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자그마한 배려를 받은 것 같다.
앞 유리를 교체해도 바로 탈 수 없어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접착이 잘될 때까지.
그런데 이렇게 바로 탈 수 있게 새 차를 준비해 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튼, 시하에게 자기 차라는 걸 인식시켜줘야겠다.
“시하야.”
“아?”
“자! 봐! 병원에 가서 아야 한 걸 나으니 굉장히 달라졌지? 이거 시하 차 맞아.”
“아아.”
시하가 굉장히 미심쩍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가까이 다가가 차 문을 쓰다듬었다.
나중에 손을 꼭 씻겨야겠네.
“어때? 괜찮지?”
“형아. 차 나아. 나아써.”
“응. 나았네. 이제 집에 갈까?”
“아아.”
시하가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얼굴이 펴진다.
1mm 내려온 눈꼬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나는 차 문을 열고 시하를 태웠다.
“자. 가 볼까?”
“아아.”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출발했다.
새 차라는 걸 눈치챌까 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여간 시하가 기운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우물에 소원을 비는 게 통했네. 그치?”
“형아. 우물.”
“응.”
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전. 반 아냐.”
“음. 동전이 반으로 쪼개지지 않아도 우물신이 시하 소원 들어준 거 아닐까? 시하가 너무 귀여워서 말이야.”
“아?”
어이쿠. 뒷말은 속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앞으로 조심해야지.
“하하. 시하가 차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우물신이 빨리 소원 들어준 것인지도 몰라.”
“왜?”
“아니… 왜긴 왜야…….”
“빨리. 왜?”
“음. 왜 빨리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냐면.”
“모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요즘 우물신도 컴퓨터로 작업하거든. 그래서 일 처리가 빨라.”
“왜?”
“형 손이 두두두 움직이는 거 봤지? 우물신도 분명히 천 타 정도 나오나 봐. 형보다 더 빨리 친다?”
“형아? 빨리?”
“응. 그래도 우물신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형보다 빠르겠지.”
어쩌다 보니 우물신은 최첨단을 달리는 신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무수한 물음의 향연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시하야. 이제 내리자.”
“아냐. 시하 차. 이써.”
“시하 차랑 같이 있고 싶다고?”
“아아.”
시하가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무래도 살아 돌아온(?) 시하 차랑 같이 있고 싶은가 보다.
벨트에 얼굴을 쭈욱 붙이는데 볼살이 툭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튀어나온 볼살을 마구마구 찔렀다.
말랑말랑.
이게 바로 형아의 특권이라는 거겠지.
내가 하는 행동이 의문이었는지 눈을 깜빡하며 나를 바라본다.
“형아?”
“그래. 일단 차에서 실컷 있을까?”
“아아.”
가끔 이렇게 차 안에서 시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태풍이 지나가서인지 이제 날씨가 선선하다.
굳이 에어컨을 틀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차 안에 있었다.
“아! 그럼 차가 다 나은 기념으로 축하해 줄까?”
“아아.”
시하가 좋은지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내 가방에서 종이테이프를 꺼냈다.
시하의 귀여움을 납치하기 위해서 언제나 준비해 두는 것이다.
농담이고, 오늘 가방을 보니 종이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아마 집에서 시하가 넣은 것이겠지.
“짜잔! 여기 종이로 차에게 편지를 적어서 붙일 거야. 좋지?”
“아아!”
“여기 굵은 매직으로 쓰자. 자. 시하야. 차에게 하고 싶은 말 말해봐.”
“차.”
나는 시하가 부르는 데로 따라 적었다.
[차야~ 차야~]
“그다음은?”
이걸로 시하가 자주 말하도록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런 기회는 놓치면 안 되는 법.
이 정도면 어린이집 선생님 못지않을 것 같았다.
“아아. 휴~ 시하. 이케이케. 해써. 나아. 시하랑. 시하랑…. 아야 아냐. 놀아! 아아!”
“오호. 그렇단 말이지.”
[휴우~ 나아서 다행이야. 내가 나으라고 소원 빌어줬어. 앞으로 아프지 말고 나랑 계속 놀자!]
나는 적은 것을 읽어주었다.
“짜잔! 어때? 시하가 한 말이랑 똑같지?”
“아아.”
아니. 잠깐만.
이거 정말 연습이 된 거겠지? 된 걸까?
뭔가 문도환의 ‘아니다. 이놈아.’ 하는 얼굴이 떠오르지만 애써 지워냈다.
이 정도면 잘한 거지. 뭐.
귀여우면 된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며 시하에게 매직을 쥐여 주었다.
“시하야. 이제 여기에 그림 그리자.”
“아아.”
시하가 매직을 잡더니 슥슥 축하의 그림을 그렸다.
그려진 것은 커다란 반창고.
이미 다 나았는데 저 반창고가 소용 있을까 싶지만 앞으로 다치지 말라는 표시가 되겠지.
“다 됐어?”
“아아!”
“그럼 붙일게.”
나는 조수석 앞에 붙여놓았다.
조금 지저분해 보일 수 있겠지만 시하가 안심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럼 이제 차도 충분히 좋아했으니 집으로 갈까?”
“차도?”
“아니. 차는 집에 못 들어가지.”
자꾸 차를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큰 집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클락션을 세 번 울렸다.
빵빵빵.
“차도 고맙대. 이제 시하가 집에 들어가래. 내일도 같이 놀자고.”
“아아. 형아.”
“응. 그래. 안전벨트 풀자.”
이제 안심이 되는지 시하가 안전밸트를 풀었다.
차에서 내리자 앞 유리창에 종이가 다 보인다.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사진으로 찍었다.
이건 인별각이지.
“이제 들어갈까?”
“아아.”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들어갔다.
인별에 사진을 올리니 반응이 1분도 되지 않아 올라왔다.
-슈 : 너무 귀여워영!!
-백똥 : 운동을 해야 안 다치지…….
-알리사 : 한국 올 때까지 떼놓지 말아요! 곧 가여!
-홍진수 : 가지고 싶다! 에이포지!
아니. 뭐. 다들 폰만 보고 계시나…….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
팀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도 맡은 파트가 다르면 어긋남이 있는 법이다.
각각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팀을 구성해 무언가 개발하려고 해도 여러 가지 잡음이 생길 것이다.
이건 서로의 고집이 아니라 관점과 일하는 현장의 차이였다.
그리고 새로 하는 일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만큼 결과는 같아도 그 과정 자체가 처음일 경우가 많다.
그림 하나만 봐도 그렇다.
풍경화, 동양화, 서양화, 만화체, 일러스트 등.
같은 그림으로 묶이지만 다양한 연출이 있고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지금 여기 동아리방 상황이 그렇다.
“음…. 영어네.”
“영어군.”
“영어야.”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영어로 시나리오를 짜왔다.
무슨 말이냐면 어차피 영어판으로 나올 거니까.
“혹시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우리는 스피킹이 조금 약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독해의 한국 아니냐!”
그렇겠지.
일단 강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에서 독해는 어느 정도 된다는 것.
그리고 스피킹도 영 못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외국 회사에 입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럼 뭔가 잘못됐어?”
“으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먼저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절대 뭐 으음. 내가 잘나서 지적하는 거나 참견하는 건 아니야. 알겠지?”
안경호가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썼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걸리는 게 있는 걸까?
“괜찮아. 뭐든 말해줘. 나도 부족한 게 있으면 고쳐야지.”
“음. 그래.”
조심스러운 모습이 답답한지 신경환이 말했다.
“이대로 적으면 곤란해. 우리가 프로그램 짜고 구성할 때 시나리오가 이러면 힘들어. 보기도 쉽지 않고.”
“잘 안 읽힌다는 이야기야? 몰입이 안 된다?”
“아니. 그게 아니야. 잘 읽혀. 이게 만약 소설이었다면 말이야.”
“어?”
“지문이 쓸데없이 너무 많아. 대사도 조금 줄여야겠고.”
“으음.”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무엇을 지적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지금까지 회의를 하면서 이렇게 단점을 지적받은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아…….’
이건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뭔가 정말 이 사람들과 괴리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정, 스토리, 캐릭터.
그런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통역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일맥상통했다.
현장을 모르는 관리자와 현장을 뛰는 직원 사이의 간극.
그렇다.
이 셋은 무언가 같은 것을 공유하였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게임 제작 참여도 해본 경험이 없고 시나리오를 써본 경험도 없다.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았다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지금까지 토대를 만들어두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게임 프로그래밍을 해본 적이 없어.’
지식으로 아는 건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직접 현장을 봐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너무 쉽게 생각했네…….’
조사로 부족한 점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빠르게 생각을 끝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게임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는 거 아니야? 영화처럼 연출이 다르듯이 게임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부족하다는 거?”
“아! 그래. 그거야!”
신경환이 맞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렇다. 설사 글을 썼다고 해도 구현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이 있다.
“으음. 미안해. 이쪽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나는 순순히 사과했다.
신경환이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아니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사실 아마 대부분 게임 시나리오 작가를 하려는 사람은 잘 모를걸? 이게 시나리오야?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정도야?”
“어. 괴리감이 심하거든. 지금도 그래. 물론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는 잘 알고 있겠지만.”
하긴 이런 건 배우지 않으면 모르니까.
“나도 개발에 한번 참여해 보면 안 될까? 일단 개념을 잡으면 빨리 그것에 맞게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개념이 아닌데…….”
“깊숙이 알 필요는 없지. 겉핥기 정도로 충분해. 그 왜 있잖아? 요즘 요구하는 T자형 인재.”
다양하고 넓게 지식을 습득하고 하나의 전문분야를 깊숙이 파는 인재.
팀을 만들어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쉽지 않지만.
그런 사람과 일하면 조금 더 수월하다.
안경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이하다 보면 금방 늘 거야.”
“음. 그런데 너희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혹시 너희들이 만들어둔 게임 소스 좀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좀 공부할게. 한 이틀만 줘 볼래? 금방 익숙해질 테니까.”
“이틀 만에 되겠어?”
“해 봐야지. 이해하려면.”
태풍이 불면 피해를 많이 남긴다.
하지만 피해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다음에 할 대비를 가르쳐주고, 공기의 순환을 도우며, 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차가 망가지면 다시 고치듯.
부서지면 다시 보수하면 될 것이다.
이 일을 비록 쉽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나의 결과물이 그렇게 비치게 됐다.
그래서 어느 정도 미안했다.
그런 나를 보던 박경준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뭐가 그렇게 심각해! 어떻게든 되겠지. 다 이런 일을 겪는 거야. 우리가 한두 번 작업하겠어? 이렇게 보니 옛날 생각난다. 시나리오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안경호도 그 생각이 나는지 실실 웃었다.
“와 씨. 그것만 생각하면…. 어후. 다시 같이 작업 못 하겠어. 이거는 꼭 구현해야 하니. 이거는 이 퀘스트 선택지를 늘려서 해야 하니. 아니. 뭐 알고리즘을 알고 말해야지. 그걸 그렇게 말하면 다 되는 줄 아나…….”
뭔가 시달린 적이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확한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대략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근데 스토리 흐름이랑 캐릭터 대사는 괜찮은 거 같아? 조금 줄이면?”
“응! 대사는 괜찮은 거 같아. 그 뭐야? 상황상 화면으로 보여주는 연출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그럼 지문하고 대사도 확 줄거든.”
“으음. 영화처럼?”
“영화랑은 좀 다르지. 퀘스트 스토리텔링도 해야 하니까.”
“그렇네…….”
게임 판타지처럼 퀘스트 창 같은 것으로 해결할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영화처럼 분위기나 음악으로 때우는 지문도 있을 것이고.
‘뭔가 알 것 같아.’
머릿속이 번쩍거린다.
텍스트에 집중해서 그렇지 게임에 중요한 건 이해다.
그 이해는 장면과 장면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지문을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 연출적 시나리오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생각하면 안 되고.’
게임은 카메라 연출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연출.
프로그래밍의 연출이다.
그걸 이해한 뒤 이 사람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통역사의 역할이랑 마찬가지다.
그 사람을 최대한 알고 대화를 나눠줘야 한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람들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최근에 만든 것 좀 보여줄래?”
“오케이. 근데 이해할 수 있으려나?”
“최대한 해 보지. 뭐.”
“궁금한 건 있으면 톡으로 물어봐. 언제든지 대답해 줄게. 우선 이 시나리오 토대로 우리가 만들고 있을 테니까.”
“그래? 알겠어. 일단 쓰고는 있을게.”
“오케이.”
그렇게 파일을 받으려는 그때.
하나의 문자가 도착했다.
-이모티콘 정산서를 메일로 보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앞으로 매달 메일로 정산서가 갈 겁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