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종수가 소리쳤지만, 시하는 듣지 못했다.
왜냐면 형아와 만든 팝업북 자랑에 푹 빠져있었으니까.
“형아. 시하. 책 만드러.”
“와! 진짜 잘 만들었다. 대단한데?”
책을 펼쳐 보여주니 서수현이 앞에서 손뼉을 쳤다.
그게 너무 기뻐서 배를 쭈욱 내밀었다.
의기양양.
형아와 만든 이 작품은 정말 정말 엄청났다.
“이거. 사.”
“응. 이거 하나 살게. 얼마야?”
“아아. 서이 딸라!”
“오! 그래? 3천 원이구나? 자. 여기 있어.”
시하가 돈을 꼬깃꼬깃 접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서수현이 책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많이 팔아. 시하야. 파이팅!”
“아아! 바이바이.”
그렇게 서수현이 떠나가려고 할 때 승준과 하나가 소리쳤다.
“수현이 누나! 내 꺼도!”
“수혀니 언니! 하나 꺼도!”
쌍둥이들 부름에 서수현이 쓴웃음을 짓다가 돌아왔다.
여기 있는 다른 것들은 서수현에게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팝업북은 예뻐서 소장할 수 있었지만 저런 장난감이나 옷가지는 조금 곤란했다.
“으음. 내가 살 건 없는데?”
“그럼 이건? 이거 합체해.”
승준이 열심히 로봇들을 조립해서 합체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옆에 있던 하나가 예쁜 머리핀을 들었다.
플라스틱 해바라기가 붙여져 있는 머리핀.
“수혀니 언니! 이거 예뻐!”
“으응? 어. 예쁘네. 이건 하나 살 수 있겠다.”
“아싸! 오배건이야.”
“그래.”
서수현은 하나가 귀여워서 사줬다.
그런 서수현을 본 승준이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남의 돈 받기가 어려운 걸 벌써 알아버렸다.
서수현이 승준에게 미안해서 티셔츠 하나를 들었다.
“이건 얼마야?”
“아! 그거! 누나만 삼처넌에 해 줄게!”
“아하하. 그래. 고마워.”
“수혀니 언니! 삔 해줘.”
“응? 아! 알았어.”
하나의 똘망똘망한 눈에 서수현은 어쩔 수 없이 옆머리에 핀을 꽂았다.
그렇게 한참 잡혀 있고 나서야 서수현은 쌍둥이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 많이 팔아~”
“응! 수혀니 언니 잘 가~”
“수혀니 누나~ 고마워!”
“아아! 개굴!”
그렇게 환대를 받으며 서수현이 떠났다.
옆에서 보고 있던 종수는 셋 다 치사하다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재휘는 그 모습을 힐끗 보며 ‘돗자리 밖은 위험해.’ 하며 모른 척을 했다.
“시하야! 드디어 삼처넌이야.”
“아아.”
“하나도. 하나도! 오배건!”
첫 판매의 기쁨을 아이들이 즐기는 것도 잠시.
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아아! 문도!”
“흠흠. 시하야. 책을 판다고?”
“아아. 이거. 이거. 형아 가치.”
“형아랑 같이했구나.”
“문도 이써!”
“으응? 나도 이 책에 있다고?”
“아아.”
시하가 책을 펴서 페페공벌레를 가리켰다.
문도환은 미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난 또 축구공인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게 마치 내 회사 생활 같구나.
“흠흠. 고마워. 귀엽네.”
다행이라면 페페공벌레가 나름 귀엽다는 점.
문도환은 그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문도. 축구 해써?”
“응?”
“시하. 공. 파박. 해써.”
“아! 공 선물 말이야?”
“아아.”
“아. 그걸로 축구 열심히 하고 있어.”
시하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는지 문도환에게 책을 내밀었다.
3천 원을 주머니에 쏙 넣고 손을 흔들었다.
“문도 바이바이.”
“그래. 시하도 많이 팔아~”
그렇게 문도환이 떠났다.
그리고 마치 짜인 각본처럼 다음 사람이 왔다.
이번에는 무려 3명!
전부 아는 사람이었다.
안경호, 박경준, 신경환.
게임 개발 동아리의 삼인방이 시하에게 다가갔다.
박경준이 책표지를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이거 진짜 최고다! 게임으로 만들어도 되겠어! 시나리오 짱이야!”
“미친. 읽어보지도 않았잖아. 안에 내용을 어떻게 아는데?”
“하하! 이건 안 읽어봐도 알거든. 원래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면 내용도 귀엽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신경환이 그렇게 말하다가 시하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친구들에게 대하는 것과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형이 이거 두 개 살게.”
“아냐. 두 개 아냐.”
“응? 세 개 사라는 말이니?”
“아냐. 세 개 아냐.”
“그럼 다 살까?”
“아냐. 하나만. 하나만.”
“아. 한 사람당 하나라고?”
“아아.”
드디어 뜻이 통했는지 신경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하나만 살 수 있다니까 왠지 모를 끌림이 느껴졌다.
게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은근히 수집욕이 있었다.
게임을 안 하더라도 싸면 일단 사고 보는 마음.
괜히 게임을 많이 사두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시하는 몰랐지만, 신경환의 그 부분을 콕 건드렸다.
“좋아. 이거 살게! 원래 사려고 했지만, 갑자기 엄청 갖고 싶어졌어.”
“아! 나도! 나도!”
옆에 있던 안경호가 안경을 치켜들었다.
“이건 동아리 회장으로서 참고 자료로 사겠어. 동아리 자금으로 사지. 공적인 자료야.”
“그냥 네 돈으로 사. 이 쪼잔한 놈아.”
“아, 왜! 가난한 대학생은 이럴 때라도 아껴야지. 컵라면에 삼김이야. 3천 원이면.”
신경환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 모습에 안경호가 은근한 기대했다.
“오! 하나 사주려고?”
신경환이 주머니에 손을 꺼내며 냅다 손등으로 뺨을 철썩 때렸다.
“아악!”
“좋은 말 할 때 동아리비 함부로 하지 마라. 내가 총무다.”
“알았다고. 거,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그런 콩트 같은 모습에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안경호가 장난스레 뺨을 맞는 모습이 너무 웃겨 보였다.
“야. 나 한 번만 더 때려줄래? 나 회장으로서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는 중이야.”
“유례없는 파면을 당하기 전에 빨리 사라.”
“넵.”
셋에게 팔고 나자 이제 남은 팝업북은 다섯 개뿐이었다.
“아아. 마니 파라!”
“와! 시하야. 진짜 잘 팔았다!”
“하나도 팔고 시퍼!”
재휘의 뒤를 시하가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
그렇게 애들이 다 한 번씩 팔아볼 때쯤 시하의 책이 동났다.
한두 개씩 없어지는 걸 보고 얼른 사는 사람도 존재했다.
“아! 아까 펼쳐놓은 거 봐두고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없어졌지?”
쭉 둘러보다가 나중에 사려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 쇼핑은 그렇게 하니까.
그런 식으로 책이 다 팔렸고 기적처럼 승준의 로봇 역시 5만 원에 팔렸다.
로봇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대학생의 눈에 띈 것이다.
“아싸! 이제 끝! 나도! 사커화 보러 가야지!”
아직 몇몇 물건이 남아있었지만, 승준의 목표는 로봇을 파는 것이었다.
오히려 하나는 별로 팔지 못해서 시무룩해지고 있었다.
“오빠. 하나 별로 못 팔아써.”
“오빠가 사커화 사고 남은 돈 하나 줄게. 그러면 노래 배울 수 있지?”
“응! 고마워!”
“시하도 도아!”
“응. 시하야. 고마워.”
세 아이는 힘내서 남은 물건도 팔려고 했다.
시하가 하나의 곰인형을 들고 한 사람을 잡았다.
“아아.”
“응?”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파라.”
“아. 이거 판다는 거구나? 호호.”
시하는 형아를 떠올렸다.
서점에서 말을 잘하는 형아를!
“아아. 곰. 따닥. 캐릭! 따닥. 아이 따닥. 어른 따딱. 귀여버. 사.”
“어. 그래. 그렇구나.”
엄마와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선생님이 속으로 말했다.
시하야. 그건 형아에게만 통해…….
“그럼 살까?”
“아아. 서이 달러.”
“하하하. 3천 원이라는 거지?”
“아아.”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통한다고? 영업이 된다고?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더니.
“아아. 하나.”
“와! 시하야. 진짜 잘 판다. 고마워.”
하나가 삼천 원을 품에 안았다.
승준이 그런 시하를 보며 어깨를 폈다.
“따닥 하면 잘 팔리는가 보다!”
그렇게 말하자 어린이집 아이들이 전부 따닥,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패했다.
선생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자. 다들 수고했어요. 간식 먹고 이제 치울까요?”
“안 돼!”
“네!”
반응은 둘로 갈렸다.
승준은 이미 사커화를 사러 가고 싶었고, 하나는 장사에 만족했다.
시하는 완판이라 팔 게 없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달랐다.
재휘는 지금 하는 게 재밌는지 고개를 저었고, 종수는 승부욕에 불타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으음. 그럼 구경하고 싶은 사람은 선생님에게 붙으세요. 간식 먹고 구경해요.”
이미 선생님은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다.
치우는 건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그럼 시하랑 저는 돌아다녀 봐도 될까요?”
“형아!”
시혁의 등장이었다.
***
시하가 내 품에 안겼다.
얼굴을 비비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손을 파닥파닥하면서 무언가 설명했다.
“형아. 시하 책. 파라. 다 파라. 따닥. 해써.”
“오! 그래? 책을 다 팔았구나. 친구 물건도 팔아주고 했다고?”
“아아. 하나.”
“그래. 하나의 물건을 팔아줬구나. 그랬구나.”
“아아!”
내가 다 알아들었다는 걸 알았는지 시하가 발을 동동 움직였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해석이 가능하냐는 표정.
훗. 안 그래도 내가 통역사인데 이 정도쯤이야.
프로 통역사라면 이 정도 해석은 가능하다.
‘물론 뻥이지만.’
사실 서수현을 투입했을 때부터 시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바라기 핀을 보고 놀렸다가 팔뚝을 찰싹 맞아버렸다.
아무튼, 시하가 어떻게든 잘 파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사실 반은 지인 장사였지만.
선생님이 말했다.
“아, 그럼 시혁 씨가 시하 데리고 다니실래요?”
“네. 그러려고 왔어요.”
“그럼 하나랑 승준은 선생님이랑 가자.”
쌍둥이 둘이서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둘은 뭔가 사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시혁 씨. 그럼 간식 먹고 가세요.”
“아. 저도 먹어도 되나요?”
“네. 그럼요. 꽤 많이 들고 왔거든요.”
“감사합니다.”
나는 시하랑 같이 돗자리에 앉았다.
과자가 펼쳐지자 아이들은 파는 것에 흥미를 잃고 다들 오물오물 먹는 데 집중했다.
“형아. 마시써.”
“응. 맛있네. 원래 일하다가 먹은 음식이 꿀맛이야.”
“꿀? 모야?”
“아. 꿀이 뭐냐면 꽃에 달달한 게 나오거든. 그걸 벌이 가져가서 꿀로 만드는 거야.”
“아?”
설명이 너무 어려웠나?
더 쉽게 해줘야겠다.
“벌은 알지?”
“시하. 아라.”
“벌이 좋아하는 초코가 꽃에게 있어요. 그래서 벌이 초코 주세요. 하고 사는 거야. 그럼 그 초코를 가지고 열심히 모으니! 꿀이 되네?”
“벌 초코. 마시써?”
“응. 맛있어. 나중에 시하도 먹어보자.”
“아아. 꿀! 꿀!”
“꿀꿀!”
시하가 뭔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쳤다.
짝.
“아아! 대지! 대지! 꿀꿀 대지! 벌 대지 사.”
졸지에 벌이 꽃에게 돼지를 사게 되었다.
“아하하. 꿀꿀이 돼지 소리인 건 아네.”
“시하 아라.”
“그래. 시하 똑똑하네. 자. 과자 들어간다. 아~”
“아~”
나는 입에 과자를 쏙 넣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달콤한 과자를 먹었다.
“헉헉.”
그때 심상치 않은 숨소리가 우리 뒤에서 들려왔다.
그늘진 천막이라 더더욱 그림자가 짙어졌다.
‘뭐지?’
뒤를 돌아보는데 시하가 먼저 반응했다.
“아아! 백동!!”
“헉헉. 안녕. 시하야. 형님 안녕하십니까.”
“오! 너 뭐야. 어떻게 왔어? 지금 일하는 시간 아니야?”
“일 끝나고 바로 왔죠. 자! 시하야. 나에게 책을 팔아!”
백동환이 그렇게 말하자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다 팔았어.”
“헉! 그럼 전 못 사는 겁니까?”
“아니야. 너도 살 수 있어. 집에 많이 있거든.”
“아하…. 허탈하네요.”
나도 이렇게 단시간에 남은 다섯 권이 잘 팔릴 줄 몰랐지.
시하가 그런 백동환에게 초코를 들고 주었다.
“와! 고마워. 안 그래도 단 게 땡겼는데.”
“아아. 백동. 대지. 초코 모아. 꿀꿀.”
“어?”
나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무래도 나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동은 그렇게 생각 안 했나 보다.
“아, 아니거든! 나 돼지 아니야. 이건 다 근육이라고! 그래. 굳이 말하면 근돼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체지방도 적어!”
“아?”
시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거릴 뿐이다.
“야. 그런 거 아니야.”
일단 오해를 풀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