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오해가 풀린 백동환은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나는 시하랑 함께 이 장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혹시 모르잖아. 시하가 갖고 싶은 게 있을지.
“오늘은 시하가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거 사.”
“아? 시하. 사?”
“응. 3만 원 있지?”
“아아. 마나.”
시하가 주머니에서 수북이 돈을 꺼냈다.
땅으로 떨어지기에 나는 얼른 주워서 쫙쫙 폈다.
아무래도 시하에게 지갑이라도 사줘야겠다.
이렇게 돈을 들고 다니기는 불편하니까.
‘아니지. 지갑이 아니라 크로스백 같은 걸 사줘야겠는데?’
지갑을 들고 다니면 시하가 불편할 게 뻔했다.
오늘 돌아다니면서 돈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을 사줘야겠다.
동전 가방이라던가.
“그럼 시하야. 돌아다녀 보자.”
“아아.”
시하가 내 옆에 꼭 붙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물품을 한 번 보고,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또 딴 데를 보고, 내 얼굴 한 번 보고.
“형아는 여기 잘 있어.”
“아아. 잘 이써!”
“하하하. 어디 안 가고 시하 옆에 잘 붙어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아아.”
원래라면 시하가 내 옆에 잘 붙어야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반대가 됐다.
하여간 시하는 귀엽다.
저렇게 주머니에 한가득 돈이 들어 있는 모습도.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고개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도.
참으로 눈을 뗄 수가 없다.
“시하야. 돈을 직접 버니까 좋지?”
“아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저렇게 빳빳한 지폐를 받는 건 확 실감이 난다.
아마 통장으로 첫 돈을 번 것보다 저렇게 푸짐하게 주머니에 가득 찬 게 더 좋을지도 몰랐다.
“형아. 저거!”
“오! 뭐 좋은 거 찾았어? 설마 또 펭귄은 아니겠지?”
“아? 형아. 마자. 페페!”
“뭐야. 또 페페를 발견한 거야?”
뭔가 싶어서 보니 앙증맞은 동전 지갑이 보였다.
펭귄 얼굴만 있는데 목걸이처럼 걸 수 있었다.
줄도 조절할 수 있어서 옆으로 메고 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오! 시하야. 좋은 거 골랐네?”
“아아. 이거.”
앞에서 파는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이거 진짜 잘 팔리는 건데 하나만 남았어. 애가 그걸 콕 집네.”
저기요. 아줌마. 여기 중고 판매를 하는 곳인데요?
하여간 여기 장사는 방심할 수 없다.
“형아. 페페.”
“응. 펭귄이네.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애가 너무 귀엽네. 그러니 삼천 원에 해줄게.”
3천 원이면 뭐 괜찮은 건가?
여기 원가를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시하야. 3천 원이래.”
“아?”
“시하가 가지고 있는 지폐 3개 주면 된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아줌마를 보았다.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후드득.
“아이고. 돈 다 떨어지네.”
“하하.”
“꼭 이게 필요하겠어!”
그렇게 강조 안 하셔도 살 거예요…….
시하가 돈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서이.
“아아. 주세여!”
“어머! 말도 잘하네. 여기 있어!”
“형아! 이거!”
“응. 잘했어.”
시하가 뿌듯한지 지갑을 목에 걸었다.
나는 다른 의미로 뿌듯하다.
드디어 이시하가 ‘주세요.’를 잘 써먹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조금씩 존댓말을 늘려가자.
“그럼 여기에 돈을 넣으면 돼.”
“요기?”
“응. 여기 지퍼를 열면.”
펭귄의 머리가 열린다.
파란색 안감이 보였다.
시하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열심히 넣었다.
이제는 27개가 남은 천 원.
그 양이 신기한지 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호호호. 그렇게 좋은가 보네. 파는 내가 너무 뿌듯해지려고 해. 그런데 계속 앞에 있을 거야?”
“시하야. 이제 가자.”
“아아.”
시하가 다시 걸었다.
지갑이 흔들거리며 시하의 배를 툭툭 친다.
나는 가만히 따라가다가 시하의 목에 있는 줄을 조절해서 옆으로 차게 했다.
“이러면 좀 편할 거야. 목에 달랑달랑하지 않고.”
“아아!”
“그럼 또 뭐 있는지 구경하러 가자.”
우리는 그렇게 사뿐히 발을 맞췄다.
걸음이 느리다.
시하는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
언제나 일정한 보폭으로 가고 있어서 나는 잔망한 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다.
천천히 걷자 풍경이 느리게 지나간다.
아이의 속도는 아주 느린 것 같지만 그건 착각이다.
“형아. 저거!”
“응?”
누구보다 기민하고 빠르게 무언가를 발견한다.
앞으로 점점 커가면서 걸음은 빨라질 것이고, 나의 걸음은 늦어질 것이다.
서로의 보폭이 맞춰지다가, 나중에는 엇갈릴 날이 오겠지.
지금과는 반대로 시하는 빨라지고, 나는 느려지고.
“맛있는 떡볶이네? 어떻게 알았어?”
“시하. 다 아라.”
“우리 시하. 떡볶이 안 먹어봤잖아. 저기 순대랑 오뎅도 있네.”
“시하. 머거. 아라.”
“언제 그 맛난 걸 먹었대? 아! 어린이집에서 먹었구나? 안 매웠어.”
“안 매어. 시하 안 매어.”
“오! 그럼 시하가 번 돈으로 형아 사주는 거야?”
“아아.”
근데 시하야. 사실 그거 형 돈이야. 흑흑.
너 원가에 팔아서 흑자가 아니야.
하지만 이 사실은 차마 알릴 수 없었다.
뭐 알려줘도 잘 모르겠지만.
“어디 보자. 떡볶이, 순대 1인분 주세요. 오뎅도 하나씩 먹을게요.”
“네. 잠시만요.”
나는 오뎅을 꺼내서 시하에게 쥐여 주었다.
살며시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췄다.
후우. 후우 불어주면서 오뎅을 식혀 주었다.
“시하야. 오뎅이 뜨거우니까 한 열 번 세고 먹어야 해. 아니다. 열 번 많이 세. 후후. 불면서. 알았지?”
“하나, 둘, 서이, 너이, 열!”
“아니. 바로 열 하면…….”
시하가 앙, 물다가 오뎅을 입에서 홱 땠다.
“뜨거~”
“형아가 많이 세라고 했잖아. 세지만 말고 후후 불기도 해야지.”
심지어 숫자도 굉장히 빨리 셌다.
아줌마가 순대를 썰면서 호호호 하고 웃었다.
오늘 시하가 아줌마들을 많이 웃기네.
“호오~ 호오~”
시하가 열심히 호호 불었다.
나는 먹지도 못하고 오뎅 국물을 불어서 식혀 주었다.
나야 뭐. 적당히 먹으면 되니까.
“형아. 모야?”
“아. 이거 오뎅 국물이야. 엄청 맛있어. 시하가 오뎅 먹고 있으면 형이 다 식혀줄게.”
“형아. 고마어~”
“아하하하. 아니야. 형아가 고마워. 이렇게 잘 먹어줘서.”
“어휴. 둘이 너무 보기 좋네.”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며 떡볶이랑 순대를 주었다.
시하가 그걸 보며 눈을 빛냈다.
“시하야. 맛있겠지?”
“아아.”
“그럼 의자에 앉아서 먹자.”
“아아.”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시하가 오뎅 하나를 다 먹더니 떡볶이를 공략했다.
과연 매운 걸 잘 먹을까?
나야. 이 떡볶이가 별로 맵지 않지만, 애들은 또 다르니까.
“매우면 꼭 말해야 해. 알았지?”
“얌.”
오물오물.
빨간 떡볶이를 잘도 먹는다.
전혀 맵지 않은지 두 개, 세 개가 입에 들어간다.
“안 매워?”
“아? 마시써!”
“와! 진짜 잘 먹네.”
3살 이시하.
매운 것도 잘 먹는 아이였다.
나중에 혀를 내밀며 맵다고 할지도?
“시하야. 오뎅 국물도 먹어봐.”
꼴깍꼴깍 잘도 마신다.
맛있는지 눈을 빛내며 원샷을 했다.
“형아! 형아!”
“그래. 오뎅 국물이 제일 맛있나 보네. 하하.”
“마시써.”
“후후. 그러면 더 맛있는 거 알려줄까?”
“아?”
“바로 순대! 자, 먹어봐.”
시하가 덥석 먹더니 고개를 젓는다.
“왜? 맛이 없어?”
“아냐. 마시써. 형아. 국물. 국물. 마시써.”
“아. 국물이 더 맛있다고?”
“아아.”
아무래도 승리는 국물인가 보다.
괜히 더 맛있는 걸 경쟁시키고 싶네.
그래서 나는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짜잔. 그럼 이건 어때? 바로 삶은 달걀.”
“아?”
“여기 떡볶이 소스에 비벼진 삶은 달걀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리고 어묵 국물이랑 같이 먹으면 끝내줘.”
달걀이 네 등분 되었다.
떡볶이 소스를 묻혀서 시하의 입에 넣어 주었다.
눈이 0.1mm 커졌다.
거기에 추가 타 하나 더.
시하가 좋아한다던 오뎅 국물 추가다.
눈이 한 번 더 0.1mm 커졌다.
비유하자면 황제펭귄이 두 번 변신한 거지.
“어때?”
“형아! 형아! 형아!”
시하가 너무 맛있는지 손을 파닥거렸다.
크으. 역시 시하라면 이 조합을 좋아할 줄 알았다.
달걀, 떡볶이 소스, 오뎅 국물.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 없는 조합.
나 역시도 이 공식에 극호를 보내고 싶다.
“형아. 안 머거?”
“아! 나도 먹어야지.”
시하를 먹이느라 내가 먹는 건 깜빡했다.
시하의 먹는 모습이 적잖이 재밌어야지.
정신없이 보느라 먹을 생각을 못 했다.
“형아. 아!”
“와. 이 맛있는 달걀을 형아에게 주는 거야?”
“아아.”
“잘 먹을게.”
후드득.
포크에 있던 노른자가 다 떨어져 내렸지만 나는 흰자라도 맛있게 먹었다.
“음! 맛있네.”
“마시써?”
“응. 맛있다니까.”
“시하도!”
아줌마가 우리를 예쁘게 봤는지 튀김을 서비스로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오순도순하게 음식을 먹었다.
그때였다.
여자아이가 시하랑 내가 먹고 있는 것을 보더니 젊은 여성에게 졸랐다.
“엄마! 나도! 저거!”
“저거 먹고 싶어?”
“웅!”
“그럼 그러자. 아줌마 여기 떡볶이 1인분 주세요. 아, 너무 매우니까 물로 살짝만 씻겨 주시고요. 순대도 1인분 주세요. 간은 빼고 순대 더 넣어 주시고요.”
나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서 젊은 엄마를 보았다.
아줌마 역시도 황당한지 입만 뻐끔거렸다.
“아, 맞다! 제가 많이 사니까 양도 낭낭하게 주세요. 아시겠죠?”
이건 뭔. 양을 맡겨놨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아줌마도 황당한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떡볶이를 살짝만 물로 못 씻겨 줄 거 같은데요.”
“거기 아래 생수 있는데 그것도 못 해 줘요?”
“아니…….”
“애가 너무 매운 거 못 먹어서 그래요.”
“거기까지는 제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네? 제가 뭐 그렇게 어려운 요구를 한 건 아니잖아요. 참나.”
아씨. 괜히 먹는 자리가 불편해진다.
시하가 아줌마랑 젊은 부인을 번갈아 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형아! 진상! 진상!”
시하의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젊은 부인도 그 말을 들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진상?!”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설명했다.
“진상. 진상. 왕. 따닥. 진상 따닥.”
“뭐? 손님이 왕인 줄 아는 진상이라고? 저기요!”
시하는 그런 말 안 했다. 오해였다.
시하가 말하는 건 ‘진상하다.’였다.
왕에게 진귀한 물품을 바치는 것.
아마도 시하의 설명은 그걸 말하고 있는 거겠지.
하여간 은근히 사극을 좋아하는 선생님 때문에 이런 말도 알게 됐다.
“저기요!”
“아, 귀 따가워요. 옆에 애도 있는데 그만하시죠. 아니면 제가 떡볶이를 물로 씻겨서 낭낭하게 드릴까요? 대신 물로 씻는 인건비랑 생수비 합쳐서 1인분에 만 원. 어때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쪽 애가 진상이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아니라 왕에게 진상하다는 걸 저에게 알려준 건데요? 어딜 봐서 그렇게 해석이 되는지? 혹시 찔리시는 거예요?”
“하. 참나.”
“와. 주변에 사람들 다 쳐다보네.”
주변의 대답을 끌어오는 쉬운 방법.
특정 누구를 짚으며 말하면 된다.
나는 이미 주위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을 다 기억해 두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누가 잘못한 거죠?”
“아, 거! 당연히 저 사람이 잘못했지. 뭐 애가 틀린 말도 없구만! 진상이야. 진상!”
“저기 옆에서 보고 있던 아줌마. 제가 잘못한 건가요?”
“아이구. 총각이 잘못한 게 뭐 있어. 아니. 낭낭하게 달라는 건 또 뭐야. 어디 맡겨났나? 장사하는 사람이 무슨 하인이야?”
주변 사람들도 수군대자 아줌마가 귀까지 빨개지더니 아이를 데리고 재촉했다.
“참나. 여기 이상한 사람들만 있네.”
그거 아나?
이상한 사람 눈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이상해 보인다는 거.
하여간 별별 사람이 다 있다.
“형아.”
“응?”
“진상해써?”
“푸흡.”
그때 옆에 꼬치 파는 아줌마가 꼬치를 들고 왔다.
“애기야. 자 여기 너한테 진상해 줄게. 아주 속 시원하게 말하던걸?”
“아?”
시하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꼬치에 관심이 있는지 손을 뻗었다.
“아아. 고마어니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시하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오천 원짜리를 꺼냈다.
“어이구. 나는 줄 건 없고.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나도 진상이다. 진상.”
“아니. 아저씨. 안 주셔도 돼요.”
“아니야. 아니야. 너무 귀여워서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기어코 시하 손에 돈을 쥐여 주셨다.
때아닌 진상이 이루어진 풍경.
‘오늘 완전 시하가 왕이네.’
물건도 안 팔고 돈을 벌다니.
어릴 때만 얻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