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나비가 살랑살랑 날갯짓한다.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창문에 탁 하고 붙는다.
창문은 미동도 없지만, 미시적인 세상에서 보면 진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세상에 작은 날갯짓의 존재를 알리는 듯하다.
오로지 나비 주변의 작은 세상만이 나비가 일으키는 바람을 파악할 수 있다.
어린이집 소문 역시도 마찬가지다.
작은 세상에서 불어오는 미풍.
“시혁 씨가 이번 시, 그림 발표에서 피피티를 만든다던데?”
“어머. 정말?”
카페에 자리 잡은 두 여인은 종수와 재휘의 어머니였다.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시혁의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그렇다니까. 내가 다 들었어.”
“이야. 선생님에게 안 맡기고 직접 만든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참 정성이네.”
시혁은 모르지만, 어머니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게 이력이 특이했으니까.
23살 나이에 3살 아이를 키우는 게 어디 흔한 일이던가.
심지어 교우 관계를 신경 쓰는 어머니들에게 시하와 시혁에 대해서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종수 엄마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잠깐.”
“응? 왜 그래 종수 엄마.”
“생각해 보니 좀 위험한데?”
“뭐가?”
“그야 그렇잖아. 시혁 씨가 머리 좋은 강인대학교 학생이고 피피티도 자주 만들었을 거 아니야. 굉장한 걸 만들어오면 우리 종수가 기죽겠지.”
“에이. 설마 그러려고.”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해. 어휴. 이렇게 된 거 종수 피피티는 내가 만들어야겠어.”
“엉? 종수 엄마가?”
“그래. 내가 아들에게 들어보니까 시하랑 내기했다고 하더라고.”
재휘 엄마는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놀란 얼굴을 했다.
“우리 재휘는 그런 말 없던데.”
“재휘도 내기에 꼈다던데?”
“뭐?!”
재휘 엄마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남 일처럼 받아들이다가 자식이 관련되자 눈빛이 돌변했다.
“그래. 어쩐지. 시혁 씨 요망한 구석이 있네. 시하 이기게 해 주려고 피피티 하는 거 아니야.”
“내 말이 그렇다니까.”
시혁은 대회에 관심이 없다.
그저 시하에게 받은 감동을 그대로 피피티에 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명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종수 엄마가 말했다.
“아무튼, 나는 내 애가 기죽는 거 절대 못 봐.”
“어련하시겠어.”
“재휘 엄마는 피피티 준비 안 할 거야?”
“어머. 재휘가 어련히 잘하려고. 날 닮아서 패션 감각 있는 거 보면 모르겠어?”
“그으래?”
종수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재휘 엄마를 탐색했다.
재휘 엄마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속은 뜨끔거렸다.
오랜만에 직장에서 단련된 피피티 실력을, 재휘를 위해 쏟아부을 생각이었으니까.
이시혁. 그래 봤자 대학생 경험이 한계가 아니던가.
필드에 싸우는 실전형 피피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뭐, 재휘 엄마가 그렇다면야.”
“호호. 종수도 잘할 거야.”
“고마워. 역시 재휘 엄마밖에 없다.”
종수 엄마는 재휘 엄마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
저렇게 백조처럼 여유롭게 행동해도 발은 열심히 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재휘의 피피티는 감각적인 배경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승준과 하나네 집.
한편 승준과 하나는 엄마의 치마를 잡고 양쪽에서 흔들고 있었다.
“엄마! 엄마! 시하가 시혀기 형아랑 엄청난 거 만든대!”
“엄마! 엄마! 하나도. 하나도.”
승준 엄마가 곤란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피피티는 만들 줄 알지만 막 엄청 화려하게 만들 수 없었다.
“엄마가 혼자 잘할 수는 없는데~ 그럼 우리 다 같이 해 볼까?”
“응!”
“응!”
쌍둥이를 데리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화면이 켜지고 피피티를 띄웠다.
먼저 제목을 크게 적고, 승준의 이름을 적었다.
“자. 이러고 사진을 붙이면 돼. 승준이 먼저 해 볼까?”
“응.”
승준이 마우스를 잡았다.
사진을 클릭하고 그대로 피피티에 쏙 넣었다.
“와! 내 그림이 붙여졌다!”
“신기하지?”
“응!”
옆에 있던 하나도 자기가 하고 싶다고 난리 쳤다.
승준 엄마는 하는 수 없이 하나와도 함께 피피티를 꾸몄다.
그렇게 셋이서 작지만, 행복한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
나는 노트북 앞에서 손을 풀었다.
손가락 관절 사이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하를 힐끗 보았다.
“흠.”
아무래도 지금 피피티를 만들어야겠다.
내일이 발표라고 했으니 제대로 꾸미면 예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대체 어떻게 예쁘게 꾸밀 것인가.
첫 페이지에는 제목과 이름.
두 번째 페이지에는 시하의 그림 사진.
여기서 뭔가 더 꾸미려면 애니메이션을 넣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차라리 글자를 넣을까?”
그림 속에 글자가 쓰여 있지만, 시를 더 잘 보이게 하려면 새로 글자를 넣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일단 해 보고 별로면 지우자.
실제 스케치북과 다르게 피피티의 흰 도화지는 언제나 쉽게 고치고 지울 수 있다.
나는 먼저 폰트를 선택하며 시하의 시를 적었다.
시하의 그림이 가리지 않는 선에서 크기를 키웠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줄씩 나오고 사라지도록 애니메이션을 넣었다.
별거 아닌 작업지만 이 정도만 해도 돋보이지 않을까.
행간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건 그 전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역할이다.
그러니 한 줄만 나오는 게 더 보기가 좋을지도 모른다.
“시하야. 바빠?”
“아?”
내가 시하를 부르자 방문을 앞에 빼꼼 몸을 내민다.
얼굴은 반쯤 숨겨져 있다.
벽 뒤에 숨는 거랑 반대로 포즈를 취했는데 저게 너무 웃겼다.
“그게 숨어서 지켜보는 거야?”
“아아.”
“이미 다 보이는데?”
시하가 얼굴을 벽에 숨겼다.
이제 정말 시하의 몸만 보인다.
정말 내가 시하를 못 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튼, 정말 귀엽다.
“시하야. 다 보여.”
“아라.”
“오! 알고 있었어?”
“아아. 아라.”
“근데 왜 얼굴만 숨었어?”
“형아. 시하 얼굴. 차자.”
“으응? 형아가 시하 얼굴 찾는다고?”
“아아.”
이럴 때는 시하가 요즘 자주 하는 ‘왜?’라는 물음으로 말을 많이 시켜봐야겠다.
앞으로 발표도 있으니.
“왜?”
“형아. 시하 조아해.”
“응. 좋아하지. 시하 좋아하지.”
“이케. 이케. 숨어. 형아. 얼굴 차자.”
“설마 형아가 얼굴 찾게 하려고 몸만 보여준 거야?”
“아아.”
천잰데?
숨어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얼굴을 숨겨서 자기를 찾게 하다니.
결국,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거 아닌가.
자기 손바닥 위로.
‘이게 바로 제왕학!’
나는 다시 얼굴을 드러낸 시하를 빤히 보았다.
통통한 볼, 총명한 눈, 표정을 관리하는 포커페이스까지.
옛날에 태어났으면 왕이 될 상이다.
통통한 볼은 무슨 상관이냐고?
옛날이라도 귀여움은 먹히지 않았을까?
“시하는 왕이 될 상인가?”
“상?”
어떻게 설명할까 하다가 그냥 그대로 풀어서 말했다.
“아…. 왕이 될 얼굴이냐는 거지. 시하는 왕을 하기 위해 뿅 하고 나타난 건지도 몰라.”
“아냐.”
“응? 아니야?”
“아아.”
아무래도 이시혁 관상가가 잘못 생각했나 보다.
이미 왕인데 왕이 될 상이라니. 암!
“왜?”
“시하. 시하야. 형아. 형아야.”
“그렇구나. 형아 동생이 될 상이라고?”
“아아.”
“시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아아.”
“거짓말하고 있네!”
“아냐. 시하 아라.”
너무 진지한 표정이라서 진짠가 싶었다.
그래. 시하는 다 알겠지.
“시하. 한 살. 형아. 아라.”
“시하가 한 살일 때를 기억한다고? 보자마자 형아인 거 알았어?”
“아아. 형아. 가자. 머거.”
“어…….”
이거야말로 진짜 거짓말 같은데?
진짜 한 살 때를 기억하는 걸까? 내가 시하 한 살 때 앞에서 과자를 먹었던가?
뭔가 시하에게 제대로 말리는 느낌이다.
‘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화제를 바꿔야겠다.
“시하야. 자, 여기 와봐. 형아가 피피티를 만들었거든.”
“아아.”
나는 두 페이지밖에 없는 피피티에 슬라이드 쇼를 클릭했다.
통통 튀는 제목이 먼저 박히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가만히 있었다.
원래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 법.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면 정신없는 법이다.
“형아. 글자.”
“신기하지? 글자가 움직여.”
“아아.”
“이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거야.”
“애니?”
“벌써 줄임 표현을 알다니. 역시 시하는 대단해.”
“아아!”
“그리고 이렇게 엔터를 누르면. 짜잔!”
글자가 나오기 전에 시하 그림이 확 드러났다.
“여기에 시하가 시를 말하면 돼. 잘할 수 있지?”
“아아.”
발표에서 긴장 없이 잘하려면 연습은 필수다.
하지만 뭐 그렇게까지 유난 떨며 연습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한 번 가서 경험해 봤으면 했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떠듬떠듬 말하는걸.
시하가 떠듬떠듬 말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잘했어. 이번 경험을 통해 다음에 더 잘하자.
실수 안 하도록 연습하자.
이 정도의 말을 해 주고 싶다.
다음에 연습이란 게 필요할 뿐이라고.
‘이런 발표는 비교될 수밖에 없으니까.’
발표만으로 누가 더 잘하는지 확 드러난다.
결국,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게 될 거다.
그걸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내 역할이겠지.
“시하야. 네가 시를 말하면 여기에 시가 나올 거야.”
“아아.”
나는 엔터를 쳤다.
하나가 떠오르면 하나가 사라지는 글.
글귀 하나하나가 별거 아닌 짧은 말이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이건 나에게 시하가 하는 말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별말 아닐지 몰라도 나만은 그렇지 않다.
나에게 주는 이 시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너는 모르겠지.
짧은 글귀라 할지라도 그에 느껴지는 감상은 한없이 깊다.
“시하야. 어때? 마음에 들어?”
“형아. 시하도.”
“응?”
“시하도. 애니. 아라.”
“시하도 애니메이션 할 줄 안다고? 하하.”
오늘따라 시하가 허풍이 심하네.
나는 무조건 시하의 말이 맞는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풍이 아니게 되도록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같이 만들어야겠다.
이런 건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지.
웅웅.
때마침 폰이 울렸다.
“시하야. 잠시만.”
앞에 앉아있는 시하를 떼어놓고 전화를 받았다.
시하가 도도도 방으로 들어간다.
“네. 다희쌤.”
「네. 안녕하세요. 시혁 씨.」
“네.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일이 뭔가 커진 거 같아서요…….」
“네? 그게 무슨?”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어제 시혁 씨랑 시하를 본 애들이 소문낸 거 같기는 한데…….」
“뭘 소문내요?”
혹시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난 걸까?
어제 시하랑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시하를 귀여워만 했지.
귓가에 유다희 선생님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게…. 음.」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발표 대회인 거잖아요. 일단 이름이.」
“그렇죠.”
「그리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다들 내기도 했거든요. 지면 1등에게 하루만 부하가 되기로.」
“네? 하하. 귀엽네요. 그런 내기를 했어요?”
이거 정말 시하가 왕이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네. 원래 피피티는 제가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시혁 씨가 만든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엄마들에게 소문이 났나 봐요.」
“아…. 제가 잘못한 거네요?”
「아니요. 그건 아니죠. 아무튼! 저야 편하긴 한데 어머님들이 만들겠다고 성화라서.」
애들 내기가 어른 싸움이 된 건지 모르겠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선생님은 일이 이렇게 된 걸 말해 주러 왔나 보다.
하긴 어머님들이 다들 피피티를 스스로 만든다고 하니까.
눈치채지 못하려야 못할 수 없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 일이 커졌네요. 그냥 놀이의 일종인데…….」
어린이집 선생님으로서는 황당하게 그지없을 수 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죠. 이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아이들이랑 같이 피피티 만드는 거니까.”
「역시 그렇죠! 다행이다. 아무튼, 저는 페어플레이를 위해 시혁 씨에게 알려줬어요. 뭔가 다들 알고 있는 듯해서.」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열심히 만들어야겠네요.”
「네. 파이팅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것 참. 이게 뭐라고 성화인지 모르겠다.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괜한 승부욕이 생긴다.
그런데 피피티를 저 이상으로 만드는 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애니메이션 남발은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니까.
‘그냥 시하랑 함께 만들기나 해야겠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없으니 피피티 완성은 여기까지만 하자.
“형아!”
“응? 아! 시하야. 형아랑 같이 애니메이션 만들어 볼래?”
“아? 아냐. 시하. 해써!”
“뭐? 언제?”
“이거!”
시하가 자랑스럽게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나는 놀란 얼굴로 시하를 바라보았다.
대체 언제 이런 걸 그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