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작곡.
코드가 아니라 멜로디적인 부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창작.
물론 상업적으로 통하게 하고, 인기를 끄는 작곡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흥얼거리며 재미로 작곡을 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린이집에서도 그렇다.
“시하야!”
“시하야!”
쌍둥이 둘이서 시하의 양팔을 붙잡았다.
마치 경찰에 연행되는 듯한 모습.
시하가 피아노 앞으로 끌려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도 이 쌍둥이들이 오늘은 뭘 하나 싶어서 지켜보았다.
승준이 피아노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하야. 응원가를 만들 거야.”
“마자! 노래를 만들어!”
“응언?”
승준이 집에서 축구를 보다가 응원가를 열심히 부르는 관객을 보았다.
그래서 자기만의 응원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피아노로 만들 거야. 앞으로 내가 공을 차면 불러줘.”
“하나도! 하나도! 잘 부를래!”
하나는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좋았다.
시하는 뭔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가서 참여했다.
세 아이가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뚜껑을 열자 흰색과 검은색의 가지런한 배열이 드러났다.
똥땅. 똥땅.
코드 없는 마구잡이 주법.
“승리는 우리 꺼!”
“승리는 우리 꺼!”
“아아!”
선생님이 흐뭇하게 승준의 가사를 들었다.
“오~ 필승! 주운!”
“오~ 필숭! 준!”
“아아!”
시하야…. 가사를 불러야지…….
아아만 외치면 어떡해…….
하지만 시하는 꿋꿋하게 코러스를 넣었다.
이 자리에 시혁이 있었다면 응원가에 맛을 살리는 조미료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와! 완벽해!”
“오빠. 피아노가 이상한데?”
“아?”
멜로디가 이상했지만, 승준은 꿋꿋이 ‘고로취. 고로취.’ 하며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이상하다니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멜로디가 이상한데.”
그야 피아노가 엉망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어린이집 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봉사 왔습니다!”
“아?! 개굴!”
“안녕. 시하야.”
서수현이 시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쌍둥이들도 반가운지 서수현 곁으로 모였다.
“수현이 누나! 안녕!”
“수혀니 언니! 안녕!”
“그래. 안녕! 오랜만이지?”
서수현이 셋을 반기자 다른 아이들도 무슨 일인지 그쪽을 바라보았다.
전에 카페에서 만난 노래 잘하는 누나, 언니로 통하는 서수현이었다.
“그런데 뭐 해? 아까 피아노 소리 들리던데.”
“그거 내가 응원가 쳤어!”
“하나가 노래 불러써!”
“그렇구나…. 하지만 응원가는 피아노가 아니야. 다른 걸 써야지!”
셋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수현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렸다.
시하가 말했다.
“기타?”
“응. 기타도 좋지만 역시 난타가 최고지!”
“난타?”
“응. 음…. 북을 마구마구 치는 거야. 북 알아?”
“북? 아아! 책! 책!”
“아니. 그 book 말고 북이라고…….”
서수현은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빠르다고 생각해서 폰을 꺼냈다.
바로 난타 영상을 틀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신기한지 난타의 리듬에 맞춰서 몸을 들썩들썩 움직였다.
“이거라면 간단하게 응원가를 만들 수 있어. 피아노보다 쉽지?”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게 많은 사람이 딱딱 맞추며 엄청나게 빨리 두드리고 있었으니까.
“이건 너무 빨리 치는 거고. 느리게 치면 너희들도 할 수 있어.”
그 말에 선생님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드디어 오늘 할 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애들의 관심이 생겼을 때 음악 교육을 하는 것.
심지어 난타는 체력도 쉽게 소모할 수 있다.
두 가지 이득.
하지만 단점도 존재했는데 귀가 괴롭다는 점이었다.
“저기 수현 씨.”
“네?”
“마침 북채와 북이 있어요.”
“북채와 북이 있다고요?”
“네! 재작년이었나? 전에 아이들이 쓴 게 그대로 창고에 있거든요. 잠시 애들 좀 봐주시겠어요? 금방 들고 올게요.”
그렇게 선생님이 북을 들고 왔다.
아이들에게 맞는 작은 북.
가방에 들어있어서 굳이 닦을 필요도 없었다.
선생님이 북을 하나씩 꺼냈다.
“자! 그럼 오늘은 서수현 특별 1일 선생님에게 난타를 배워 보아요!”
“네? 제가요?!”
“그럼 누가 해요. 전 난타 잘 몰라요.”
“재작년에 했다고…….”
선생님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원래 시험이 끝나면 다 잊어먹는 게 국룰이죠.”
“아니. 그게 무슨…….”
“한번 경험해 보세요. 나름 재밌어요.”
“움…. 알겠습니당.”
서수현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살짝 부담스러워서 손에 북채를 쥐었다.
“크흠. 그럼 응원가를 만들기 전에 난타를 조금 해 볼까? 자. 여기 두구두구 쳐보세요.”
두구두구.
“점점 빨리.”
두구두구두구.
“제일 빨리!”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점점 빨라지는 리듬감이 재밌는지 아이들이 신나게 두드렸다.
“자. 그만~”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통제 불가능 상태였다.
빠른 비트는 사람의 몸을 마음대로 정지시키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승준은 이미 난타에 취해서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며 팔을 빨리 움직였다.
옆에 있던 하나는 맷돌을 돌리고 있었다.
북 테두리 부분을 북채로 긁고 있는 특이한 모양새.
시하는 그저 신나는지 발을 가만두지 못했다.
손은 북을 쳤고, 발은 땅을 쳤다.
온몸으로 난타를 하고 있었다.
도도도도.
‘저기 시하야? 북채는 어디 갔니?’
서수현은 애들의 열기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식는 순간 올 것이다.
목을 살며시 푼 뒤에 구수한 가락을 뽑아내며 난타를 쳤다.
“종로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차라리 강인대를 갈까요~ 추춧. 추춧.”
뜬금없는 노래에 원장과 유다희 선생님이 빵 터졌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좋은지 열심히 노래에 빠져 팔을 흔들었다.
***
그렇게 잠시 진정이 된 후.
서수현이 제대로 된 응원가를 가르치려고 했다.
물론 서수현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 각자 이름으로 응원가를 만들어 볼게요. 승준이 정말 잘해줬어요. 다 함께 따라 해볼까요?”
둥! 둥!
“오~ 필승~ 주우운!”
다들 신이 나 네 박자에 맞춰서 응원가를 따라 했다.
“이렇게 만들면 쉽죠? 다들 마음에 드는 자기 응원가 가사를 만들어 보아요. 하나가 해볼래?”
“웅…. 하나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북채를 딱딱딱 쳤다.
“우리 하나 되리라~”
정말 쌍둥이 아니랄까 봐 가사에 자기 이름을 넣는다.
이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할 게 분명했다.
서수현이 시하를 보았다.
“시하. 이거.”
“응? 뭐 할 건데?”
“형아. 히어로! 응언!”
“오~ 그렇구나. 그럼 가사는 형아 히어로가 응원해요! 라고 하면 되겠지?”
“아아!”
종수도 자기 가사를 뽐냈다.
유식함을 뽐내기 위해 ‘champion’을 사용했다.
“그댄! 챔피언~ 그댄! 챔피언~”
옆에 있던 재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자기 가사를 주장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일단 다들 하고 싶은 걸 하는구나….
서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씩 다 해 보기로 했다.
북채를 딱딱 두드리며 가사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불렀다.
“오~ 필승~ 주우운!”
“우리 하나 되리라~”
“형아 히어로가 응원해요!”
“그댄! 챔피언~ 그댄! 챔피언~”
“패션의 완성은 얼굴.”
가사가 뭔가 절묘하게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느낌.
아무튼. 그렇게 각자의 응원가가 완성됐다.
“이런 걸 훅이라고 하는 거야. 훅만 잘 완성되면 사람들이 딱 그것만 기억하거든.”
열심히 설명했지만 다들 자기 응원가에 심취해 있어서 아무도 듣지 않았다.
에너지 넘치는 서수현이지만 왠지 울고 싶어졌다.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
그때였다.
“너 여기서 뭐 해?”
“어?! 오빠?”
시혁의 등장이었다.
시하가 시혁을 발견했는지 도도도 달려가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지만 중력을 무시할 수 없는지 그대로 아래로 쭈욱 미끄러져 내려왔다.
“시하야. 뭐 해?”
“형아. 응언!”
“응? 형아를 응원하고 있었어?”
“아아.”
“역시 우리 시하는 내조를 잘하는구나?”
“아아.”
시하는 형아에게 자신이 배운 난타를 보여주려고 자리를 잡았다.
“형아.”
“응. 그래. 보고 있어.”
“형아! 히어로! 응언해!”
“올치! 잘한다!”
뭔가 예스러운 반응을 하는 시혁.
시하는 그 칭찬에 힘입어 둥둥둥 북을 두드린다.
발을 굴리는 모습에 시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서수현을 보며.
“수현아. 시하가 진짜 잘하지? 저 발 굴리는 모습 좀 봐. 탭댄스야.”
“오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
하지만 시혁은 꿋꿋하게 주장했다.
“있잖아. 세상에는 천재라는 게 있어.”
“있긴 하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시하는 난타만 가르쳤는데 어떻게 탭댄스까지 깨달을 수 있지? 천재 아닐까?”
“저건 탭댄스가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제자리 뛰기 아니에요?”
“쯧쯧. 네가 뭘 알겠니. 원래 범재들은 천재들을 이해 못 하는 거야.”
“그럼 오빠는 천재예요? 저걸 이해하게?”
서수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시혁이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형아니까 알 수 있지. 저것 봐. 정말 좋은지 시하가 반달눈이 됐어.”
“???”
서수현은 고민했다.
내 눈이 안 좋은가?
어디가 반달눈이 되었다는 거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제 눈이 어때서요?”
“개구리눈으로 보잖아.”
“이 오빠가 진짜!”
“그건 그렇고. 부탁 하나만 해도 돼? 이건 거절해도 되는 거야.”
“뭔데요?”
“작곡 몇 개만 해 주지 않을래?”
***
나는 서수현을 보았다.
사실 내가 한 부탁은 정말 그냥 거절해도 된다.
딱히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까.
만약에 이 곡이 잘돼서 팔린다고 한다면 또 모를까.
애초에 서수현도 자기 생활이 있는데 쉽게 맡을 건 아니었다.
너튜버로 먹고 살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이에요? 작곡이요? 오빠 노래 부르게요?”
“아니.”
나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해 주었다.
내 설명을 듣더니 서수현이 손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할게요. 몇 개 만들어야 해요?”
“잘 모르는데…. 할 수 있는 만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런가요?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만들어놓고 제 너튜브에 올려도 되잖아요. 요즘 그 뭐지?”
“뭐?”
“공부에 도움 되는 음악! 막 동양풍 음악! 서양풍 음악! 이런 거 올라오잖아요. 노래 녹음은 필요 없을 테니까.”
“아…. 그렇지. OST 작업이 아니니까 녹음은 필요 없지.”
“근데 보통 허밍 같은 거 넣으니까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한 번 만들어두면 그냥 버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저렇게 생각해 보니 너튜브의 컨텐츠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하게 올라올 수 있는지.
“근데 너는 취업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4학년 때 하면 되죠. 오빠도 취업 준비 안 하는데.”
“난 이미 취업이거든? 프리랜서니까.”
“아…. 맞네…….”
어허. 나 시하 형아야.
어디서 동일 선상에 놓고 있어.
“근데 채널은 많이 성장했어?”
“그냥저냥 꾸준히 성장 중이에요. 느긋하게 올라가고 있다고 할까?”
“그때 이후로 별로 안 늘고 있다는 거네.”
“아니거든요! 폭풍 성장 중인데요!”
“눈두덩이가?”
“이 오빠가 진짜. 아니라고요!”
그때 시하가 다가왔다.
“형아.”
“응. 다 놀았어?”
“아아. 개굴!”
“응. 수현이 누나네.”
“눈?”
“눈?”
“눈. 두꺼비?”
“풉!”
아무래도 시하가 내 말을 들었나 보다.
시하에게 아무런 말을 못 하는 서수현이 보인다.
“나중에 수현이 누나 화 풀게 그림 하나 그려서 영상에 올려주자. 뭐라고 했지? 공부 잘해지는 음악 모음?”
“오빠 진짜요?”
“왜 나한테 그래. 허락은 시하에게 맡아야지.”
“시하야. 누나에게 그림 그려줄 거야?”
“아? 아냐.”
시하가 고개를 젓는다.
서수현이 시무룩해졌다.
“이런. 안 된다네?”
“시하. 그려.”
“응? 그린다고?”
그린다는 거야? 안 그린다는 거야?
뭐가 됐든 상관없겠지.
시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걸로 족하다.
“시하 하고 싶은 대로 해!”
“아아!”
그렇게 며칠 뒤.
나는 시하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