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500)

149화

시, 그림 발표 대회 당일.

장소는 강인대학교 동아리가 모여 있는 소강당이다.

종종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소강당.

자주 열리는 건 아니지만 오늘 어린이집 발표 대회를 위해 개방됐다.

실제로 강의가 많은 평일에는 아무도 안 쓰는 게 사실이다.

그 강당에 현재 아이들이 아닌 세 학생이 등장했다.

그 셋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여기에 애들이 열심히 발표한다는 거지?”

안경호가 안경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 말을 박경준이 받았다.

“시혁이 동생이 나온다던데. 기대된다. 전에 영화관에서 보고 오랜만에 보겠네?”

“저기 구석에 앉아서 지켜보자. 애들에게 부담되면 안 되잖아.”

그렇게 쑥덕거리는 둘을 보며 신경환이 눈을 치켜떴다.

“야. 너희는 왜 구경 오는데. 나야 봉사 활동으로 카메라 설치랑 세팅을 해 주러 온 것뿐인데.”

“야. 야. 그래서 우리가 세팅을 도와주러 온 거잖아. 누가 공짜로 보겠대? 그냥 이렇게 도와주고 구석에서 좀 보겠다는데 그걸 구박하냐.”

“도와줄 필요가 없으니까. 애들 발표에 뭐 엄청난 준비를 하는 줄 알아? 그냥 스크린 내리고 컴만 켜주면 되거든? 카메라로 찍히는 거 지켜보는 정도인데 무슨.”

실제로 봉사 활동에 필요한 사람은 하나였다.

둘이서 쯧쯧 혀를 찼다.

엇비슷하게 생긴 둘이 그러니 신경환은 살짝 열이 받았다.

친구 놈들이지만 이 셋 중에 자기가 그나마 더 스마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제3자가 봤다면 셋 다 똑같아 보였을 거다.

안경호가 말했다.

“경환아. 내가 왜 회장이겠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몰라?”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어린이집 두 개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고. 여기에서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 하는 애가 발생해. 그럼 누가 안내해 줘야겠냐. 당연히 우리가 하면 되지. 어린이집 선생님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겠어?”

신경환은 그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건 맞네.”

“그렇지?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도와준다니까. 그러니 여기 문 쪽에 있는 맨 뒷자리에 앉아있으면 되겠다. 도움이 된다 그러네.”

“자리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줄이야…….”

그 말에 박경준이 배를 잡으며 웃었다.

안경호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을 폈다.

금방 생각해낸 말이었지만 뱉고 나니 그럴듯했다.

속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뭐. 알겠어. 그럼 조금만 도와줘. 생각해 보니 이 봉사 활동은 사람을 더 뽑아야 했네. 나중에 다 하고 보고할 때 말해 놓아야겠다.”

“그렇지? 이걸 다 하는 건 힘든 일이지. 암!”

“좀 달라 보이네.”

“괜히 내가 게임 개발 동아리 회장인 게 아니라니까.”

“알았다고. 누가 보면 광고를 하는 줄 알겠네.”

그렇게 셋은 발표 대회를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신경준은 몰랐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고, 화장실이야 그냥 여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게 하면 된다는 것을.

***

웅성웅성.

어린이집 아이들이 소강당에 모였다.

이렇게 같이 발표를 하니 이것 역시 배우는 게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저 많은 어린이가 다 발표를 하나?’

강인 어린이집이 특수해서 7명이지 다른 어린이집은 이렇게 적지 않다.

이 아이들이 다 발표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중 시하가 빛날 것을.

“형아.”

“응. 시하야. 친구들이 많다. 그치?”

“친구? 아냐.”

“어. 그래. 아직은 아니지.”

3살. 이시하.

친구를 구별하는 선이 생기다.

아무래도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동화 같은 상황은 없나 보다.

“이렇게 많지만 잘 말할 수 있지?”

“아아.”

가만 보니 부모님이 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긴 이런 평일에는 출근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주요한 행사가 아니라 일종의 교육이자 놀이일 뿐이다.

물론 이런 소강당에서 하는 게 상당히 스케일이 크긴 하지만.

‘어쩌면 어른이 별로 없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어른이 우글우글 많다면 더 정신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더 긴장할지도 모르고.

“형아는 저 구석에 있을 테니까 앞을 보면서 잘 발표해야 해. 알았지?”

“아냐. 형아. 가치.”

“형아는 저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저 애들이 형아 무서워하면 안 되잖아. 알았지?”

“형아. 안 무셔. 형아. 머시써.”

“으하하. 그건 시하가 형아 동생이라서 그런 거지. 형아 여기 있을 테니까 승준이랑 하나랑 같이 보고 있어. 알았지? 봐. 저기 오네.”

승준과 하나가 시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시하야! 빨리 와. 내가 가방으로 자리 잡아 놨어!”

승준이 어느새 가방으로 자리 잡는 법을 터득했나 보다.

하나도 시하의 손을 잡았다.

“시하야. 가자. 시혀기 오빠도 가자.”

“나는 저기서 지켜볼게.”

“그럼 하나도 갈래!”

“아니야. 시하 옆에 있어 줘. 부탁이야.”

“응. 시혀기 오빠 말 잘 들을게!”

“고마워.”

시하가 하나의 모습을 보더니 ‘형아, 형아.’ 하고 계속 불렀다.

“응. 시하야.”

“시하도. 형아 말. 잘!”

“그래. 잘 들어줘서 고마워.”

“아아. 고마어~”

너는 왜 고맙다고 하니?

고마운 건 난데.

아무튼, 그렇게 쌍둥이들은 시하랑 같이 맨 앞 의자에 앉게 되었다.

하여간 귀여운 애들이다.

‘나는 구석에나 앉아야겠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쟤들은 왜 여기 있는 거야?’

안경호와 박경준.

저 구석에 앉아서 팝콘을 들고 있었다.

누가 보면 영화를 보러 온 줄 알겠다.

“둘 다 여기서 뭐 해?”

“어? 왔어? 아니, 경환이가 이번에 봉사 활동을 한다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 시하가 다니는 어린이집 행사더라고. 그래서 왔어.”

“그게 이유가 돼?”

“당연하지. 우리도 봉사하러 온 거야.”

옆에 있던 박경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팝콘을 들고 봉사란 말이지…….

아무리 봐도 봉사보다는 놀러 온 폼인데?

“그 팝콘은?”

“이거? 그냥 간식이지. 어서 앉아. 이제 시작하나 본데?”

“그래.”

나는 떨떠름했지만 일단 안경호 옆에 앉았다.

말 그대로 이제 시작할 거 같았으니까.

“이런 건 관객이 많아야 하는데.”

“애들이 긴장을 많이 해서 그건 좀.”

“아. 그건 생각 못 했다.”

그렇게 팝콘 봉지를 뜯는데 단상 위로 선생님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오늘 사회는 유다희 선생님이 보는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좋아하는 다희쌤이에요. 해피 어린이집 여러분도 오랜만이죠?”

“네에!”

뭐지? 어린이집들 사이에서 유다희 선생님이 유명한가?

그런 의문을 가질 때 유다희 선생님이 자연스럽게 진행을 했다.

“오늘 발표한 사람 중 1등에게는 이 팝업북을 선물할 생각이에요!”

선생님이 책을 펼치자 커다란 성이 튀어나왔다.

입체적인 모습.

정말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뒷모습만 보이지만 나는 아이들의 눈을 상상할 수 있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빼꼼.

“어? 저기 시하 아니야?”

“그러네.”

시하가 흥분했는지 벌떡 일어서 있었다.

나는 시하가 저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다음에는 팝업북을 사러 가야겠는데?’

여러 개 사줘서 시하의 수집욕을 채워 줘야겠다.

이런 걸 사주기 위해 돈을 벌지 않았나.

팝업북은 시하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때 들려오는 선생님의 말소리.

“자. 다들 흥분한 건 알겠는데 자리에 앉아주세요!”

어느새 다른 아이들도 시하처럼 일어나 있었다.

그래도 혼자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혼자였다면 부끄러웠을 텐데.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큭큭. 아. 진짜. 시하 뒷모습만 빼꼼 보였는데도 귀엽네.”

“진짜 미치겠다. 시작부터 너무 재밌네.”

둘이서 팝콘을 와구와구 먹는데 나도 조금 먹고 싶어졌다.

시하가 좀 꿀잼이긴 하지.

“그럼 이제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순서대로 올라와서 발표할게요.”

먼저 해피 어린이집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다음 드디어 강인 어린이집 아이들 차례.

먼저 나온 것은 종수였다.

단단히 준비해 왔는지 눈을 빛내며 단상 위에 섰다.

선생님이 웃으며 마이크를 쥐여 줬다.

“안녕하세요! 종수입니다! 제가 발표할 시는 구름입니다!”

또박또박 잘도 말한다.

연습한 티가 난다고 할까?

피피티도 깔끔하고, 구름이 펼쳐진 그림도 나름 괜찮았다.

‘연습 많이 했구나.’

긴장한 모습이 살짝 보였지만 그래도 잘해냈다.

다음은 재휘.

아이들이 많이 온 것을 보고 살짝 겁먹는 모습을 보였다.

모르는 사람의 눈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조금 무서운가 보다.

“재휘입니다. 제목은 별빛입니다.”

계속 떠듬거려서 발표는 썩 잘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피피티에는 굉장히 힘을 준 거 같았다.

검은 밤하늘을 그린 그림에 은은하게 흰 글자들이 새겨지고 있다.

마치 별빛처럼 말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과연 재휘 엄마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렇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승준은 발표랑 상관없이 자기 축구공을 자랑했고, 하나는 시 낭송이 아니라 시 노래를 불렀다.

나름 특이해서 꽤 재밌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시하가 나왔다.

“야! 야! 시하 나와!”

“알아.”

옆에서 안경호가 호들갑을 떨었다.

괜히 나도 떨린다.

시하가 발을 떼며 마이크를 잡는다.

“아아. 시하. 제먹. 형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잘 말하고 있다.

이대로만 가면 우승은 틀림없다.

피피티도 완벽하다.

이건 우승할 수밖에 없다.

“아아.”

시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첫 페이지가 지나고 두 번째 페이지가 나온다.

다른 아이들처럼 스케치북 그림이 아니다.

“와아! 저게 모지?!”

“와아! 신기하다!”

“막 움직여!”

그래. 두 번째 페이지는 어제 시하가 그린 그림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네 개의 움직이는 그림으로.

첫 번째. 형아 펭귄이 아기 펭귄과 함께 이불을 덮어주며 잠을 재운다.

토닥토닥.

이모티콘처럼 짧은 움직임.

두 번째. 형아 펭귄이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한다.

세 번째. 형아 펭귄이 노트북을 친다.

네 번째. 형아 펭귄이 모자, 황금 목걸이를 쓰고 어깨를 으쓱하고 있다.

‘후후후.’

네 개의 그림이 피피티 위로 나타나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저기 보이는 부모님들의 표정에는 [졌다]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게 보인다.

낭패감이 섞인 얼굴이다.

‘시하 덕분에 엄청난 피피티를 만들었어. 언제 움직이는 이모티콘 그리는 법을 알게 된 걸까?’

예전에 시하가 그리고 싶다는 그림을 이제야 알게 된 기분.

이 엄청난 능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

마이크가 웅웅 울린다.

이제 시하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형아. 형아. 시하 형아. 고마어. 고마어. 시하 노라. 시하 코오 해. 배에 이써.”

피피티 위로 글자가 새겨진다.

[형아. 형아. 우리 형아.

고마워. 고마워.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고마워.

나랑 코오 해줘서.

고마워. 고마워.

옆에 있어 줘서.]

“운전! 노투북! 형아. 머시써. 형아. 형아.”

[운전하는 모습도.

노트북 치는 모습도.

언제나 멋진 모습도.

형아. 형아. 우리 형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시하다. 정말 멋지다.

옆에 있던 두 사람의 멍한 얼굴만 봐도 이 무대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하. 정말 잘하지?”

내 말에 안경호가 당황했다.

“어어? 뭐라고?”

“이게 바로 시야. 적은 말로 뜻을 통하게 하는. 시적 허용이라는 거지.”

“내가 아는 시적 허용이랑 뜻이 다른 거 같은데?”

“너 국문과야?”

“아니.”

“그럼, 말을 말어.”

그 말을 듣고 있던 박경준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시하가 이 무대 찢었다! 찢었어!”

옆에 있던 안경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박경준을 보았다.

“찢긴 뭘 찢어. 미친. 이게 랩이야?”

하지만 박경준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 텐션을 유지했다.

“아주 씹어 먹어 버렸다!!”

“이제 그만해. 내가 부끄러워. 여기서 정상은 나뿐이야?!”

쯧쯧. 혼자만 비정상인 걸 모르네.

안경호는 아직 멀었다.

“네! 그럼 이제 1등을 뽑겠습니다. 스티커 들고 여기 발표자 얼굴에 붙여주세요!”

드디어 투표의 시간이 왔다.

당연히 우승은 시하겠지?

나는 자신 있었다.

옆에서 안경호가 불길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거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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