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한편, 해피 어린이집 어머니들은 구석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아이가 나올 때마다 어찌나 손뼉을 크게 치는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휘익! 휘익!”
휘파람도 불어 젖히며 분위기를 띄운다.
아이가 무대에서 떨지 않고 미성으로 쫑알쫑알 말하는 게 너무 귀여워 보인다.
“어머. 어머. 우리 딸 좀 보세요. 너무 잘하지 않아요?”
“호호호. 그러네요. 제 아들 못지않은데요?”
“정호 엄마. 정호가 참 듬직해요.”
서로가 자식들의 칭찬을 한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해피 어린이집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연히 각자의 마음에 자신의 아이가 1등을 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강인 어린이집 1번 타자 종수가 나왔다.
“누구 집 아들이길래 이렇게 또랑또랑하게 발음을 해요?”
“이야. 피피티도 참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종수의 멋진 발표에 살며시 불안감이 맴돈다.
무슨 이런 대회에 저렇게 잘하는 아이가 나왔는지.
아무래도 1등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건 참여하는 데 의의를 두는 거죠. 경쟁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렇죠. 우리 애의 용감한 모습을 칭찬해 줘야겠어요.”
그렇게 종수가 끝나고 재휘의 차례가 됐다.
발표는 썩 잘한 편은 아니었지만, 피피티 퀄리티가 남달랐다.
감성 있는 분위기와 색감.
지금까지 보여준 피피티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어머. 어머. 대체 피피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정말 대단한데요? 그래도 발표는 우리 아이가 더 잘하네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비교와 띄워주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고 있을 때.
승준과 하나가 기발한 발표를 하며 웃음을 자아냈고, 조금 안심했다.
하지만 마지막 시하가 나왔을 때는 생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저거 그림이 움직이네요?”
“펭귄 네 마리가 이모티콘처럼. 정말 귀엽네요.”
움직이는 이모티콘이 피피티 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그림에 집중시키기 위해 글자는 아무런 애니메이션 없이 그대로 박혀 있다.
글은 눈에 띄지 않고 그림만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이쯤 되면 어머니들은 궁금해진다.
“대학교를 낀 어린이집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네요. 저런 피피티라니…….”
“대체 어떤 교육을 하길래 애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있는 걸까요?”
“그러게요. 분명 수준 높은 교육을 하는 걸 거예요.”
착각이었다.
피피티의 수준 높았던 것은 오로지 경쟁심에 벌어진 일이었을 뿐.
대학교가 붙어 있다고 엄청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피 어린이집 어머니들은 이런 내막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기 다희쌤이 그렇게 교육을 잘한다나 봐요.”
“어쩐지! 앞에서 사회를 하는 것도 남다르더라!”
그렇게 수다를 떠는 동안 시하의 발표가 시작됐다.
마치 그것은 하나의 시.
피피티 위에 적힌 글보다 더 함축적인 말이었다.
“으응? 좀 이상한데?”
“뭔가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 안 맞는 것 같은?”
“그런데 정말 귀엽네요.”
“다 끝나고 저 구석에 있는 남자에게 손 흔드는데요? 형아라고 하는 거 보니 저 남자애가 형아인가 봐요.”
“어머. 저 시가 형아에게 보내는 거예요? 너무 귀엽다.”
“애가 참 따뜻하네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대학교에 있는 어린이집이니까 이런 인성 교육도 되는 거 같아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시하가 유독 형아를 좋아하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들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지만.
“와. 저도 애를 저기에 보내고 싶은데…….”
“저도요. 근데 그게 쉽지 않으니.”
교수와 교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든 어린이집.
이것만 해도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치 한정판 물건을 파는 것처럼 강인 어린이집의 위상은 한없이 올라간다.
갖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탐이 나는 법이다.
이렇게 오늘도 유다희 쌤의 소문이 점점 퍼져나갔다.
물론 다희쌤은 이런 소문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
투표가 시작됐다.
제일 발표를 잘한 아이의 사진에 스티커를 붙였다.
시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빼고 붙여야 했기에 고민 중이었다.
종이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선생님이 피식 웃으면 말했다.
“시하야. 그렇게 붙이고 보면 얼굴이 보이니?”
“아아. 보여!”
“보인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아냐.”
시하는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누가 제일 잘하는지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
그래서 고민 끝에 승준에게 붙였다.
승준이 제일 친했으니까.
인맥으로 이뤄진 투표였다.
“다 했어?”
“아아.”
시하가 내려와서 자리에 앉았다.
비밀 투표였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붙였는지 몰랐다.
승준이 시하에게 말했다.
“시하야. 누구 붙였어?”
“아? 쉿!”
“아니야. 나한테만 말해줘. 나도 말해줄게.”
“하나도. 하나도.”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다 들린단다.
승준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그럼 귓속말로 해줘. 조용히 말해야 해.”
승준이 귀를 가까이 댔다.
시하가 고민하다가 두 손을 모아 말하기 시작했다.
“아아. 승준.”
“오! 진짜?!”
“아아.”
“아싸. 나도 시하 뽑았어.”
마지막 말이 꽤 크게 울렸다.
선생님이 단상 위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승준아. 그렇게 말하면 서로에게 투표했다는 게 다 들키지 않니?
옆에 있는 하나는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치! 하나도 시하 뽑았는데. 하나에게 안 주고.”
시하는 하나에게 순순히 사과했다.
조금 미안했으니까.
한 개 더 투표할 수 있다면 하나에게 줬을 것이다.
“아? 하나. 미아내~”
“아니야. 대신에 시혀기 오빠에게 나 투표하라고 해줘.”
“아?”
“하나는 케이팝 별에 나갈 거야. 우승할 거야.”
“아?”
아직 어린 하나는 벌써 오디션 프로그램인 케이팝 별에 나갈 생각이었다.
그때쯤에는 문자 투표를 해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시하는 케이팝 별이 뭔지 몰랐다.
“스타?”
“응. 난 스타가 될 거야! 멋진 아이돌!”
“아아!”
그제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형아에게 꼭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시하야. 꼭 말해야 한다?”
“아아.”
몇 번이나 다짐한 뒤에야 끝이 났다.
투표가 끝났는지 선생님이 앞으로 나왔다.
“자! 이제 대회의 1등 발표만 남았네요! 다들 궁금하시죠? 누가 1등 했는지!”
“네!”
“1등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마요! 1등이 아닌 사람에게도 소정의 상품이 나갑니다!”
선생님이 하나의 과자를 든 채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다 같이 상품을 획득하면 그나마 아이들의 아쉬움이 덜하다.
아무튼, 다들 하나씩 얻은 게 있는 건 맞으니까.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시, 그림 대회 1등은~~”
한 박자를 쉬며.
“시하일까요! 승준일까요! 아니면 하나일까요! 종수, 재휘…….”
끝없이 이름을 말하기에 원장이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1절만 하라는 신호를 받은 유다희 선생님이 찔끔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럼 정말로 발표하겠습니다. 1등! 축하합니다! 강인 어린이집의 종수!”
“와아아아!”
“단상 앞으로 나와주세요.”
종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피피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발표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기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 종수가 상을 타는 건 당연했다.
물론 피피티 그림만 평가했을 때는 시하가 압도적으로 1위였을 것이다.
승준이 툴툴거렸다.
“쳇! 시하가 잘했는데.”
“마자. 마자.”
“아?”
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아쉬울 건 없었다.
1등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종수가 받은 팝업북은 조금은 부러웠다.
승준이 고함을 쳤다.
“아악! 우리 하루 동안 종수 부하가 돼야 하잖아! 시하야. 어떡하지?”
“아? 아아!”
시하는 까맣게 잊어 있었다.
사실 그거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종수가 이상한 거 시키면 어떡해!”
“아? 아냐. 종수. 아냐.”
“아니야. 종수라면 이상한 거 시킬 거야.”
하나도 걱정되는지 한숨을 쉬었다.
앞에 있던 종수가 의기양양하게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 종수 어린이. 소감 한 말씀 부탁할게요.”
“네!”
종수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매일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서 이렇게 좋은 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고개까지 꾸벅 숙였다.
아이들은 예습과 복습이 뭐지? 하는 얼굴이었다.
해피 어린이집 어머니들은 “어머. 어머. 역시! 남다르네. 강인 어린이집.”이라며 종수를 칭찬했다.
물론 착각이지만.
그리고 무대 저 뒤편에서 박경준이 “이의 있소!” 하며 일어나려다가 안경호에게 한 대 맞았다.
시혁이조차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나서냐고.
***
요즘은 미술가가 이름을 알리는 데 30년은 걸린다고 한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경력을 쌓고, 소문이 퍼져야 잘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사람들에게 시하의 예술은 통하지 않는 거겠지.
성적이 조금 아쉽다.
아니, 아주 아쉽다.
이 엄청난 발표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시하를 위로해 주러 가야겠다.
“그럼 나는 시하에게 갈게.”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호와 박경준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의문 섞인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시혁아. 우리도 같이 가야지. 너만 쏙 빠지기 있어?”
“맞아. 맞아. 이럴 때 같이 가줘야지.”
나는 볼을 긁적였다.
“왜? 올 필요는 없지 않아?”
“저기 경환이도 있으니 같이 가야지. 시하에게 1등을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정말 멋졌다고 칭찬을 해 주는 게 회장의 역할 아니겠어?”
시하는 동아리 소속이 아닌데 왜 회장으로 칭찬을 해 주려고 하는데?
하여간 핑계도 좋다.
그래도 시하를 칭찬하는 건 언제나 옳으므로 같이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래. 가자. 가.”
앞으로 나가자 시하가 나를 반겼다.
“형아!”
도도도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뭔가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으며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정말 잘했다는 듯이.
“시하야. 잘했어. 진짜 잘했어. 최고였어.”
“아아.”
“다음에는 발표 연습도 해 보자. 종수 봤지? 그거 다 열심히 연습한 거야.”
“아아!”
“시하가 1등을 하고 싶으면 꼭 연습하기. 알았지?”
“아아.”
끄덕끄덕.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기에 정말 알아들은 건가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똑똑하니 다 알아들었겠지.
뒤에서 안경호와 박경준도 시하를 칭찬했다.
“시하야. 정말 잘하더라.”
“시하야. 찢었다! 찢었어!”
“뭘 찢어? 그만해!”
“진짠데?”
하여간 웃긴 두 사람이다.
그때 헛기침을 하면서 신경환이 다가왔다.
“시하야.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따라와! 정리해야지. 어딜 놀고 자빠졌어!”
“아악! 잠깐만! 나 회장이야.”
“회장이 뭐? 대체 회장이 뭔데?! 경준아. 너도 안 와?”
“친구야. 뒷덜미는 놓고 말하자!”
그렇게 두 사람이 끌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시하 옆에 있던 승준이 배를 잡고 웃었다.
하나는 내 바지를 잡아끌었다.
“시혀기 오빠! 하나는? 하나는 잘해써?”
“하나도 엄청 잘하던데? 마치 가수 같았어! 노래하는 거 같아서 좋았지!”
“헤헤. 기뿌다.”
나는 승준을 보았다.
“승준이도 축구 사랑이 엄청나던데?”
“응!”
승준이 기쁜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발표하는 건데 축구 좋아한다는 게 칭찬이 될 수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야!”
저 멀리서 종수가 달려왔다.
악동 같은 얼굴을 한 종수가 가슴을 펴고 웃었다.
“하하! 내기 내가 이겼지?! 내일만 다 내 부하다! 하하하!”
“헥헥. 종수야. 같이 가~ 나도 부하 시킬 거야?”
“당연하지!”
종수가 재휘의 어깨를 팍팍 쳤다.
나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기도 했었지…….’
이상한 거 시키는 거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