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시하의 충격을 받은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한동안 지켜보았다.
사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잠시 멘탈이 나갔다가 돌아왔다.
“시하야.”
“형아. 시하 차. 아야.”
“응. 시하 차 아야 하네. 형아가 나중에 병원에 데려다줄 테니까 일단 어린이집부터 가자.”
“시하 차. 나아?”
“응. 시하 차 병원 가면 다 나아서 올 거야. 자, 일단 가자.”
“아아.”
끄덕끄덕.
대답은 잘하지만, 눈은 차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을 살며시 끌며.
시하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시하의 고개는 자꾸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 났네.’
법인 리스 차량인데 아무래도 전에 받은 명함으로 연락을 한번 취해야겠다.
오랜만에 걸어가는 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차를 운행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꽤 길들여져 있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편하긴 하니까.
“시하야. 괜찮다니까.”
“아?”
이제 차도 안 보이는데 계속 뒤를 돌아봐서 난감했다.
“병원 가면 다 나아요. 알지?”
“아라.”
병원에 가면 아픈 게 낫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걱정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만큼 시하가 차에 정이 많이 들었다는 거겠지.
“자. 도착했다.”
“아아. 바이바이.”
“그래. 바이바이.”
시하를 어린이집에 맡기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나도 차에 관한 애정이 생겼나 보다.
어서 빨리 전화해서 차를 수리해야겠다.
근데 앞 유리 교체면 20~30만 원 정도 나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폰을 들었다.
***
우울.
시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차가 걱정되었으니까.
승준은 시하가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시하야. 왜 그래?”
“아아. 시하 차. 아야.”
“시하 차? 빨간색 차 말이야?”
“아아.”
“차가 다쳤어?”
“다처써.”
“헐! 어떡해!”
승준은 시하랑 같이 차를 걱정해 주었다.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이 없나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벌떡 일어섰다.
“그래! 그거야!”
“아?”
“시하야. 빨리 낫는 법이 있어!”
“모야?”
승준이 좋은 생각에 흥분했는지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동전이야. 동전! 호수에 동전을 던지고 빨리 나으라고 소원을 빌면 낫는데!”
“동전?”
“응! 전에 동전 던져서 동그란 모양에 넣으라고 했어!”
“아아!”
그때 옆에 있던 하나도 말을 거들었다.
“하나도 동전 던질래! 소언 이룰 거야!”
“시하도!”
“그럼 다 같이 가자!”
그렇게 세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셋이서 신발장으로 쪼르르 달려가기에 당황했다.
“자! 그대로 스톱! 멈춰요. 어디 가려고?”
“선생님! 호수요! 호수! 여기 호수 있잖아요!”
분명 강인대학교에 호수가 있었다.
승준이 똑똑하게도 전에 사진 찍으러 갔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난감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에 동전 던지는 곳 없어요. 거기다 너희 동전도 없잖아.”
“아닌데! 있는데!”
“아아! 이써! 이거!”
시하가 주머니에 손을 꼼지락 넣더니 젤리 장난감이 나왔다.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건 젤리 장난감인데?”
“아?”
시하가 이건 아니라는 듯이 그대로 젤리 장난감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문도환이 봤으면 눈물을 흘렸겠지만, 다행히 여기에 없었다.
철푸덕.
젤리 장난감이 이제는 바닥을 사랑한다는 듯 하나가 되었다.
“이거!”
시하의 주머니에 나온 것은 메달.
전에 시혁이랑 [방구방구 문방구]에서 얻은 은색 메달이었다.
동전 대신에 저걸 쓸 생각이었다.
“아…. 그걸 쓰는구나?”
“아아.”
“나도 있어요! 선생님. 시하가 준 거.”
“하나도 이써!”
다들 언제 챙겼는지 하나씩 있었다.
선생님도 난감했지만 이런 일은 자주 발생하는 법.
위기는 언제나 기회다.
이걸 컨트롤해야 프로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저기 지켜보는 원장님이 있다.
“좋아요. 준비는 다 됐네요. 하지만! 호수보다 더 뛰어나게 소원을 이뤄주는 데가 있어요!”
“정말요?”
“아?”
“진짜?”
선생님이 후후후, 하고 웃었다.
이런. 이런. 이렇게 관심을 쉽게 돌릴 수 있으니 애들이다.
아예 관련 없는 이야기를 했다면 소용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우물이에요. 다들 산신령은 알죠?”
“응! 나 알아!”
승준이 배를 쭈욱 내밀었다.
시하와 하나도 아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하나둘씩 모였다.
“자! 다들 신발장 앞에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요. 선생님이 진짜 소원 잘 이뤄지는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아이들이 뭐에 홀린 듯이 다들 우르르 방으로 돌아왔다.
호수로 간다는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선생님이 의기양양한 채로 말했다.
“산에 산신령이 있는 것처럼 우물에도 우물신이 있어요. 못 들어봤죠?”
“네!”
“거기 우물을 퍼서 술을 만들면 크으!”
원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에 찔끔한 선생님이 헛기침했다.
“아, 아무튼! 물맛이 끝내주게 만들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신이에요.”
원장의 귀에는 술맛이 끝내준다는 소리로 들렸지만. 애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것까지 알 정도로 혼술 즐기는 유다희 선생님이 안타까울 뿐.
“응?”
승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소원은 안 들어줘요?”
“아니. 이건 선생님만 아는 비밀인데…….”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럴수록 애들이 더욱 귀를 쫑긋 세우며 듣기 시작했다.
“우물 앞에서 소원을 간절히 빌고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정말?!”
“그런데 그 동전이 우물에 들어가 반으로 쪼개져야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요. 신기하죠?”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생님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오늘 애들의 관심사와 놀이를 이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럼 모두 큰 블록으로 우물을 만들어볼까요? 그리고 동전을 던져서 소원을 빌어보아요!”
“네!”
그렇게 아이들이 신나서 큰 벽돌 블록을 동그랗게 쌓기 시작했다.
다 같이 우물을 만드는 것이다.
“벽덜…….”
시하는 자신의 손에 있는 벽돌을 바라보았다.
시하 차를 습격한 돌이랑 똑같이 생겨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필요에 따라 해야 하는 법.
우물을 만들어 시하 차가 낫는다면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시하는 열심히 벽돌 블록을 쌓았다.
그렇게 둥근 우물이 만들어졌다.
선생님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이제 다 됐어요! 그럼 동전을 던져 볼까요?”
선생님이 준비한 100원짜리 동전을 아이들에게 쥐여 주었다.
너무 가까우면 안 되니까 적정한 거리에서 던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야 스릴이 있으니까.
우물을 크게 만들어서 웬만하면 다 들어갈 것이다.
그때 종수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응? 종수야. 왜?”
“근데 물은 안 넣어요?”
“어…. 물은 안 넣는단다.”
“에이. 시시하네. 근데 이거 던져도 소원 안 이뤄질 건데.”
역시 이 와중에 초를 치는 종수.
재휘는 히죽 웃으며 동전 던질 준비를 하다가 종수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동전과 종수를 바라보더니 슬쩍 뒤에 서서 자기도 동참한다는 주장을 했다.
선생님이 황당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보았다.
저기. 재휘야. 동전 던져도 돼…….
“아니야. 이루어져. 이 동전이 반으로 쪼개지면 말이야.”
“안 쪼개져요. 이렇게 단단한데.”
“그건 간절하지 못해서 그래. 정말로 엄청~나게~ 간절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줄 거야. 엄청 간절해 본 적 있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1등으로!”
“아, 아뇨.”
선생님의 기백에 종수가 찔끔했는지 물러섰다.
그래도 1등으로 간절하면 정말로 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재휘가 그 말에 간절히 기원을 담았다.
“연주랑 연락되게 해 주세요. 연주랑 연락되게 해 주세요. 설마 나보다 연주 1등으로 보고 싶은 사람 있는 거 아니겠지?”
종수도 입을 삐죽대더니 시하를 힐끗 보았다.
“뭐 1등으로 간절하지 않아. 그런데 나도 시하 차가 잘되게 빌어줄게. 어때 고맙지?”
“아? 아아.”
시하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반사적인 끄덕임이었다.
지금 소원 비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에 있던 승준도 마찬가지.
“나도 시하 차가 잘 나아라! 함께 소원 빌면 2배야!”
“하나도! 하나도! 3배!”
종수가 발끈했다.
“야! 난 왜 빼는데!”
사실 종수까지 합치면 4배지만 쌍둥이들은 종수를 제외했다.
“아, 맞다! 깜.빡.했.네!”
승준이 연기를 정말 못했다.
종수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별말을 하지 못했다.
하나는 오빠가 말한 것만 들어서 종수를 포함한 건 눈치채지 못했다.
“맞네~ 4배네~”
“아아. 너이 배.”
시하는 친구들의 힘을 빌려 소원을 빈 뒤에 우물을 바라보았다.
멀다.
조금 가까이 가려는데 선생님이 어느새 흰색 종이테이프로 바닥을 찌익 그었다.
“여기까지!”
“아?”
시하는 긴장하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선생님이 응원했다.
“이 동전에 내 모든 걸 걸겠어!”
원장이 그것도 응원이냐는 듯이 쳐다봤지만, 선생님은 보지 못했다.
선생님의 말에 시하의 주먹이 더 꽉 쥐어졌다.
“아아!”
시하가 동전을 던졌다.
휘리릭. 쨍그랑.
너무 힘을 줘서인지 동전이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건 마치 젤리 장난감 같았다.
“동전….”
털썩.
시하가 분하다는 듯이 땅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때 승준이 말했다.
“시하야. 메달 있잖아! 아직 한 번 더 기회가 있어!”
“아?”
시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달을 꺼냈다.
단 한 번의 기회.
시하는 다시 간절히 빌었다.
빨간 시하 차가 반짝반짝하게 낫기를.
“아아!”
“시하야. 던져!”
“아아!”
“높게! 높게!”
감독처럼 조언이 시작되었다.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응원.
시하가 다시 한번 메달을 던졌다.
휘리릭. 툭.
아슬아슬하게 벽돌 블록 위를 맞더니 동전이 한 번 튕겨 올랐다.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마치 농구공이 골대에 맞은 꼴.
따사로운 햇볕이 동전을 비추고, 은색 빛이 점멸하듯 깜빡깜빡 빛난다.
그 뒤로 툭 하고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3점 슛이 극적으로 성공한 듯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승준이가.
“으아아아악! 잘했어. 시하야!”
승준이 시하의 얼싸안으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넌 내 최고의 선수야!”
뒤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저기 승준아? 언제 시하가 네 선수가 된 거니?
하지만 그건 그거고 기쁜 건 기쁜 거였다.
이게 뭐라고 아이들이 시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
그렇게 승준이 동전을 던져 가볍게 넣었다.
종수도 질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넣었고, 하나도 기원해서 넣었다.
그리고 그 뒤로 재휘도 던졌는데 띵하고 튕겨 나갔다.
“괜찮아. 재휘야. 그럴 수 있지.”
충격을 받은 재휘의 어깨 뒤로 종수의 손이 올라와 토닥여 주었다.
하나는 그런 재휘를 지켜보다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메달…….”
하나에게는 메달이 하나 더 있었던 것.
선생님 안 보는 틈에 가까이 다가가 실패 없이 우물에 쏙 넣었다.
“시혀기 오빠랑만 놀래.”
아직 같이 노는 걸 포기하지 않은 하나였다.
***
-시하를 데려가는 길.
“시하야.”
“형아!”
시하가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펭귄 가방이 들썩들썩 흔들린다.
나는 그대로 들어서 시하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 오늘도 감사했어요.”
“아니에요. 이게 제 일인걸요. 그런데 시혁씨. 시하 차에 큰일 있었다면서요?”
“네? 하하…. 소문 다 났어요?”
“네. 시하가 엄청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우물에 동전 넣어 소원을 빌었어요.”
“정말요? 시하야. 소원 빌었어?”
나는 시하를 보았다.
“아아. 반짝반짝. 차 나아. 해써.”
“그래? 차 나으라고 했어? 잘됐다. 소원이 이뤄졌나 봐. 차가 이제 나았어.”
“아?”
선생님도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빠르네요.”
“하하. 네. 빠르더라고요.”
나는 머쓱해서 말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시하야. 안녕.”
“샘. 바이바이.”
그렇게 나와서 끌고 온 차를 보여주었다.
“시하야. 차 다 나았지?”
“아? 아냐? 마자?”
“응?”
“아냐. 마자?”
시하가 혼란스러운 듯이 차를 보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관찰력이 좋네…….’
사실 법인 리스 차를 수리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어보러 전화했는데…….
새 차가 와버렸다.
시하 소원대로 반짝반짝 차가 나은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