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500)

177화

와이패드.

와플사의 제품이며 세계에 인기 있는 태블릿 PC라고 할 수 있다.

일러레들이 즐겨 쓰기도 한다.

특히 화면에 색감이 장난 아닌데 그 특유의 갬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하야. 와이패드 말고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아?”

시하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온다.

도도도 달려와 상자 안을 본다.

“아아! 밥 나무!”

“와이패드 넣는 가방이야. 여기 시하가 그린 밥나무 캐릭터가 있네? 신기하다.”

“아아!”

아무래도 제공하는 쪽에서 시하의 그림을 가방에 새긴 듯하다.

근데 좀 신기하다.

이걸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다고?

아, 물론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가방 위에 그림만 찍어내면 될 것 같긴 하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시하가 내 허벅지를 탁탁 쳤다.

“형아. 이거. 이거.”

“어? 응. 알겠어. 한번 써보자.”

나는 와이패드를 켜고 이것저것 설정을 끝낸 다음에야 앱을 깔았다.

그러는 동안 시하는 자기가 그린 캐릭터가 박힌 가방을 보았다.

“형아. 페페?”

“페페는 없지. 페페가 어떻게 저 가방에 그려지겠어.”

“아냐. 할 수 이떠.”

“다 되는 게 아닌데? 아니면 알리사에게 페페 캐릭터를 가방에 넣어 달라고 하자.”

“아아. 이거 아냐. 페페.”

“페페 캐릭터 달리면 저거 버릴 거야?”

“아냐. 상자 안.”

“아. 상자 안에 둘 거구나.”

그게 버린다는 말이랑 똑같지 않나?

흑흑. 밥 나무야. 너는 그냥 시하에게 밥이구나. 잘 가라. 배웅은 해 줄게.

“자. 다 됐다. 프로크리에이트 앱으로 그림을 그리고 클립스튜디오로 색을 칠하면 돼. 그냥 시하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할 줄 알겠어?”

“아아. 아라. 시하 아라.”

음. 뭐, 잘하겠지. 아마 정말 잘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시하에게 펜을 쥐여 주고 마음대로 갖고 놀게 했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놀다가 잠이 들 것 같았다.

“시하야. 책상 위에서 해.”

“형아.”

“그래. 안아주면 되지?”

시하를 책상 위에 앉힌 뒤에야 나는 쉴 수 있었다.

백동환은 호텔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 중이다.

어제 운동을 빼먹어서 오늘은 해야 한다나 뭐라나.

자유가 된 나는 괜히 심심해서 시하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간지러운지 몸을 움찔거린다.

“형아. 시하 바빠.”

“어. 그래. 미안해.”

“시하 일해.”

“어. 일하는 데 방해하면 안 되지. 미안해.”

벌써 시하에게 혼나는 시기가 오다니.

조금은 서러웠다. 나는 오늘 종일 놀아줬는데!

쩝. 이럴 게 아니라 나도 옆에서 일이나 해야겠다.

이럴 것 같아서 노트북도 들고 오지 않았나.

조금 일하다가 자야겠다.

물론 그 이전에 감사 인사부터 하고.

“그리고 있어. 형아는 잠시 통화 좀 할게.”

“아아.”

나는 폰을 꺼내서 나인하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잠시 가고 곧바로 연락을 받았다.

「네. 시혁 씨.」

「안녕하세요. 통화 가능하세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쉬는 시간을 방해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물은 잘 받았어요. 비서님이 보낸 거지요?」

「네? 무슨 말씀인지?」

「에이. 그렇게 반응 안 하셔도 돼요.」

「하하하.」

그냥 혹시나 해서 던져봤는데 반응을 보니 짐작이 맞는 것 같다.

그래. 이렇게 빨리 올 리가 있나.

오늘 부딪친 사람이 나인하츠 사람 쪽인가?

내 눈에 자주 띄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그도 그렇잖아. 사이언스 뮤지엄에 남자 혼자 왜 오냐?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 기다리나 싶었다.

가족끼리 왔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나갈 수도 있다.

‘눈이 좀 이상하긴 했지.’

관광객은 아닌 것 같았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조금 이상했다.

감시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그냥 쳐다본 걸 수도 있어서 생각을 접었다.

슬며시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바로 와이패드가 왔을 때부터.

「뭐 어쨌든 감사해요. 차도 그렇고.」

「하하.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차는 별거 없습니다. 어차피 회사 차인데요.」

「그래도요. 회사원도 아닌데 제게 주신 거니까요. 제가 그걸 모르나요.」

「아닙니다. 이장혁 씨가 부회장님을 많이 도와줘서 그렇습니다. 해준 일에 비해서 받은 게 적었거든요.」

「그런가요?」

「네. 원래라면 저희 회사랑 높은 연봉을 받고 일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급하게 가시면서 같이 일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그랬죠.」

「아시고 있었습니까?」

「대충은요. 그 기업이 나인하츠인 건 몰랐지만요.」

「그러셨군요. 언제 한번 부회장님과 이야기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재밌을 겁니다.」

「네. 그럴게요.」

하지만 나는 몰라도 알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싱가포르에 대한 지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아니까.

그 많은 공부량은 아버지의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숙연해지게 만든다.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그렇게 가셨으니.

물론 번역 일로 쓰였다고 하지만 아마 아버지는 이 지식을…….

「여보세요? 시혁 씨?」

「아. 네!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죠?」

「하하.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네. 아시다시피 오늘 신나게 놀았거든요.」

「내일 떠나는 거로 아는데 혹시 필요한 기념품 같은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챙겨드리겠습니다.」

「하하.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해서요.」

「그럼 다행입니다.」

와이패드 저거 100만 원이 넘어가는데 그거면 됐지.

뭘 더 달라고 하나.

물론 주면 받겠지만 이 이상 받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진짜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챙겨줄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해 줬다고?

‘그럴 수 있지. 아무래도 싱가포르는 타국과 거래를 많이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통역으로 한정될 뿐만 아니라 영업 쪽으로도 한 건 했지 싶다.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니까.

그리고 그 보상을 조건 좋은 계약으로 밀어붙였겠지.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버지 덕분이다.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감사를 전해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거.

그게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시하를 더더욱 챙기는 것이.

그 감사한 마음을 시하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상황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지라도.

“형아?”

“응? 왜? 다 그렸어?”

“아아. 형아. 이거. 페페.”

“또 페페 그렸구나?”

시하에게 느끼는 내 감정은 너무 복잡해서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안다.

시하는 내 가족이고 언제나 나를 움직이게 한다.

아마 네가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겠지.

대학 생활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건 유리벽이네? 여기서 봤던 걸 그렸구나?”

“아아.”

“이거 올리면 되겠다. 그치?”

“이거 올려!”

어쩌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유리벽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투명하게 다 보여서 전부 다 아는 거라 착각했다.

사실 그 너머가 어떤지 하나도 몰랐던 주제에.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밖에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은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아버지와의 유리벽이 얇아진 듯한 느낌이다.

뒤늦게 아버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것처럼.

가장이 되기 전에 가장의 무거움을 몰랐던 것처럼.

어쩌면 부모님은 모르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이해받고 싶었으나 그 이해가 나중이 되기를.

‘그때 내 심정을 이제야 아는구나.’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다들 그런 미래를 그리는지도 모르겠다.

“시하야.”

“아?”

“넌 나중에 뭐가 될래?”

“시하. 형아 할래.”

“뭐? 하하하. 시하는 형아보다 더 엄청나져라. 알았지?”

“왜?”

“글쎄?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 시하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형아보다 더.”

“형아는?”

“형아?”

“아아.”

“형아는 시하가 행복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지지.”

내 말을 들은 시하가 활짝 웃었다.

“시하. 행복해!”

“오! 그래?! 잠깐 포토 타임. 포토 타임!”

“아?”

시하가 고개를 획 돌리더니 펜을 쥐고 와이패드에 브이를 그렸다.

이제 패드에 브이를 그리나?

하여간 시하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니까.

난 활짝 웃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절대 몰라 주기 바라지 않는다.

“형아!”

“그래. 사진 찍힐 준비 다 됐다고?”

“아아.”

시하가 패드를 들었다.

브이 하는 손가락이 떡 하니 그려져 있다.

그러면서 방실방실 웃고 있다.

“어?!”

찰칵. 찰칵. 찰칵.

혹여나 놓칠까 봐 연사를 눌렀다.

“형아도 가치.”

“그래. 같이 찍자.”

나는 셀카 모드로 하고 시하랑 같이 찍었다.

오늘 나에게는 이 미소가 선물이다.

어떤 기념품보다도 이 사진 한 방이 구하기 더 힘드니까.

우리는 그렇게 싱가포르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

-시하의 그림. 픽시브 업로드.

[제목 : wall of glass(유리벽)]

1.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

한쪽 구석에는 비행기 날개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2. 가운데 유리벽이 있고 양쪽에 펭귄 두 마리가 있다.

왼쪽 펭귄은 햇빛을 맞아 더워하고 있고, 오른쪽 펭귄은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3. 가운데 유리벽이 깨져 있고 두 펭귄이 쓰러져 있다.

4. 하늘에 그물 형태로 돔이 처져 있다. 그 안에 두 펭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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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a.pepe.] [작품 목록]

#4cuttoon #penguin #wallofglass

[댓글]

-시하페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림이 어려운데?

-비행기 타고 가여~

-실험당하는 거 아님?

-그런 건 아닌 듯?

다들 4컷 만화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만화는 오늘 시하가 있었던 일을 그린 거니까.

시혁은 그냥 그 4개를 올렸을 뿐이다.

또 다른 목적도 있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올려서 이상한 해석가의 해석을 막는 것!

이 일련의 그림에는 유리벽 말고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굉장히 불친절한 그림!

아무도 예상 못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는 것을 해석했다.

-1번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대충 결론이 해피엔딩 아닐까?

-???

-2번 그림과 3번 그림은 유리벽을 깨서 두 펭귄 모두 힘들어해. 그런데 4번 그림에 둘 다 유리벽을 보수해서 해피엔딩이 되었지.

-아! 정말 그런 것 같아!

-역쉬 시하페페!!

-이게 맞아. 시하페페는 따뜻한 그림을 전해주잖아.

-근데 왼쪽 펭귄은 못됐네. 덥다고 유리창을 깨버리니.

-유리창을 깨면 시원해질 줄 알았나 보지. 그런데 알고 보니 더 더워졌고.

사람들이 시하와 시혁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정확하게 추리했다.

4번 그림은 포레스트 돔에 있던 일을 그린 거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한 해석가가 다시 등장한 것은.

-해석가가 등장했다!!

-그분이 왔다!

해석가가 황당해하며 댓글을 달았다.

-??? 나 아직 등장 안 했는데요?!

-그럴 줄 알고 미리 선수 쳤어요. 빨리 말하세요.

-…아… 예… 흠흠.

-자! 첫 번째 그림은 뭘 뜻합니까?!

해석가는 괜히 판을 깔아주자 글을 쓰기 싫었지만 일단 나왔기에 어쩔 수 없이 쓰기 시작했다.

-이건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사랑 이야기죠.

-갑자기???

-1번 그림은 여행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2번 그림에 두 사람이 만났죠.

-?! 의미 생각하느라 스토리를 생각 못 했네!

그럴싸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2번 그림은 대단히 의미가 깊은 그림이지! 투명한 유리벽에 서로 다른 심정을 표현하고 있어. 한쪽이 힘들어하고 한쪽은 힘들어하지 않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면 왼쪽은 밖, 오른쪽은 안.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볼 수 없어서 답답해하는 상황을 표현한 거야!

-?!?! 그런 의미였다고?!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싱가포르의 밖은 덥고 안은 에어컨으로 시원한 것뿐이다.

-보통 유리벽을 보면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잖아?

-그렇지!

의외로 설명이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3번 그림은 결국 마음 벽을 억지로 부수고 둘 다 상처 입은 거야! 그래서 두 펭귄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지! 둘 다 더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의미였어?!

아니다. 그냥 둘 다 더워서 쓰러진 거 맞다.

-이러면 마지막 그림이 예상되지? 두 연인은 서로의 마음을 보완하고 고쳐서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야. 물론 저 그물처럼 완전히 봉합되지 않고 구멍이 숭숭 뚫려있지. 상처마저 하나의 반구 형태로 아우르는 표현!

-연인들이 흔히 겪는 부딪침을 나타낸 거구나! 싸우고 화해하고 이해하고!

-바로 그거야! 그렇게 사랑이 이루어진 거지. 그래서 이번 그림은 사랑 이야기야!

아니다. 그냥 싱가포르 여행에 관한 그림일 뿐이다.

-이야. 속이 시원하다! 이게 4컷 만화인 걸 잊어먹었어! 그래, 이야기가 있어야지. 오늘도 고마웠어! 해석가!

-하하! 다들 너무 일차원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구! 시하페페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작가니까.

오늘은 댓글들이 반반으로 갈리지 않고 해석가에게 많은 동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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