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완성된 디자인 파일을 보냈다.
팝업북을 위한 파일 수정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일.
인쇄, 코팅, 표지 싸바리(조립돼서 접을 수 없는 종이상자).
이걸 하는 데 또 이틀을 더해서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대략 3일이면 완성된다는 소리.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팝업북은 박스에 담겨서 집까지 배달됐다.
“와! 시하야. 봐봐. 박스 진짜 많아.”
열 개의 박스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한 박스당 50개씩 들어 있었다.
“형아! 책!”
“응. 시하가 만든 책이야.”
박스에서 책을 꺼내 시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가장 먼저 펼쳐보는 사람은 시하여야 하니까.
활짝.
잠자리(?) 그림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아아! 형아! 페페!”
“응. 페페잠자리네.”
“형아. 이거.”
시하가 읽어 달라고 내게 책을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가 아는 내용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도 팝업북으로 읽는 건 또 달랐다.
시하는 그걸 아나 보다.
“그럼 형아가 읽어줄까?”
“아아!”
나는 시하를 품에 안고 책을 펼쳤다.
“저 넓은 들판에 페페잠자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페페잠자리가 날아다니면서 말했어요.”
“이 넓은 들판에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그때였어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잠자리들이 모였어요.”
“그래! 우리도 축구를 하자.”
“그렇게 곧바로 팀이 결성됐습니다.”
다음 장을 넘겼다.
11마리의 페페잠자리들이 각자의 포지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튀어나오는 높이가 각자 달라서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을 주었다.
“축구 경기가 시작됐어요. 하늘을 날며 축구공을 퉁퉁 찼습니다. 그리고 슛을 했습니다.”
“휘흉!”
다음 장.
한 개의 골대가 있다.
긴 봉이 세워져 있고 원으로 되어 있는 그물망.
마치 잠자리채를 연상시켰다.
“축구공이 골대에 들어가기 위해 한 번 더 변신합니다.”
“피융!”
내가 축구공에 붙어 있는 일자 종이를 아래로 잡아당기자 펭귄으로 바뀌었다.
“축구공으로 일하고 있는 페페공벌레가 몸을 펴며 골대를 향해 갑니다.”
펭귄이 웅크리고 있던 게 바로 축구공이었다.
그걸 공벌레(?)라고 시하는 주장한다.
솔직히 축구공 털 무늬를 가진 펭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골인~ 골! 골! 골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바로 한 골을 먹혔어요. 하지만 아직 시간은 남아있습니다. 기회는 언제든지 있어요.”
다음 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페페잠자리팀은 필살기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변신!”
“한 마리의 페페잠자리에게 기운을 모두 모아줬어요.”
나는 시하가 하나의 띠를 옆으로 잡아당기게 했다.
페페잠자리가 잘린 종이 틈 사이로 들어가고 새로운 그림이 튀어나왔다.
레드 페페잠자리.
한마디로 고추잠자리를 모티브로 했다.
물론 내 눈에는 털이 빨간색인 펭귄이었지만.
“아아! 형아!”
시하가 굉장히 흥분했다.
아무래도 잡아당길 때마다 변신하는 게 감동인 모양.
다시 띠를 넣으면 변신 전으로 돌아가고.
띠를 잡아당기면 변신 후로 돌아간다.
자기가 그린 그림이 이렇게 변하는 게 신기한지 계속해서 반복했다.
한참을 그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가 다음 장을 넘겼다.
“그렇게 불꽃슛을 날려서 페페잠자리팀이 승리하였습니다. 모두의 힘을 모은 게 아주 큰 힘이 된 거죠. 끝!”
“아아!”
“시하야. 아직 한 장 남았어.”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다시 한 장을 넘겼다.
어떤 글자가 책 위로 떠올랐다.
[Siha.pepe]
거기에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따로 의뢰한 시하페페 이름 로고 디자인이다.
“이건 시하페페라는 이름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시하. 페페?”
“응. 시하랑 페페. 픽시브에 업로드할 때 이런 글자 본 적 있지? 시하 필명이야.”
“필?”
“아하하. 그냥 시하랑 페페라는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고 생각해.”
“아아.”
“영어야. 영어.”
“시하 아라. 영어!”
“그럼 아이 라이크 치킨 말고 또 할 줄 아는 거 있어? 아! 하이, 바이바이 말고.”
“북!”
“아, 북 말고.”
이렇게 말하니 시하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할 줄 아는 말을 다 막으니 새로운 게 생각나지 않는 모양.
오늘은 잠자리의 영어 단어나 알려줘야겠다.
새로운 단어 하나 습득하는 거지.
그때였다.
“아아! 아아!”
“왜? 뭐 생각났어?”
“아아! 사! 사! 사!”
“응? 4는 영어가 아닌데?”
“사 딸라!!”
“큽. 아, 이걸 안 막았네…….”
다 막은 줄 알았는데 막지 않은 게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
나보다 기억력이 더 좋을지도?
“형아.”
“응. 잘했어. 잘했어.”
“형아. 레드 이써.”
“맞네. 레드도 있네. 시하 똑똑한데?”
“시하. 형아 라이쿠! 치킨!”
“그건 시하가 형아 좋아한다는 거야?”
“아아.”
“근데 치킨은 왜 붙인 거야?”
“마시써.”
“어…. 맛있긴 하지.”
형아는 치킨을 좋아하다가 되어 버렸지만 뭐 상관없겠지.
어법은 나중에 공부할 거니까.
그래도 한 번 정정해 주자.
“그럴 때는 시하 라이쿠 형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시하 라이쿠! 형아 치킨!”
“아니. 치킨은 빼줘…….”
“레드 치킨!”
아는 단어가 총동원됐다.
나중에는 고추잠자리를 고추장 잠자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이제 치킨값 벌러 가볼까?”
“아아!”
***
밖으로 나와서 박스 두 개를 트렁크에 실었다.
오늘은 서점을 돌아다닐 생각.
시하도 따라가기로 했다.
이렇게 어린이집을 자주 빼먹어도 되나 싶다.
“형아. 이거.”
“응? 아! 그건 시하 거야. 시하 거는 하나 있어야지.”
시하가 자기가 읽던 책을 쭈욱 내미는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읽어서 중고가 되어 버린 책이다.
“이제 서점에 가자.”
“어디?”
“응. 서점이라고 책 파는 곳이야. 사람들이 자주 다닌대.”
“왜?”
“책 사려고? 그럼 출발하자.”
“아아.”
나는 시하와 함께 서점으로 출발했다.
처음 향할 곳은 [책 있나유].
뭔가 check it out 같은 느낌의 간판이다.
서점 앞에서 간판을 보고 시하에게 이름을 가르쳐주자.
“체키라우~ 체키라우~”
“푸흡. 그게 아니라 [책 있나유]야. 들어가자.”
“아아!”
그렇게 들어가자 사장님이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기 KI 미디어의 홍진수 과장의 소개로 왔는데요.”
“아! 연락받았어요. 하하. 재밌는 연락은 오랜만이라.”
“혹시 뭐라고 받았나요?”
“아. 성냥팔이 청년이 책 팔러 올 거니 잘 좀 부탁한다고. 하하.”
그럼 성냥팔이 청년이 아니라 책팔이 청년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사장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해서 사달라고 하더군요.”
“하하. 그렇군요. 아! 바로 이거예요.”
“오! 어디 한번 볼까요.”
그때 시하가 내 다리에서 불쑥 나와서 말했다.
“체키라우~ 체키라우~”
사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응. 확인해야지.”
“아냐. 채키나유. 채키나유.”
“아! 책 있나유? 우리 서점 이름을 말한 거구나? 이런 착각했네.”
사장이 나를 슬쩍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포근해진 분위기.
시하의 나이스 어시스트였다.
하지만 오늘 치킨값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건 내가 잘하면 되니까.
“오!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펭귄이 잠자리라니. 축구공도 펭귄이고. 온통 펭귄이라 애들이 좋아하겠어요.”
“정말요?”
“네. 이 표지도 보면 좋잖아요.”
“오! 잘 팔릴 것 같나요?”
“이건 팔리죠. 귀엽잖아요. 내용은 단순하지만, 설정이 독특하고요. 잠자리채가 골대라니. 상상력이 참 좋네요.”
“하하.”
나는 어깨를 폈다.
이게 바로 시하의 상상력 클라스다.
물론 변신이라던가 이야기 구성은 내가 만든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든 시하의 칭찬에 의기양양해졌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저도 똑같이 생각해요. 애들에게 무조건 먹힐 거라고 자신합니다. 왜냐면 애들은 캐릭터에 사족을 못 쓰거든요. 옷으로 봐도 월등히 판매가 뛰어난 게 캐릭터 옷이죠.”
“하하. 아무래도 그렇죠.”
“심지어 이렇게 귀여운데 안 산다? 그럴 리는 없죠. 사장님이 잘만 추천해 주신다면 열 권 정도는 무리 없이 판매할 수 있다고 봅니다.”
“흠. 오늘 저를 처음 봤는데 말이죠.”
“저는 처음이지만 홍진수 과장은 처음이 아닐 테니까요.”
“하하.”
사장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폰을 꺼냈다.
아무것도 설득할 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분위기만 보면 그냥 사줄 듯했다.
“여기 시하페페라는 작가가 업로드하는 곳입니다. 상당히 팔로워가 많죠?”
“시하페페?”
“네. 책 마지막 장을 보시면 시하페페라고 되어 있을 거예요.”
“오! 그러네요?”
“그리고 이 책을 500개만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값어치가 있어요.”
“더 찍을 생각은 없습니까?”
“네. 아직 1탄은 더 증쇄할 생각은 없어요. 굉장히 유니크하죠.”
아까까지만 해도 훌륭한 젊은이들을 위해 열 권 정도 사줄까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탐이 난다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혹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심지어 임티도 굉장히 많이 팔렸죠.”
“임티요?”
“네. 바로 이 임티 말이에요. 첫 달 정산금이 천만 원 정도? 그럼 매출은 더 되는 거 아시죠?”
“와아.”
“앞으로 움직이는 임티도 내고 시리즈도 나올 겁니다. 어때요? 아예 애들이 모르는 캐릭터는 아닐 겁니다. 물론 애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알 수도 있겠죠.”
“그렇죠.”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주먹을 쥐었다.
“이 정도면 캐릭터 포텐셜도 충분하고 인기도 끌 겁니다. 안 팔리면 어른에게 팔아도 돼요. 무려 시하페페 작가인데.”
“그래도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거 같은데요?”
“언제까지 많이 안 알려져 있을까요?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캐릭터는 기억하는 법이죠. 절대 손해는 아닙니다.”
“흠.”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더는 강요할 필요 없다.
분위기를 보니 거의 다 넘어왔다.
한 번 튕겨주자.
“열 개 정도 사시면 부담 없을 겁니다. 팝업북 자체가 그리 비싸지 않잖아요.”
“아. 그렇죠.”
“단가가 3천 원입니다. 저희도 치킨값은 벌어야 하니 서점에 판매하는 금액은.”
그때 시하가 손을 척 들었다.
“4딸라!”
“아하하. 네. 4천 600원 정도가 적당할 거 같네요. 아니다. 기분으로 4천 원 해드릴게요.”
애초에 별로 남겨 먹을 생각은 없었다.
이걸 만든 이유는 강인대학교에서 하는 행사 때문이니까.
그날은 원가인 3천 원에 팔 생각이었다.
아무튼, 서점에서 10권 팔면 4만 원.
사장님에게도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이게 다른 신간들을 들여오게 돼서 재고가 남으면 부담이 되긴 하지만.
“어때요?”
“고민할 게 뭐 있어요. 구매할게요.”
“감사합니다. 10권이죠?”
“아니. 50권 정도 줘요. 다 살게.”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걸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치킨파티를 할 수 있는 금액을 번 것 같았다.
시하에게 아저씨가 많이 샀다고 말해 주니.
“아찌!”
“으응?”
“또 오께!”
“푸하핫!”
아무래도 고정적으로 치킨비를 얻을 수 있는 서점이 생긴 것 같다.
***
나머지 9개의 서점을 돌았다.
다들 젊은 열정(?)을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아무튼, 열정이 맞다.
그렇게 판매하고 나니 300개가 없어졌다.
이제 이번 주 주말에 오는 강인대학교 중고장터 날에만 잘 팔면 된다.
“시하야. 이거 들고 가면 돼. 들 수 있어?”
나는 10개의 책이 든 상자를 시하에게 쥐여 주었다.
“아아.”
“이제 이건 시하가 팔면 돼. 오늘 형아 하는 거 봤지?”
“형아! 머시써! 상자. 파박. 아찌. 돈 파박.”
“응. 맞아. 근데 파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아?”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잘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폰을 들어 긴급 콜을 보냈다.
이걸로 아예 못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시 장사는 지인 장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