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500)

163화

-게임 개발 동아리방

시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 분량에 맞춰서 오전 번역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점심이 되면 밥을 먹고, 또 오후가 되면 다른 작업을 펼친다.

게임 시나리오.

서사와 초반 부분은 완벽하게 끝내 놓았다.

여기까지 게임 개발 동아리방에서 작업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인력 부족이었다.

‘이제 편하게 적고 넘기기만 하면 되지.’

게임의 중후반 부분이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뒷이야기를 적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꽤 여유롭다.

개발 기간이 긴 덕분인지 적어야 할 분량 면에서 여유로운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다섯 개의 분기점인 캐릭터의 서브 스토리(서브 퀘스트)는 적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주인공 중심으로 한 메인 스토리의 완성을 위해서다.

만약에 기업에서 게임 판매를 확정한다면 주인공 친구 캐릭터의 서브 스토리는 다른 시나리오 라이터가 만들지도 모른다.

‘흔한 일이지.’

게임 시나리오를 넘겨받아 이어 적는 일.

보통 앱 게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초기에 잡은 설정이 있어서 실력만 된다면 그 뒤를 더 재밌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흠. 어떤 느낌일까?’

주인공인 친구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전개되는 기분.

일종의 팬픽을 보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왜 삼국지 팬픽들이 조조, 제갈량 등을 주인공으로 하여 쓰이지 않나.

아마도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오! 완전 우리 동아리 부원 다 됐네.”

안경호가 동아리방으로 들어오며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 여기 부원 맞잖아. 2학기부터.”

“하하하. 근데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나?”

“왜? 이질적이야?”

“좀 그런 느낌이 있지. 친해지긴 했는데 약간 뭐라고 할까?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

“계약직이라 그럴지도?”

“아하하. 에이. 지금 게임에 얼마나 많이 기여를 했는데.”

“시나리오는 원래 게임 비중에 크지 않잖아.”

“대신 대표할 만한 특색은 시나리오밖에 줄 수 없지.”

“그건 인정. 왠지 의미 있는 일인 거 같아.”

“문제는 아직 대우가 별로여서 그렇지. 혹시나 하는 말인데 이걸 직업으로 삼는 건 좀 비추.”

“왜? 그렇게 별로야?”

“그냥 들어보면 그렇지. 보통 기획자가 스토리도 같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국이 어느새 게임을 안 만들기도 하고. 만들어도 스토리 중심 게임은 요새 보기 힘들지.”

“흠.”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앱 게임만 봐도 필수적인 [자동 사냥]이 있다.

스토리를 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키우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일일 퀘스트] 같은 것도 관성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할 거리가 없긴 하지.’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전략이라는 걸 즐기는 사람이 많기도 하다.

‘확실히 스토리 부각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네.’

이게 게임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안경호가 생각에 빠진 내 얼굴을 봤는지 어깨를 팡팡 쳤다.

“뭘 또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 그래도 하고 싶으면 투잡을 하면 되잖아. 통번역도 잘하면서.”

“그건 그렇지.”

“게임 회사 소속이면 그런 쪽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요즘 해외 쪽이랑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개발하는 게 많거든.”

“오! 그래?”

“응. 개발 외주를 외국에서 맡기니까.”

이런 동아리에 들면 좋은 점이 이거였다.

같은 부원이 전해 주는 정확한 현장 정보.

많이 조사하고 현업 개발자도 만나봤는지 아주 빠삭했다.

그런데도 외국계 기업으로 갈 생각을 하다니.

어쩌면 굉장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쉽게 뚫으려 생각지 못한 거니까.

‘요새 필요한 글로벌 인재 같은 느낌이네.’

이 동아리의 셋이 그랬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다른 애들은?”

“아! 걔들은 강의 듣지. 난 당연히 공강이고. 내가 교양을 안 듣거든. 하하!”

“아, 그래? 엄청 성실하게 미리 들었나 보네.”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야 뭐. 전공만 들으면 되는데.”

4학년 때는 하나 더 뺄 수 있다.

그때쯤이면 그냥 취업 준비하라고 강의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수업 연한 초과자에게는 또 혜택이 있다.

학점을 받는 것에 따라 등록금이 달라지니까.

만약 3학점만 주어진다고 했을 때 해당 학기 등록금 전액이 6분의 1로 줄어든다.

‘좋은 제도일지도?’

졸업 학점을 채우지 못하거나 졸업 유예를 원하는 학생을 위해 마련한 제도다.

취업을 위한 거겠지.

요새 졸업하고 취업에 공백 기간이 많으면 흠이 되는 세상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충 주인공은 다 끝나가는 거 같네.”

“오! 대박!”

“빨리 써야 개발할 거 아니야.”

“아니. 그 부분은 개발 못 하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근데 다른 애들은 안 쓸 거야?”

“뭐, 한두 명 정도? 대충 영화 시나리오처럼 쓰게. 그거 보고 알아서 다음 사람이 만들겠지. 아니면 묻히거나. 이건 여유롭게 쓸게.”

“그래. 시간 될 때 쉬엄쉬엄해서 써. 아! 근데 이거 재밌더라.”

“응?”

안경호가 시하가 만든 팝업북을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잘 만들었지?”

“응. 설정이 특이해서 계속 웃음이 나더라. 잠자리채 골대는 기가 막히던데? 애들 상상력이 어우.”

나는 그렇게 잠깐 안경호와 떠들다가 작업을 계속했다.

팬 돌아가는 소리와 키보드 소리만이 방에서 맴돌았다.

살짝 온기가 감도는 친분.

동아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이 작업의 즐거움을 더했다.

***

-어린이집.

승준도 동아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정확히는 축구 동호회.

아빠의 설명으로는 친한 사람들끼리 축구도 가르쳐주고, 같이 공도 차는 그런 천국 같은 동아리라고 했다.

물론 승준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천국 같은 곳은 아니다.

“시하야! 우리도 사커 동호회 하자!”

“아? 동호에?”

시하가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호에? 호에?”

“아니. 호에, 호에가 아니라 사커 동호회야.”

“모야?”

“팀을 만들어서 사커하는 거야. 서로 가르쳐주기도 한데! 어때? 하고 싶지?”

“아?”

시하는 잠시 고민을 했다.

전에 승준과 축구를 하는 것이 재밌었다.

형아가 축구하는 모습도 멋있었다.

그럼 형아랑 축구할 수 있는 건가?

눈이 반짝였다.

“아아. 해! 호에호에 사커! 형아. 형아.”

“응! 시혀기 형아도 같이 사커하는 거야. 하하하!”

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축구 동호회에 가입이 되었다.

승준이 하나를 보았다.

“하나야. 너도 해.”

“시러! 사커 재미업써.”

“시혀기 형아도 할 거야.”

“하나는 그럼 딴 거 할래! 응원할 거야!”

“아! 응원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그럼 그거 해.”

“응!”

그렇게 세 명이 모여서 작당 모의가 시작됐다.

“그럼 이름을 정하자.”

“페페!”

“아니야. 그건 아니야.”

곧바로 부정을 당하자 시하가 시무룩해졌다.

이름에는 무조건 페페가 들어가야 한다.

페페사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하지만 승준이 알아주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승준이 살짝 시하의 기색을 살폈다.

“흠흠. 페페도 좋지만, 더 좋은 이름으로 하자.”

축구만큼은 시하에게 양보할 수 없다.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었다.

“하나는 그거!”

“그거?”

“응! 아이돌 사커회!”

“우리 다른 거 생각해 보자.”

“히잉. 왜! 이거 조은데?”

“아니야. 그건 아니야.”

뒤에서 지켜보던 선생님도 그 이름은 아닌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페페축구가 낫지.

아니, 그건 아닌가?

승준이 고심 끝에 제안했다.

“썬더쓰리.”

“아?”

“썬더~쓰리~ 우리 세 명 들어가니까 쓰리~”

“아아! 쓰리!”

시하는 쓰리를 알고 있다.

황제 펭귄 쓰리에서 나왔으니까.

뭔가 쓰리를 쓰면 강해 보였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단어가 하나 존재했다.

“썬더?”

“응.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해! 번개가 썬더야.”

“아?”

시하는 실제로 번개를 본 적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풍이 왔을 때 잠깐 번개가 지나갔지만 아쉽게도 시하는 보지 못했다.

그럴 때 나서는 게 선생님이었다.

“시하야. 썬더가 궁금해? 자. 이게 바로 번개야.”

선생님이 폰으로 외국의 사례를 보여 주었다.

해외의 엄청난 번개의 사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구름 위를 노닌다.

마치 뿌리처럼 갈라지면서 퍼져나간다.

나뭇가지가 자라듯이 순식간에 증식한다.

시하가 깜짝 놀라듯이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신기한 장면에 승준과 하나 역시도 시선을 빼앗겼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빰빠바바밤. 빠바바바밤.

그와 동시에 나오는 EDM 소리.

반복되는 영상과 노래가 무서움보다는 흥을 돋웠다.

“아아!”

시하가 신나는지 몸을 들썩들썩했다.

승준과 하나도 사커 동호회는 잊어먹고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어때요? 신기하죠? 엄청나고.”

“아아! 썬더!”

“와! 멋지다!”

“노래 조아!”

셋이서 들썩들썩 몸을 움직였다.

다른 아이들도 호기심이 이는지 선생님에게 다가와 영상을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춤바람.

“자. 여기 어린이 클럽이에요. 신나죠?”

선생님도 들썩들썩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놀아본 태가 나는 모습.

오랜만에 온 클럽의 흥취에 잠깐 몸이 녹으려는데 원장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졌다.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뭐 하세요? 정신 차리시죠? 클럽이라뇨?’라고.

“크흠. 아무튼, 번개는 이걸 말해요.”

영상을 종료했다.

오랜만에 뜨거운 EDM의 피가 끓어올랐지만, 살짝 중탕이 되고 말했다.

푸시식 식어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애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의문 어린 눈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아? 샘. 노래.”

“아! 왜 꺼요! 이제 막 추기 시작했는데!”

“마자!”

선생님이 화제를 돌렸다.

“지금 축구 동호회 만드는 거 아니었니? 축구는 11명을 구해야 해. 제대로 하려면 22명이 있어야 해요.”

시하는 22명이 몇 명인지 손으로 세었다.

이제는 열까지 셀 수 있는 시하였다.

“열!”

“응. 그거에 한 번 더 열이 있어야 해.”

“아? 열 더?”

“응.”

시하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한 번 더 열을 세기에는 손가락이 모자랐다.

고민하다가 양말을 벗었다.

꼼지락 발가락을 움직이며 열을 더 셌다.

“아아! 샘. 열.”

시하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응. 그게 바로 스물이라고 하는 거야.”

“수물?”

시하는 오늘 새로운 숫자를 알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리고 추가된 스물.

아쉽게도 중간인 열하나에서 열아홉은 모르게 되었다.

뭐 그걸 아는 것도 시간문제겠지만.

“이제 양말 신자.”

“아아.”

선생님이 양말 신겨 주는 동안 승준은 다른 애들이게 썬더쓰리 축구 동호회에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들 관심이 없는지 거절해서 시무룩해졌다.

그때 시혁이 도착했다.

“시하야. 오늘은 일찍 가자.”

“아아! 형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가 시혁의 다리에 폭 안겼다.

대롱대롱 매달리다 쭈욱 아래로 떨어졌다.

“오늘 재밌었어?”

“형아. 시하. 썬더 해써.”

“응?”

“승준. 하나. 썬더 해써. 썬더쓰리.”

“오! 그랬어?”

승준이 고개를 쏙 내밀더니 시혁을 보았다.

“시혀기 형아도 썬더쓰리에 있어.”

“응? 나도?”

“응. 썬더쓰리 사커 동호회. 같이 가자.”

“엥? 어, 어딜 같이 가는데?”

“당연히 여기 축구장! 토요일이래. 토요일. 아빠가 사커 동호회 갈 때 우리도 가자.”

“아. 승준이 아빠가 동호회 가시는구나?”

“응. 동호회끼리 축구를 한대. 그래서 나도 만들었어.”

“응. 같이 축구를 하려면 만들기는 해야지.”

시혁은 조금 안타까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른들 동호회랑 공 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시혀기 형아도 가자.”

“어. 그게.”

그때 시하가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형아. 시하도.”

“아. 시하도 가고 싶어?”

“아아. 형아. 사커. 가치.”

승준이 흥분해서 말했다.

“시혀기 형아. 나 사커 가르쳐 줘.”

“하하하. 알겠어. 그럼 주말에 같이 공 차러 가자. 여기 대학교 축구장 옆에 작은 풋살장도 있거든. 거기서 하면 되겠다.”

“아싸!”

“하나도 공 차러 가?”

“아니. 하나는 응원! 근데 못 가.”

“어? 왜?”

“하나 노래 교실 가기로 해써.”

“오! 그래? 그럼 노래 잘 부르고 와야 해.”

“응!”

결국, 남자 셋이서 공을 차고 놀기로 했다.

시혁은 그나마 꽤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나가 안 와서가 아니라 승준을 집에서 오가는 걸 승준 아빠가 해줄 거니까.

그렇게 시혁은 또 하나의 동아리, 아니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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