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다니엘의 비서는 나인하츠 경호업체에 부탁해서 시하와 시혁의 편의를 봐주었다.
그런 이유로 경호원이 시혁의 뒤를 따라다녔고 놀라기도 많이 놀랐다.
‘이시혁은 따로 경호원을 고용해서 온 건가? 분명 친구라고 되어 있는데?’
백동환의 크기도 놀라웠지만 몸이 엄청 단련된 게 더 놀라웠다.
저것만 봤을 때 자신이 필요한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일은 일이기에 뒤를 따라다녔다.
별일은 없었다.
싱가포르는 많은 관광객이 오는 만큼 치안이 좋은 편이다.
특히 이런 관광지는 더더욱 무슨 일이 일어나기 힘들기도 했다.
‘사이언스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이자 바짝 붙었다.
저 안은 꽤 어두웠기에 잘못하다가 놓칠 수 있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걷고 있는데 시하라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편의를 봐주라고 하셨지?’
이 이벤트의 선물은 패드.
시하라는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툭.
너무 가까이 갔는지 시혁과 몸이 부딪쳤다.
서로 사과를 하고 떠나갔다.
그런데 경호원은 찝찝한 느낌을 받았다.
부딪치는 순간 몸의 단단함이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눈동자가 굉장히 빠르게 자신을 훑고 지나갔으니.
‘부탁받았을 때 평범한 통역사라고 했는데? 어딜 봐서 평범하다는 거지?’
심지어 시하라는 아이는 그림도 잘 그린다.
셋 모두 하나같이 비범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경호원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네. 사이언스 뮤지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인하츠 전자 경호실 직원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실제로 사이언스 뮤지엄은 나인하츠 전자에 많은 지원을 받았다.
패널부터 시작해서 여러 전자 기기 등등.
“이번 이벤트에서 추첨을 통해 패드를 주는 거 말입니다.”
「네. 다섯 명이 받죠.」
“당첨자 한 명 추가 부탁드립니다. 방금 도착한 메일 중에 바오밥 나무 캐릭터가 있을 겁니다. 그 메일로 당첨되었다고 보내 주시죠. 싱가포르에 계시면 호텔을 통해 상품을 금방 전해 드린다는 말과 함께요.”
「네. 알겠습니다.」
“패드는 저희가 준비해서 전달드릴 테니 입만 맞춰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죠. 메일 보내고 답장만 받는 건데요.」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폰을 가슴에 넣었다.
밖에서 셋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시혁과 시하가 나왔다.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서 세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런데 착각일까?
시혁이 이쪽을 바라보는 거 같았다.
경호원은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그럴 리는 없었다.
시혁과 자신은 오늘 처음 보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렇지만 찝찝한 기분이 따라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저녁.
싱가포르의 밤은 아름답다.
색색의 전구가 집안에 달려서 섬 전체를 밝힌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밤에도 밝은 도시들 때문에 어둡지 않을 듯하다.
밤하늘에 별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이 빛을 내게 하니 얼마나 신기한가.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을 멀게 하고 마치 이 공간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한다.
여기 관광하러 오기 잘했다고.
“시하야. 예쁘지?”
“아아! 형아! 물! 물! 파박! 반짝!”
“그렇지?”
우리는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옥상에 있다.
거대한 수영장이 있는데 그 위에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풍경이 특별하다.
정말 비싼 값을 한다.
마치 재벌이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야경을 보며 칵테일 한 잔을 마시는 느낌이다.
시하는 튜브 위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시하야. 여기 오니까 뭐 엄청난 사람이 된 거 같지 않아?”
“아? 아냐.”
“응? 아니야? 뭐가 아닌데?”
“시하. 운하수야. 운하수.”
“은하수?”
“아아. 운하수. 수영해~”
“와. 그렇네?”
야경은 은하수가 되고 시하는 그 위를 수영한다.
지금 이 풍경이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구나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말이지만 시하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보다.
나는 사회적 위치를 생각했다면 시하는 상상력의 세상에 풍덩 빠졌다.
풍덩!
“아악!”
“아아! 백동!”
백동환이 거구를 이끌고 점프를 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이 다 튀며 얼굴이 세수하게 되었다.
하여간 저런 몸으로 이런 공격을 하다니. 복수해야겠다.
“시하야.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 없어. 물 공격을 하는 거야?”
“어케?”
“잘 봐. 이렇게 손을 모으고. 파!”
내가 물을 밀어내며 백동환에게 물을 튀겼다.
백동환은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아, 형님! 너무하십니다.”
“너도 일부러 여기서 점프해서 온 거잖아. 너무한 게 누군데?”
“저야 시하 재밌으라고 하는 거죠. 엄연히 다른 겁니다.”
“나도 똑같은데? 자, 시하야. 공격.”
“아아!”
시하가 손을 오므리며 물을 밀었다.
찔끔.
“아?”
“좀 더 힘내서. 파!”
“아아. 파!”
찔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짧은 팔로는 물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백동환이 껄껄 웃으며 시하에게 거대한 손을 내밀었다.
촤아아악!
“시하야!”
나는 온몸으로 막았고 머리가 이마에 찰싹 붙게 되었다.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며.
“괜찮아?”
“아? 형아! 머리!”
“응. 다 젖었네.”
“머시써.”
“응?”
이마 깐 게 좀 멋있어 보였나?
시하도 자기도 멋있어 보이고 싶다고 나를 따라 했다.
그런데 시하야. 머리에 물만 묻히면 되지 세수는 왜 하니?
어푸어푸하며 시하가 수영장 물로 세수를 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뒤로 넘겼다.
“형아. 가타!”
“큭큭. 그러네. 같네. 형아랑 똑같이 해서 좋지?”
“조아.”
그렇게 소외된 백동환이 자신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시하에게 보여 주었다.
“시하야. 나도 멋있지?”
“백동. 무셔.”
“왜! 형님은 멋있고 왜 나는 무서운 건데? 그럼 이렇게 볼에 바람을 넣으면 좀 귀엽지?”
“아냐. 백동 밥나무야. 밥나무. 무셔 밥나무.”
상처받은 백동환이 꼬르륵 침몰했다.
아까 열심히 공격하던 그 기백은 어디 간지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수영장에서 놀고 있을 때 한쪽에서 갑자기 ‘염~~~~생!!’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이크가 있는 걸 보니 누군가를 축하해 주는 모양.
사람들이 잔을 들고 ‘염생’을 길게 외치며 건배를 했다.
시하도 그쪽 편이 신기한지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축하하고 있는 것 같아.”
“무슨 생일이라도 되는가 봅니다.”
“그러게. 중국계 싱가포리안 같네.”
“예? 형님. 그런 것도 구별이 가는 겁니까?”
“보통 염생이라고 말하면 중국계 싱가포리안이라고 하더라고.”
“오!”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른 지식을 말한 것뿐이니까.
저기서 싱글리시가 난무한다.
그만큼 즐겁다는 뜻이겠지. 이런 축하의 기분에 맞춰 수영장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선이 어디를 보는지 모를 왈츠.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퍽 즐거워 보였다.
시하가 튜브에 둥둥 뜬 채로 내 팔을 잡았다.
“형아. 시하 춤.”
“시하도 춤추고 싶어?”
“아아. 저거.”
“저렇게 두 사람이 추는 춤을 왈츠라고 해. 노래도 부드럽고 좋지?”
“아츄?”
뒤에서 백동환이 ‘아 츄! 재채기가 나올 것 같….’라고 노래를 부르길래 얼굴에 물을 뿌려주었다.
어디서 애교 섞인 목소리를.
“그럼 여기 물 안에서 출까? 밖으로 나가면 형아가 키 차이 때문에 형아 몸 잡기 힘들잖아.”
“아냐. 할 수 이떠.”
“아니. 신장 차이가…….”
“아냐. 할 수 이떠.”
“하하하. 알겠어. 밖으로 나와서 추면 되는 거지?”
“아아.”
그렇게 우리는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춤 열정이 대단했다.
다들 열심히 추면서 즐기는 걸 보니 안 추면 손해 같은 느낌이다.
“자. 손을 잡아요.”
“아아.”
나는 시하의 두 손을 잡고 부드럽게 왈츠를 추려고 했다.
그냥 발 옮기고 느낌만 내면 되지.
나도 사실 왈츠를 출 줄 모른다. 그냥 대충 추는 거지.
근데 시하는 더더욱 왈츠를 몰랐다.
춤추는 게 신나는지 두 다리를 제자리에서 도도도 굴린다.
“형아! 신나!”
“아하하.”
왈츠도 뭣도 아닌 춤.
전에 봤던 탭댄스 비스름한 춤이다.
상체는 손만 잡고 있는 부드러운 왈츠인데 하체는 다리를 열심히 놀리는 탱고다.
시하의 춤 열정을 수영장 직원도 알아줬는지 노래가 디스코로 바뀌었다.
뿜뿜. 뿜뿜뿜.
EDM이 많이 들어간 음악이 신나게 나온다.
사람들도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몸을 들썩들썩 흔든다.
바운스. 바운스~
시하도 그 모습을 보더니 무릎을 까딱까딱한다.
“시하야. 이건 바운스. 바운스 하는 거야. 이렇게.”
“이케. 이케.”
무릎을 까딱거리면 되는데 왜 엉덩이도 함께 들썩이는데?
백동환도 같은 감상인지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형님. 저건 짱구춤 아닙니까?”
“아니거든. 전혀 다른 거거든. 네가 춤에 대해서 뭘 아냐?”
“그럼 뭡니까? 형님은 아십니까?”
“트월킹이라는 춤이거든! 시하가 준전문가 수준이라서.”
“그건 너무 억지 아닙니까. 좌우로 골반을 튕기는 게 트월킹 아니에요? 저건 위아래로 흔드는데?”
“위아래로 골반이 튕길 수도 있는 거지. 뭐 해. 그냥 즐겨.”
“흠. 제가 춤에 대해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바로 웨이브입니다.”
백동환이 춤을 춘다.
이상하게 귓가에 기계음이 들리는 것 같다.
삐그덕. 삐그덕. 끼이익. 끼이익.
어디 버퍼링이 걸린 듯이 몸이 고장 난 웨이브다.
“이렇게 턱을 넣고, 가슴을 넣고, 엉덩이를 넣고. 가슴을 내밀고.”
“야! 이어서 춰야지. 한 동작, 한 동작 분리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추는 거라고 했습니다. 운동할 때 하나라도 정자세로 하는 거죠.”
“춤은 그 궤가 다른데?”
그런 백동환의 춤이 시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백동. 개차나?”
“응? 당연히 괜찮지.”
“백동 몸 아파. 개차나? 의자 안자. 쉬어~”
“아니. 안 아프다니까. 의자에 안 쉬어도 돼.”
그래도 시하는 걱정되는지 기어코 백동환을 끌고 의자에 앉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신나게 웃었다.
누가 누구의 춤을 지적하는지. 하여간 백동환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백동환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까지 와서 시하를 봐줘서.
그리고 숙식과 여행 경비가 안 들어도 이렇게 선뜻 와준다는 게 쉬운 선택이 아니니까.
나는 그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동환아. 고맙다.”
“네? 뭘요?”
“그냥. 전부. 이렇게 오기도 쉽지 않잖아. 연차까지 쓰고.”
“금요일만 쓴 거고. 주말은 원래 쉬는데요. 뭘.”
“어디 이게 쉬는 거니?”
“하하. 쉬는 건 아니지만 노는 거죠. 전 좋아요. 언제 이렇게 날 잡아서 싱가포르에 오겠어요. 형님 아니면 올 생각도 못 했을걸요?”
“여자 친구 만들어서 오면 되지.”
백동환이 고개를 저었다.
“전 여친 생기면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할 겁니다.”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잔이겠지.”
“크흠.”
그때 시하가 손을 들었다.
“시하도. 시하도. 모히또. 또 해.”
“시하야. 뭘 알고 말하는 거야?”
“놀이. 놀이.”
시하야. 노는 게 아니란다.
그렇게 우리는 수영장에서 충분히 놀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씻고 방에서 쉬고 있을 때 프런트에서 연락이 왔다.
경품 선물이 택배로 도착했다고.
요즘 경품 선물이 로켓 배송인가?
그렇게 의문을 품으며 아래로 내려가자 상자가 보였다.
“와. 이게 하루 만에 당첨되네? 이벤트가 오늘까지였나?”
하긴 그냥 랜덤 프로그램 돌리면 당첨자가 금방 나오긴 하지.
운이 좋군.
나는 상자를 받아서 방으로 돌아왔다.
“시하야. 경품 왔어. 시하가 오늘 그린 그림 있지? 그게 당첨됐나 봐.”
시하가 이불 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머리만 쏙 빠져나왔다.
침대 꽁무니에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였다.
“왜?”
“왜긴 왜야. 시하가 너무 잘 그려서 선물을 보낸 거지.”
물론 그냥 추첨으로 당첨된 거긴 하지만.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
“아아.”
“이야. 시하 좋겠다. 패드도 받고.”
나는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그곳엔 패드 말고도 다른 것이 있었다.
“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