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오상환 교수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강인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의 교수는 논문과 실질적인 성과들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취업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교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대답한다.
오상환 교수님이라고.
“교수님. 이번 주 토요일에 강인대 축구장에 시간 예약했습니다. 미리 말해 뒀으니 그 시간에는 자유롭게 쓰지 못할 겁니다.”
학교 쪽에서 방금 연락을 받은 듯 대학원생이 폰을 흔들어 보였다.
“오! 그래. 땡큐. 다들 토요일에 축구할 거니까 잊지 말고. 축구화도 준비하고. 알았지?”
“네!”
“늘 말하지만, 이 축구 동호회에 누구누구 있는지 알지?”
“당연하죠.”
그냥 축구 동호회가 아니다.
가람반도체의 직원들과 같이 공을 차며 친분을 쌓는 모임.
이런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상환이 가람반도체를 다닐 때 굉장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로 기업 이익을 4배로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심지어 사람이 착해서 혼자 꿀꺽하지 않고 팀원들의 이름도 같이 올려 특허로 등록했다.
회사를 퇴사한 지금도 특허 라이선스 계약으로 특허비가 나오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약 50만 원 정도.
특허를 등록할 때 팀원의 이름을 넣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 당시 오상환은 후배들을 끌어올리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했다.
“내가 어?! 가람반도체 영업 이익을 어?!”
“교수님. 그 얘기는 이미 백 번도 더 들었습니다. 학부생에게 말할 때 저도 같이 있었던 거 기억하시죠?”
“크흐흠. 자랑거리 중 이게 제일 크잖아!”
“맨날 들어서 이제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마. 그건 네가 필드로 나가보지 않아서 그래. 사회 생활해 보면 내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 알게 되어 있어.”
그 순간 대학원생은 궁금해졌다.
그렇게 대단했으면서 왜 기업을 나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지.
“교수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그래. 말해 봐.”
“왜 교수를 하고 계세요?”
짧은 물음이었지만 오상환은 그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기로 했다.
사실 별거 아닌 이유였다.
“흠. 그냥 회사 생활이 안 맞았어. 몸도 점점 안 좋아지고 지쳤으니까.”
“우리를 그런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하시다니…….”
“얌마. 그때랑 지금의 근무 환경이 같냐! 지금은 더 좋아졌지.”
“정말입니까?”
“아니겠냐? 흠. 일정 기간 성과를 내야 하는 건 같지만 그때보다 좋아진 건 틀림없어.”
선두에 있다 보면 사내 정치와 같은 온갖 골치 아픈 일이 따라온다.
오상환은 그게 싫증이 나서 강인대학교의 교수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대충 빚도 다 갚은 시점이었다.
물론 지금은 다시 빚이 생겼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나갔다.
교직에 몸담는 게 꿈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필드에 내보낸다.
예전처럼 큰 스케일의 연구는 할 수 없었지만, 연구 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성향에 딱 맞는 일이었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일부러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최대한 친해져 봐.”
“네. 헤헤. 덕분에 서류는 그냥 통과겠네요.”
“어휴. 말이나 못 하면.”
반도체 설계 분야는 최소 석사 이상만이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오상환 교수 밑에서 배운 대학원생이라면 조금 더 기업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기업에서 적응할 기간과 교육할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빨리 써먹을 수 있다.
이것은 어느 대학교의 학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장점이었다.
그러니 기업으로서도 매년 강인대학교 대학원생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게 써먹을 수 장점이었으니까.
심지어 공동 설계 연구도 같이할 수 있으니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생수도 다 준비했습니다. 교수님은 몸만 오시면 되겠네요.”
“오야. 참. 작년에 만수가 면접에서 떨어진 거 알지? 괜히 서류 프리패스라고 안심하지 마.”
“아니. 솔직히 만수 선배는 자기가 노력을 안 해서 떨어진 거 아닙니까. 교수님 평판만 깎았잖아요.”
“됐다. 나간 애 이야기는 거기까지만 하자.”
“넵.”
오상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안타까웠다.
대학원생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제자라고 할 수 있건만.
갑자기 술 마시고 와서는 원망을 쏟아냈다.
면접에 떨어진 마음이 이해되는 한편, 여기까지 떠먹여 줬는데 취업하지 못한 제자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판에 살짝 금이 가기도 했고.
“크흠. 그래도 나 아직 안 죽었다.”
“큭큭. 네.”
그래서 이런 축구 동호회를 하거나 자주 연락을 취하는 등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다.
모두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서.
***
-토요일.
강인대학교 축구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시하랑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승준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준과 승준 아빠가 도착했다.
“시하야! 안녕! 시혀기 형아. 안녕!”
“아아. 하이~”
“안녕. 승준아.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승준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탐색하는 기색.
내 몸에서 뭐를 찾는지 모르겠다.
“흠흠. 오랜만이네. 오늘 승준이 잘 부탁하네. 경기 끝나면 데리러 갈 거야.”
“실제 축구 경기처럼 전후반이죠? 두 시간은 하시겠네요.”
“땀을 쫙 빼면 좋지. 오늘 중요한 자리거든.”
“그럼 저희도 풋살장에서 공을 차고 있을게요. 쉴 때는 구경도 하고요. 그럼 대충 두 시간은 지나가겠죠.”
“승준이를 봐줘서 정말 고맙다.”
“저야 뭐 시하랑 노는 거고. 시하도 승준이랑 노는 거 좋아하니까요. 하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썬더쓰리 사커 동호회예요.”
“아들에게 들었어. 재미난 이름이던데?”
“그런데 이런 동호회는 어떻게 들어가는 거예요?”
“오! 관심 있어? 사실 뭐 친목회 같은 거지. 반도체 설계 쪽 직원들도 가입되어 있거든.”
승준 아버지가 가방에서 이온 음료를 꺼냈다.
500ml 세 개.
“별거 아니지만 받아둬. 나중에 놀고 나면 목이 탈 거야.”
“와. 감사합니다. 시하야.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지.”
“아아. 고마어니다.”
“아빠! 짱이다!”
두 아이의 반응에 오상환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널따란 어깨가 좀 더 펴진다.
아무래도 기분 좋으신가 보다.
애들에게는 늘 져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왜 난 견제당한 기억밖에 없지?’
뭔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럼 나는 이만. 승준아, 아빠 간다.”
“아빠 이기고 와야 해!”
“그래!”
그렇게 승준 아빠가 떠나가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애들을 보았다.
“그럼 우리도 갈까? 내가 축구공 두 개를 준비했거든.”
나는 음료 세 개를 스포츠 가방에 넣고 두 개의 축구공을 보여 주었다.
두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시혀기 형아. 나도 사커공 있어!”
“응. 그럼 딱 세 개지? 서로 하나씩.”
“응? 축구는 한 개만 하는 건데?”
“하지만 훈련은 각자 하나씩 있어야지. 그래야 축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 맞아!”
시하는 뭣도 몰랐지만 내 말이라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시하야. 다 알아들은 거 맞지?
“시하야. 형아가 뭐라 했게?”
“아? 형아. 승준. 시하. 공!”
“응. 맞아. 잘 알아들었네!”
“아아. 사커사커해.”
“응. 맞아. 오늘은 제대로 훈련을 할 거야. 자! 다들 풋살장으로 가자.”
풋살장에 있는 펜스로 들어가자 작은 골대가 보인다.
나에게는 조금 작지만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의 골대 크기였다.
“자! 오늘은 내가 축구를 가르쳐줄게. 그때 형이 엄청 잘하는 거 봤지?”
“응!”
“아아!”
반응 하나는 기가 막힌다.
둘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는데 이 정도면 히딩크 감독 못지않은 인기다.
“먼저 가르쳐줄 건 이거야. 바로 공과 친해지기.”
사실 뭔가 엄청난 걸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뭔가를 가르쳐주기는 해야 했다.
승준이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공하고 친한데.”
“공하고 친하다는 건 몸에서 공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봐봐. 이렇게.”
나는 툭툭 공을 차며 일정 범위에 머무르게 했다.
점점 속도를 내며 공을 다룰 수 있는 범위까지 컨트롤했다.
“이렇게 최대한의 속도로 공이 내 발에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해. 이게 몸에서 안 떨어진다는 거지.”
이를테면 비유적인 표현.
승준은 내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승준의 눈에는 굉장히 빨라 보였을 거다.
“응? 시하야. 뭐 해?”
“아아. 공. 친해. 안 떨어져~”
시하가 공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다.
공과 하나 된 상태.
그래. 몸에서 공이 안 떨어지기는 하지.
근데 그건 친한 게 아니라 의자로 쓰는 거 아니니?
나는 시하의 엉뚱한 발상에 웃음이 나왔다.
“시하야. 발과 공이 친해지는 거야. 엉덩이랑 친해지는 게 아니라.”
“형아. 공. 발?”
“응. 발이랑 친해지기.”
시하가 공을 잡고 발 위에 올렸다.
툭. 데구르르.
벌써 저런 묘기를 하려고 하다니.
역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시하다.
“그럼 스트레칭부터 하고 시작할까?”
“아아.”
“응.”
나는 다리를 시작으로 팔과 허리를 돌렸다.
쭉쭉 시원하게 뻗는다.
둘이 짧은 팔다리로 열심히 따라 한다.
“좋아. 이제 첫 번째 훈련. 거북이 게임.”
“거북?”
“응?”
아이들이 뭔지 궁금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룰은 간단했다.
골대 앞에 공을 놓는다.
아이들이 일정 거리까지 기어서 도착한다.
악당은 거북이가 공에 도착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한마디로 거북이를 뒤집는다는 뜻.
하지만 누구 한 명이라도 공을 차서 넣으면 점수를 얻기 때문에 서로 협동을 해야 한다.
“형이 악당을 할게. 서로 잘 도와야 해. 알았지?”
“응? 그런데 시혀기 형아가 시하 뒤집고 나에게 오면 끝 아니야?”
“그래서 악당은 먼저 앞서간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야.”
거북이 게임.
이건 놀이로 보이지만 상당히 축구 훈련에 효과가 있다.
상하체가 훈련될 뿐만 아니라 축구는 팀 훈련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
필드에 동료가 있다.
혼자 질주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라.
뭐 이런 것을 애들이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만든다.
“두 사람이 떨어져야 금방 안 잡히겠지?”
“응.”
“아아!”
두 사람이 양 끝에 섰다.
골대 앞에 공 두 개를 놓았다.
“그럼 거북이 출발!”
두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간다.
승준이 앞서가기에 나는 곧바로 승준에게 다가갔다.
승준이 시하를 살짝 보더니 잠시 멈췄다.
그러자 시하가 자연스럽게 앞서나간다.
나는 다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악당인 내가 더 힘든 게임이네.’
걸음의 속도를 조절해야겠다.
시하 곁에 다가가자 시하가 멈췄다.
“아아. 시하 업따!”
“아니. 숨바꼭질이 아니야…….”
그런 거 안 통한다.
원래 룰을 없애고 자꾸 새로운 룰을 추가하네.
내가 곧 룰이다. 뭐 이런 건가?
이건 뭐 절대왕정도 아니고.
“시하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이다!”
“아아!”
승준이 다다다 기어가는 속도를 냈다.
아차!
그제야 시하의 계략에 당했다는 걸 알았다.
치사하게 훈련에서 꾀를 내다니.
누구 동생인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시하야. 이걸 노리다니.”
“아?”
시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승준을 잡아야 했다.
거의 잡으려고 할 때 시하가 치고 나왔다.
다시 반복.
결국 승준이 공에 먼저 당도했고 그대로 뻥 하고 찼다.
골대에 공이 들어가며 1점을 얻었다.
시하 역시도 일어나서 공을 찼다.
툭. 데구르르.
공이 천천히 굴러서 골대에 닿았다.
“으하하하! 시하야~! 2 대 0이야! 해냈어!”
“아아! 골~”
“골이야. 골!”
승준과 시하가 얼싸안았다.
누가 보면 진짜 축구 경기인 줄 알겠다.
얘들아. 잊었나 본데…. 이거 훈련이야…….
상대팀도 없는 경기에 애들이 승리의 희열을 느꼈다.
‘뭐. 재밌었으면 됐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