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500)

182화

정문.

학생들이 9시에 강의를 들으러 분주히 발을 움직인다.

오늘 아침이 이렇게 쌀쌀할지 모르고 팔짱을 끼는 학생이 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괜히 일찍 와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기도 한다.

게시판은 그렇게 눈에 띄는 자리에 있건만.

시야 좁힌 사람들에게는 그저 지나갈 수 없는 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몇몇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헉! 이게 뭐야?”

“괴물이야?”

“어린이집에서 축제 때 춤을 춘다고 적혀 있는데?”

윤동의 그림은 정문의 적막함을 깨웠다.

소란이 일자 지나가는 학생들이 뭔가 싶어서 쳐다본다.

사람 팔다리가 여러 개 붙어 있는 기괴한 그림.

“괴물 같은 춤을 보여주겠다. 뭐 이건가?”

그냥 팝핀을 추고 있는 것뿐이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야. 이거 은근히 재밌겠네.”

“진짜. 그렇네. 나중에 한번 가볼까?”

“야야. 설마 잘 출 리가 있냐. 애들인데.”

“애들 귀엽겠다. 힐링하러 가도 되겠는데?”

각각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떠나간다.

그런데 왜 저런 그림이 정문에 그려져 있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관심을 끄는 데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그저 평탄한 그림이었다면 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니까.

학생들은 정문에서 다른 갈래의 길을 걸었다.

인문대, 공대, 자연대 등등.

마치 입구에 들어서는 것은 같아도 가는 길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9시가 지나면 정문은 휑하니 아무도 없게 된다.

정문은 또 다른 사람들이 오길 기다린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다가오며 게시판을 보았다.

“흠. 이게 어린이집에서 한다는 춤 포스터인가 보네?”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는 학생회에서 일하고 있었고 축제 홍보 사진과 영상 제작을 맡고 있었다.

‘게시판 7개에 붙인다고 했지? 아마?’

기억을 떠듬떠듬 되살리려고 했지만 일이 많아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폰을 꺼내서 총학생회 회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린이집 포스터가 어디 어디에 배치됐지?

-정문, 후문, 식당 두 곳, 도서관 두 곳, 중간 게시판 하나.

-ㅇㅋ 다 찍고 학생회 감.

-와. 근데 어린이집에서 이런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줘서 대학교 축제 일정표 짤 때 좀 좋네. 뭔가 하나 차지해 주잖아.

-ㅋㅋㅋ

-잘 좀 홍보해 주라. 안 그래도 오후에 하는 일정인데. 많이 올지는 모르겠다.

-알아서 함

-알아서 잘하겠지. 아, 근데 저녁에는 진짜 안 되나? 지금 축제 지원자가 부족함

-노래 많잖아?

-노래만 많잖아! 다양해야 재밌다고. 뭔 노래방도 아니고 노래만 전부 넣을 수 없잖아. 어차피 가수도 오는데.

-그건 그렇지.

-한 번 환기할 수 있는 느낌으로 중간에 뭐 하나 넣었으면 하는데.

그가 톡을 하며 움직였다.

보통 무대 행사는 7시부터 시작이라 어린이집에 말하기가 좀 그랬다.

-7시 30분에 한다고 쳐도 애들이 무서워하면 끝이지. 사람들 많으면 무섭잖아.

-그건 그렇지.

-동아리들에게 좀 다양하게 참여하게 해 봐. 뭔가 최첨단! 이런 느낌도 괜찮고.

-게임 개발 쪽에 한번 물어볼까? 경트리오 재밌잖아.

-걔들은 셋이서 투덕거리는 게 재밌는 거고.

시니컬한 대답에 회장은 답장이 없었다.

현재 콘서트 배치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저기 인문대 식당 포스터 있네. 나중에 또 연락하자.

-아, 그래도 어린이집 가면서 한번 물어봐. 어차피 홍보영상 때문에 함 가야 하잖아.

-ㅇㅋ 물어는 볼게. 좋은 대답 기대하지 말고.

-ㅇㅇ;;;

그렇게 폰을 집어넣은 그가 카메라를 들었다.

포스터에 초점을 잡다가.

“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잘 그려진 포스터였으니까.

“와. 이거 대박이네. 여기 인문대 식당 포스터가 메인인데? 그림 좀 배운 애인가?”

거기 그림에는 7명의 아이가 주먹을 쥐고 아래위로 흔드는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의 무대는 보름달처럼 노란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특이한 점은.

“그림자가 펭귄이네?”

아이들 뒤에 있는 그림자가 펭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뭔 의미지? 이것도 물어봐야겠네.”

그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사이트에 올릴 어린이집 메인 포스터는 이걸로 정했다.

***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서수현이 같이 학식을 먹자고 해서 식당으로 갔는데 긴 줄이 보인다.

그래도 요즘 기계로 학식을 끊을 수 있으니 너무 편한 것 같다.

“오늘 뭐 맛있는 거 나오나? 게시판 쪽을 다들 보고 있네?”

서수현이 폰을 보다가 학식표를 보여 주었다.

“오빠. 오늘 정식 괜찮은데요? 소고깃국 나와요. 계란말이랑.”

“소고깃국에 계란말이면 괜찮지.”

“근데 저기 학식표가 아니라 뭔 포스터를 보고 있나 본데요?”

“어? 그러네.”

저 멀리 포스터가 보이긴 한다.

줄이 길어서 자세히는 안 보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나가서 먹을 걸 그랬나 보다.

아니지. 학식 먹고 식비 아껴야지.

돈을 모아야 시하에게 과자라도 더 사줄 수 있다.

시하야. 보고 있니? 형아의 눈물 나는 노력이 말이야.

아니야. 넌 몰라도 돼.

서수현이 말했다.

“뭔지 궁금하다.”

“어린이집에서 만든 거겠지. 이번 축제에 춤추거든. 그 포스터야.”

“와! 혹시 시하 그림 아니에요?”

“아닐걸? 페페 그렸다고 했는데? 저기는 사람이 7명 그려져 있지 않아.”

“아, 그러네. 누굴까? 하나인가?”

우리는 그런 궁금증을 갖고 포스터 앞으로 갔다.

이제야 자세히 보인다.

잘 그려진 그림이다. 그런데 이건 시하의 그림체인데?

“오빠. 페페 있네요.”

“그러네. 있네?”

설마 페페가 그림자로 있을 줄이야.

아마 저 밑에 무대는 달이겠지.

달에 관한 노래로 춤을 춘다고 했으니.

하여간 시하는 대단하다. 모든 구성 요소를 넣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페페를 넣다니.

‘사람들은 저 그림을 보며 뭐라고 생각할까?’

서수현이 반짝이는 눈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걸 보니 나도 괜히 찍어야 싶어서 폰을 들었다.

“오빠. 시하가 정말 잘 그렸는데요?”

“그러게. 사실 7명이 펭귄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

“네?”

“전 학생회 홍보를 맡은 홍광영입니다.”

“아, 네.”

“우연히 들었는데 이 그림 그린 아이랑 잘 아시나요?”

“동생인데요?”

“정말요?! 그럼 잘됐네요. 혹시 같이 밥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아, 네. 그러세요.”

어느새 우리 차례가 와서 기계에 학식을 끊었다.

식당에 앉은 우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실 저 포스터를 학교 축제 홍보에 넣을 생각이거든요.”

“아, 네.”

“그래서 허락을 좀 맡으려고요.”

“쓰세요. 근데 이런 것도 허락받나요?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차피 축제용 포스터인데.”

“에이.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냥 막 씁니까.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이시혁이요. 국문과. 여기는 서수현.”

“아. 이시혁. 이시혁. 음? 뭔가 익숙한데? 아! 통역사 이시혁! 어쩐지 봤다 싶었어요.”

“절요?”

“네. 건스 대회에서 통역했잖아요. 그 영상보고 캬아.”

“아…….”

그 영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어째서 그런 큰 대회에 통역을 맡을 생각을 했을까?

뭐긴. 돈 때문이지.

“사실 게임 좋아해서 그 대회 꼭 챙겨보거든요. 홍보 영상 제작 쪽에 관심도 있어서 그런 것을 자주 보는 것도 있지만요.”

“아하.”

홍광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흠흠. 사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저녁에 무대에서 공연해 주면 어떨까 하고 물어봤는데 퇴짜 맞았습니다.”

“아, 그건 힘들겠네요. 어머님들이 다 허락하기 힘든 부분이라. 물론 허락해 주시는 분들도 있긴 하겠지만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꼭 다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요.”

“네?”

“형이랑 같이 나오면 어린이도 안 무서워하고 잘하지 않을까요?”

“???”

무슨 소린지 멍하니 듣다가 뒤통수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시하랑 축제 무대에 서 달라는 거지?

“무대에 서서 춤추는 건 조금 그렇네요. 옆에 수현이는 어때요? 얘 너튜버인데. 유명해요. 슈 채널이라고.”

“푸흡.”

갑작스러운 소개에 서수현이 사레가 들렸는지 캑캑거렸다.

홍광영의 눈이 빛났다.

“오! 사회자랑 케미도 좋을 것 같네요. 일단 받고. 시혁 씨는 어떤가요?”

“크흠.”

거참. 포기할 줄 모르시네.

시하랑 놀아야 하는데 무대에서 쏟을 시간이 없지.

물론 오래 공연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정도 시간은 투자해줄 수도 있다.

“동아리들이 앞다투어 참여하려고 하는 건 참가비도 나오기 때문이죠. 물론 금액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얼마예요?”

“둘이 나오면 5만 원! 그 이상은 제 권한 밖이라.”

“오오.”

3분짜리 춤추고 대충 사회자랑 이야기 좀 나누면 한 10분.

1분에 5천 원이면 최저시급도 뚫는 수준 아닐까?

“그래도 안 됩니다.”

“완전 단호박이네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축제는 같이 즐기시는 거죠?”

“네. 그렇죠. 시하랑 같이 있을 겁니다.”

“오! 그럼 제가 완전 앞자리 맡아두고 있을게요.”

“아니. 그렇게까지.”

“아니에요. 어린이랑 중간에 자리 잡으면 나가기도 힘들잖아요. 맨 앞쪽 끝에 위치하도록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홍광영의 눈빛이 참으로 찝찝하다.

거절했는데 저렇게 상쾌한 눈이라니? 뭐지?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저기 수현 씨. 수현 씨도 학생회에 지원하면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냥 노래 부르는 사람보다 너튜버가 더 낫죠.”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식사를 마쳤다.

***

-어린이집.

포스터를 끝낸 아이들이 이제는 춤 연습을 하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이것 역시 스트레칭을 가르치기 위한 선생님의 교육!

축제라는 핑계로 여러 가지 가르쳐줄 수 있어서 좋았다.

“자! 한 명씩 짝지어서 스트레칭을 해요. 하나야 선생님이랑 하자.”

“응!”

승준과 시하가 등을 마주 보았다.

팔이 얽히며 승준이 시하를 들었다.

시하의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재미써!”

시하가 천장을 보았다.

발이 부웅 뜨는 감각과 함께 위아래로 흔들리는 게 자동차를 타는 것 같았다.

“으챠!”

승준이 엉덩이를 튕기며 시하를 들썩들썩 흔들리게 했다.

“아아!”

“하하하! 시하야. 이제 나도 해줘.”

“시하. 해!”

이번에는 반대로 승준의 허리를 들썩들썩하게 했다.

아이들이 그런 스트레칭이 재밌는지 깔깔 웃었다.

하나 역시도 의욕에 불탔다.

“선생님. 하나가 해 주께.”

“아니야. 하나 허리가 위험해.”

“하나 힘센데? 아빠 팔씨룸도 이겨써.”

선생님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나야. 그건 아빠가 일부러 져준 거야.

차마 그런 진실을 입에 담을 수 없어서 입을 꼬옥 다물었다.

그때 종수가 말했다.

“그거 일부러 져준 거거든!”

“아니야! 하나가 힘세서 못 이긴다고 해써!”

“쯧쯧. 그걸 속냐. 아빠들은 힘세서 쌀도 들거든. 넌 쌀 들 수 있어?”

“아니. 업써.”

하나가 시무룩해졌다.

저런 비유를 들고 오니 정말 아빠가 일부러 져줬다고?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승준이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썼다.

“야. 종수! 넌 나한테도 팔씨름 지잖아.”

“뭐?!”

종수에게는 절대 넘길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시작된 신경전.

선생님은 이제 말리기보다는 차라리 승부를 보는 게 더 낫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 춤 배우기 전에 다들 팔씨름을 해 볼까요?”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

하나 역시 질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시하는 그저 ‘스트레칭해서 둥둥 뜨고 싶은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승준이랑 종수가 팔씨름 먼저 해 볼까?”

승준과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엎드려서 두 아이가 손을 잡았다.

그래도 남자아이라고 손에 힘이 장난 아니다.

“그럼 선생님이 손을 놓으며 시작이라고 하면 하는 거야. 알았지?”

“네!”

“네!”

“그럼 시작!”

승준과 종수의 얼굴이 벌게졌다.

막상막하의 싸움.

하나는 손을 꼬옥 잡으며 승준을 응원했다.

“오빠. 이겨라!”

“아아. 승준! 가라!”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하야. 승준이는 만화에 나오는 몬스터가 아니에요…….

아무튼, 응원한다는 마음은 같았다.

종수도 애들을 응원을 받았다.

“종수야. 힘내!”

“오! 파이팅!”

“힘내.”

저렇게 막상막하라도 어느 한쪽이 기우는 법.

승리는 운동을 좋아하는 승준에게로 돌아갔다.

“아싸! 이겼다!”

종수가 분하다는 듯이 손으로 땅을 짚었다.

재휘가 종수에게 다가왔다.

“종수야. 괜찮아?”

“내가 공부 덜하고 운동했으면!”

“그래도 잘했어!”

“승준에게 지다니!”

종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승준을 보았다.

그리고 타깃을 돌려 시하에게 말했다.

“이시하. 나랑 팔씨름하자.”

“아? 시하?”

“응. 너.”

“시하. 져써. 바이바이.”

쿨하게 졌다고 말하는 이시하.

종수는 허탈하게 바닥을 짚었다.

“도망친 건 시하인데 왜 내가 진 것 같지?”

이런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런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마치 정문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가듯이.

윤동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팔씨름 말고 춤 연습해요!”

윤동은 어린이집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에만 관심이 지대했다.

오랜만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이제 노래를 들으며 어떤 춤인지 배워 볼까요?”

선생님은 노래를 틀었다.

노래의 제목은 ‘보름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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