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500)

162화

“그래서 이 많은 걸 어떻게 팔라고?”

“간단합니다. 형님 시하페페 아이디로 픽시브에 올리잖아요. 거기에다가 올리면 되죠.”

“음.”

“왜요? 안 돼요?”

“어. 곤란하지. 아니. 곤란한가? 솔직히 판단이 안 되네.”

“뭐가요? 굿즈 판매하는 일러레도 많은데요.”

확실히 그렇다.

유명 일러레들은 그림엽서나 바인더, 그립톡, 장패드 등등 여러 가지 굿즈를 판다.

하지만 시하페페의 픽시브에 올리는 건 조금 고민해볼 문제였다.

“솔직히 시하페페의 국적을 모르고 있거든. 대충 영어권 국가가 아닐까 예상하는 것뿐이지.”

“엥? 아! 그거 형님이 맨날 영어로 올려서 그런 거 아닙니까. 설명하고 전부. 그러고 보니 댓글이 다 영어네요.”

“그, 그렇지.”

처음 시작할 때는 시하가 커서도 댓글을 쉽게 읽지 못했으면 해서 그렇게 올렸는데.

이제 와서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밝히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 애초에 3살이 그린 그림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굳이 밝힐 필요도 없었다.

“음. 그건 패스.”

“아니면 블로그 어떻습니까. 블로그만 하는 일러레도 있잖습니까.”

“블로그?”

“네. 거기에 시하페페 임티작가 블로그로 만드는 겁니다. 뭐 나중에 픽시브에 댓글로 한국 사람인 것도 자연스럽게 밝혀질지 모르겠네요.”

“음. 그렇지. 국적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걸로 떠나는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지. 지금 이걸 걱정하는 게 웃기긴 하네.”

“그러니까요.”

“그런데 임티 작가로 데뷔한 건 잊어먹고 있었네.”

뭐 임티야 따로 작가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다.

대부분이 캐릭터에 빠져 사는 것일 뿐.

그런데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임티를 계속 출시하다 보면 언젠가 픽시브에서도 알려지게 될 것이다.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흠. 정말 올려볼까?”

생각을 정리해 보니 결국 밝혀질 일이었다.

그게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일 뿐.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해외 배송은 못 할 것 같네. 대충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인터넷 판매를 하는 게 낫겠다.”

그렇게 방향이 정해지자 어떤 식으로 팔아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역시 이런 건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시하야. 나머지는 인터넷에 팔자.”

“인터?”

“응. 여기 폰에 보이지? 여러 가방도 있고, 옷도 있고. 여기에 파는 거야.”

“아아. 리사!”

“하하. 맞아. 알리사가 하는 파랑몰도 이런 옷을 파는…….”

“리사. 파라. 리사 파라!”

“응. 알리사에게도 팔아야지. 아니면 선물로 주거나. 지금쯤 한국에 왔을 건데 코빼기도 안 보이네…. 아! 잠깐만.”

갑자기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아동복을 파는 파랑몰 사이트.

거기에 광고를 달면 어떨까?

아니면 사은품으로 주는 거지. 파랑몰에게 장사를 좀 해봐?

‘굳이 책방이나 인터넷 판매에만 목맬 필요가 없잖아?’

팝업북은 굉장히 싼 가격의 책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약 200여 개.

딱 이벤트로 하기 좋게 남지 않았나.

아동복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오랜만에 파랑몰에 가볼까?’

나는 시하를 보았다.

백동환의 굵은 다리를 똑똑 두드려보는 중이었다.

알아서 잘 놀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시하야. 내일 같이 가자.”

“아? 어디?”

“형님. 어디 갑니까. 저도 데려다주시죠.”

“넌 빠지고.”

“너무하십니다…….”

“넌 일하러 나가야지.”

“아, 맞네.”

백동환이 그건 생각 못 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여간 일은 하고 따라올 생각을 해야지.

“그런데 팝업북 하나 들고 가면 되죠?”

“응. 시하에게 돈 주고 가고.”

“알겠습니다. 시하야. 자, 여기 3천 원 있어.”

“아아. 고마어~”

“큭큭. 그래.”

시하가 펭귄 동전 지갑에 3천 원을 쏙 넣었다.

오늘 돈을 많이 버는 시하였다.

***

다음 날.

나는 시하와 함께 파랑몰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이 파랑몰에 많이 일조했으니까.

‘바쁜 건 아닌지 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무표정한 눈으로 비닐 포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전화기만 붙잡는 사람도 있고.

다들 많이 바쁘네.

그 와중에 여유롭게 펜을 돌리고 있는 파랑몰 대표님이 보인다.

“아아. 리사!”

“와! 시하. 오랜만이야. 시혁도요.”

나는 웃으며 박스를 근처 책상에 내려놓았다.

다들 정신없는 와중에 이제야 나를 보았는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공통된 의문이 담겨 있었다.

저 상자는 뭐지?

뭐 그런 눈빛이었다.

알리사가 다가와 시하의 두 손을 잡고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상자는 뭐예요? 혹시 파랑몰 선물?”

“아. 그건 아니고요. 여기 물건 좀 팔러 왔습니다.”

“아. 잡상인 안 받아요. 나가세요.”

“이야. 알리사. 한국에 다시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런 것도 알아요?”

“얼마 안 됐는데 딱 잡상인이 출입하더라고요. 바로 내쫓았죠.”

그렇게 말하는 알리사의 뒤에서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거 거짓말이잖아. 신기해서 눈 반짝이는 거 훤히 보였는데. 넘어갈 뻔했잖아.”

“아니거든! 나 알리사야. 그런 뻔한 수작에 안 넘어가. 그냥 이런 거 본 적 없어서 좋은 경험이다 생각한 거뿐이야. 다음에 올 때는 어림도 없어.”

“대체 알리사가 뭔데…. 뭐 슈퍼맨이라도 되나.”

“여기 대표.”

“아. 그렇냐.”

아무튼, 요지는 알리사가 잡상인에게 넘어갈 뻔했다는 거다.

하! 나는 그냥 잡상인이 아니다.

시하라는 귀여움을 장착한 잡상인이지.

이를테면 팔릴 수밖에 없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단 말씀.

“이거 시하가 만든 건데 여기서 판매하면 좋을 거라 생각해서 가져왔어요.”

“시하가 만들었다고요?”

“네. 알리사 마음에도 쏙 들걸요.”

“그래요?”

혹하는 모습에 뒤에서 쯧쯧,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말해도 다들 호기심을 감출 수 없는 모양.

슬쩍 고개를 내민 게 보인다.

나는 책을 꺼내서 알리사에게 보여 주었다.

“어때요?”

“와! 팝업북이네요? 잘 만들었다. 그림도 귀엽고. 마지막에는 시하페페 로고가 뜨네요? 이거 귀한 거네요.”

“네. 지금 재고가 약 200개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제 가을옷 팔 때도 됐잖아요. 그쵸?”

“네. F/W 시즌이죠.”

“그러니까요. 가을에 맞는 이 잠자리 팝업북.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나요.”

“잠자리요?”

다들 하나씩 들고 의문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려진 건 날개 달린 펭귄인데 어딜 봐서 잠자리냐는 얼굴.

그것에 관해서는 이미 얼굴이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거기 읽어보시면 페페잠자리라고 나옵니다. 의인화 같은 거죠.”

“뭐, 그건 넘어가고.”

“심지어 해외 리그 시즌이죠. 축구! 얼마나 가슴이 뜁니까. 그렇죠?”

“억지로 짜 맞춘 거 같은데…….”

눈치가 빠르다.

하지만 마냥 없는 말은 아니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나.

“F/W 시즌은 이제 예쁜 옷도 많이 나오고 가격도 여름옷보다는 비싸죠. 그런데 선착순 200명으로 이런 책을 파는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겠어요? 부모님이나.”

“흐음. 괜찮은데요?”

다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다.

역시 내가 파랑몰에 기여한 게 아주 크게 돌아왔다.

그런데 아직 입금은 멀었나?

계약도 따냈으니 꽤 커다란 금액이 줄 것 같은데…….

하긴 이제 시작된 건데 금전 처리 문제도 정신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였다.

파랑몰 사이트 디자인 담당이 일어섰다.

“잠깐. 이건 그렇게 넘어가면 안 돼.”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부터 시하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시하 파라. 이거. 이거. 안 사?”

“어? 어어. 아니. 안 산다는 말은 아닌데…….”

“사? 또 오께.”

“아니. 또는 안 와도 되고.”

‘또 오께’가 안 통하는 걸 알았는지 시하가 다른 말로 대체했다.

“시하. 이거 해써. 삼처넌 해주께.”

“어. 삼천 원이면 싸긴 하네.”

“사?”

“어? 살까?”

그가 시하의 말에 횡설수설했다.

얼굴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여성진들은 이미 껌뻑 넘어가고 있었고.

알리사가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더니 ‘아!’ 하며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럼 이건 어때요?”

“뭘요?”

“시하페페 콜라보 옷을 만드는 거죠. 가을 캐릭터 티셔츠로.”

“오호.”

“아니다. 잘못 말했다. 캐릭터가 아니라 이 시하페페 로고요.”

“로고요?”

“네. 색감이랑 영어가 너무 옷에 잘 어울릴 거 같은걸요.”

다들 마지막 장을 펼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캐릭터가 아니라 로고에 관심을 보낼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이번에 출시할 옷 패턴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 시하페페 로고를 박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한정판으로. 사이트 배너에 미리 출시 예정으로 해 두고요.”

“오! 근데 재고가 남으면 어떡해요?”

“그래서 출시 예정으로 올려서 미리 반응을 보는 거죠. 거기에 댓글이 달릴 거니까. 선착순 200명에게는 팝업북도 줄 거고. 또 추첨을 통해 이모티콘을 선물로 줘도 되고.”

“그거참. 괜찮겠네요. 아, 이모티콘 관련해서는 K 회사랑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뭐 추첨을 통해 임티를 보내주는 거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 이 로고로 시하페페 콜라보 옷 만드는 거 콜?”

“저야 좋죠. 손해는 아닌데.”

“오케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약서 쓰죠.”

“알겠어요. 음.”

“왜 그래요?”

“아니,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래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다.

왠지 일이 커진 느낌이 들지만 뭐 상관없겠지.

“그럼 이거 다 사주시는 거죠?”

“네. 남은 200개 다 주세요.”

“딱 200개는 아니에요.”

“아무튼요. 이거 나도 하나 가져야겠다.”

어떻게 됐든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시하 덕분에 일이 술술 풀렸네.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거지 뭐.

“시하야. 알리사가 잘 사준데.”

“리사! 고마어~”

“다른 사람에게도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지.”

“고마수니다~”

다들 따뜻한 미소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재고를 팔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손해는 없고 오히려 흑자만 가득한 판매였다.

***

-승준과 하나의 집.

엄마가 쌍둥이들의 상자를 꺼냈다.

아쉽게도 다 팔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굉장히 잘 팔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승준이 축구화를 구해 왔다는 것.

“엄마! 이거 봐! 대단하지?”

“응. 어떻게든 구해 왔네? 우리 아들 대단해~”

승준 엄마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디 보자. 한 달 식비랑 집세가 얼마나 나가더라?

축구 교실 비용은 얼마나 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오자마자 가계부를 뒤적거렸다.

“엄마. 나 근데 사커 교실 안 가도 돼.”

“어? 왜? 너 축구 교실 가고 싶어 했잖아.”

“사실 이거 하나가 돈 줘서 샀어. 그래서 하나 노래 교실 보내.”

“오~ 그래? 하나야. 오빠 축구화 사는 데 돈 줬어?”

하나가 괜히 쑥스러운지 작은 목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두 아이의 우애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참 많이 아끼는구나.

나중에 엄마, 아빠가 떠나도 두 사람이 이렇게 아껴주겠구나.

각자 가정을 꾸리겠지만 그래도 피를 이은 가족으로서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새끼들. 이리 와봐.”

엄마는 쌍둥이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쩌면 좋을까.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내 새끼들이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둘 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줄게.”

“응.”

“응.”

그렇게 오붓하게 있을 때 같은 가족인 오상환이 왔다.

“얘들아. 아빠 왔다!”

“아빠!”

“아빠!”

쌍둥이들이 아빠에게 안겼다.

엄마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오늘 둘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정말? 와! 이거 안 되겠네. 우리 쌍둥이들을 위해서 연구 하나 더 받아야겠어. 이번에 대기업에서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한 게 있거든.”

“그래요?”

“응. 안 그래도 고민했는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아직 은행 대출이랑 카드값 등 갚을 게 천지인데.”

“좀만 더 고생해요.”

“그래.”

하나는 눈을 빛내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하나 노래 교실 가?”

“응. 엄마가 알아보고 주말에 보내 줄게.”

“아싸!”

승준이 살며시 부럽다는 듯 보았다.

그러더니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빛냈다.

“아! 시혀기 형아가 축구 잘하는데!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

“응? 시혁이 형이 축구를 잘해?”

“응. 전에 운동장에서 축구 했어! 아빠는 잘 못 하지?”

“어허! 아빠가 왕년에 말이야. 완전 선수였어. 네가 좋아하는 시혁이 형도 상대가 안 돼. 전에 아빠랑 공 찬 거 기억하지?”

“응. 그럼 아빠가 시혁이 형보다 강해?”

“하하. 그렇지.”

“그럼 같이 축구하자.”

“어? 어, 뭐 그러지. 하하. 시간 되면 말이야.”

엄마가 물을 가져오며 내려놓았다.

“허리 조심하세요.”

“아니. 나 아직 현역이야. 공 좀 찼다고 안 다쳐.”

“그럼 아껴 쓰세요. 알겠죠?”

엄마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오상환은 그 모습에 괜히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커험.”

“아! 아빠. 전에 사커 동호회에 간다고 했잖아. 시혀기 형아도 같이 가면 되겠다!”

“으응? 아니야. 그러지 마.”

“헤헤. 내가 말할게~!”

승준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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