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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166/500)

166화

아이들과 놀고 나니 땀이 한바탕 났다.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 그리 덥지만은 않았다.

나야 그렇지만 둘은 아닌가 보다.

“아! 더워!”

“아아.”

잔디 위에 폭삭 앉아서 윗옷을 펄럭펄럭 흔든다.

젖은 머리가 이마에 딱 붙어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나는 스포츠 가방에서 이온 음료와 수건을 꺼냈다.

“자. 이걸로 땀 닦고.”

“와! 수건이다!”

“아? 왜?”

승준은 스스럼없이 받아서 얼굴과 머리를 닦았다.

시하는 왜 닦아야 하냐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수건에 얼굴을 푹찍 찍고 내게 건네준다.

“지금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감기에 걸릴지 모르잖아. 그래서 땀을 닦아주는 거야. 물기가 몸을 차갑게 할 수 있거든.”

“차가?”

“응. 몸이 갑자기 차가워지면 아야 해. 시하도 전에 몸에 열나서 아야 했지?”

“시하. 아야 해써.”

“그래. 다음에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땀을 닦는 거야. 악! 승준아. 상의는 왜 벗어?”

승준이 상의를 벗고 열심히 땀을 식혔다.

하여간 엉뚱한 구석이 있다.

“시혀기 형아. 이러면 땀이 사라져. 시원해.”

“아니. 그러면 바람에 땀이 마르기는 하는데…. 감기 걸려. 자, 옷 다시 입자.”

“응.”

시하도 승준을 보고 상의를 벗으려고 하자 나는 말렸다.

시하의 귀여운 배가 살짝 드러났는데 얼른 숨겼다.

“시하야. 음료수 먹자. 운동하고 이거 마시면 좋아. 승준이도.”

내가 이온 음료를 따서 주자 잘도 꼴깍꼴깍 마셨다.

시하가 음료에 입을 떼며.

“푸하! 마시써! 형아. 이거 마시써!”

“와하하! 시하야. 이건 스포츠 드링크라는 거야.”

“아? 수포추 두링쿠?”

“운동하고 마시면 사커의 기운이 쑥쑥 난다고 엄마가 말해 줬어.”

“아아! 사커 기운!”

뭔가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네. 저거 시리얼 광고 대사 아니야?

뭐 잘 마시면 됐다.

딱히 어린아이가 싫어하는 맛은 아니니까.

뭐라고 할까? 맛은 없지 않은데 다른 탄산음료와 비교하면 밍밍하다고 할까?

그래도 이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면 이거만 한 것이 없다.

나도 갈증이 나서 음료를 입에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그걸 본 승준이 감탄을 내뱉었다.

“와! 시혀기 형아! 한 번에 다 마셔!”

“형아! 대다내!”

“어? 어? 그래?”

그냥 500밀리리터를 한 번에 마신 것치고는 과한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1.5리터를 마셨으면 또 모를까.

아이들 눈에는 이것도 대단한 것처럼 보이나 보다.

“나도 질 수 없지!”

“아아! 시하도!”

꼴깍꼴깍.

애들이 나를 따라 하느라 열심히 음료를 마셨다.

마치 하늘에 나팔을 부는 듯한 모습에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찰칵.

그 순간, 시하가 눈을 크게 떴다.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푸흡. 아, 진짜. 다시 찍어줄게.”

찰칵.

시하는 편안한 표정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승준은 한 손으로 이온 음료를 잡은 채 눈을 부릅뜨며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한쪽 눈썹을 치켜뜬 게 참으로 이상했다.

왜 이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찍는 걸 거부할까?

시하는 유독 정상적인 브이 포즈에 집착하고, 승준은 괴상한 표정을 짓는 걸 좋아한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그냥 예쁜 미소의 사진이 없는 게 아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냥 미소를 지어 볼까? 밝게.”

“헤에~”

“아아!”

“아니다. 축구공 하나씩 들고 찍자. 축구공아, 웃어줘. 하나, 둘!”

“웃어줘! 푸하하! 사커공이 어떻게 웃어! 푸하하!”

“아아! 우서?”

시하야. 그건 왜 웃냐는 표현 아니니?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사진을 하나 더 찍었다.

찰칵.

“시혀기 형아도 같이 찍자!”

“아아!”

“그래. 그럼.”

우리 셋이 함께 찍기 위해 셀카 모드로 돌렸다.

가까이 붙으라는 말에 아이들이 초근접으로 다가왔다.

내 품에 안기며 볼과 볼을 붙였다.

‘저기요? 얘들아? 너희 왜 이렇게 극단적이니?’

아이들은 그게 재밌는지 더 좋은 사진을 위해 볼이 뭉개질 정도로 붙었다.

결국, 정상적인 사진은 못 찍고 꽤 재밌는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보면 ‘왜 이렇게 찍었어!’ 하겠지.

후회하지 마라. 너희가 이렇게 찍었다.

그건 그렇고 내 얼굴이 제일 찌그러졌네.

나중에 보고 자기 얼굴보다 내 얼굴을 보고 빵 터질지도 모르겠다. 제길.

“시혀기 형아. 이제 아빠한테 가자! 아빠 사커하는 거 보고 싶어!”

“응. 알겠어. 시하야. 가자. 승준 아빠가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지.”

“아아!”

그렇게 우리는 풋살장을 떠났다.

***

축구장으로 갔는데 뜨거운 열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느낌이 그럴 뿐이고 다들 진지하게 축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형아. 저기!”

“응. 저기 승준 아빠 있네.”

우리는 주변에 자리 잡고 앉아서 구경했다.

시간대를 보아하니 후반전을 하는 모양.

승준이 눈을 빛내며 아빠를 보았다.

“시혀기 형아. 아빠 열심히 해!”

“응. 열심히 하시네.”

“응! 나처럼 땀 엄청 많이 흘리고 있어. 저기 흘러서 무릎에 맞았어.”

거짓말하지 마. 그것까지 보일 리가 없어.

하지만 어쩌면 진짜 승준의 시력이 좋을지도 모른다.

뭐, 나도 좋은 편이긴 한데 뛰고 있는 사람의 땀방울이 떨어지는 위치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은데?

“아앗!”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 명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급하게 우리 쪽으로 온다. 가방에 파스를 꺼내더니 던진다.

파스를 잡은 사람이 발목에 착착 뿌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발목이 삐끗한 모양이다.

좀 괜찮아졌는지 부축을 받아서 우리 쪽으로 온다.

“여기서 좀 쉬어.”

“아. 갑자기 발목을 삐끗해서.”

“너무 오랜만에 공을 차니까 그렇지. 그러게 평소에 자주 왔으면 얼마나 좋아.”

“거참. 너무하네요. 제가 삐끗하고 싶어서 삐끗했나? 나 병원에 좀 데려다줘요. 119. 119 불러줘요.”

“입이 날아다니는 걸 보니 119 부를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냥 파스 바르고 끝내자.”

“저 월요일 연차 낼 거예요.”

“이야~ 이걸 핑계로 월요일 브리핑을 빠져나가시겠다?”

“그럼 반차?”

“당장 경기 뛸래?”

“아. 선배.”

“조용히 해. 대학 왔다고 직장 사수에서 학교 선배가 되냐?”

“선배 맞잖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학교 대학원생이었던 사람들인가 보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만담을 나누자 또 다른 한 명이 다가왔다.

“그럼 우리 10명이 뛰게 되는 건가? 오늘은 인원 딱 맞춰 왔는데. 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나를 바라보다가 시하 옆에 있는 승준을 바라본 듯했다.

“이거 승준이잖아? 아빠 따라왔어?”

“응! 아저씨 안녕!”

“그래. 그런데 옆에 있는 학생은 누구죠?”

“시혀기 형아! 시하 형아요!”

“아하. 시혁이라고 하는구나.”

흡사 먹이를 노리는 듯 나를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할 줄 알 것 같아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 오상환 교수가 다가온다.

“김 부장. 계속 진행해? 아님, 우리도 한 명 뺄까?”

“아니. 여기 좋은 선수가 있잖아. 축구화도 다 갖춰져 있고. 어때요? 딱 30분 남았는데 같이 뛰어주면 안 돼요? 오 교수. 너희 학생이지?”

오상환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게. 학생이기는 한데. 우리 학과는 아니야.”

“그런데 승준이를 돌봐줄 정도로 친하지 않아? 저기 시혁이라고 했지? 어때? 잠깐 뛰어주면 안 될까? 아, 물론 거절해도 돼.”

그때 시하가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형아. 사커사커 해.”

“형아 뛸까?”

“아아. 시하 볼래. 시하 웅언해~”

아무래도 시하는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보다.

오상환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미안할 필요는 없다.

하기 싫으면 거절하면 되니까.

“그럼 뛰는 대신 저녁은 부장님이 맛난 거 사주시나요? 애들이 엄청 잘 먹어서.”

“응? 하하. 재밌는 친구네. 그래 좋다. 이 경기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지. 아주 상다리 부서지게 비싼 곳 예약해둘 테니까. 어때?”

“그럼 얘기가 달라지죠. 좋아요.”

“여기 다친 친구가 애들 봐주면 되니까 걱정은 말고. 아! 혹시 윙은 뛸 줄 아나?”

“네. 괜찮아요.”

“그럼 됐네.”

그렇게 경기를 뛰게 됐다.

공격수 중에 우측 편에 있는 자리.

살며시 다리를 풀자 경기가 재개됐다.

딱 30분만 하고 맛있는 저녁도 얻어먹을 수 있다니 나쁘지 않았다.

시하랑 승준도 저기서 내가 축구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니까.

둘이서 날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승준이 나와 오상환을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리는 게 보인다.

설마 둘 중에 누가 잘하는지 이야기하는 걸까?

삐익-

휘슬이 울리며 시작을 알린다.

고개를 돌려 공을 보았다.

툭툭. 살며시 공을 차며 앞으로 치고 나간다.

나는 시야를 넓혀 자리 선정을 했다.

툭. 데구르르.

공이 발에 안착하는 순간 나는 폭발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우와! 시혀기 형아 빠르다!!”

“형아! 빨라!”

저 멀리서 두 사람의 소리가 들려온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측면으로 그대로 내달렸다.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는지 알 수 없었던 상대팀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이런 기습은 한 번뿐.’

두 명을 한 번에 제친 다음에 그대로 중앙으로 공을 차올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수가 슛을 했고, 공이 골망을 흔들며 한 점을 땄다.

빠르게 득점해서 그런지 다들 신나게 웃음을 터뜨렸다.

1어시스트.

이걸로 여기서 대리로 뛴 몫은 다하지 않았나 싶다.

“이야. 대단한데?”

골을 축하해 주러 같은 팀원이 다가오는데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시하와 승준이 어느새 다가와 소리를 치며 방방 뛰었으니까.

“와아아아!”

“형아. 대다내!”

“아하하하.”

저기…. 내가 골 넣은 거 아닌데?

그리고 너희들은 여기 들어오면 안 돼.

골을 넣은 사람은 그 모습에 웃음을 보였다.

하여간 괜히 민망한데 같이 기뻐해 주고 자리로 돌아가게 하자.

“하하.”

거참. 왜 이렇게 민망하지?

***

그렇게 30분의 후반전이 마무리됐다.

다들 한바탕 뛴 게 좋은지 땀을 닦으며 사우나 갈 준비를 했다.

옆에서 시하랑 승준이 쫑알쫑알 떠들기 시작한다.

“시혀기 형아 진짜 잘해! 맞지?”

“아아. 형아. 레드야. 레드.”

“아하하.”

옆에서 오상환 교수가 내 어깨를 잡았다.

“오늘 고맙다. 설마 축구까지 뛰어줄 줄 몰랐어.”

“아니에요. 저도 맛난 거 먹을 수 있는데요. 뭘.”

“갈아입을 옷 들고 왔지?”

“네. 평상복을 들고 오긴 했죠.”

“그럼 됐네.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서 피로 쫙 빼면 좋아.”

“아하.”

“그리고 밥 먹으러 가면 크으. 오늘 하루 마무리 다 된 거 같지. 목욕탕 비용도 저기 김 부장이 낸다던데?”

“정말요? 안 그래 주셔도 되는데.”

그걸 들었는지 김 부장이 떨어진 곳에서 소리친다.

“대학생이 돈이 어딨어! 어린 애기도 돌보는데. 그냥 받아. 오늘 경기 뛰어준 일당이야.”

“부장님. 저희도 좀.”

“너흰 돈 많이 벌잖아. 니들 돈으로 내.”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목욕비랑 식비 굳었다.

“형아. 모격 모야?”

“모격이 아니라 목욕이야. 목욕이 뭐냐면 시하랑 형아랑 따뜻한 물에 같이 들어가는 거야.”

“뜨거?”

“어? 그렇지. 뜨거울 수도 있지.”

“아? 아냐. 뜨거. 아냐. 띠개대. 띠개. 시하 맛업써.”

“푸하하.”

아무래도 동화책에 나온 마녀를 생각한 모양.

탕에 들어가면 인간 찌개가 되는 발상은 여기서 나온 듯하다.

“시하 맛없어?”

“아아. 시하 맛업써. 먹어. 안 대~”

“그렇구나. 하지만 들어가야 해! 시하가 좋아하는 형아랑 같이!”

“!!!”

시하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아랑 같이 찌개가 될지. 아니면 가지 않을지.

“형아. 가?”

“응. 형아는 꼭 가야겠는데? 무조건 갈 거야.”

“형아 맛업써. 형아 아냐. 시하 집. 가.”

“미안하지만 가야 해.”

“!!!”

시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결심한 모습을 했다.

“시하도! 가치!”

“아하하. 고마워.”

그걸 본 오상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지? 목욕탕 가는데 그렇게 큰 고민을 할 정도인가?”

흠흠. 시하 언어를 잘 모르는군.

프로그래밍 언어만 알지, 시하 언어는 모르는 오상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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