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본격적인 춤 연습이 시작되었다.
아이들도 의욕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축제 행사!
하지만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고른 곡은 ‘보름달’이라는 남자 아이돌 노래였다.
누나들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곡으로 유명하다.
“하하하! 시하 잘 춘다! 하하하!”
승준이 배를 잡고 시하를 보며 웃었다.
시하는 무표정하게 호이호이 몸을 움직인다.
두 손을 머리에 붙이고 보름달을 흉내 낸다.
그게 승준이 보기에는 그렇게 웃겼다.
“아? 시하 보룸달!”
“시하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하는 거야.”
하나가 시범을 보여 주었다.
아이돌을 노리고 있어서 그런지 꽤 여유 있는 모습이다.
“머리 위로 동그라미가 아니라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거야.”
“아아. 시하. 큰 거. 큰 거.”
시하는 큰 보름달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아이들도 다 엉망이다.
종수는 몸에 기름칠이 덜 됐는지 삐걱거리고 있고, 재휘는 그런 종수를 보며 웃음을 꾸욱 참고 있다.
은우는 해맑게 랩, 랩 파트! 하고 외친다.
윤동만이 제대로 몸을 움직이며 완벽하게 춤을 춘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주 난장판이구나. 난장판. 이 난쟁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왜 자신이 축제를 위한 춤을 선택했을까?
왜 물어봤을 때 허락이 금방 나와서 좋아했을까?
근본부터 고찰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자. 자. 다들 진정하시고. 이건 그렇게 멋없는 춤이 아니에요. 다들 시하의 형 아시죠?”
“아아! 형아!”
“네.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건 유명한 노래라고요!”
“형아! 머시써!”
시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시혁이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주목을 시킨 다음에 윤동을 앞세웠다.
“자. 윤동이가 잘하니까 솔로 파트를 맞을 거예요. 같이하는 부분은 잘 맞춰서 외워 보아요.”
“아아.”
“자! 원 투 쓰리 포! 처음부터 따라 해 봅시다. 원~ 투~ 쓰리~ 포~”
“아아. 원. 투. 서이. 포.”
저기요? 시하 씨? 거기에 서이~가 왜 들어갑니까? 왜?!
그런데 아이들이 시하가 말하는 게 재밌는지 원, 투, 서이, 포라고 외쳤다.
애들이 동작은 잘 따라 해 줘서 뭐라 하지 못했다.
이상해도 춤만 잘 추면 된다.
“이건 늑대인간의 이야기예요. 노래를 잘 듣고 춤과 연관시켜 봐요.”
아직은 아이들이 어색하게 움직였다.
아무래도 연습을 끝내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다.
윤동이 답답했는지 가슴을 탕탕 쳤다.
“아니. 거기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어우. 정말!”
투덜대더니 옆에 가서 자세히 가르쳐준다.
스케이트 타는 듯한 동작.
발이 미끄러지면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그래. 그렇게. 정말 멈추지 않고 밀리는 게 아니라 딱 이만큼 오는 게 포인트야.”
슥슥.
승준이 그 모습에 눈을 빛냈다.
두 손으로 무언가 잡는 시늉을 한다.
“아이스하키다! 슝슝~!”
아이의 집중은 금방 깨진다.
다른 아이를 가르쳐주고 있으면 한 사람은 다른 걸 하기 마련이다.
“승준아. 내가 가르쳐주고 있잖아. 연습해야지!”
“나 다 외웠는데?”
“그래도 연습해야 안 틀려.”
“자, 봐. 잘하지?!”
스윽. 스윽.
발로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간다.
윤동도 그 모습에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거 왠지 축구할 때 헛다리짚는 느낌이다.”
운동 신경이 좋아서 그런지 곧잘 따라 했다.
시하가 승준을 따라 스케이트를 탄다.
“이케. 이케.”
왼발과 함께 왼손. 오른발과 함께 오른손.
그 모습에 윤동이 ‘맙소사!’ 하며 이마를 탁 하고 짚었다.
“왼발 나갈 때 오른손이 함께 나가는 거야. 이렇게 입 쪽으로 손이 있어야 ‘하울’ 하고 손으로 터는 거야.”
윤동은 왼발이 대각선으로 나가면서 오른쪽으로 손을 털었다.
노래의 시그니처 안무.
늑대의 하울링을 조심하라는 표현이었다.
다른 건 다 틀려도 이것만은 잘 맞아야 했다.
“자. 원 투 쓰리 포.”
“원 투 서이 포.”
“그렇지. 반대쪽으로 원 투 서이 포. 앗! 나도 모르게 서이, 포라고 했잖아!”
“아아. 서이. 포!”
그걸 본 은우가 해맑게 웃었다.
뭐든지 즐거웠다.
“하하. 사투리다. 사투리. 나도 랩을 사투리로 바꿔서 불러도 돼? 안녕하세예. 은운디예. 푸하하!”
“그럼 하나도 노래 부를래! 솔로 파트! 솔로 파트!”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하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그룹은 만들어지고 나서 유닛과 솔로로 활동하겠구나.
팬들이 언제 완전체로 활동하냐고 기다리겠어!
첫 곡 이후로 각자의 활동을 할 것 같은 7명의 아이돌이었다.
***
학교 사이트는 대부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
성적 확인을 하거나 학과 전용 사이트로 들어가 정보는 얻는다.
진짜 잘 활용되는 것은 그 학교 이름으로 되어 있는 SNS다.
가장 활발한 커뮤니티.
강인대학교도 공식 SNS 계정이 있다.
[13시 20분쯤에 도서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학우를 찾습니다. 완전 제 이상형이에요.]
[면접 동아리나 스터디 구해요!]
[곧 축제인데 뭐 하는지 알려주세요.]
여러 다양한 글들이 올라오고 댓글도 많이 달린다.
다들 팔로워를 하고 있기 때문.
강인대학교 학생회도 이 SNS를 통해서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어린이집 포스터 역시 축제에서 어느 행사인지 소개했다.
메인 사진은 시하의 포스터 그림이다.
[안녕하세요! 강인대 학생 여러분!! 오늘은 축제에 특.별.한. 행사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동아리냐고요? 아니요. 특정 학과냐고요? 아니요.
정답은 바로!! 우리 대학교와 하나인 어린이집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저희 대학 축제에 참석을 알렸습니다. 작년에는 카페를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무려! 댄스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시간 되시는 학우 여러분들은 오후에 가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건 홍보 포스터입니다.
(사진)
축제 둘째 날! 오후 5시! 소강당에서! 단 한 번의 공연! 놓치지 마세요!]
글이 올라오자 조금씩 댓글이 달렸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아악! 저 날 나 4시 30분부터 강의 있는데ㅠㅠ 딱 걸리네 ㅠㅠ
-그림 귀욥 ㅎㅎ
-근데 뒤에 펭귄 그림자는 무슨 뜻이지? 궁금하당.
-댄스랑 관련 있는 것 같은데? 서양화과 여러분 등장해 주시져.
-서양화과라고 저걸 다 알겠냐ㅋㅋㅋ
그때 혜성같이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나 철학과 4학년인데. 저 그림 뜻 알겠음.
-갑자기 철학과?? 참고로 저거 애가 그린 거다. 이상한 말 하지 마라.
-ㅇㅇ앎. 그리고 애들 상상력 풍부해서 무시할 건 못 됨. 저 펭귄 그림자만 봐도 그렇잖음.
철학과 4학년이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 무대를 보면 보름달인 걸 알 수 있음.
애들은 춤을 추고 있고 밑에는 펭귄 그림자가 있음.
사실 저건 그림자가 아니라 진짜 펭귄일지도 모름.
지구에서 같은 달을 보고 춤추고 있는 걸 표현한 거임.
위 아더 월드 같은 느낌?
장문의 댓글을 본 한 사람이 의문을 표했다.
-그럼 왜 그림자로 표시했는데?
-그거야 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으면 달그림자는 펭귄을 가리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에라이. 애가 거기까지 생각해서 그렸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애들 상상력은 풍부하지.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펭귄을 그림자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어? 그림에 펭귄을 그림자로 묘사한 부분은 인정해 줘야 하는 부분임.
-어? 그건 진짜 신기하네. 펭귄을 그림자로.
그냥 시하는 페페를 넣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상상력이 들어간 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달그림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름달 노래를 생각해서 무대를 달로 만들었을 뿐.
-근데 포스터 저어~ 구석에 조그맣게 적힌 ㅇㅅㅎ 초성은 무슨 말이지?
-이상해?
-악수회?
-야생화?
-야 철학과. 해석해 봐.
-아 몰랑.
아무 뜻 없고 그냥 이시하, 이시혁의 이름 초성이다.
그림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다가 초성까지 큰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렸다.
이걸 올린 홍광영은 ‘대체 왜 이렇게 됐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게임 개발 동아리방
나는 오랜만에 동아리에 들렀다.
이제 다른 주인공 루트 역시 대략 적어두었다.
이 콘티 요소만 맞추면 다른 시나리오 작가가 맡아도 개연성이 부족하게 쓰이지 않을 거다.
“이걸로 나는 끝. 더 적고 싶은데 할 일이 많아서. 파일로 보내줄 테니까 잘 보관하고.”
안경호가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고마워. 이렇게까지. 근데 이게 게임 상용화가 안 되면 어쩌지?”
“취업되면 뭐 할 수 있겠지.”
“그렇겠지? 이 게임 만든 게 마음에 들었다는 거니까.”
“아니면 우리 학교에 지원받고 스타트업으로?”
“너무 힘들 거 같아서 패스.”
“하긴.”
그때 죽상을 한 박경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와! 어린이집에서 애들이 춤춰?!”
“어?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긴. 여기 강인대 SNS에 딱 올라와 있네. 이야, 진짜 재밌겠다.”
화면을 보자 정말 올라와 있었다.
홍보할 거라더니 정말 했구나? 벌써 댓글도 많네?
하긴 축제는 다 같은 관심사니까.
특히 어떤 연예인 라인업이 오는지 중요하다.
댓글 중간중간에 이상한 해석도 있지만, 축제 라인업도 어서 알려 달라는 댓글도 있다.
뭐가 그렇게 비밀이길래 아직도 안 알려줄까?
이때쯤이면 대충 나왔을 건데 말이지.
“시하 그림이네.”
“와! 시하 역시 그림 잘 그리네. 딱 보자마자 알았어. 전에 팝업북도 엄청 잘나갔잖아. 나중에 웃돈 주고 파는 사람도 생기고.”
“거짓말하지 마.”
“들켰네. 암튼 그 정도 파장이었다는 거지.”
과장이 심하네.
뭐 저런 성격인 건 알고 있었으니까.
안경호가 박경준에게 말했다.
“이거 이거. 일 안 하고 이거나 보고 앉았어.”
“야. 우리 동아리 부원 이시하가 홍보 포스터를 그렸는데 이거라니. 우리가 남이가?”
“어?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닌데?”
그런데 언제부터 시하가 이 방의 부원이 되었지?
은근슬쩍 넣는 놈이나 받아주는 놈이나 다 똑같다.
나는 박경준에게 말했다.
“시하는 동아리원 아니거든?”
“거. 뭐. 너도 동아리원이니까 시하도 포함되는 거지. 마치 햄버거의 세트 메뉴랄까? 피자와 콜라의 관계랄까? 그런 거지.”
“원 플러스 원도 아니고…….”
아무튼, 이렇게 시하의 그림이 메인이 되어서 기분은 좋다.
나중에 시하에게 알려주면 좋아하겠지?
“그런데 게임 개발 동아리는 축제 때 뭐 안 해? 다른 동아리는 실적 하나 있어야 한다고 난리던데?”
“우리야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우리의 실적은 바로 취업!”
“그걸로 동아리가 존속돼? 학기마다 내야 하는 활동 보고서가 있던 거로 아는데?”
“크흑. 역시 시혁이는 우리 동아리원 다 됐어. 그 부분은 경환이에게 맡겨 뒀으니까 걱정 마.”
왜 신경환이 이 멤버 중에서 까칠한지 잘 알겠다.
이 둘을 끌고 가려면 저렇게 꼼꼼한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싶었다.
“뒤질래?”
타이밍이 절묘하게 신경환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긴 다 좋은데 방음이 좀 약하다.
밖에서 다 들린다.
“경환이 왔어?”
“어. 시혁아. 안녕.”
“응. 어디 갔다 온 거야?”
“아, 축제 때 할 거 말하고 왔지. 부스도 얻을 겸.”
“오! 뭐 하는데?”
“저 태평한 놈들이랑 다르게 게임 개발부에서 준비한 게 있지. 뭐냐면.”
그때 안경호와 박경준이 반박했다.
“야! 우리 바쁘거든!”
“맞아! 개발한다고 겁나 바쁜데!”
“닥쳐! 난 두 가지 일을 다 신경 써야 한다고! 경호 너는 회장이면서 왜 신경을 안 써!”
경호가 찔끔했는지 눈을 돌렸다.
할 말이 없는 거다.
하긴 지금 게임 개발을 메인으로 주도하는 게 안경호니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거겠지만.
이쯤에서 딴 얘기로 돌려야겠다.
“그래서 뭐 하는데?”
“아! 쟤들 말고 다른 부원들이 만든 무료 앱 게임을 할 거야.”
“아하.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인데?”
“그냥 뭐…. 펭귄이 미끄러지면서 점프하는 게임? 점수도 있어. 그날 제일 점수 높은 사람에게는 상품도 줄 거야.”
“오! 좋은 생각이네.”
“그렇지? 화면에 연결해서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할 거야.”
“그것도 좋네.”
왠지 시하가 좋아할 게임이다.
그렇게 듣고 있는데 무언가 생각이 번뜩였다.
가만? 이거 잘하면?
“혹시 와이패드로 앱 받아서 게임할 수 있어?”
“있지. 안 그래도 패드나 태블릿으로 게임하게 하려고. 화면이 크잖아.”
“그으래?”
내가 싱긋 웃자 신경환이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흠흠. 혹시 패디과 여성분들이랑 장사 한번 안 해 볼래? 같이 부스 쓰면서 태블릿 가방 판매하면 홍보 효과 좋을 거 같은데?”
신경환의 말이 나오기 전에 안경호와 박경준이 벌떡 일어나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오오!! 패디과!! 좋지!”
“와우! 같이 참여하면 더 좋지!!! 축제 진짜 기대된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 개발한다고 바쁜 거 아니었어? 동아리 실적은 나 몰라라잖아?”
“무슨 소리야! 회장으로서 당연히 이번 학기 실적을 내야지. 부원에게만 맡길 수야 있나!”
“당연하지. 선배로서 과팅… 커험. 과 합동 판매에 기여를 해야지.”
그냥 제안만 한 건데 벌써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둘이었다.
신경환만이 그런 둘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근데 신경환도 기대되는지 귀가 빨개져 있었다.
성격은 달라도 닮은꼴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