고 도서관에 박혀있다.
하지만 웬만하면 대다수가 끝냈기에 학교에는 활기가 맴돈다.
각자 부스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좋다.
오전이라 손님은 없지만, 친구들과 준비를 하노라면 즐겁다.
모두가 함께 참여해서 축제의 모래성을 쌓는 일.
3일이 지나면 무너지겠지만 그래도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끝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축제면 그건 축제라고 부르지 않고 일상이라고 부를 테니 말이다.
“시하야. 다들 축제 준비로 한창이네. 그치?”
“아아. 시하도. 시하도.”
“응. 시하도 오늘 춤 준비하지? 내일 춤추니까.”
“형아 와?”
“당연히 가야지. 시하가 얼마나 잘 추는지 형아가 두 눈 크게 뜨고 볼게.”
“시하. 이케. 이케 해.”
시하가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작은 손이 너무나 앙증맞아서 귀여웠다.
비밀이라면서 보여주지 않았던 시하의 춤을 드디어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대체 얼마나 잘 추는지 두 눈으로 봐야지.
영상은 원장 선생님이 찍어 주신다고 하니 마음 편하게 보면 될 것 같았다.
“형아가 홍보 많이 할게. 그래서 시하 포스터를 더 준비했잖아. 뒤에 말린 거 보이지?”
“아아!”
나는 시하의 포스터 그림을 스캔해서 두 장 더 뽑았다.
괜찮으면 다른 부스에 붙여서 홍보할 예정이었다.
“그럼 시하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연습 잘해. 끝나면 오후에 형아랑 놀자.”
“아아!”
오전은 대부분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오후부터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부스에 물건들을 놓았기 때문에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
‘둘째 날부터는 오전에도 꽤 분비기는 할 테지만.’
어느새 주차장에 온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시하야. 오늘도 파이팅!”
“아아! 파팅! 형아. 파팅! 그림 파라. 파팅!”
시하야. 형 손에 있는 포스터는 팔려고 가져가는 거 아니야….
어떻게 보면 파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을 하며 시하를 배웅해 주었다.
곧장 국문과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거기서 서수현이 진두지휘를 하는 게 보였다.
“빨리빨리 소떡소떡을 꽂아요. 그래야 오후에 팔지.”
“이거 누가 소고기로 계획한 거야! 겁나 불편하네!”
“그러길래 왜 어제 안 도와주러 왔냐고요.”
한창 실랑이 중이길래 나는 뜨끔하며 살며시 자리에 앉았다.
사실 나도 어제 꼬치를 꽂으러 안 왔으니까.
서수현이 시퍼런 눈을 뜨며 나를 보았다.
“안녕.”
“오빠! 왜 어제 안 왔어요! 더도 말고 5개만 꽂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바빴어. 시험이었잖아.”
“시허엄?! 시허어엄?! 오빠 강의 듣는 것도 별로 없는 거 다 알거든요?”
“나는 일하잖아. 오늘따라 되게 황소개구리가 됐네. 혹시 소고기 때문인가?”
“이 오빠가 진짜!”
나는 실실 웃으며 품에 안은 포스터 하나를 꺼냈다.
서수현이 의문 어린 눈을 보였다.
“이거 홍보 포스터인데 여기 잘 보이는 데다가 붙여도 되지?”
“오빠. 저희 과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왔어요?”
“으응? 뭐 홍보도 되지 않을까?”
“네? 이 오빠 수상한데. 어디 포스터 좀 봐요.”
서수현이 포스터를 가져가 펼쳤다.
거기에는 7명의 아이가 춤을 추고 있었다.
흠흠. 대게 민망하네. 왜지?
“이거 시하 그림 아니에요? 내일 어린이집에서 하는 춤.”
“아. 맞아.”
“이 오빠가 진짜?! 하다못해 우리 과 부스에서 홍보하려고 하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절대 당황해서 기침을 한 건 아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예상했다.
“잘 들어봐. 지금 우리 과 부스는 소떡소떡과 음료를 팔려고 하지. 근데 결국 메인은 소떡소떡이 될 수밖에 없지.”
“이 오빠가 또 뭘 말하려고….”
“근데 단점을 말하면 ‘겨우’ 그거밖에 없는 건 아닐까?”
“겨우라뇨. 이거 엄청 인기 있을 거예요.”
“하지만 소고기잖아. 그냥 소시지를 원하고 오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고.”
“다들 소고기 좋아하거든요.”
“돼지고기가 좋아할 수 있지.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럼 뭔데요?”
나는 국문과 부스에 붙이려고 하는 소떡소떡 그림을 들었다.
선을 따라서 잘라놓은 그림.
이건 국문과 부스 기둥에 붙일 예정이었다.
“입방아에 오를 화제가 필요하지. 가게가 잘되는 건 맛뿐만 아니야. 분위기, 냄새, 화제성. 이 모든 걸 다 잡으려면 이 포스터가 있어야 해!”
“앞에 말은 혹하는데 뒷말이 이상한데?”
오늘따라 개굴거리네. 서수현.
시하의 그림이 만능인 걸 모르다니. 쯧쯧.
“자. 여기 시하의 포스트의 손을 잘 봐. 두 손을 주먹 쥐고 흔들고 있지? 물론 흔든다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만.”
“그게 왜요?”
“하지만 여기에 이 그림을 붙인다면?”
나는 소떡소떡 그림을 애들 손에 붙였다.
금세 소떡소떡을 들고 신나는 춤을 추는 그림으로 바뀌는 마법.
“어때? 이러면 사람들이 귀엽다며 음식을 먹으러 오지 않을까? 같이 홍보도 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분위도 살고.”
“어…. 음.”
“여기 생과일주스 그림도 저기다 붙일 거잖아. 얼마나 부스 분위기가 바뀌겠어. 크흐. 애들도 엄청 좋아한다?”
다른 학생들도 내 말이 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서수현도 애들 손에 들린 소떡소떡 그림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
“그럼 저 부스 기둥에 붙인다? 들어오면서 아주 잘 보이겠네. 완전 포토타임도 되고.”
“그건 그렇네요.”
“포토존은 또 홍보가 되니까. 바로 SNS에!”
“그, 그렇죠.”
나는 싱긋 웃으며 스카치테이프를 찍찍 떼어서 떡하니 기둥에 붙였다.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딱풀을 가져와 포스터 위에 소떡소떡 그림도 붙였다.
아이들이 신나게 소떡소떡을 쥐고 있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내가 우리과 생각해서 이렇게 포스터도 뽑아왔단 말이지. 어때? 이 정도면 어제 5개 만들어주는 것보다 훨씬 좋지?”
“그건 인정. 듣다 보니 괜찮네요.”
역시 서수현 너라면 시하의 그림을 알아줄 줄 알았어.
시하야. 오늘도 어린이집 홍보를 열심히 했어.
사람이 부족한 일은 없을 거야.
‘뭐, 실제로 보고 오는 사람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걸 본 사람 중 0.1%만 와도 성공이 아닐까 싶다.
서수현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다시 진두지휘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오빠. 근데 저기 포스터 하나 남는 것도 여기에 붙일 거예요?”
“아, 아니?”
“그럼요?”
“혹시나 몰라서 예비용으로 하나 가져온 거야.”
“정말요?”
“그럼.”
거짓말이다. 저 하나는 게임 개발 동아리 부스에 가서 붙여야지.
거기는 설득할 필요가 없다.
후후후. 그걸 위해 파랑몰을 운영하는 패디과 사람들과 합동으로 와이패드를 팔게 했으니까.
이미 물밑 작업은 다 완성했다는 말씀.
“뭔가 수상한데?”
“수상하긴 뭐가? 저기 벌써 사람들이 사가려고 하네. 오후에는 꼬지 만들기 더 필요하겠는데? 좀 도와줄게.”
“그래 주면 고맙죠. 저기 소고기 익은 것 좀 썰어 주실래요? 나중에 살짝 굽기만 하면 돼서.”
“오케이.”
내 마지막 양심이 고기를 썰게 한다.
이거라도 도와줘야 덜 미안하지.
수현아 미안하다. 홍보 포스터는 다른 곳에 하나 더 둘 예정이야.
나는 도마 앞에 가서 냉큼 소고기를 썰었다.
***
-어린이집.
오늘은 내일을 위해 1차 리허설을 하는 날이다.
선생님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을 내었다.
오전에는 이렇게 연습하고 오후에는 애들이랑 함께 축제를 즐기러 갈 예정.
물론 시하는 시혁과 함께 움직인다.
“모두 오늘 연습하는 거 알고 있죠?”
“네!”
하나가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빨리 리허설해요. 하나눈 리허설 하고 시퍼!”
“저두요!”
“아아!”
굳이 선생님이 애들에게 연습하자고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신기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억지로 시켰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 스스로 연습하고 합을 맞추고.
정말 열심히 했다.
물론 집중 떨어져서 다른 것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렇게 연습을 할까?’
다 같이 하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함께 이루고 싶은 게 있던 걸까?
아이들의 순순한 욕망이 이끈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전에 보여줄 게 있어요. 바로 춤출 때 입을 옷! 드디어 도착했어요! 갑자기 업체에서 배송 지연되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우와! 예뿌다!”
선생님이 펼친 옷은 바로 검은색 맨투맨.
여기에 야광 테이프를 오른쪽 팔뚝에 감을 생각이었다.
무대에서 어두워질 때 포인트를 주기 위해서였다.
“어때요? 좋죠?”
재휘가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서 옷을 확인했다.
‘괜찮네요.’라고 말하는데 선생님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별로였으면 옷은 다시 반품되었을지도 모른다.
“바지도 움직이기 편한 거로 했어요. 나중에 끝나면 집에서 잠옷으로 써도 돼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벌써 옷을 꺼내서 입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들 한번 입어볼래요?”
그렇게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팔뚝에 야광 테이프를 칭칭 감아주었다.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아직 날이 밝아서 그렇게 야광이 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빛이 난다.
승준이 말했다.
“와! 빛난다! 변신!”
“아아. 시하도! 레드!”
“하나는 핑크야!”
선생님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기 시하야? 레드는 빨간색 아니니? 그거 형광색이야.
하지만 왠지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다.
“자. 이제 이거 입고 연습해 볼까요? 아직 땀이 안 났을 때 딱 한 번만.”
“네!”
7개의 달이 움직이며 열심히 춤을 춘다.
오늘 연습은 내일을 위해.
***
게임 개발 동아리에 포스터를 붙인 뒤에야 시하를 찾으러 갈 수 있었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자 신발장 앞에서 시하가 보였다.
펭귄 가방을 흔들며 나를 반긴다.
“형아!”
신발도 안 신고 도도도 달려와 팔을 벌린다.
나는 포옥 껴안고 위로 들었다.
양말도 3초 룰이 있을까? 검게 안 되었겠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시하야. 연습 잘했어?”
“아아. 연습해써. 시하. 기다려. 해써.”
“형아 많이 기다렸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시하가 손을 모아 내 귓가에 말했다.
“후우.”
“푸흡. 아니, 왜 맨날 말하기 전에 바람을 넣는 거야.”
“형아! 시하 말!”
“알았어. 잘 말해봐.”
“후우.”
“크흡.”
“시하. 서이 시. 서이 시. 기다려. 해써.”
작은 바람이 귓바퀴를 한 번 돌아서 들어온다.
간질거리는데 계속 웃음이 나온다.
뭐가 그렇게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세 시간 기다렸어?”
“아아.”
“여기서?”
“아아.”
“거짓말 아니야?”
“아냐. 시하. 줄 서써. 젤리. 젤리. 줄 서써.”
시하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젤리 장난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시하 대신 줄 서서 날 기다렸다는 말 같다.
왠지 시혁 맛집이 된 기분인걸?
나는 시하의 코를 살짝 잡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되었지? 아주 말이 청산유수야. 하하.”
어라?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기는 한데?
뭐 기시감이겠지.
그때 선생님이 말했다.
“음. 제가 아는 청산유수랑 다른 뜻인가요? 전 아직도 못 알아듣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착각인가?”
“선생님도 아직 많이 공부하셔야겠네요. 언어는 원래 마음으로 통하는 겁니다.”
“아닌 거 같은데…….”
선생님도 아직 멀었다.
“그럼 전 시하 데리고 갈게요.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어서.”
“네. 그러세요. 저도 애들 데리고 갈 생각이거든요.”
그때 하나와 승준이 도도도 달려와 말했다.
“앗! 나도 시하랑 아직 놀고 싶은데!”
“하나도! 하나도 시혁이 오빠랑 놀고 시푼데!”
“아아! 시하도! 다 가치!”
“하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 다 같이 돌아다니시다가 헤어지실래요? 제가 승준, 하나를 맡을게요.”
“아, 그럴까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축제는 다 같이 즐겨야 또 재밌는 법이니까.
“아. 맞다. 시하야.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너도 엄청 좋아할 거야.”
“아?”
갸웃거리는 시하를 보며 나는 살며시 기대감에 부풀었다.
시하가 정말 좋아할 거라고 확신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