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한편 어린이집 부스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장사는 뒷전이고 놀기 바쁜 아이들.
장사 목표가 확실한 종수.
옆에 있던 재휘는 이제 흥미를 잃었는지 남은 옷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혼자 놀고 있었다.
실상 종수 빼고는 다들 논다고 봐야 했다.
“으으. 아직 많이 남았네.”
종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벌써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다.
옆에 있던 재휘는 조합이 꽤 괜찮은지 은근히 계속 옷을 팔았다.
상의와 하의가 한꺼번에.
“재휘야. 내 옷도 조합해 주면 안 돼?”
“응? 으음.”
재휘가 고민하다가 종수의 옷을 헤집는다.
이것저것 대보지만 퍽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그렇다고 그냥 놔들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보고 괜찮은 조합을 펼쳐 놓았다.
“이거랑 이걸 더하면 꽤 괜찮을 거 같아.”
“와! 진짜네!”
종수는 신기하다는 듯이 재휘를 보았다.
옷에 관해서는 확실히 재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원장이 지켜보다가 유다희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는 건 이렇게?”
“네. 다른 아이들은 제자리에서 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승준이랑 하나만 데리고 갔다 올게요. 두 사람은 사고 싶은 게 있나 봐요.
“뭘 사고 싶다던가요?”
“승준이는 축구화를 사고 싶다고 하고 하나는 비밀이라고 하네요.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유다희 선생님은 승준과 하나를 데리고 떠났다.
승준이 신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축구화가 어딨는지 눈을 부릅뜨며 찾았다.
“아, 안 보이네.”
“분명 있을 거야. 선생님도 열심히 찾을게.”
“오빠. 나도 도와줄게!”
그렇게 셋이서 한참을 찾다가 축구화를 파는 좌판을 발견했다.
승준이 기뻐서 거기로 뛰어갔다.
“와! 이거 얼마예요?”
그 말에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승준아. 일단 발에 맞는지 확인해야지.”
“커도 나 크면 신을 수 있어요.”
“작으면?”
“아니야. 안 작아요.”
선생님이 황당하다는 듯이 승준을 보았다.
저기. 승준아. 신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니?
하지만 승준이 의외의 논리를 펼쳤다.
발이 크면 나중에라도 신을 수 있다.
혼자 생각한 건 아닐 거고 승준 엄마가 옷을 살 때 살짝 큰 옷을 사는 게 분명했다.
좌판에 앉아 있던 아줌마가 말했다.
“호호호. 그래요. 한 번 신어 봐요. 근데 이거 진짜 비싸다?”
“헤헤.”
승준이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돗자리 위로 올라와서 신발을 신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어때? 딱 맞아?”
“응! 딱 마자!”
선생님은 의심스러워서 축구화의 앞부분을 꾹꾹 눌렀다.
발이 조금 남는다.
살짝 큰 느낌이었다.
“조금 큰데?”
“내 발도 금방 자라요!”
“아하. 그렇구나. 근데 이거 비싼 거 같은데? 선생님도 아는 메이커야.”
선생님이 장사하는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몇 번 안 신은 거라서…. 10만 원에 샀거든요. 그래서 7만 원에 팔려고 해요.”
“아!”
승준이 주머니에 돈을 꺼냈다.
5만 원짜리 한 개.
“이거면 돼요?”
“아니. 이만 원 부족하네.”
“아…….”
승준이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담았다.
멋지디멋진 메이커 신발!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발을 사면 주말에 축구 교실에 다닐 수 있게 된다.
승준 엄마는 설마 축구화를 사 올 거라고 생각 안 하고 있지만.
그도 그럴 게 승준의 발에 맞는 작은 신발을 찾는 건 힘든 일이었다.
또한 물건을 아무리 팔아도 축구화값을 못 벌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굉장히 타당했다.
설마 합체 로봇이 10만 원에 팔릴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 이걸로 해 주면 안 돼요?”
“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곤란한데. 이미 많이 싸게 파는 거거든.”
“힝.”
솔직히 아줌마 입장에서도 몇 번 신지 않은 메이커 축구화를 3만 원이나 깎는 게 뼈아팠다.
“오빠.”
“응?”
“이거. 하나 꺼.”
“어?”
하나가 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던 지폐를 꺼냈다.
다 합쳐서 2만 3천 원.
“사커화 비싸다고 해써.”
“아…….”
“구래서 하나가 온 거야.”
“고, 고마워. 근데 괜찮아?”
“응. 오빠 해. 오빠 사커 마니 조아하자나.”
“응…….”
승준이 감동했다는 듯 돈을 받았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자. 그럼 선생님이 돈 세 줄게. 어디 보자.”
딱 7만 원을 맞추고 하나에게 남은 3천 원을 돌려주었다.
승준은 감동한 표정으로 축구화를 끌어안았다.
“하나야. 오빠가 사커 교실 가게 하는 거 대신 너 노래 교실 보내 달라고 할게.”
“정말?!”
하나가 좋다고 웃었다.
승준도 기뻤다.
축구 교실은 아까웠지만, 축구화를 얻게 해준 하나라면 양보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쌍둥이라도 승준은 하나의 오빠였으니까.
선생님도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선생님도 엄마에게 부탁해 볼게.”
“응!”
“응!”
그렇게 임무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어린이집 부스로 돌아갔다.
***
나는 시하와 함께 어린이집 부스로 돌아왔다.
다들 대충 실컷 놀고 즐겼는지 정리하는 분위기.
재휘는 예쁘게 옷가지를 접어 상자에 넣었다.
종수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빈틈없이 물건을 넣었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안 팔렸나 보다.
고개를 돌려 시하와 나를 보더니 황급히 달려왔다.
“야. 이시하!”
“아?”
“쩝. 난 다 팔지 못했는데 그래도 꽤 팔았어. 부럽지?”
“아아.”
종수가 자기가 번 돈을 보여 주며 자랑했다.
마치 나는 너에게 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려는 것 같았다.
뭔가 시하를 라이벌로 보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래도 좋을지도?’
정정당당하게 저렇게 부딪쳐오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나.
물론 종수 혼자만의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지만.
‘시하야. 조금은 반응해 주는 게 어때?’
그런 것에 관심 없는 시하는 내 다리에 찰싹 붙어서 봉지를 흔들고 있을 뿐이다.
종수가 내가 들고 있는 봉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 돈으로 저렇게 많이 샀어?”
“아냐. 이거 파박. 저거 파박. 해써.”
“뭔 소리야?”
나는 봉지를 열어 종수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산 게 아니라 아줌마, 아저씨들이 준 거야. 시하가 떡볶이 아줌마를 도와줬거든.”
“헉! 이 많은 걸 전부?”
종수가 놀란 얼굴로 시하를 보았다.
그러더니 시하의 펭귄 지갑을 가리켰다.
“그럼 그 지갑은 뭔데?”
“이거. 사써.”
“아! 그거 산 거야? 그럼 그렇지. 그래서 남은 돈은 얼마야?”
“이거!”
시하가 지갑을 열어 종수에게 보여 주었다.
저기 시하야. 그렇게 보여주기만 하면 종수가 얼마 있는지 몰라…….
하긴 아직 숫자도 다 모르는데.
“3만 2천 원이야.”
“네? 왜 3만 2천 원인데요? 3만 원에서 썼으면 줄어야 하는데…….”
“그러게. 왜 그런지 모르겠네.”
3만 원을 벌고, 3천 원을 쓰고, 5천 원의 용돈을 받았다.
그래서 총 3만 2천 원.
분명 물건을 사러 갔는데 돈이 늘어난 상황.
종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눈을 돌렸다.
살며시 중얼거리는 소리.
“엄마가 돈이 돈을 부른다고 했는데…. 정말이야? 돈이 막 늘어나??”
저기 종수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는 않아.
주식이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이 상황이 어색해 웃을 뿐이었다.
종수는 저 멀리 터덜터덜 걸어가 짐을 정리했다.
왠지 회사에서 자기 자리를 정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종수의 등은 씁쓸한 맛이 있었다.
‘벌써부터 저런 등을 보이다니…….’
안타깝지만 뭐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하는 그저 해맑게 다시 한번 돈을 세고 있을 뿐이고.
저기 시하야. 종수에게 관심 좀 주라.
그때 저 멀리서 시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하야~”
“시하야~”
쌍둥이들의 등장이다.
승준이 재빠르게 달려와 시하 앞에 서더니 발을 척 하고 내밀었다.
“자. 봐봐! 이게 바로 사커화야!”
“사커?”
“응. 사커할 때 꼭 신는 신발이야. 여기 보면 울퉁불퉁하지?”
승준이 한쪽 발을 들고 밑창을 보여 주었다.
중심 잡기가 힘든지 몸이 통통 튀었다.
시하도 밑창을 보려다 보니 고개가 위아래로 까딱거렸다.
통통통. 까딱까딱.
서로 그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빨리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아?”
그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듣는 이시하.
뒤늦은 브이를 해 보지만 이미 사진 찍힌 뒤였다.
‘아싸. 브이 안 한 사진이다.’
나는 시하에게 폰을 흔들며 말했다.
“이미 다 찍혔어.”
“아냐. 다시! 다시!”
“하하. 그래. 다시 찍자.”
찰칵.
그렇게 다시 찍고 나서야 만족했는지 시하가 오늘 있었던 일을 자랑했다.
승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진상. 진상. 막 파박파박. 해써. 도망가써.”
“오! 엄청나게 싸웠다고? 멋지네!”
“아아! 형아. 따다다다다. 해써.”
“역시 시혀기 형이네! 그럴 줄 알았어! 악당을 물리쳤구만!”
“이케. 이케.”
“하하하!”
정말 대화가 통하는 걸까?
뭔가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해서 신기했다.
“시혀기 오빠.”
“으응? 왜 그래 하나야?”
“하나. 노래 교실 가면~ 엄청 잘 부를 거야. 수혀니 언니처럼.”
“그렇구나. 하나 노래 교실 가는 거야?”
“지금은 아닌데. 나중에. 헤헤.”
“그래?”
“응. 나중에 시혀기 오빠에게 들려줄게!”
“오! 그럼 고맙지.”
그때 아주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가 누구에게 들려준다고? 하나야! 아빠는!”
하나 아버지 오상환이었다.
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엄마랑 시혀기 오빠한테 해 주고 다움에!”
“왜 내가 마지막이야…….”
“아니다. 오빠 다음에 아빠야. 헤헤.”
“왜 난…….”
허허허.
그렇게 원망스러운 눈으로 봐도 난감할 뿐이다.
아무튼, 오늘 장터는 대충 마무리된 것 같다.
선생님 돗자리 치워주는 거나 도와줘야겠다.
나는 잽싸게 그 자리를 피했다.
***
-집.
시하와 집에 돌아왔는데 굉장히 피곤했다.
왜지? 그냥 재밌게 놀았을 뿐인데.
집 안으로 들어오니 이불에 몸을 파묻고 싶었다.
하지만 시하가 지켜보고 있으니 손발을 깨끗이 씻자.
시하 덕분에 왠지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는 기분이다.
“후우. 시하야. 피곤하지?”
“아냐.”
“아, 그래? 피, 피곤해야 할 텐데.”
“형아. 이거. 이거. 파라.”
시하가 남은 팝업북 상자를 탁탁 두드렸다.
오늘의 경험으로 팔 생각이 한가득해 보였다.
저기 시하야. 반은 지인 장사였어…….
“흠. 처리가 곤란하긴 하네. 학교 도서관에 3개 정도 기부할까?”
그것도 방법이기는 했다.
여러 도서관에 기부하는 형태로 보내도 꽤 줄어들 것 같다.
뭔가 사회에 공헌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할 거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많이 남긴 했지.’
어떻게든 팔긴 팔아야 할 것 같았다.
띵동.
“누구세요?”
“형님. 접니다.”
“저가 누구신대요?”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저 백동환입니다. 또 들어오기 힘들게 하시네.”
그때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아아. 백동!”
“그래. 시하야. 이제 문을 열어주라.”
“백동! 시하. 책 파라.”
“그래. 책 사러 왔어. 이제 열어주라.”
“얼마?”
“하하. 4딸라! 다 알고 왔다고. 이거면 되지?”
“아냐. 백동. 백동이야.”
“뭐? 그게 뭐야?”
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형님. 통역 좀 부탁드립니다.”
뭐래. 나도 잘 모르는데.
그냥 대충 말해줘야겠다.
“백 달러래. 백 딸라. 백동이니까 백 딸라로 내래.”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지.”
“아아!”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다고?
거 너무하네. 백 달러라니.
“진짜라는데?”
“헉! 잠시만요. ATM기에서 돈 뽑고 올게요.”
“하루에 70만 원밖에 안 될 건데?”
“계좌 이체는 됩니까?”
“시하야. 통장으로 동글이 보내는 거 되냐는데?”
“아냐.”
“야. 안 된대.”
백동환이 곤혹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장난도 이 정도 쳤으면 됐다. 이제 들여보내자.
“시하야. 이제 문 열자.”
“아아. 백동. 시하. 3처넌. 하께.”
“시하가 특별히 3천 원 해 준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크흑. 시하야. 고마워. 역시 3천 원에 해 주는구나!”
“아아!”
백동은 아까 100달러의 마수에서 벗어났는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너 속은 거야. 원래 그렇게 파는 거야.
시하가 가진 장사 기술에 걸려든 백동이었다.
아니, 백동환이었다.
“와. 근데 형님 이거 다 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들어오자마자 놀라서 나를 보았다.
나도 살짝 난감하기는 했지만 언젠간 다 팔지 않을까 싶다.
“뭐. 어떻게든 팔겠지.”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해 보면 어떻습니까.”
“네가 백 달러에 다 산다고?”
“아니.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시하가 덥석 받았다.
“백동. 다 사?”
“아니. 다 안 사…….”
하여간 이렇게 잘 받아주는 백동환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하기는 하네.
어떻게 하라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