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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화 (179/500)

179화

-어린이집.

시하는 싱가포르에서 들고 온 과자를 꺼냈다.

제일 먼저 가장 친한 쌍둥이들에게 주었다.

“승준! 하나!”

“와! 고마워. 이거 진짜 맛있겠다.”

“와! 하마다!”

쌍둥이들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시하도 뿌듯함을 느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기념품을 사 왔으니까.

종수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보더니 살짝 부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도 티는 내고 싶지 않아서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맛있겠네. 근데 그거 지금 먹으면 안 돼.”

“아아. 종수.”

“어? 이거 내 꺼야?”

“아아. 종수 꺼.”

“어…. 고마워.”

종수의 입가가 실룩였다.

챙겨줘서 기쁘기도 하고, 괜히 심통 냈던 게 민망하고 그랬다.

옆에 있던 재휘도 함께 받았는데 순수하게 기쁨을 누렸다.

남은 두 명인 윤동과 은우에게도 과자를 주며 시하가 두 개 남은 종이가방을 보았다.

‘왜 두 개 남지?’ 하고 고민하다가 선생님을 보았다.

“아아! 샘. 언장 샘. 이거.”

“응? 선생님에게도 주는 거야?”

“선물.”

“고마워. 맛있게 잘 먹을게. 하마네?”

원장님도 기쁘게 받으며 오늘은 특별히 다 같이 초콜릿을 하나씩 먹어보기로 했다.

애들이 신나 하며 과자를 뜯어 맛보았다.

초콜릿은 언제나 옳다.

다들 맛나게 먹고 있을 때 승준이 하나 더 먹으려고 하다가 선생님의 레이더에 걸렸다.

선생님이 승준을 말렸다.

“거기. 승준아. 더 먹으면 안 돼요. 많이 먹으면 이빨 썩어요.”

“아닌데. 양치하면 안 썩는데.”

“어허. 이빨 안에 세균이 두 개 먹는 거 눈치채고 지금 창을 들었어요.”

“하하하! 거짓말!”

선생님은 승준에게 안 통한다는 걸 알고 낭패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질 수 없는 일.

다른 아이들도 슬금슬금 더 꺼내 먹으려고 한다.

인생이란 절제도 배워야 하는 법이다.

특히 과자를 많이 먹는 건 부모님들도 바라지 않는 일.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과자를 많이 먹으면 밥을 적게 먹거나 안 먹게 된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줄 수 있을 때 가르쳐줘야 한다.

선생님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먼저 시하가 보였다.

“이케. 이케.”

과자를 가방에 넣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더 먹고 싶은 맘은 없었다.

왜냐면 하마 초콜릿을 이미 많이 먹어봤으니까.

그래서 하나 먹고 난 뒤 별 미련 없이 과자를 가방에 넣을 수 있었다.

딱히 절제를 한 건 아니었다.

“시하가 참 잘하네. 하나만 먹기로 한 약속도 잘 지키고. 과자도 가방에 딱 넣네요! 여러분 모두 박수!”

짝짝짝.

선생님을 따라서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아니. 칭찬은 다른 아이들도 따라 하게 한다.

물론 전부 통하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효과는 있다. 거기에 더한 효과를 주려면 보상을 줘야 한다.

“약속을 잘 지킨 어린이에게는 이 칭찬 도장을 드릴게요.”

“아?”

선생님이 시하의 알림장 뒤에 도장을 꼬옥 찍었다.

곰 얼굴이 떡하니 찍혔다.

“이거 20개 모으면 좋은 선물도 주니까 시하야 열심히 모으자.”

“곰!”

시하는 선물에 관심 없고 곰에 꽂혔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들 선생님의 말씀에 과자를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으니.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승준이었다.

“쌤! 저 다 넣었어요. 여기 알림장!”

저기 승준아? 너무 태세 전환이 빠른 거 아니니?

종수가 뒤늦게 재휘를 끌고 허겁지겁 온다.

선생님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도장을 찍어주었다.

다들 하나씩 도장을 받아서 기쁜지 싱글벙글 웃었다.

“그럼 다들 앉아보세요. 시하가 여행 간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 거예요.”

“아?”

“자. 오늘은 시하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아아.”

아이들이 도장을 받기 위해 말을 척척 잘 들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하에게 말 시키기를 도전하기로 했다.

싱가포르에 갔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으니까.

“아아. 시하. 싱가포 가써.”

“오!”

“시하 나라서 가써.”

“오오!”

시하가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아무래도 비행기로 날아간 걸 설명하는 모양.

그러더니 은우에게 터벅터벅 다가갔다.

손을 내밀며.

“모자.”

“왓?”

“모자.”

“모자 빌려 달라고?”

은우는 자신이 사랑하는 스냅백을 빌려주기 싫었다.

하지만 초콜릿 받은 게 있어서 일단 벗어서 주었다.

“고마어.”

시하가 스냅백을 쓴다.

거의 눈과 코를 가릴 정도로 아래로 내린다.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며 앞을 보지만 눈은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걸 본 은우가 ‘좀 쓸 줄 아는데?’라고 생각했다.

“빨강 모자. 다나까. 다나까. 말이 딸네.”

“응?”

“엉?”

애들은 시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다희 선생님만이 머리를 힘껏 굴려 해석했다.

‘설마 군대 조교?’

정답이었다.

시하는 형이 백동환에게 했던 걸 따라 하고 있었다.

할 말을 다 했는지 스냅백을 은우에게 돌려주었다.

아이들이 이해하든, 말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밥 나무. 커. 수영 해써. 춤 해써.”

뭔가 중간 과정이 엄청 생략되었지만, 아이들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승준이 궁금한 게 있는지 손을 들었다.

“시하야. 춤 뭐 했어?”

“아? 이케. 이케. 싱가포 춤.”

다시 어린이집에서 재현된 시하의 춤.

발은 신나게 구르고 상체는 누군가를 잡는 왈츠를 추듯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떻게 그런 춤이 나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와! 엄청 신기한 춤이네! 하하하! 싱가포 웃기다!”

싱가포르에서는 저런 춤을 추지 않는다.

그냥 왈츠의 일종이다.

아이들은 본 적이 없어서 그저 재밌게 봤다.

하지만 거기에 불편해하는 한 명이 있었으니.

“그게 무슨 춤이야? 춤은 그렇게 추는 게 아니야.”

윤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어떤 춤을 추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런 이상한 춤을 추는 나라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 윤동은 그만큼 춤을 좋아했다.

“내가 너희들 생각해서 안 나서려고 했는데 춤은 그렇게 추는 거 아니거든!”

뒤에 있던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윤동이나 은우랑 같이 놀기는 했어도 꽤 조용한 편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종수의 착각이었다.

둘은 조용한 게 아니라 그저 관심이 덜 한 거였다.

이 둘에게는 정말 중요한 건 꿈이었으니까.

“야. 춤은 그렇게 추는 거 아니야. 잘 봐. 은우야. 좀 도와줘.”

“오케이.”

은우가 스냅백을 뒤로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세 가지의 소리를 냈다.

킥(K)인 북. 하이헷(H)인 츠. 스네어(S)의 프흡.

4비트의 리듬이 은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북 츠 프흡 츠. 북 츠 프흡 츠.”

거기에 맞춰 윤동이 춤을 췄다.

애들의 율동과 다른 팝핀.

근육을 튕긴다. 거기에 맞춰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탁! 탁! 끊기며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4비트에 맞춰서 느린 감이 있었지만 그루브 하나는 기가 막혔다.

“우와!”

선생님도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이 둘의 특기가 뭔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신동이네. 신동.’

윤동도 대단하지만, 은우 역시도 대단했다.

비트박스 하는 어린이라니.

윤동이 속도를 올리라고 손짓을 하자 은우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8비트. 16비트.

하지만 비트가 빨라지면서 숨이 차는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은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연습 더 해야 해요.”

“하하하. 아직 멀었네.”

“난 비트박스보다 랩이거든!”

“거기도 빨리 말하면 숨차잖아.”

“아니거든!”

짝짝짝.

시하는 두 사람이 대단한지 먼저 손뼉을 쳤다.

다른 아이들도 대단하다면서 박수를 보냈다.

둘은 종수와 어울리는 애들답게 가슴을 펴며 자랑스러워했다.

한껏 뽐내는 거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둘이 정말 잘했어요. 춤은 그렇게 추는 거구나?”

“네! 맞아요. 시하야. 잘 알았지?”

“아? 아아!”

시하가 알았다는 듯이 따라서 보여주었다.

꼬물꼬물. 흔들흔들.

승준이 웃긴다며 옆에서 따라 췄다.

꼬물꼬물. 흔들흔들.

팔과 다리는 절제되지 못하고 흐느적거린다.

윤동이 충격적인 걸 봤다면서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은우는 옆에서 ‘언빌리버블!’이라고 소리쳤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었으니까.

“다들 제대로 춤을 배워보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장님만이 그 말을 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

“우리 다 같이 춤출 일이 있거든요!”

선생님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

-강의실.

오랜만에 강의를 들으니 적응이 안 된다.

여유로운 시간표가 이럴 때는 단점이 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들으니 몸이 쑤신다.

지금 이 시각에 번역 작업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다.

설마 나 일중독인가? 막 어떤 강박증이 있나?

아무래도 관심이 덜한 강의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면 수업이 끝나기 1분 전이라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지도?

콕!

뭔가 내 팔뚝을 찔렀다.

보니까 서수현이 정신 차리라면서 볼펜을 흔들고 있다.

“오빠. 이제 끝나가니 멍 때리지 마요.”

“안 들어도 알 거 같은데?”

“참나. 머릿속에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내용 다 외웠어요?”

“미리 책 좀 읽었어. 다 외웠지.”

“뻥치고 있네.”

그러게. 거짓말이었으면 참 좋겠다.

대충 내용을 알면 딴생각이 드는 게 당연지사.

이건 선행 학습을 폐해가 아닐까?

나중에 시하를 종합학원 같은 데 보내서 미리 공부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럴 거면 차라리 다른 공부하는 게 훨씬 나을지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교수님이 짐을 정리하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다들 책을 가방에 넣으며 나가려고 하는데 서수현이 내 의자를 탁탁 쳤다.

“오빠. 잠시만요.”

“어. 그래.”

내가 자리를 비켜주자 서수현아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다들 가지 말고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덜컹.

재빨리 가방을 싸서 나가려는 학생의 동작이 멈췄다.

서수현이 그런 학생을 보면서 칠판 앞으로 나갔다.

“자. 다들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많이 바쁜 건 알지만 이거 하나 듣고 가세요.”

“뭔데! 빨리!”

“중간고사 끝나고 축제인 거 아시죠?”

“아악!”

“국문과에서는 음식 장사 합니다. 다들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아! 뭐 파는데? 늘 똑같은 거 아니야?”

“소떡소떡이요.”

“아. 그거 그냥 사서 팔면 되는 거 아니야?”

“특별 소스 만들 거고요. 주스도 함께 팔려고요.”

“1, 2학년들 시키면 되겠네. 우리 때도 그렇게 했잖아.”

“꼬치는 수제작입니다. 꼬챙이에 하나씩 끼워주세요.”

“그렇게까지?”

뭘 그렇게까지 하냐면서 질색했다.

그래도 대학생들이 바보도 아니고 먹고 싶은 걸 만들기는 해야 하지 않나?

“소시지랑 떡 조합도 있지만, 소고기랑 떡 조합도 있어서요.”

“엥? 소고기?!”

소떡소떡의 ‘소’가 소시지가 아니라 소고기였어?!

나도 조금 놀랐다.

“넹. 아는 지인을 통해서 싸게 싸게 살 수 있거든요. 예산이야 다 나왔고.”

“헐. 토치로 구울 거야?”

“아니요. 미리 조금 삶아서 끼운 다음에 프라이팬으로 기름 둘러서 마무리할 거예요.”

“작업이 많네?”

“미리 수량 정해서 만들어놔야죠. 그래서 다들 시간 내서 꼬치 다섯 개씩 만들면 엄청 수량 많겠죠? 그 정도는 시간 낼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1, 2학년들은 부스 설치랑 재료 수급도 할 거니까. 3학년들은 꼬치만 끼우고 나중에 부스에 한 번씩 호갱 행위 해 주면 되죠.”

“호객 행위 아니야?”

“아. 실수, 실수. 와서 사 먹어주면 더 좋고요.”

아무래도 호갱 행위는 실수가 아닌 거 같은데?

안 팔리면 국문과가 와서 사 먹으라는 소리 아냐? 저거.

‘축제라…….’

시하도 대학 축제는 처음이겠지?

시하랑 함께한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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