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승준과 하나의 집.
중고물품 판매는 아이들이 바쁜 게 아니라 어머니들이 바쁘다.
팔 수 있는 물건을 선정해야 했으니까.
승준 엄마는 잘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이나 옷들을 꺼냈다.
하지만 이게 모두 통과된다고 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주인의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 한다는 말.
회사도 아닌데 아들, 딸에게까지 승인을 맡아야 하는 삶이 참 재밌다.
그래. 정말 재밌다고 웃으며 정신승리라도 해 본다.
“승준아. 이거 버려도 되지? 이제 안 갖고 놀잖아.”
“아, 안 돼! 갖고 놀아.”
“엄마는 한 달째 갖고 노는 걸 보지를 못 했는데?”
“아니야. 나중에 다 놀 거야.”
“그으래~?”
“응!”
이렇게 말하지만 언제나 방치되는 걸 잘 알고 있다.
수집욕과 추억이 쌓여서 못 버리는 거겠지.
“그럼 이렇게 하자. 이거 말고 잘 안 갖고 노는 장난감을 파는 거야. 그 돈으로 승준이 사고 싶은 새 장난감을 사는 거지.”
어차피 중고로 파는 것이기 때문에 새 장난감을 사려면 많이 팔아야 했다.
하지만 승준은 그런 것을 모르고 홀라당 넘어갔다.
“새 장난감?”
“응. 신상이야.”
“신, 신상?!”
“응. 신상.”
신상!
애나 어른이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법의 단어.
승준의 마음은 바다 위의 부표처럼 출렁거리며 요동쳤다.
보이지 않는 마수에 빠져들어 손에 있는 장난감과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나! 이것도 팔래! 이것도 잘 안 갖고 놀아.”
“후후후. 그럴래? 그럼 승준이가 한번 골라봐.”
“응.”
승준이 자기 장난감 상자를 뒤적거렸다.
선별하는 과정이 신이 나,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이러면 엄마는 옷가지만 좀 골라내면 된다.
이제는 하나 차례.
“하나야?”
“엄마. 나 바뻐!”
“응? 왜 그렇게 바쁠까?”
“하나눈 이거 팔 거 고르고 이써.”
“응? 하나는 벌써 잘 고르고 있네?”
엄마가 하나를 기특하게 보았다.
아무래도 뭔가 사고 싶은 게 있는 모양.
그게 너무 궁금했다.
“그거 팔아서 뭐 살 거야?”
“돈 마니 벌 거야.”
“으응? 돈 많이 벌 거야? 하나 돈이야?”
“응. 하나 돈 버러야 대.”
“왜?”
“노래 가르쳐주는 데 돈 마니 든대~ 이거 파라서 노래 배울 거야.”
“어머!”
신상을 사고 싶은 줄 알았는데 돈 벌어서 노래 수업을 듣고 싶었나 보다.
벌써 돈 벌어 자기 수업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장난감 아빠, 엄마 돈으로 산 거야.
아무튼, 기특해하며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릴 때부터 보컬 레슨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잠깐은 배우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한 일주일 정도?
요즘은 따로 배우는 시설도 있다고 하니.
“엄마!”
“응?”
“하나 아이돌 대.”
“응. 하나가 멋진 아이돌 되겠네.”
“응. 수혀니 언니처럼 노래도 잘할 거야.”
“오~ 그래? 그럼 이거 진짜 많이 팔면 엄마가 한 일주일은 학원 같은 곳에 보내줄게.”
“정말?”
“응. 평일에는 안 되고 주말에만? 대신 재미없으면 엄마한테 꼭 말해야 한다?”
“응.”
그때 승준이가 손을 들었다.
“엄마! 나도! 나도! 사커 팀에 들어갈래!”
“응. 안 돼.”
“아~~~ 왜~~~~”
왜냐면 노래 학원 같은 경우는 준비물이 필요 없다.
애한테 뭐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재미난 노래를 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축구 유니폼, 양말, 신발!!
그래. 무엇보다 신발!! 축구화가 비싸다.
심지어 하루가 다르게 크는 승준의 발사이즈로 인해 신발을 자주 사야 했다.
물론 꼭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치만 축구팀 애들은 다들 있는걸.’
그런데 또 승준이만 운동화를 신게 할 수 없었다.
근처 축구 교실에는 웬만한 애들이 축구화를 신었다.
엄마들이 사준 게 틀림없다.
‘나중에 안 간다고 하면 곤란하고.’
축구화를 모두 버리게 되는 거니까.
‘그렇다고 흥미가 없어진다면?’
승준이 축구에만 관심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공놀이에는 다 관심이 있다.
잠깐 배우기에는 너무나 돈이 많이 들 게 뻔했다.
이래서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구나.
“엄마~~ 나도~~”
승준이 엄마의 바지를 잡고 흔들었다.
“그럼 이건 어때?”
“뭐가?”
“강인대학교에서 중고물품을 팔잖아.”
“응.”
“승준이가 팔 거 다 팔고 거기에서 축구화를 사는 거야. 딱 맞는 거로. 그럼 엄마가 축구 교실 보내 줄게.”
“진짜! 사커화 사면 사커팀 가는 거야?”
“응.”
그리고 사커화가 아니라 축구화란다…….
“아싸!”
“아싸!”
쌍둥이 둘이서 좋다고 방방 뛰었다.
엄마는 조금 서글펐다.
그냥 엄마랑 집에서 놀면 안 되겠니?
“못 사면 끝!”
“응!”
“응!”
하나야. 너는 왜 대답을 하니?
아! 너도 레슨비 벌어야 하는구나.
과연 둘이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후.
“너희들 그거 다 들고 갈 거야?!”
“응!”
“응!”
둘은 해맑게 한 보따리씩 짐을 싸고 있었다.
엄마는 이마를 짚고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
-강인대학교 중고장터 당일.
사람들이 좌판을 깔고 물품을 늘여놓고 있다.
굉장히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그중 어린이집도 포함되어 있다.
따로 천막을 만들어 돗자리를 깔아서 앉았다.
선생님이 애들이 준비한 박스를 펼쳤다.
오늘 어머니들이 어린이집 부스에 놓고 간 박스다.
“자. 오늘 자기 돗자리에다가 준비한 물건들을 배치해 보세요. 가격도 다 정했죠?”
“네!”
아이들이 물건을 늘어놓자 선생님도 그걸 도왔다.
상당히 많은 물품.
옷가지와 장난감, 책 등이 있다.
“난 진짜 좋은 거 들고 왔어! 꽉꽉 채웠다고.”
가득 찬 상자를 보여주며 종수가 자랑했다.
평소에 깨끗하게 썼는지 마치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종수가 배를 쭈욱 내밀었다.
“내가 제일 많이 팔게 될 거야.”
아무래도 오늘은 자신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엄마랑 열심히 장난감도 닦고, 책도 구김 없는 거로 쏙쏙 골랐다.
앞에는 가격표까지 종이로 만들었다.
“흥.”
그걸 본 승준이 코웃음을 쳤다.
물건에 자신 있는 건 종수뿐이 아니었으니까.
어제 고심 끝에 고르고 고른 물건.
어떻게든 사커화를 사려고 아끼는 장난감도 들고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합체 로봇 장난감.
이걸 들고 나왔을 때 승준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연한 아들의 표정을 보고 차마 말릴 수 없었다.
그만큼 승준은 사커화를 사고 싶었으니까.
아쉽게도 사커화가 장에 나올지 모를 일이라는 걸 승준은 알지 못했다.
“야. 종수야. 그렇게 많다고 많이 팔리지 않아!”
“양이라도 많아야 많이 팔리거든! 다있소 몰라?”
“거기 다 업쏘던데?”
“아니야. 많아! 원래 이렇게 많아야 팔리는 거야.”
“난 합체 로봇도 들고 왔어!”
“끄응.”
종수가 보기에도 승준의 합체 로봇은 굉장히 탐스러워 보였다.
괜히 지는 건 아닐까 초조해하며 다른 먹잇감을 찾았다.
“아! 시하야! 너 뭐 가져왔어!”
“아?”
시하는 낑낑대며 박스 테이프를 뜯고 있었다.
그러다 종수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하. 책!”
“책뿐이야?”
“아아. 시하 책.”
“겨우 책뿐이라니. 시하는 별로 못 팔겠네.”
“아냐. 시하 파라. 형아. 파라. 해써.”
“뭔 말이야…….”
대충 형아가 판 것을 보고 배웠다는 말이었지만 종수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시하는 종수를 무시하고 다시 테이프를 뜯었다.
어제 좋다고 상자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발랐다.
시혁은 참 곤란했지만, 시하가 즐거우면 됐다는 마음에 마음껏 밀봉하게 놔뒀다.
“힘드러~”
시하가 상자 위에 흐물흐물 널브러졌다.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호호 웃었다.
“시하야. 선생님이 도와줄게요. 위험하니까 거기 비켜주세요.”
선생님이 커터칼을 드르륵 밀어 올렸다.
그런 뒤 비장한 표정으로 박스에 가까이 갔다.
시하는 멀리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간다.”
애들을 도와주고 있던 원장은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냐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스윽.
커터칼이 상자의 입구를 반으로 갈랐다.
드르륵.
임무를 끝낸 커터칼은 선생님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이제 연다?”
“아아.”
어느새 시하가 박스에 딱 붙었다.
투둑. 투둑.
박스가 열리고 그 안에 10개의 책이 나왔다.
“와! 이건 무슨 책이에요?”
“아아! 시하. 형아. 만드러~”
“응? 만든 거라고?”
선생님이 책을 펼쳐보았다.
페페잠자리가 통 하고 튀어나왔다.
어디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 그림이긴 했다.
“와! 시혁 씨 능력자네.”
“형아. 머시써.”
“응. 시하도 이걸 그렸다는 거지? 딱 시하가 그린 그림 같은데?”
“아아.”
“이야. 시하 대단하네.”
시하가 칭찬에 가슴을 쭈욱 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종수가 입을 벌렸다.
“어, 어떻게 저런 걸 만드는데…….”
“푸하핫!”
옆에서 보고 있던 승준이 종수의 등을 팡팡 쳤다.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어때? 대단하지?!”
“네가 왜 자랑하는데?”
“시하는 내 친구니까!”
“내 친구기도 하거든?!”
“바보야. 난 너랑 달라. 시하랑 나는 베프라고! 그치? 시하야!”
“아?”
시하는 ‘베프가 뭐였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몰랐던 승준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시하의 뒷말에 안심했다.
“베프 모야?”
“아! 베프는! 지인~~~ 짜~ 친한 친구야!”
“아아! 승준! 베프!”
종수가 입을 삐죽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시하의 베프는 아닌 것 같아서.
옆에 있던 승준이 히죽 웃는데 괜히 주먹이 쥐어졌다.
“내가 더 많이 팔 거다! 더 많이 가져왔으니까!”
“그래라!”
“이쒸!”
종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물품을 잘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하도 그 모습을 보고 책을 놓으려고 했다.
“아?”
“시하야. 짜잔. 이렇게 일자로 세워뒀어.”
“아냐!”
시하가 책을 집고 하나씩 줄지어 놓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그 모습을 보고 같이 정리해 주었다.
“아냐.”
“응?”
“이거. 요기!”
“아니. 어차피 같은 책 아니야?”
“아냐. 이거. 요기.”
아무리 봐도 똑같아 보이는 책에 순서가 있었다.
시하는 그 순서대로 줄지어 세웠다.
선생님은 이걸 어떻게 구분하는 건지 궁금했다.
사실 시하는 그냥 같은 책이더라도 여기저기 정리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자. 그럼 다들 정리가 끝났죠?”
“네!”
“그럼 본격적으로 팔아봅시다~”
“네!”
“그리고 힘들면 여기 간식도 있으니 나중에 같이 먹어요.”
“네!”
사실 이걸 장사보다는 놀이나 소풍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몇몇 애들만 빼고 말이다.
그들에게는 원하는 게 있었다.
***
한가롭게 시간이 지나간다.
사람은 지나가는데 간절하게 팔고 싶은 마음은 무참히 무시당한다.
오히려 초조해하면 할수록 팔리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낚시꾼처럼 느긋이 기다리는 재휘만이 정말 인기가 많았다.
“어머. 옷이 참 예쁘네. 이거 얼마야?”
“이거! 마넌이요!”
“만 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니니?”
“살 때 비싼 거였는데. 아줌마는 옷을 잘 입으시는 거 같으니 천 원 깎아드릴게요.”
“오호호. 얘가 참! 말을 잘하네.”
의외로 패션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재휘가 빛이 났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는데 청산유수다.
또박또박한 발음을 아줌마들이 귀여워했다.
옆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종수는 살짝 부러움을 느꼈다.
“이거 살게. 많이 팔아.”
“네~ 헤헤.”
재휘가 끝났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종수가 물어봤다.
“재휘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팔아?”
“응? 그냥 사겠다는 사람이 온 건대?”
“아니. 너 평소랑 다르게 말이 막 나오잖아.”
“응?”
원래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묵묵한 사람도 말이 많아지는 법.
종수는 그걸 몰랐다.
“잘 모르겠어. 내가 옷 잘 입어서 그런 거 아닐까?”
“그, 그런가?”
재휘가 오로지 옷만 파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종수가 곁눈질로 다른 쪽을 보았다.
시하는 물론이고 승준 역시도 못 팔고 있는 모습.
그나마 자신만 못 팔지 않아서 안심됐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어머. 시하야.”
“아아! 개굴!!”
“이 책 파는 거야?”
“아아!”
그 모습에 종수가 벌떡 일어섰다.
서수현이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시하! 치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