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거북이 게임으로 몸에 살짝 열이 오를 때쯤.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니게임을 하기로 했다.
사람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만들어진 썬더쓰리 사커 동호회는 당장 인원 충당이 불가능했다.
언젠가는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이제 몸을 썼으니 본격적으로 축구를 해 볼까?”
“와! 신난다!”
“아아!”
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범위를 정해 주었다.
풋살장 전부를 사용하는 건 공간의 낭비였다.
딱 골대 하나와 풋살장의 반 정도가 적당했다.
“사람이 모자라서 골키퍼는 없어. 대신에 요만큼 오면 슛을 쏠 수 있지.”
“아! 바로 슛하려고 했는데!”
“내 그럴 줄 알았다!”
그걸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사실 골키퍼만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형아. 키퍼! 이써.”
“응? 있다고?”
“아아. 이써.”
시하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부스럭거렸다.
그리고 꺼낸 건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다.
젤리 장난감!
“이거. 이거.”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골대 앞에 젤리 장난감을 던졌다.
철푸덕!
잔디 바닥과 딱 붙어서 하나가 되었다.
‘대체 언제 저걸 준비한 거지?’
그것보다 골키퍼를 맡기기에는 많이 작아 보인다.
시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오는데 나는 머리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골키퍼를 밟지만 마라.
안 그래도 납작해지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땅이 되어 버리겠다.
왠지 문도환이 준 장난감이 짠하다.
“아! 그럼 나도! 나도!”
그걸 본 승준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골대 앞에서 자신의 축구공을 놓았다.
알아서 장애물을 만드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뭐, 저런 장애물은 사실 그렇게 효과가 있지 않겠지만.
“자. 그럼 상대팀은 나야. 나를 제치고 골대에 슛을 넣어야 해.”
“응! 어? 그럼 시혀기 형아는 안 넣어?”
“응. 내가 넣으면 상대가 안 되잖아. 형아 공 뺏을 수 있어?”
“아니.”
승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공격수를 맡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게임이 되지 않을 테니까.
언제까지나 이 경기는 애들이 즐거워야 한다.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지는 조건은 간단해. 너희 둘이서 3골을 넣으면 되는 거지. 만약 못 넣으면 형아의 승리.”
“와! 재밌겠다.”
“아아!”
이건 거북이 게임에서 배운 걸 응용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축구는 팀 게임.
엄청나게 강한 수비수를 둘이서 제치는 거다.
“아 참. 나는 달리지 않고 걷기만 할 거야. 알겠지?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스타트!”
“스타트!”
“스따뚜!”
그렇게 시작된 축구 경기.
먼저 공을 잡은 건 승준이었다.
나를 상대로 슬슬 차며 제칠 준비를 한다.
살며시 가까이 가자 빠르게 뛴다.
‘어딜.’
축구를 하면 언제나 자기보다 빠른 선수들이 있다.
그걸 뿌리치려면 주변 팀원을 이용해야 하는 법.
‘시야가 중요하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주변에 대해 인지를 해야 했다.
“앗!”
“뺏겼네?”
어느새 공은 내 발밑에 있었다.
손쉽게 공을 뺏긴 승준이 분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
“다시 하프라인으로.”
“쳇!”
다시 승준이 나를 피해 뛰었다.
시하도 승준과 함께 옆으로 뛴다.
아마 공을 받으려고 하는 모양.
승준이 눈을 빛내며 패스를 했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간다.
“시하야. 거기서!”
“아아. 형아!”
시하가 공을 몰다가 우뚝 섰다.
아니. 시하야. 형아가 서란다고 진짜 서면 어떡해…….
우리 시하는 말을 참 잘 듣는 동생이다.
이게 아니지.
“흠흠. 시하야. 지금은 경기 중이니까. 형아가 서라고 해도 진짜 서면 안 돼.”
“왜?”
“형아는 상대팀이거든. 적이야. 적. 적이 레드에게 변신하지 말라고 하면 레드가 변신 안 해?”
“아냐.”
“그렇지? 변신할 때 공격하면 안 되는 것처럼 형아가 멈추라고 해도 진짜 멈추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아아!”
이제야 시하가 이해를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적이라는 인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뭐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지.
“그럼 다시 시작.”
시하가 공을 몰기 시작했다.
통통. 통통.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며 앞으로 나간다.
승준이 손을 흔들며 공을 달라는 사인을 준다.
시하가 패스를 하려고 공을 차려고 하자 나는 가까이 가지 않고 살짝 멈췄다.
내가 방향을 전환해서 승준에게 가려다가 주춤거렸다.
시하가 헛발질을 했으니까.
“아?”
정신 차리고 그대로 공을 몰고 앞으로 간다.
승준이 푸하하 웃으며.
“시혀기 형아. 시하의 페이크에 속았다!”
“아, 아니. 뭐 그런 거겠지?”
사실 헛발질로 보였지만 시하는 천재.
범재인 내 생각과 다르게 벌써 페이크를 배운 거겠지.
‘그럼 살짝 속도를 내볼까?’
빠른 보폭으로 성큼성큼 시하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이거 뛰는 거 아니다.”
“아! 시혀기 형아 걷는 거 엄청 빨라! 아하하!”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승준이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공을 받으려고 움직이는데 위치 선정이 참 좋다.
천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모습.
아무래도 승준은 정말로 재능이 있어 보였다.
“아아!”
드디어 시하가 승준에게 패스했다.
대각선으로 찔러 넣은 공.
승준이 살며시 안쪽 발로 공을 받으며 그대로 슛을 때렸다.
공이 골대 앞에 놓인 축구공과 젤리 장난감을 지나 골망을 흔든다.
“우어어!”
“아아!”
승준이 손을 번쩍 들고, 시하 역시 따라 들었다.
이렇게 위기감 있는 수비수의 압박은 승리감을 확 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만족감을 표시하는 거겠지.
“얘들아 잊지 않았지? 3골 넣어야 이기는 거야. 한 골 넣었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
“알아! 금방 넣어.”
“아아!”
아이들이 한 골을 넣더니 아주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후후후. 이럴 때 보여 줘야 하는 게 현실의 냉정함이라는 거지.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응!”
“아아.”
이번에 먼저 공을 모는 건 이시하.
나는 시하에게 빠르게 붙었다.
“아?”
아까보다 한층 빨라진 걸음에 시하가 눈을 크게 떴다.
이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저 앞에 있는 승준이 돌아와 시하의 패스를 받거나.
아니면 시하가 개인기로 나를 제치는 것뿐.
“앗! 시혀기 형아 더 빨라졌어!”
수비수와 1대1의 상황.
과연 이시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처음 보인 반응은 어떻게든 공을 뺏기지 않도록 좌우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도도도. 내가 휙 막자.
재빨리 돌아서 오른쪽으로 도도도.
다시 한번 내가 휙 막았다.
시하가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아! 형아!”
“왜? 형아는 수비수 하는 거야. 이제 공 뺏는다.”
“아냐.”
시하가 주먹을 쥐고 힘을 줬다.
저게 뭐 하는 거지?
“시하. 레드 변신. 형아. 아냐. 공 아냐.”
“레드로 변신하는 중이니까 공을 뺏지 말라고?”
“아아.”
나는 한 방 먹었다는 듯 멍해졌다가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내가 그런 비유를 했어도 그렇지.
설마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려고 할 줄이야.
공으로 응용해야 하는데 내가 설명한 말을 응용할 줄이야.
3살 이시하. 위험할 때 몸보다 머리를 쓰는 타입이다.
거기에 승준의 지원사격까지.
“아! 시혀기 형아. 레드 변신할 때 건드리는 거 안 돼. 사커 만화에서도 기술 쓸 때 아무도 안 건드려.”
아니. 애들아. 이건 실제 축구 경기지. 만화 축구가 아니야…….
뭐 어쩔 수 없이 이번 판은 애들의 장단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시하가 공을 차며 슬금슬금 움직였다.
“시하야. 변신하면서 공 몰기 있어?”
“아아. 시하. 변신해.”
“아하하하! 시하 똑똑해!”
레드는 변신해도 그 자리에 있는데 시하는 움직이면서 변신한다.
이거 사기 아니야?
만화 축구도 아니고, 실제 경기도 아니고 사기 축구의 현장이다.
“아아! 슛!”
시하가 공을 뻥 찼다.
데구르르 굴러가며 젤리 장난감을 뭉개며 그대로 골대로 골인.
이로써 2골을 기록했다.
“와아!!”
“아아!”
이거 수비수의 존재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후후후.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마지막 3번째 골은 쉽지 않을 거다. 요 녀석들아.
승준이 흥분하며 말했다.
“이제 한 골 남았어!”
“한 골!”
“시하야. 힘내자.”
“아아.”
이제 변신 끝난 거 다 안다. 소용없어.
그렇게 말하자 시하가.
“아냐. 승준 변신 아냐.”
“그건 수비수에게만 통했잖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는 골대 앞에 섰다.
이제부터 골키퍼가 되어서 애들의 공을 다 막을 거다.
“형아는 이제 골키퍼야. 알지? 나도 기술 쓸 거다. 형아 핸드! 형아도 만화 봤어.”
“쳇!”
이제 너희들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더 강력한 적으로 등장했다.
이거야말로 드라마틱한 연출 아니겠나.
“자. 와 봐. 하하하!”
“앗! 치사하다!”
“형아. 치사.”
나는 어이없이 둘을 보았다.
아니. 너희들이 그러면 안 되지…….
먼저 치사하게 나온 것은 내가 아니라 둘이었다.
“흠흠. 내가 못 움직이고 멈춰 있으면 그건 또 재미없잖아. 안 그래?”
“그건 그래.”
“아아.”
이 아이들은 자기주장을 하는 데 상당히 빈약하다.
뭐가 이렇게 쉽게 설득이 돼?
“자. 마지막 관문이야. 나를 넘어봐.”
“알았어!”
“형아!”
이제 가운데서 움직일 필요가 없는 둘은 열심히 공을 찼다.
슛을 하지만 빈번히 내 손발 앞에서 막힌다.
뻥 하고 멀리 보내기도 하고, 살며시 옆으로 굴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공을 졸졸 쫓아가서 다시 골대를 향해 달린다.
“어이쿠. 또 막았다.”
“이익!”
“아?”
승준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마지막 한 골만 넣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니.
“이대로는 안 되겠어. 시하야. 패스패스하자. 그리고 슛하는 거야. 알았지?”
“아아.”
정말 알아들은 걸까?
심히 걱정된다. 나야 뭐 이제 넣을 수 있게 극적인 연출을 하면 되지만.
“간다!”
승준이 공을 찬다. 시하가 받는다.
두 사람이 번갈아 패스하며 나를 어지럽힌다.
그래. 공이 좌우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언제까지 패스만 할 거야?’
문제는 눈앞에서 패스가 안 끝나고 있다.
역시 시하가 못 알아들은 걸까?
아니. 아니다. 눈치를 보니 누가 슛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
끝나지 않는 릴레이를 보다가 내가 물었다.
“누가 차?”
“형아. 시하가!”
“오, 그래?!”
친절하게 시하가 대답해 주었다.
저번 숨바꼭질 때부터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하와 나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
나는 살짝 시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하의 공이 오면 몸을 날려 막는 척을 해야겠다.
절묘하게 못 잡고 놓치는 시나리오지.
“아아! 승준!!!”
“아싸!”
승준이 공을 받더니 그대로 차올렸다.
설마 승준이 찰 줄이야.
나는 한 박자 뒤늦게 몸을 돌리며 손을 뻗었다.
“앗!”
“아아?!”
둘의 비명이 들려온다.
내가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 몰랐겠지.
예상은 빗나갔지만, 극적인 연출은 끝나지 않았다.
공이 손끝에 맞는다. 툭.
방향을 바꾸기 위해 과도하게 팔을 휘둘러 쇼맨십을 보여준다.
위로 치솟은 공이 골포스트에 극적으로 들어간다.
나는 얼굴에 경악을 담고 승준과 시하를 바라본다.
살며시 입을 벌리며.
“아…….”
정말 예상치 못했다는 한탄의 숨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 진실한 표정에 두 아이는 껌뻑 속으며.
“우와아아아! 시하야!!!”
“아아! 승준!!”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뛴다.
그렇게 기분 좋게 한바탕 웃다가 나를 보며 달려온다.
“형아. 시하 이겨!”
“으아아아! 시혀기 형아. 이겼다!”
“어? 어. 그래.”
아이들이 나를 잡고 다시 한번 방방 뛴다.
나 역시도 아이들의 기쁨에 같이 몸을 들썩였다.
그런데 얘들아. 너희 하나 잊은 게 있어.
‘나는 졌잖아…….’
아무튼, 둘이 기뻐하면 된 거지.
두 사람이 기쁘면 나 역시도 졌지만 이긴 기분이다.
그거면 된 거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방방 뛰고, 머리를 헝클이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