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500)

180화

강인대학교는 1학기 때 체육대회가 있다.

그리고 2학기에는 축제가 있다.

대학생들의 축제는 지금까지 모았던 등록금들의 파티.

그리고 때로는 열정과 시간의 파티다.

그 준비 기간과 노동에 그들이 하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중간고사가 끼어 있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그래도 한 명, 한 명이 축제를 준비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축제 당일이 즐거운 것은 그 속에 과정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모르는 그 노고.

우리가 그 노고까지 추억이라고 부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건 대학생 때까지가 아닐까?

순수한 즐거움을 시하도 즐겼으면 했다.

“형아.”

“응.”

“시하 춤.”

“응?”

갑자기 춤 얘기에 뭔가 싶었는데 알림장을 보니 이해가 간다.

이번에 어린이집도 축제 행사에 참여하는 모양.

1, 2학년 때 어린이집도 부스를 하나 열어 참가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영업이 빨리 끝나긴 했지만.

애들이 종일 일할 수는 없지 않나.

아무튼, 이번에는 어린이집에서 춤 공연을 한다.

“시하야. 춤추고 싶어?”

“시하 팔 따닥. 발 따닥.”

“그렇구나.”

입은 따닥인데 몸은 흐물흐물 둥실둥실이다.

대학생들이 아이들 춤을 보러 올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혹시 모르니 이럴 때 아는 사람도 초대하면 좋을지도?

“그런데 어떤 노래로 춤추는 거야? 아직 그건 안 정했어?”

“달. 달 이써.”

“달?”

달에 관한 노래로 춤을 추는가 보다.

대체 어떤 율동을 할지 궁금하긴 하다.

보통 이런 건 부모님들이 많이 보러 오시겠지?

아니, 평일이니까 어쩌면 한 분만 오시거나 못 오실지도 모른다.

“축제 때 춤도 좋지만, 형아랑 많이 놀자. 알았지?”

“아아!”

“그리고 형아가 홍보 많이 할게. 국문과 부스에 몰래 포스터도 붙일게.”

“포수터?”

“응. 이렇게 네모난 종이에 이런 춤출 거예요. 많이 보러 오세요. 적혀 있는 거야.”

“시하 아라.”

“오! 정말?”

어떻게 아는 걸까?

요즘 어린이집에서 참 많이 배우나 보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우는 게 참 많아서 좋은 것 같다.

못된 것만 안 배우면 좋겠다.

“시하. 이케 이케 만드러.”

“만든다고?”

“아아.”

시하가 알림장을 탁탁 쳤다.

나는 글을 마저 읽었다. 본격적으로 할 건지 포스터부터 초대장까지 만든다고 적혀 있었다.

역시 어린이집 선생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잘 꾸릴 수 있게 커리큘럼을 쫙 짜놓으셨다.

그런데 춤 연습은 하루에 30분만 한다고 한다.

‘그거 가지고 되나?’ 싶었지만 애들을 무리시키지 않는 선에서 하면 좋은 거겠지.

어차피 시간도 대략 3주나 남았으니까.

“준비물은 색연필만 챙겨가면 되네?”

“아아. 색연필!”

“좋아. 이건 형아가 챙겨주겠어. 하지만 오늘부터 기본적인 춤 특훈이다!”

“아?”

“여기 오면서 춤 잘 추는 애가 있다는 거 말했잖아.”

“아아.”

“적어도 지면 안 되지!”

“왜?”

“어…. 꼭 이기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추면 좋잖아. 흠흠.”

“왜?”

“왜냐면 형아가 시하랑 같이 춤추고 싶으니까!”

“시하도!”

시하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사실 춤을 춘다는 걸 듣자마자 같이 놀아줄 기회라는 걸 느꼈다.

집에 박혀 있는 게임기를 쓸 때가 왔다.

거기에 춤 게임이 있는데 그거를 가지고 놀면 될 것 같았다.

이걸 위해 한번 써보는 거지.

사실 윤동이라는 애를 이기고 지는 건 다 핑계고 오늘은 뭐 하고 놀아줄지 선택한 거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바로 티비! 이미 세팅은 다 끝났으니까 시작하면 돼.”

“춤?”

“응. 춤. 영어로 댄스.”

“댄수!”

나는 곧장 게임을 켰다.

티비 화면에 춤신춤왕인 호랑이 캐릭터가 나왔다.

예전에 승준과 하나가 와서 했던 게임 캐릭터인 호랑이.

이게 바로 캐릭터 돌려막기인가?

아무튼, 우리는 그 호랑이를 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둠칫. 둠둠칫.

“춤의 기본인 바운스부터 배우자고 하네.”

“아아. 바운수.”

시하가 호랑이 캐릭터를 따라 무릎을 굽혔다 폈다 했다.

팔은 내리고 무릎만 굽히는 건데 시하는 왠지 모르게 팔도 함께 파닥거렸다.

“형아. 시하 잘해?”

“시하야. 잘하고 있어. 근데 팔은 가만히 있자. 그대로 따라 해야 해.”

“아아.”

팔은 가만히 있는데 이제 손이 파닥거린다.

손이 허벅지를 치며 박자를 센다.

탁. 탁. 탁.

시하가 그렇게 하니 나도 모르게 호랑이가 아니라 시하를 따라 하게 되었다.

형제 둘이서 손만 파닥이며 바운스를 추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배를 잡고 웃을 게 분명하다.

호랑이가 말한다.

[자! 이제 바운스를 하면서 옆으로 움직여 봅시다. 왼쪽! 왼쪽! 왼쪽!]

시하와 내가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호랑이가 끝없이 외친다.

[왼쪽! 왼쪽! 왼쪽!]

아니, 왼쪽만 외치면 어쩌자는 거야.

이 게임 참으로 이상하다.

나는 벽에 붙을 수밖에 없었고 시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 오른쪽 다리에 찰싹 붙었다.

“형아! 여프로! 여프로!”

“억! 더는 안 가지는데?”

“아냐. 할 수 이떠~!”

“아니야.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형아. 시하 안아.”

“안으면 옆으로 갈 수 있다고?”

“아아.”

나는 뭐가 뭔지 모르고 시하를 안았다.

시하가 팔로 내 목을 둘렀다.

아무리 이래도 옆으로 가는 건 불가능이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형아. 여프로.”

“옆으로는 못 가.”

“아냐. 시하 여프로. 마자.”

“응?”

시하가 내 품에서 몸을 살짝 떼더니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빙글빙글.

“여프로.”

“돌면 옆으로 가는 게 된다고?”

“아아.”

나는 망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런 깊은 뜻이 있다니. 시하는 천재인가?

물론 정확히 옆으로는 아니고 곡선이겠지만 어찌 됐든 원으로 돌면 옆으로 아니겠냐고.

무한히 옆으로 돌 수 있다.

크으. 직선이 아니라 원을 생각하다니.

시하는 역시 천재다.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시하야. 그러면 형아에게 안길 필요가 전혀 없지 않아?”

“아?”

시하가 눈동자를 옆으로 살짝 굴리더니 내 목을 끌어안았다.

요거, 요거. 아무래도 그냥 내 품에 안기고 싶었던 거 아니야?

“시하야. 그냥 형아 품에 안기고 싶었던 거지?”

“아냐. 시하. 형아 가치. 여프로야. 가치 해써.”

“아~ 그랬어? 그렇구나.”

시하 맘 이미 다 들켰다.

나는 쿡쿡 웃으며 시하를 꼬옥 안았다.

하여간 귀엽다.

그때 티비에서 호랑이가 우리가 춤추지 않는 걸 눈치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놀구 있네~!]

저기요. 놀고 있는 거 아닙니다.

근데 왜 다른 뜻으로 들릴까? 착각이겠지?

-잠시 후.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땀이 흘렀다.

시하랑 바운스밖에 배운 게 없는데 이렇게 더워도 되나 싶었다.

그런데 시하는 이제 바운스가 재미없는지 노래를 틀어 달라고 했다.

역시 저런 정박이 나오는 비트 말고 노래를 틀어야지.

“어떤 노래를 들을래?”

시하가 한참 고민을 하다가 개굴을 외쳤다.

아무래도 서수현이 만든 노래를 듣고 싶은 모양.

이 게임에는 그런 노래가 없으니 폰으로 틀어야 했다.

“그럼 이거 끌까?”

“호랑이. 바이바이.”

“큭큭. 그래. 호랑이는 이제 아웃이네.”

나는 게임기를 끄고 폰으로 서수현의 노래를 틀었다.

깨끗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인지 신나는 댄스 음악이 없는 게 아쉬웠다.

신나는 노래는 없나?

“형아. 이거 아냐. 그거. 그거.”

“그게 뭔데?”

“실버. 실버.”

“아, 그 노래는 좀.”

서수현이 나를 보면서 만든 노래.

아직도 그 노래 나오는 영상은 인기가 좋다.

지금도 스트리머들에게 재생산 중이었으니까.

난 실버인 실력이 아니란 말이야!

벨 선수 캐릭터도 한 번 죽였다고.

“형아. 그거! 그거!”

“음. 알겠어.”

시하의 반강요에 의해 결국 틀 수밖에 없었다.

바운스를 배워서일까?

오늘따라 시하가 내 마음을 이리저리 통통 튀게 한다.

***

-어린이집.

오늘은 포스터를 그리는 날.

아이들이 각자 들고 온 색연필을 꺼냈다.

축제에 맞춰서 광고하는 포스터를 붙일 예정이다.

포스터는 총 7개.

학교 게시판 세 곳과 식당 두 곳, 그리고 도서관 두 곳에 붙일 예정이다.

선생님은 축제에 감사했다.

이런 핑계로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많이 짤 수 있으니까.

“여러분. 오늘 그림은 여기 강인대학교 누나, 형들에게 보여줄 거예요. 우리 춤추는 거 많이 보라고 말이죠.”

그때 승준이 손을 들었다.

“근데 아무도 안 오면요?”

“그럴 일은 없어요. 무조건 여러분들을 보러 올 거예요. 그러니 포스터가 중요해요. 이걸 보고 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하고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세요.”

“어렵다~”

“어렵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리면 돼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색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렵다던 승준은 시하의 옆에 앉아서 쫑알쫑알 말하기 시작했다.

“시하야. 나는 사커공 그릴 거야. 사커공이 춤추는 거지.”

“아아.”

“시하는 뭐 그릴 거야? 역시 페페? 페페가 춤추는 거 그릴 거야?”

시하의 펭귄 사랑은 이제 어린이집의 사람도 다 아는 법.

어떤 걸 그리게 될 건지 뻔할 뻔 자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페. 춤!”

“그럴 줄 알았어. 하하하.”

승준이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승준의 손에 축구공이 팔다리만 나와서 흔들어 젖히고 있었다.

하지만 웃긴 점이 있었으니 노래방 미러볼처럼 주변에 무지개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중에 무지개 슛으로 색칠할 거야.”

형형색색인 색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승준.

그걸 본 하나가 볼을 부풀렸다.

“하나도 무지개 할 건데! 오빠가 따라 해.”

“아니야. 나는 무지개 슛이야. 너는 무대 조명이잖아. 달라.”

“아닌데. 무지개는 또까튼데.”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같은 무지개를 그린다.

종수는 그 모습을 보고 질 수 없다는 듯이 눈에 힘을 줬다.

어떻게든 무지개보다 엄청난 걸 그려야 했다.

“재휘야. 무지개보다 엄청난 거 그리자. 이겨야 해.”

“으응? 아니. 난 무지개보다 엄청난 거 안 그려도 되는데?”

“아니야. 그려서 이겨야 해!”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종수야. 이건 승부가 아니란다. 그냥 포스터 그리는 거야.

기어코 무지개보다 뛰어난 우주선을 그렸다.

화려한 광선이 우주선에서 뿜어져 나온다.

재휘는 눈치를 보다가 티셔츠를 한 장 그리고 그 안에 우주선을 넣었다.

저렇게 되면 우주선은 티셔츠보다 못한 게 되는 걸까?

“으으. 팝핀을 그리고 싶었는데.”

“푸하하! 저게 뭐야!”

윤동의 그림을 은우가 보고 웃는다.

사람의 팔다리가 여러 개 붙어 있어서 기괴했다.

아무래도 팝핀 추는 사람을 만들고 싶었나 본데 아이의 실력으로는 표현하지 못했다.

윤동이 발끈하며 은우의 그림을 보았다.

“넌 뭐 엄청난 거 그렸어?”

“아? 나? 당연하지. 황금 목걸이 그렸어. 그대에게 주어지는 황금 목걸이.”

“그거 춤이 아니라 랩이잖아!”

“노우~! 컴온. 컴온. 푸하하.”

윤동의 말은 귓등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보다가 포스터를 컴퓨터로 새로 만들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좋아하는 걸 그리라고 했지만 다들 엄청 개성 있는 걸 그렸네. 그런데 춤과 관련이…….’

선생님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만든 걸 학생들이 좋게 봐주길 비는 수밖에.

만약 오지 않으면 봉사하러 왔던 대학생들에게도 부탁하면 된다.

‘그럼 시하는…….’

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시하를 보았다.

“응? 펭귄이 아니네?”

“아냐. 페페야.”

시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펭귄이 아니었으니까.

“페페라고?”

“아아. 페페. 페페.”

“이게?”

“아아.”

“???”

선생님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 스케치에는 펭귄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도화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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