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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155/500)

155화

날이 밝은 아침.

토닥토닥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살며시 눈을 뜨니 바닥과 책상이 하나의 선을 두고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새우잠을 자니 어깨에 뻐근함이 느껴진다.

토닥토닥.

오른쪽 엉덩이도 뻐근한가?

내가 살며시 옆으로 고개를 드니 시하가 내 엉덩이를 치고 있다.

“형아.”

“응. 우리 시하 일어났어?”

“형아. 일나.”

“응. 일어나야지. 시하는 이번에 형아 오른쪽 엉덩이를 때리는구나? 깨우는 방식이 아주 사나워졌어.”

“아냐. 살살. 해써.”

“어디 얼마나 살살했는지 함 볼까?”

나는 그대로 시하를 끌어안고 뒹굴뒹굴했다.

나도 엉덩이를 토닥토닥했다.

“어때? 아파?”

“방구.”

“방구 나올 거 같다고? 하하.”

갑자기 손이 찝찝한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겠지?

아무튼, 그렇게 시하를 안고 있는데 슬며시 눈이 감긴다.

시하의 체온이 따뜻해서 안고 자는 베개로 딱 맞다.

무게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아직 버틸 만하지.

그렇게 눈을 감으려는데 시하가 품에서 꼼지락거렸다.

“아냐. 형아. 일나.”

“아니야. 한 30초만. 형아가 이렇게 시하랑 이렇게 꼬옥 하고 싶은데? 시하는 싫어?”

“아냐. 시하도.”

그러면서 품에 쏙 파고드는데 너무 귀여웠다.

얼굴을 비비며 심장까지 뚫고 나올 기세였다.

“아아악. 더는 안 들어가.”

“아냐. 할 수 이떠!”

“그건 또 어디서 배운 말이야.”

마치 펜싱 선수에게 빙의된 듯 내 가슴을 머리로 사정없이 찌른다.

물론 실제로 아프지는 않았다.

괜히 과장한 것이다.

요즘 시하랑 놀다 보니 이런 과장은 일상다반사다.

마치 과장된 애니메이션 성우를 하는 느낌이다.

“이제 일어나자.”

“아아!”

우리 형제는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끝냈다.

밥을 먹으며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오늘 형아가 팝업북 만드는 곳을 들를 거거든. 얼마 나오는지 견적을 뽑아봐야 해. 그러니까 책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

“아아. 시하도.”

“응?”

“시하도. 가. 형아 가치.”

“아. 시하도 간다고?”

“아아.”

“너 어린이집 가야 하는데?”

“아냐.”

“승준이랑 하나도 있는데?”

“아냐. 형아. 가치. 시하 book!”

“오. 발음 좋은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시하가 자신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모양.

그냥 단가를 물어보러 가는 거라서 아직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은지 밥을 오물오물 먹으면서 나를 보았다.

“형아. 시하도! 하나만.”

“푸하핫. 그건 물건 살 때 하는 말이지.”

시하가 숟가락을 두 손으로 잡고 부탁했다.

손가락 하나 대신 숟가락인가?

저런 애교에는 못 당하겠다.

바로 어린이집에 오늘 안 간다고 연락해야지.

저 봐. 저 봐. 한쪽 눈 0.1mm 윙크는 어디서 배웠대.

문도환에게 가서 말해 줬으면 ‘나가 임마!’ 했을 거다.

이건 나밖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애교다.

이를테면 모스 부호 같은 비밀 신호라는 거지.

“형아아아함~”

시하가 눈을 비볐다.

눈에 눈곱이 있었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넘어가는 건물 쪽에 팝업북을 만드는 회사가 있었으니까.

***

시장.

전에도 와봤지만 제대로 무언가 산 적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

그냥 가다가 꼬지 하나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형아. 파라.”

“응. 많이 파네?”

정육점, 나물, 옷 등등.

여러 가지를 파는 모습이 보인다.

빡빡한 진열 상품을 보는 것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는 건물들을 보며 길을 지난다.

눈이 마주친 아줌마가 웃으며 말을 걸기도 한다.

“오늘 꽈배기가 잘 구워졌어요. 애기도 맛보면 좋을걸요?”

“아하. 괜찮습니다.”

“이거 하나 먹고 싶지 않니?”

아줌마가 꽈배기를 시하에게 흔들었다.

따끈따끈해 보이는 게 꽤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시하도 호기심이 동하는지 아줌마의 상술에 넘어가려고 했다.

뭐 거창하게 얘기할 만한 상술은 아니지만.

이렇게 유연하게 타깃을 바꾸다니.

“형아.”

“으응? 사줘?”

“얼마? 얼마?”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하나에 700원이야. 3개 사면 2천 원.”

“아아.”

끄덕끄덕.

뭐 저렇게 말해도 얼마인지 모르겠지.

전에 가르쳐줬는데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시하야. 저거 하나에 500원짜리 한 개에 백 원짜리 두 개래. 꽈배기 3개 사면 천 원짜리 두 개고.”

“아아!”

역시 이제야 이해하는 모양.

그래도 어느 돈이 큰지는 알고 있으니 뭐가 더 비싼지 그래도 감은 잡히겠지.

그래. 한 개보다 세 개 사는 게 더 비싸다.

이 정도는 알 것이다. 아마도.

“할부지. 두 개!”

“응? 아. 천 원에 할아버지 그림이 있는 건 맞지. 그랬지.”

“호호호.”

아줌마가 그런 시하가 귀여운지 그저 웃었다.

할부지 두 개가 통했나 보다.

시하가 고개를 휙 하고 돌더니 손가락 네 개를 폈다.

“할부지 두 개. 너이 개. 주세여~”

“어머. 뭐야. 나랑 거래하는 거야?”

“아아.”

시하가 좀 떨어진 곳의 어느 소비자를 가리켰다.

현재 콩나물을 사고 있었다.

“어머. 자주 여기서 살 테니까 좀 더 주세요. 네?”

“어이쿠. 그러면 나는 남는 게 없는데.”

“에이. 조금만 더 주세요. 네?”

“쩝. 정말 조금만이야. 다음에는 얄짤도 없어.”

“다음에 또 올게요~”

그러면서 콩나물은 정말 조금 더 넣어준다.

시하는 그걸 보고 조금 더 달라는 게 틀림없었다.

꽈배기 아줌마도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좋아. 대신 꽈배기 네 개는 좀 그렇고. 여기 둥글게 잘린 거 하나 더 줄게. 어때?”

“아아.”

난 ‘사줄까?’라고 물어만 봤는데 알아서 산다는 가정하에 협상 중이다.

이건 뭐지? 왜 어느새 내 손에 꽈배기가 있는 걸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협상에 나도 모르게 2천 원을 사용했다.

이거, 이거. 이시하. 협상에 재능 있네.

아무래도 팝업북을 만들면 정말 잘 팔 것 같았다.

“형아. 빵!”

“응. 자. 여기.”

나는 꽈배기를 종이에 감싸서 시하 손에 쥐여 주었다.

열심히 협상한 덕분인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볼이 터질 것같이 크게 한입 문다.

오물오물.

뭔가 해바라기 씨를 입에 잔뜩 넣은 다람쥐 같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볼을 살짝 만지며 시장을 걸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다.

가격을 깎아 달라는 사람, 그냥 정가에 사 가는 사람, 좀 비싼 것 같다며 가격만 물어보고 가는 사람.

여기에는 다양한 소비자들이 있다.

그런 시장을 지탱하는 건 역시 장사를 하는 분들일 것이다.

“여기다.”

“아아.”

어느새 우리는 팝업북을 만드는 회사에 왔다.

안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띵!

3층에 도착한 뒤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사람이 반겨 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저희가 팝업북을 만들려고 왔어요.”

“아. 체험 신청?”

“아니요. 개인 제작 의뢰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여기로 오세요.”

“네. 가자. 시하야.”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사람은 없는지 다들 신기하게 보는 모양.

아니. 그것보다 시하랑 내 관계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려나?

“하하. 아빠와 아들이 이렇게 제작한다고 올 줄 몰랐네요. 보통 제작이 아니라 체험하러 오는 경우뿐이라서.”

“아하. 전 아빠 아니고 형인데요.”

“아! 어쩐지. 너무 젊다고 했어요. 그래도 나이 차이가 엄청날 것 같네요. 막둥이인가요?”

“아하하. 네. 그렇죠.”

이제는 익숙한 오해.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몇 개 정도 생각하고 왔나요? 디자인은 생각해 둔 건 있으시고?”

“디자인은 저희가 그린 거로 사용하고, 한 10개 정도?”

“네? 10개요? 10개는 좀 곤란한데…. 10개면 단가가 많이 비쌀 거예요. 그리고 디자인이 있다고 해도 저희가 파일을 수정할 거라서.”

“아. 많이 비쌀까요?”

“네. 아무래도 저희도 이익 창출해서 운영해야 하니까요. 사실 500개도 작지만 해드리고 있거든요.”

“500개요? 와…. 그럼 500개 하면 단가는 어느 정도 싸지는데요?”

“싼 건 아니에요. 500개도 작은 수량이라 비싸요.”

그럼 10개는 정말 작은 수량이네.

그냥 프린트 쭉, 하고 끼우면 끝인 줄 알았다.

팝업북 만드는 회사 쪽의 운영 방식을 잘 모르겠다.

조금 고민이 됐다.

최소 500개는 해 줘야 한다는 걸까?

“그럼 얼마 정도?”

“디자인 비용과 목형 비용을 포함하면 보통 개당 단가가 8천 원에 측정돼요. 그래도 아버님은. 아니지. 형이니까. 음. 학생이라고 불러도 되죠?”

“아, 네.”

“학생분은 디자인 시안을 들고 오실 거니까 그 부분을 제외하면 3500원 정도?”

500개면 175만 원.

시하를 위해 투자하기에는 상당히 가격이 세다.

아니지. 그만큼 벌었는데 이 정도면…….

앞으로 팔 것도 있고.

머릿속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자 시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직원이 그런 시하를 보며 빙긋 웃었다.

“할 말 있어요?”

“아아.”

“뭔데?”

“싸게. 할부지 서이 개.”

“으응?”

내가 천 원이 할부지라고 부연 설명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직원이 웃었다.

그걸 들은 이 회사 직원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린다.

뭔가 분위기가 좋다.

그녀가 말했다.

“3천 원에 해달라고?”

끄덕끄덕.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시장판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본 대사.

“여기! 자주 사께! 또! 오께!”

“푸하핫! 아! 진짜 귀여워! 어떻게!”

다른 직원이 동의하는지 웃음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다들 한마디씩 던지는데 시하가 정말 귀여운 모양.

나도 시하의 말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 대사. 콩나물 산 아줌마 대사다.

역시 이시하. 습득력이 장난 아니다.

“아. 진짜 눈물 나. 알겠어요. 할부지 서이 개로 됐죠?”

“그럼 500개만 할게요.”

“좋아요. 딱 150만 원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걱정할 건 아니긴 한데. 500개를 어떻게 하시게요?”

“아. 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또 팔면 되니까요. 이번 강인대학교에서 중고 장터를 여니.”

“아. 거기에 팔 생각이시구나.”

앞에 있는 그녀도 아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안 팔리면 또 방법이 있으니까요.”

“정말요?”

“네. 제가 발품 파는 건 잘해서.”

나에게는 KI 미디어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싶다.

적어도 150만 원이면 충분히 쓸 만하지.

나중에 다 팔면 그만큼 채워지는 거니까.

마냥 소비만 되는 건 아니다.

뭔가 스케일이 커져 버렸는데 그래도 못 팔 건 아니니까.

이모티콘도 그만큼 팔았는데 팝업북이라고 못할까.

“아! 제가 크기를 말 안 했네요. A4, A3마다 가격이 다른데.”

“종이 커져도 단가는 그대로 해주기. 시하랑 약속하신 건데.”

“아하하. 뭐 그러죠.”

“농담입니다. A4로 해주세요.”

“알겠어요. 일단 디자인 보고 혹시 더 큰 게 좋으면 A3로 하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뭔가 이야기가 착착 진행된다.

나는 옆에 있는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야. 네가 거래한 거야. 오늘은 형 아무것도 안 했네?”

“아? 아냐. 형아. 돈.”

“어…. 그래. 돈만 냈지. 형이 물주네.”

그 말에 앞에 있던 그녀가 또 킥킥 웃어댔다.

“아. 진짜 둘이 너무 재밌는 거 아니에요?”

“하하.”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대충 제작 문의도 끝났으니 돈만 계좌로 보내면 될 것 같았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아. 잠깐만요. 시하야? 너 약속한 거다? 또 온다고. 여기 또 팝업북 만들러 와. 알겠지? 체험도 하니까.”

“아아. 또 오께.”

나는 그 말에 시하의 손을 잡았다.

“또 오겠습니다. 해야지.”

“수니다!”

“푸훗. 됐어요. 이때 애들은 존댓말을 잘 못 하니까요. 아, 여기 명함이요. 또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서는데 명함을 보았다.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대표님이셨구나. 어쩐지 단가 가격 줄이는 것도 알아서 한다 했어.’

나는 지갑에 명함을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미리 발품을 좀 팔아봐야지.

“시하야.”

“아?”

“지금부터 책 팔 곳을 봐두자. 저거 강인대학교에서 다 못 팔 것 같거든.”

“아아!”

그렇게 우리는 다시 걸었다.

두 개 남은 꽈배기 봉지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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